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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영이와 묵이를 등에 업은 석후는 경공을 펼쳤다.

두 아이가 납치를 당한 뒤 추적할 때만큼 전력을 다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빠른 속도의 경공이었다.

석후는 아이들과 함께 이동하는 것을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남은 인원들이 집결해 있는 진지에서 황지의 상황을 알아차린다면, 추적대가 붙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이를 피해 사냥꾼과 그의 가족들이 도망갈 수 있는 여유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석후는 영이, 묵이와 함께 집에 도착하고, 이후 사냥꾼의 가족들이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을 최대 다섯 날로 생각하였다.

황지의 식량 창고에는 백이십 명의 아이들에게 최소한으로 배급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길게 잡아야 육 일 정도를 먹일 수 있을 만큼의 식량이 아이들에게 배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엿새 내에 아이들이 죽으면 다시 납치하여 작업을 이어 간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등에 두 아이를 업은 채 계속해서 경공을 펼치는 것은 부담이지만, 시간이 없었다. 석후는 최소한의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는 사냥꾼의 집으로 내달렸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 덕분에 석후는 전력으로 달려왔을 때와 같은 시간인 이틀 만에 사냥꾼의 거처에 도달하고, 사흘의 여유 시간을 남겨 둘 수 있었다.

해가 저물고 술시(19시∼21시)에서 해시(21시∼23시)로 넘어가는 늦은 시간임에도 사냥꾼은 집 앞에 나와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아마도 석후가 영이와 묵이를 찾으러 나선 이후로 매일같이 집 앞에 나와 서성였을 것이 분명하였다.

자신의 등 위에서 깊게 잠든 영이와 묵이를 업은 채 석후는 사냥꾼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어둠 속에서 자박자박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사냥꾼이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거기 누구요?”

어둠을 헤치며 석후가 지척까지 다가서고 나서야 검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누구인지를 알아챈 사냥꾼은 일순간, 자리에 주저앉았다.

석후의 등에 업힌 영이와 묵이가 시체가 되어 돌아온 것이라 오인한 것이었다.

의외의 재밌는 광경에 피식 웃은 석후는 몸을 흔들어 두 아이를 깨워 땅에 내려 주었다.

“아빠……?”

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보이고 있는 자신들의 아비를 발견한 영이와 묵이는 울먹거리며 다가갔다. 이내 아비의 양팔에 안기며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영아… 묵아!”

목이 멘 사냥꾼이 울음을 터뜨린 아이들을 끌어안으며 이름을 부를 때, 안채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안채의 문을 열고 상체를 반쯤 앞으로 내민 엄마를 발견한 묵이가 득달같이 달려갔다.

사냥꾼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영이를 안고 아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석후는 마당 한편에 자리하고 앉아 사냥꾼의 가족이 재회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어쩐지 슬픈 표정의 석후지만, 어둠에 가려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무려 한 시진 동안 이어진 감격스러운 재회를 마치고 나서야 석후는 사냥꾼과 그의 아내를 독대할 수 있었다.

영이와 묵이를 그들의 침소로 보낸 뒤, 사냥꾼과 그의 아내만 있는 안채에서 석후는 묵직한 주머니 하나와 작은 주머니 하나를 함께 내밀었다.

“아니, 자네… 이게 무엇인가?”

“영이와 묵이를 구하며 뜻하지 않게 얻은 은자예요. 그리고 이건 흑웅의 내단이구요.”

“이것을 왜 주냐는 말이야. 우리가 자네에게 평생 동안 보답해도 모자랄진대…….”

“영이와 묵이를 구하며 아이들을 납치한 자들을 피치 못하게 죽여야만 했어요. 그러니 그들이 저와 아이들을 쫓기 위해 추적대를 파견할 것이에요.”

“악인들을 죽인 것인데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그들이 우리를 쫓기 전에 우리도 몸을 피하면 될 것인데 무엇이 걱정이야! 이 은자들과 내단은 자네가 안전하게 챙겨 함께 이동하면 될 것이지, 우리에게 줄 이유가 없다네.”

거듭하여 손사래를 치던 사냥꾼은 크고 작은 두 주머니를 석후에게 밀어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자네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려는 것인가?”

무거운 한숨을 내뱉은 석후가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하였다.

“놈들은 분명 이번 일이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납치하던 곳을 찾아다니며 수하들의 복수를 하려 할 것이에요. 남아 있는 삼 일의 여유 시간 동안 북쪽으로 방위를 잡아 최대한 그들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먼 곳으로 이동하셔서 새로이 터를 잡으셔야 할 것이에요.”

자신의 물음에 회피하듯 석후가 대답하자 사냥꾼이 재차 물었다.

“아이들과 함께 도망치는 것이야 걱정되는 바가 아니네. 함께 떠나지 않을 생각인가? 자네도 쫓기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인데, 우리가 짐이 될 것 같아 그러는 겐가?”

말을 마친 사냥꾼이 두 손으로 석후의 오른손을 감싸 잡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떠한 어려움도 함께 헤쳐 나가는 것이 가족이라네. 그리고 이 어려움은 영이와 묵이를 구하며 맞이하게 된 것인데, 우리가 함께 이겨 내야지!”

사냥꾼의 아내 또한 석후의 차가운 왼손을 잡으며 말했다.

“가족이나 진배없는데 우리와 함께 가요. 그리고 평생 영이와 묵이에게 형으로 남아 줘요.”

따듯한 체온과 함께 전해지는 이야기에 석후는 두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여전히 두 눈을 감은 채 석후가 입을 열었다.

“저는 영이와 묵이를 납치한 놈들 같은 악인의 무리에게 가족을 잃었어요.”

석후는 십 년을 사냥꾼과 지내면서 자신의 내력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사냥꾼은 어떠한 사연이 있거나 천애고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석후가 지금 이야기하는 내용은 그로서도 충격이었다.

사냥꾼과 그의 아내가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못하자, 석후는 감고 있던 눈을 뜨며 재차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는 열 살 무렵 제 가족의 시신들을 손수 수습하며 다짐했어요. 어떻게 해서든 가족을 죽인 흉수를 찾아내 복수를 하고 말겠다고. 저도 아저씨, 아줌마, 그리고 영이, 묵이와 평생토록 함께 살며 행복하게 지내고 싶지만, 가족의 복수를 완수할 때까지 어딘가에 머무를 수는 없어요. 제가 머무르는 곳은 언제나 위험이 가득하게 되는데, 그런 곳에서 영이와 묵이가 안전하게 지낼 수는 없을 것이에요.”

지금껏 듣지 못한 사연과 단호한 어조에 사냥꾼이 한발 물러서며 이야기하였다.

“그렇다면 복수를 완수한 뒤에는 다시 지금처럼, 아니, 지금까지처럼 우리와 함께 산다고 약속해 주겠는가?”

사냥꾼의 말에 조용히 미소를 짓던 석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그때는 반드시……!”

지도를 펼쳐 서로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 사냥꾼의 가족은 북서의 방위로 석후는 동쪽의 방위로 위치를 잡아 도주하기로 결정하였다.

사냥꾼의 가족이 이동하는 감숙의 북서 방위로는 청해와 신강이 맞닿아 있어 비교적 험로에 해당되고, 석후가 이동하는 동쪽 방위는 섬서, 하남 등의 대도시가 즐비하였다.

도주 경로를 이와 같이 결정한 것에는 석후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두 명의 어린아이와 함께 도주하는 것에 있어서 험지를 택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며, 사람이 붐비는 곳에 숨어드는 것이 보편적인 판단이었다.

따라붙을 추격자들도 많은 사람들 속에 몸을 숨기기 쉬운 대도시로 도주했을 것이라 예상하고 경로를 설정할 것이 틀림없었다.

따라서 석후는 사냥꾼의 집에서부터 흔적을 남기며 그들을 유인하고, 그 시간 동안 사냥꾼과 그의 가족들은 험지를 돌파하여 중원과 멀리 떨어진 곳에 안전하게 정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사냥꾼은 추격자들을 홀로 유인하는 것이 무척이나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완강히 거절하려 하였지만, 석후의 완고한 태도에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석후가 동쪽 방위를 잡아 이동하는 것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감숙에서 동쪽으로 향하여 이동하다 보면 낙양이 나오고, 그곳에는 개방의 본거지가 위치해 있었다.

석후는 그곳을 자신이 이동하는 최종 목적지로 잡아 방위를 결정한 것이었다.

석후는 두 아이의 짚신을 연결한 지팡이를 양손에 쥐고, 땅에 눌러 발자국을 남기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추격대를 자신에게 끌어들이고, 그들을 처리한 뒤 종적을 감추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추격대를 마주치기 전까지 석후가 이동을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여러 갈래로 흩어져 추격을 해야 하는 그들의 인원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며, 관 또는 복면인 정도의 고수를 마주친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위협적이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후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낙양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가족을 죽인 흉수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도 한정적이다. 과연 개방의 인물들은 장건, 그리고 대주라는 두 단어만으로 흉수들을 찾아낼 수 있을까? 만약 그들이 찾아내지 못한다면, 나는 다시 어디로 이동을 해야만 하는가…….’

여러 가지의 자문자답이 석후의 머릿속에서 계속되었지만,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던 와중에 문득 자신을 보며 악귀를 본 듯한 표정을 짓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복잡한 머릿속을 한층 더 어지럽혔다.



***



“호오, 기가 막히게 뚫어 냈군. 권격에 강기를 실을 수 있다는 것인가? 이봐, 지단주(地團主). 여길 좀 보게나. 이놈이 신참치고는 무공깨나 쓰던 놈인데? 아주 깨끗하게 복부를 관통시켜 버렸어. 끌끌끌.”

풍채가 있는 큰 체구에 백발이 숭숭한 노인이 재미있다는 듯 이야기하자, 왜소한 체구의 흑발이 치렁한 노인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지금 웃고 있을 때가 아니네. 이곳 황지를 담당하던 자들은 자네가 맡고 있는 천단(天團) 소속인 것을 잊고 있는 겐가? 존주께서 이번 일을 알게 되신다면 경을 치실 것이야!”

“흐흐… 자네, 내가 웃고 있는 이유를 진정 모르겠는가?”

백발의 노인이 싸늘히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황지에 쳐들어온 놈은 단 한 놈일세. 그것도 기운으로 강(罡)을 형성해 낼 수 있는 인물. 그것이 어디 인물일 것 같나? 끌끌끌.”

“자네 말은 황지에 쳐들어온 것이 구대문파의 인물일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겐가?”

“하하하하, 구대문파의 인물이 아니더라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저 우리는 구대문파의 인물이라 보고하면 되는 것이야. 어디 보자… 소림이 적당하려나. 이 정도의 강을 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 구대문파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일세. 이자는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출병(出兵)을 가능하게 만들어 줄 것이야!”

황지에는 뇌우(雷雨)와 같이 귀를 울리는 웃음소리가 한동안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