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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석후는 관이라 불리는 중년인, 그리고 영이와 묵이를 납치한 인원이 포함된 네 사내와 마을 뒤에 위치한 산으로 들어갔다.
관은 산속의 지리를 훤히 꿰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은 흔적이 없는 길로 일행을 이끌었고, 한 시진이 넘어서고 나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은 산속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터였는데, 목책을 둘러 외벽을 쌓아 둔 진지가 자리하였다.
관은 진지의 외벽을 지키고 있는 창잡이 둘에게 다가가 무어라 말을 건네었다. 그들의 대화가 끝나자, 일행들은 목책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곳에 영이와 묵이가 있는 것일까?’
진지 안에 영이와 묵이가 있었으면 하는 석후의 바람과는 달리, 함께 이동한 사내들과 같은 복장의 수많은 인물들만이 군집해 있었다.
그들의 인원은 대략 백이 넘어 보였는데, 여섯 명씩 한데 모여 앉아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주루에서 만난 관의 일행과 나를 포함하면 마찬가지로 여섯 명이 되는데, 그게 아이들을 납치하는 최소한의 인원이 되는 것인가?’
영이와 묵이는 대체 어디로 끌려간 것인지, 진지 안에 군집한 백이 넘는 인원이 모두 납치와 관련된 자들인지, 석후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석후가 풀리지 않는 여러 의문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중 공터 중앙에 마련된 단상으로 복면을 착용한 인물이 천천히 올라섰다.
그와 동시에 장터처럼 시끌벅적하던 장내는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다. 패도적인 기운이 넘실거리면서도 잘 정제되어 있다.’
석후가 회음현을 떠나고 처음 마주한 고수였다.
복면인은 군집한 인원을 가늠이라도 하려는 듯 장내를 천천히 둘러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일관.”
“일관!”
“이관.”
“이관!”
“이십관.”
“이십관!”
단상 위의 복면인이 이십관을 외치자, 석후를 주루에서 이끌고 온 중년인이 대답을 하였다.
관은 중년인의 이름이 아니며, 한 개의 조를 이끄는 수장 격을 의미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산속에 백이 넘는 인원을 수용할 진지를 세울 수 있으며, 이 많은 인원을 통제하는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석후는 그들의 진지가 산에 위치했다는 점을 들어 녹림맹을 머릿속에 잠시 떠올렸으나, 특유의 녹색 깃발이 어디에도 꽂혀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녹림은 아닐 것이라 결론 내렸다.
중년인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 물건을 받아 와서 지키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야기한 것은 아이들을 납치하는 일이 분명하였다.
‘이들을 따라가야만, 영이와 묵이를 찾을 수 있을 텐데……. 그럼 이들이 벌이는 납치 행각에도 발을 담가야 한다는 말인가.’
석후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단상 위에 복면인이 다시 입을 떼었다.
“목표는 인당 일(一), 일시는 내일 신시(15시~17시)까지다. 출발해라!”
복면인이 말을 마치자, 일관이 동로(東路)라 적힌 깃발을 들어 자신의 일행을 이끌었고, 그 뒤를 따라 오관까지의 인원들이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오관의 인원까지 진지에서 모두 사라지자, 육관에서 십관은 서로, 십일관에서 십오관은 남으로 차례로 이동을 시작하였다.
십관의 인원들이 진지 밖으로 나서고 있을 때, 중년인이 석후의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부터는 정신 차리지 않는다면 목이 날아가게 될 것일세.”
중년인은 여전히 능구렁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하였지만, 그가 풍기는 분위기는 주루에서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품에서 다른 이들이 소지하고 있는 것과 같은 장검 한 자루를 꺼내 석후에게 내밀며 말을 이었다.
“곧 사용하게 될 터이니, 잘 소지하고 있으시게나. 끌끌.”
중년인이 자리로 돌아가자, 십육관에서 이십관까지의 인원들이 북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석후가 포함된 북로(北路)의 인원들은 산로를 타고 세 시진이 넘도록 이동을 하였다.
서른 명의 사내는 자신이 속한 관의 대열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옆 사람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동을 하였다.
산지가 끝나고 석후의 시야에 조그만 마을이 보이기 시작할 때, 십육관이 걸음을 멈추었다.
이내 그 뒤를 따르던 모든 인원이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십육관이 들고 있던 북로기(北路旗)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이야기했다.
“인당 일이다. 시작해라!”
십육관이 말을 마치자마자, 각 관은 자신의 일행을 이끌고 시야에 보이는 마을로 뛰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이십관과 그의 수하들도 마을을 향해 달려갔고, 석후 또한 그들의 뒤를 따랐다.
마을에 들어선 석후는 중년인이 이야기한, 받아야 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가 물건이라 지칭한 것은 예상대로 아이들이었다.
그것도 연령이 십 세가 넘지 않은 체구가 작은 아이들.
각 관과 그들이 이끄는 수하들은 마을의 집집마다 들이닥쳐서 조건에 해당하는 아이들을 납치하기 시작하였다.
아이를 지키려 그들에게 대항하는 부모들은 구타를 당해 기절하거나 칼에 맞아 죽어 갔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석후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은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정체 모를 복면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가족과 식솔들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며 석후의 머리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분노에 가득 차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던 석후에게 이십관이 다가왔다.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서 있을 셈인가?”
자신에게 들려오는 말소리에 석후는 간신히 이성을 찾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아이 하나씩을 포박하여 동여맨 채 자신을 바라보았다.
이십관은 남자아이 한 명과 그 아비로 보이는 사내를 석후 앞으로 끌고 왔다.
“우리의 동료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일세. 아비를 죽이고 이 아이를 직접 포박하게나.”
이십관의 말 사이사이로 들리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천둥처럼 울려왔다. 이는 석후의 분노를 걷잡을 수 없이 키웠다.
석후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신입의 신고식을 구경하려던 사내들은 비웃으며 이십관을 향해 한마디씩 내뱉기 시작하였다.
“이십관 형님은 어디서 이런 겁쟁이를 주워 오셨을까? 하하하!”
“이놈 아랫 물건이 제대로 달려 있는지부터 확인해 보시구려. 크크크.”
‘이 개자식들의 사지를 내 손으로 직접 분리하고 말겠다!’
마침내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된 석후는 그들 모두를 죽이겠다고 결심하였다.
석후가 출수하려는 그때, 영이와 묵이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아이의 눈을 보게 되자, 석후는 친동생처럼 여긴 사냥꾼의 아이들이 떠오른 것이었다.
영이와 묵이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납치된 장소를 알아내야만 하는데, 지금 이들을 적으로 돌린다면 영영 아이들을 찾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비록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인원은 삼십 명에 불과하고, 이들을 해치울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 살아남아 진지로 돌아간다면, 의심을 살 것이 분명하였다.
그 상태에서 인질로 사로잡혀 있는 영이와 묵이를 안전하게 구해 낼 방법은 없었다.
‘당장은 나의 목적이 우선이다. 영이와 묵이를 구해내는 것. 그 외에 벌어지는 일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도 연민, 온정이 개입된 상황을 수도 없이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복수를 완수해야만 한다.’
석후는 현재 목적과 자신이 마주해야 하는 복수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복잡한 생각들을 모두 정리하였다.
석후는 이십관에게 받은 장검을 망설임 없이 휘둘러 무릎 꿇려진 아비의 목을 잘라 내었다.
다음 날, 신시가 되자 동, 서, 남, 북로의 모든 인원이 진지의 중앙에 군집했다.
백 명이 넘는 인원이 자신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아이들을 납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석후는 믿기지 않았다.
즉, 그들은 사전에 관군(官軍)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마을들의 정보를 파악하고, 그로 인해 아이들을 손쉽게 납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로 관과 그들의 수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하루 만에 백이십 명의 아이를 납치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울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 그들의 배후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석후는 어제 단상 위에서 이야기하던 복면인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고, 그가 분명 이들의 배후와 연관이 있는 인물일 것이라 생각했다.
‘복면인 정도의 고수가 영이와 묵이를 인질로 데리고 있다면, 나는 과연 두 아이를 무사히 구해 낼 수 있을까?’
진지 안에 군집한 각 인원들은 자신이 잡아 온 아이를 포박하여 옆에 두었다.
복면인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이 영이와 묵이를 인질로 데리고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충분히 구해 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영이와 묵이를 복면인이 인질로 삼는다면, 확신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석후의 판단이 치솟는 살심을 억눌렀다.
‘조금 더 참아야만 한다. 영이와 묵이의 안전이 먼저다.’
다짐하듯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어제 본 복면인이 단상 위에 올라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모두가 계획에 어긋남 없이 목적을 달성하였음을 축하한다. ‘황지’에 도착하자마자 너희 모두는 약속한 보상을 얻게 될 것이다.”
‘황지는 대체 어디를 말하는 거고, 이 많은 아이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게 되는 거지?’
석후는 사천 주변에 위치한 땅 중 황색을 띠는 지형이 있었는지 떠올리려 노력해 보았으나, 처음으로 이곳에 온 터라 알 길이 없었다.
석후의 고민이 깊어 가는 동안 진지에 모인 이들 전부가 이동을 시작하였다.
복면인과 부하들은 남쪽 방위를 따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험로만을 이용하였다.
세 시진이 넘도록 포박당한 채 걸음을 옮기는 아이들은 점점 기력이 다해 갔다.
음식이나 물도 섭취하지 못한 채 험한 산지를 걸은 터라, 지친 아이들 중 몇몇은 결국 힘을 잃고 픽픽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각 관과 수하들에게 자비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쓰러진 아이들에게 발길질을 하거나, 검집으로 매질을 하여 강제로 일으켰다.
산속의 해가 빠르게 저물어 금세 어두워졌음에도 그들은 어둠에 개의치 않았다.
그만큼 그들은 이동을 서둘렀고, 그 결과, 축시(1시~3시)가 다 되어서야 황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석후는 관이라 불리는 중년인, 그리고 영이와 묵이를 납치한 인원이 포함된 네 사내와 마을 뒤에 위치한 산으로 들어갔다.
관은 산속의 지리를 훤히 꿰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은 흔적이 없는 길로 일행을 이끌었고, 한 시진이 넘어서고 나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은 산속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터였는데, 목책을 둘러 외벽을 쌓아 둔 진지가 자리하였다.
관은 진지의 외벽을 지키고 있는 창잡이 둘에게 다가가 무어라 말을 건네었다. 그들의 대화가 끝나자, 일행들은 목책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곳에 영이와 묵이가 있는 것일까?’
진지 안에 영이와 묵이가 있었으면 하는 석후의 바람과는 달리, 함께 이동한 사내들과 같은 복장의 수많은 인물들만이 군집해 있었다.
그들의 인원은 대략 백이 넘어 보였는데, 여섯 명씩 한데 모여 앉아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주루에서 만난 관의 일행과 나를 포함하면 마찬가지로 여섯 명이 되는데, 그게 아이들을 납치하는 최소한의 인원이 되는 것인가?’
영이와 묵이는 대체 어디로 끌려간 것인지, 진지 안에 군집한 백이 넘는 인원이 모두 납치와 관련된 자들인지, 석후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석후가 풀리지 않는 여러 의문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중 공터 중앙에 마련된 단상으로 복면을 착용한 인물이 천천히 올라섰다.
그와 동시에 장터처럼 시끌벅적하던 장내는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다. 패도적인 기운이 넘실거리면서도 잘 정제되어 있다.’
석후가 회음현을 떠나고 처음 마주한 고수였다.
복면인은 군집한 인원을 가늠이라도 하려는 듯 장내를 천천히 둘러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일관.”
“일관!”
“이관.”
“이관!”
“이십관.”
“이십관!”
단상 위의 복면인이 이십관을 외치자, 석후를 주루에서 이끌고 온 중년인이 대답을 하였다.
관은 중년인의 이름이 아니며, 한 개의 조를 이끄는 수장 격을 의미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산속에 백이 넘는 인원을 수용할 진지를 세울 수 있으며, 이 많은 인원을 통제하는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석후는 그들의 진지가 산에 위치했다는 점을 들어 녹림맹을 머릿속에 잠시 떠올렸으나, 특유의 녹색 깃발이 어디에도 꽂혀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녹림은 아닐 것이라 결론 내렸다.
중년인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 물건을 받아 와서 지키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야기한 것은 아이들을 납치하는 일이 분명하였다.
‘이들을 따라가야만, 영이와 묵이를 찾을 수 있을 텐데……. 그럼 이들이 벌이는 납치 행각에도 발을 담가야 한다는 말인가.’
석후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단상 위에 복면인이 다시 입을 떼었다.
“목표는 인당 일(一), 일시는 내일 신시(15시~17시)까지다. 출발해라!”
복면인이 말을 마치자, 일관이 동로(東路)라 적힌 깃발을 들어 자신의 일행을 이끌었고, 그 뒤를 따라 오관까지의 인원들이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오관의 인원까지 진지에서 모두 사라지자, 육관에서 십관은 서로, 십일관에서 십오관은 남으로 차례로 이동을 시작하였다.
십관의 인원들이 진지 밖으로 나서고 있을 때, 중년인이 석후의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부터는 정신 차리지 않는다면 목이 날아가게 될 것일세.”
중년인은 여전히 능구렁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하였지만, 그가 풍기는 분위기는 주루에서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품에서 다른 이들이 소지하고 있는 것과 같은 장검 한 자루를 꺼내 석후에게 내밀며 말을 이었다.
“곧 사용하게 될 터이니, 잘 소지하고 있으시게나. 끌끌.”
중년인이 자리로 돌아가자, 십육관에서 이십관까지의 인원들이 북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석후가 포함된 북로(北路)의 인원들은 산로를 타고 세 시진이 넘도록 이동을 하였다.
서른 명의 사내는 자신이 속한 관의 대열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옆 사람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동을 하였다.
산지가 끝나고 석후의 시야에 조그만 마을이 보이기 시작할 때, 십육관이 걸음을 멈추었다.
이내 그 뒤를 따르던 모든 인원이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십육관이 들고 있던 북로기(北路旗)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이야기했다.
“인당 일이다. 시작해라!”
십육관이 말을 마치자마자, 각 관은 자신의 일행을 이끌고 시야에 보이는 마을로 뛰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이십관과 그의 수하들도 마을을 향해 달려갔고, 석후 또한 그들의 뒤를 따랐다.
마을에 들어선 석후는 중년인이 이야기한, 받아야 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가 물건이라 지칭한 것은 예상대로 아이들이었다.
그것도 연령이 십 세가 넘지 않은 체구가 작은 아이들.
각 관과 그들이 이끄는 수하들은 마을의 집집마다 들이닥쳐서 조건에 해당하는 아이들을 납치하기 시작하였다.
아이를 지키려 그들에게 대항하는 부모들은 구타를 당해 기절하거나 칼에 맞아 죽어 갔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석후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은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정체 모를 복면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가족과 식솔들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며 석후의 머리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분노에 가득 차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던 석후에게 이십관이 다가왔다.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서 있을 셈인가?”
자신에게 들려오는 말소리에 석후는 간신히 이성을 찾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아이 하나씩을 포박하여 동여맨 채 자신을 바라보았다.
이십관은 남자아이 한 명과 그 아비로 보이는 사내를 석후 앞으로 끌고 왔다.
“우리의 동료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일세. 아비를 죽이고 이 아이를 직접 포박하게나.”
이십관의 말 사이사이로 들리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천둥처럼 울려왔다. 이는 석후의 분노를 걷잡을 수 없이 키웠다.
석후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신입의 신고식을 구경하려던 사내들은 비웃으며 이십관을 향해 한마디씩 내뱉기 시작하였다.
“이십관 형님은 어디서 이런 겁쟁이를 주워 오셨을까? 하하하!”
“이놈 아랫 물건이 제대로 달려 있는지부터 확인해 보시구려. 크크크.”
‘이 개자식들의 사지를 내 손으로 직접 분리하고 말겠다!’
마침내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된 석후는 그들 모두를 죽이겠다고 결심하였다.
석후가 출수하려는 그때, 영이와 묵이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아이의 눈을 보게 되자, 석후는 친동생처럼 여긴 사냥꾼의 아이들이 떠오른 것이었다.
영이와 묵이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납치된 장소를 알아내야만 하는데, 지금 이들을 적으로 돌린다면 영영 아이들을 찾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비록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인원은 삼십 명에 불과하고, 이들을 해치울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 살아남아 진지로 돌아간다면, 의심을 살 것이 분명하였다.
그 상태에서 인질로 사로잡혀 있는 영이와 묵이를 안전하게 구해 낼 방법은 없었다.
‘당장은 나의 목적이 우선이다. 영이와 묵이를 구해내는 것. 그 외에 벌어지는 일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도 연민, 온정이 개입된 상황을 수도 없이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복수를 완수해야만 한다.’
석후는 현재 목적과 자신이 마주해야 하는 복수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복잡한 생각들을 모두 정리하였다.
석후는 이십관에게 받은 장검을 망설임 없이 휘둘러 무릎 꿇려진 아비의 목을 잘라 내었다.
다음 날, 신시가 되자 동, 서, 남, 북로의 모든 인원이 진지의 중앙에 군집했다.
백 명이 넘는 인원이 자신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아이들을 납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석후는 믿기지 않았다.
즉, 그들은 사전에 관군(官軍)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마을들의 정보를 파악하고, 그로 인해 아이들을 손쉽게 납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로 관과 그들의 수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하루 만에 백이십 명의 아이를 납치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울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 그들의 배후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석후는 어제 단상 위에서 이야기하던 복면인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고, 그가 분명 이들의 배후와 연관이 있는 인물일 것이라 생각했다.
‘복면인 정도의 고수가 영이와 묵이를 인질로 데리고 있다면, 나는 과연 두 아이를 무사히 구해 낼 수 있을까?’
진지 안에 군집한 각 인원들은 자신이 잡아 온 아이를 포박하여 옆에 두었다.
복면인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이 영이와 묵이를 인질로 데리고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충분히 구해 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영이와 묵이를 복면인이 인질로 삼는다면, 확신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석후의 판단이 치솟는 살심을 억눌렀다.
‘조금 더 참아야만 한다. 영이와 묵이의 안전이 먼저다.’
다짐하듯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어제 본 복면인이 단상 위에 올라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모두가 계획에 어긋남 없이 목적을 달성하였음을 축하한다. ‘황지’에 도착하자마자 너희 모두는 약속한 보상을 얻게 될 것이다.”
‘황지는 대체 어디를 말하는 거고, 이 많은 아이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게 되는 거지?’
석후는 사천 주변에 위치한 땅 중 황색을 띠는 지형이 있었는지 떠올리려 노력해 보았으나, 처음으로 이곳에 온 터라 알 길이 없었다.
석후의 고민이 깊어 가는 동안 진지에 모인 이들 전부가 이동을 시작하였다.
복면인과 부하들은 남쪽 방위를 따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험로만을 이용하였다.
세 시진이 넘도록 포박당한 채 걸음을 옮기는 아이들은 점점 기력이 다해 갔다.
음식이나 물도 섭취하지 못한 채 험한 산지를 걸은 터라, 지친 아이들 중 몇몇은 결국 힘을 잃고 픽픽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각 관과 수하들에게 자비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쓰러진 아이들에게 발길질을 하거나, 검집으로 매질을 하여 강제로 일으켰다.
산속의 해가 빠르게 저물어 금세 어두워졌음에도 그들은 어둠에 개의치 않았다.
그만큼 그들은 이동을 서둘렀고, 그 결과, 축시(1시~3시)가 다 되어서야 황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