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7화



분기 가득한 음성을 내뱉으며 이십관이 석후의 목덜미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이십관의 검이 목덜미 한 치 앞까지 도달하였을 때까지도 석후의 몸은 미동이 없었다.

좌중의 모두가 석후의 목이 잘릴 것이라 예상한 그 순간이었다.

“끄아악!!”

찰캉!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이십관의 검이 암석으로 이루어진 땅 위로 떨어져 부딪쳤다.

하지만 땅에 떨어진 것은 검 하나만이 아니었다.

여전히 검을 쥐고 있는 이십관의 오른팔 전체가 함께 땅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팔의 어깻죽지 부분은 무언가에 잘려 나간 것이 아니라 강제로 잡아 뜯긴 듯 너덜너덜하였는데, 좌중의 어느 누구도 자세한 내막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거칠게 떨어져 나간 이십 관의 팔이지만, 정작 이십 관은 두 다리의 무릎마저 망가졌는지, 다리에 힘을 잃고 쓰러진 채 고통에 신음하였다.

세 복면인 중 가운데 자리에 서 있던 자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보통 놈이 아니다. 손속의 잔인함도 대단하지만, 행동함에 있어 망설임이 전혀 없다.’

그 또한 석후의 수법을 완벽하게 알아차리지는 못하였지만, 석후가 왼쪽으로 돌며 이십 관의 검을 피하는 동시에 팔이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아 회피와 동시에 무공을 펼친 것이라 유추하였다.

이는 절반은 맞추었지만, 나머지 절반의 상황은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석후는 검을 회피하기 전, 속도에 초점을 둔 각법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이십관의 양 무릎을 가격하여 부수었다.

빠르게 접근하던 이십관 하체의 하중과 석후의 빠른 각법의 충격이 무릎에 고스란히 가해져 두부가 으깨지듯, 양 무릎의 뼈가 으스러져 버린 것이었다.

그 후, 이십관이 다리에 힘을 잃고 쓰러지기도 전에 재빨리 몸을 움직여 팔 한쪽을 잡아떼어 버린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좌중의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석후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이십관의 뒤로 계속해서 접근하고 있던 무리의 한 명, 한 명에게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든 속도로 달려들었다.

관과 그의 무리가 무언가 번쩍인다고 느낀 순간이면 느닷없이 동료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촌초(寸秒) 동안 그들은 열 명이 넘는 동료의 목이 날아가고, 팔다리가 뜯겨 나가며, 몸이 주먹에 관통당하여 죽는 등 매우 잔인한 수법으로 살해당하는 것을 생생히 보게 되었다.

그것은 싸움도 아니며, 전투 또한 아니었다.

마치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있는 포악한 육식동물 하나가 여럿의 초식동물을 일방적으로 사냥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흔 명 남짓 남은 인원의 발걸음은 어느새 멈추어 있었다.

그들 모두는 마주한 광경을 눈으로 보며 알게 되었다.

자신들은 사냥꾼이 아니며, 사냥감이라는 사실을.

겁먹은 사냥감들은 어느새 한두 명씩 석후가 위치한 동굴의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마흔 명의 인원은 도망치는 자와 석후를 경계하며 자리를 지키는 자,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한 자들로 삼등분되어 전열이 흐트러졌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복면인들은 자신들조차도 파악할 수 없는 석후의 무공에 놀랐지만, 그럴 여유도 없이 작금의 상황을 정비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열 명 이상의 수하들이 죽어 나가도록 전혀 미동이 없던 복면인들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탓. 탓. 탓.

경쾌한 보법을 펼치며 복면인들이 이동한 곳은 석후가 서 있는 곳이 아닌, 도망치고 있는 수하들의 곁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수하들을 살해하였다.

“지금부터 뒤로 물러서는 놈들이 있다면, 우리의 손에 먼저 죽게 될 것이다!”

공력을 실어 내뱉는 복면인의 말은 황지에 울려 퍼져 수하들의 귀에 우렛소리처럼 들렸다.

“물러서지 말고 맞서 싸워라! 저놈의 몸뚱이에 조그만 상처라도 내는 놈들에겐 지금껏 받아 온 보수의 두 배를 얹어서 주도록 하겠다!”

복면인의 말에 도망치던 무리들은 잠시간 행동을 망설였으나, 그들의 시선은 다시 석후에게로 돌아갔다.

어차피 도망쳐도 죽임을 당할 것이라면, 동료들과 힘을 합쳐 싸워 더 많은 보수라도 벌어 보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복면인들은 나름대로 생각이 복잡하였다.

그들이 처음 동굴 앞에 서 있는 석후를 바라보았을 때, 별다른 기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석후가 이십관에게 손을 쓰자 복면인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패도적인 기운이 흘러나왔고, 순식간에 열이 넘는 수하들의 목숨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막 약관을 넘은 것 같은 청년이 뿜어낼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고, 손속의 잔인함은 생명을 앗아 본 경험이 많은 노련한 무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복면인들이 석후를 대적함에 있어 망설임을 갖게 한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무공 수위를 전혀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석후의 모든 움직임에는 강력한 기운이 실려 있기는 했으나, 막상 펼치는 무공에는 연계가 없었다.

석후의 무공을 견식한 복면인들에게는 무공 초식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초심자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이런 모습이 석후가 본연의 실력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수하들의 목숨과 바꾸어 무공을 더 지켜보도록 하였다.

“저놈을 반원으로 둘러싸!”

아직 살아남아 있던 십육관이 무리에게 큰 목소리로 지시하였다.

그들은 석후가 나이를 뛰어넘는 무공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협동 공격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남은 인원 모두가 십육관의 말에 따라 석후를 겹겹이 둘러쌌다.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한 그들은 석후를 마주하고 앞에 서자 숨이 거칠어졌고, 갓 약관을 넘겨 보이는 청년의 어리숙한 얼굴이 흉신악살보다도 두렵게 느껴졌다.

검을 쥔 그들의 손에 땀이 흥건해질 무렵, 뒤에서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덮쳐!”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소리치지 않는다면, 그들 중 다수는 긴장을 이겨내지 못하고 섣불리 석후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지 모를 이의 외침은 매우 시기적절한 것이었다.

외침과 동시에 석후의 후방을 제외한 모든 방위에서 동시에 공격이 시작되었다.

석후는 찰나 간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그들에게 다가설 필요가 없었다.

그저 부나방처럼 다가오는 그들의 움직임에 대응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들이 동시라고 생각하는 움직임에는 접근하는 속도에 있어서 조금씩 차이가 존재하였고, 그 정도면 석후가 대응하기에는 충분했다.

몸을 향해 찔러 오는 검날을 손바닥으로 쳐 부러뜨리고, 검을 쥔 손의 손목을 뽑아냈다.

횡으로 목을 잘라 오는 검을 회피하고, 휘둘러진 팔을 잡아 뜯어내었다.

몸통으로 부딪치려는 자의 목을 잡아 세우고 목뼈를 분질렀다.

두려움에 하체만 섣불리 앞으로 나와 있는 자의 두 정강이를 으스러뜨리고, 넘어지는 그의 상체에서 머리를 잡아 뜯어내었다.

검을 집어 던지는 것에 이어 주먹질을 해 오는 자의 검을 잡아 그자의 몸을 수직으로 갈라내었다.

석후가 행하는 움직임에는 한 명당 두 번의 움직임을 넘어서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오십 번도 되지 않는 움직임을 마쳤을 때, 석후를 향한 더 이상의 접근은 없었다.

눈앞에는 아직 네 명의 인원이 남아 있었으나 그들의 동공은 힘을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석후는 하릴없이 서 있는 그들의 뒤로 시선을 옮겨 복면인들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그들은 천천히 석후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석후를 향해 발산하는 그들의 기세는 넘실거리면서도 절대 넘치지 않아 기운의 수발이 뛰어난 자들이 분명해 보였다.

석후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

흑웅과의 일전 이후로 자신이 강해졌다는 것은 느끼고 있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들과 겨루어 본다면, 자신이 노력한 십 년의 성과가 구체적으로 보일 것만 같았다.

복면인 셋은 석후의 일 장 앞에 멈추어 섰다.

이내 그들은 일제히 검을 뽑더니, 멍하게 서 있는 수하들 넷의 목을 쳐 버렸다.

“근래에, 너와 같은 젊은 고수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이름이 무엇이냐?”

복면인 중 가운데 서 있던 자가 말했다.

“곧 죽을 자에게 알려 줄 이름 따위는 없소.”

석후의 건방진 대답에 복면인의 눈자위가 씰룩거렸다.

“고작 몇 수 익힌 것이 전부인 놈이 혀가 더 매섭구나.”

말을 마친 복면인이 고갯짓을 하자 셋의 출수가 동시에 시작되었다.

그들은 석후의 정면과 양옆의 세 방위를 점하여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양옆의 두 복면인이 석후의 옆구리와 목덜미를 각각 동시에 찌르고 들어오고, 그와 더불어 정면에 있던 이는 허벅지를 노려 왔다.

그들의 목적은 너무도 분명하였다.

양옆에서 공격하는 이들은 오직 속도에 중점을 둔 초식을 펼쳐 피하는데 급급하게 만든다.

그러고 정면의 복면인이 피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대의 허점을 노려 상처를 입히려는 것이었다.

모든 합격진에는 중심이 되는 검수가 있는데, 석후의 생각에는 이들이 펼치는 삼인 검진에서는 가운데 위치한 복면인이 중심인 것 같았다.

‘중심을 무너뜨린다!’

석후는 양옆의 공격을 가볍게 흘린 뒤, 정면을 향해 순식간에 이보(二步)를 내디뎠다.

그러자 갑자기 그들의 역할이 변화하였다.

정면에서 실의 역할을 하던 인물이 오른쪽 방위를 점하고 있는 복면인과 함께 속도에 중점을 둔 허의 초식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뒤이어 석후의 왼쪽의 위치해 있던 복면인의 초식이 실의 초식으로 변화하여 석후의 가슴팍을 찔러 왔다.

그들은 허와 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높은 수준의 차륜전을 구사하였다.

석후를 정면으로 유인하는 것에 성공한 복면인들은 승기를 잡기 위해 기세를 더욱 끌어올려 강력한 초식들을 펼쳐 내었다.

그들은 허실이 자유로이 변화하는 파상 공격을 스무 초식이 넘도록 피하기만 하는 석후를 보며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였다.

‘승기를 잡았을 때 승부를 내야 한다!’

어느새, 복면인들이 석후를 향해 펼쳐 내는 허초들은 처음보다 두 배는 빨라져 있고, 처음엔 간격을 두고 여유 있게 검초를 피하던 석후는 이내 그들의 검이 한 치 앞에 도달하고 나서야 간신히 피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