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4화



집으로 급히 들어선 석후의 두 눈을 가득 채운 것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냥꾼 아내의 모습이었다.

석후는 의식 없이 쓰러져 있는 그녀에게 다급히 다가가 진맥을 하였다.

‘아직 맥은 뛰고 있다.’

뒤늦게 달려온 사냥꾼이 아내를 발견하자마자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아아악!”

그가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아내의 몸을 잡고 흔들어 깨우려 하자, 석후가 사냥꾼을 막아섰다.

“안 됩니다. 아직 숨이 붙어 있지만, 출혈이 심하고 기혈이 뒤틀려 정신을 잃은 상태입니다. 몸이 흔들리게 되면, 지금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될 거예요.”

석후의 말에 조금이나마 정신이 돌아온 사냥꾼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지? 다행이야……. 그런데 아이들은 어디로 갔지?”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자, 석후는 객잔에서 사내들이 떠들던 소문이 생각났다.

그와 함께 산에서 본 세 명의 무인이 일순 머릿속을 스쳤다.

“지금은 부인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에요. 방 밖으로는 어떠한 혈흔도 보이지 않았으니, 아이들은 아직 살아 있을 겁니다.”

잠시 숨을 고른 석후가 연이어 말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약초를 구해다 주세요. 소량이라도 괜찮으니, 될 수 있는 한 빠르게 부탁드립니다. 석위(石葦), 관중(貫衆), 마황, 하수오…….”

어릴 적 읽은 ‘본초학(本草學)’의 내용이 가장 필요한 순간, 석후의 입 밖으로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석후가 일러 주는 약초들을 모두 듣자마자, 사냥꾼은 즉시 방을 뛰쳐나갔다.

‘추궁과혈을 통하여 죽은피를 밖으로 몰아내고 기혈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약을 써 볼 수 있을 것이다.’

석후는 쓰러져 있는 부인의 몸을 조심스럽게 앉혀 등에 손을 얹고 추궁과혈하기 시작하였다.

석후가 진땀을 흘려 가며 힘 쏟고 있을 때, 익숙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오신 모양이구나.’

사냥꾼은 석후가 언급한 약초를 채 한 시진이 지나기도 전에 모두 구해 왔다.

다행히도 산 주변에서 쉽게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흔한 약초에 불과하지만, 적절히 배합한다면 출혈이 심한 자에게 효과가 있었다.

“헉헉… 자네가 말한 약초들은 모두 모아 왔네. 보이는 대로 충분히 집어 왔으니 부족하지는 않을 걸세.”

숨을 헐떡이며 품속에서 귀중품을 꺼내듯 조심스레 약초를 내려 두는 그였다.

어찌나 급하게 뛰어온 건지, 옷과 머리에는 풀과 나뭇가지가 잔뜩 붙어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나머진 제게 맡기고 숨 좀 돌리고 계시지요.”

방 안 곳곳에는 혈흔이 낭자해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사냥꾼의 아내는 아직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이야기하는 석후의 모습에서 사냥꾼은 근거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사이, 추궁과혈을 마친 석후가 부인을 자리에 조심스레 눕혔다.

그러고 나서 몇 가지 약초를 가루 내 물과 함께 부인의 입속에 흘려 넣어 주었다.

나머지 약초는 상처에 겹겹이 붙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마친 석후는 사냥꾼과 함께 벽에 기대 부인이 의식을 차리기를 기다렸다.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사냥꾼이었다.

“자네, 의술을 익힌 적이 있는가?”

“아니요, 저도 처음입니다.”

“그런데 어찌 약초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사냥꾼의 의구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거의 십 년을 함께해 오면서 사냥꾼은 석후가 약초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잡학에 관심이 많아 여러 서책을 읽었는데, 그중 하나가 우연하게도 본초학이라는 서책이었어요.”

“자네가 그것을 본 것이 나와 아내에게는 천운이로군……. 정말 고맙네.”

“감사 인사는 부인께서 깨어나시거든 해 주세요. 상처가 위중하여 안심하기엔 아직 일러요.”

사냥꾼은 말 대신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혹시 자네는 무가(武家)의 자손인가?”

십 년을 함께하면서도 지금껏 한 번도 출신을 물어본 적 없는 사냥꾼이었다.

상처를 입고 동굴에 쓰러져 있던 석후에게 말 못 할 사정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배려해 온 것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석후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언젠가 한번 마을에 내려갔을 때, 한 무인이 누군가의 등에 손을 얹고 자신의 기(氣)를 나누어 주어 위중한 사람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네.”

“저는 무가의 자손도 아닐뿐더러 대단한 무인은 더더욱 아니에요.”

석후의 건조한 어투에 사냥꾼은 질문하는 것을 멈추었다.

다시 긴 침묵이 이어지던 중 부인에게서 작은 신음성이 들려왔다.

“으음…….”

그 소리를 듣자마자 사냥꾼은 크게 소리쳤다.

“여보!”

사냥꾼의 아내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아이들은요? 영이와 묵이는 어떻게 되었죠?”

사냥꾼의 아내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힘이 없는 목소리로 아이들을 찾았다.

“우리가 돌아왔을 땐 당신만 방에 쓰러져 있었어. 지금이라도 깨어나서 다행이야.”

사냥꾼은 아내가 깨어났다는 안도감과 아이들이 사라진 것에 대한 상실감이 뒤섞인 목소리로 아내에게 이야기하였다.

“혹시…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 줄 수 있어?”

사냥꾼의 말에 부인은 당시의 기억을 더듬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들은 검을 지니고 있는 세 명의 사내였어요. 방에 있던 저는 마당에서 놀던 영이의 비명 소리를 듣고 방문을 다급히 열어젖혔어요. 그 순간, 방문 앞에 있던 사내가 검으로 저를 찌르고는 방 안으로 들어왔어요. 그자가 저를 밀쳐 내고 묵이를 끌고 나가려 하기에 쓰러진 채로 그 사내의 발을 붙잡고 있었어요. 그 뒤로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마을에서 돌아오는 길에 본 그들이 틀림없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석후는 자책감에 괴로워하였다.

‘내가 그들을 의심하고 뒤를 쫓았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책하던 석후는 십 년 전 자신이 겪은 참사가 떠올랐다.

석후가 자책과 분노로 가득하여 주먹을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사냥꾼이 말했다.

“염치없지만… 이미 아내까지 살려 주어 더더욱 염치없는 것을 알지만, 자네가 아이들을 구해 줄 수 있겠는가? 나도 힘이 닿는 곳까지 자네를 돕겠네. 부디 도와주시게.”

사냥꾼이 석후를 향해 연신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였다.

“아이들을 구해 오는 것은 저 혼자 하는 것이 좋겠어요. 부인의 상세가 위중하니, 아저씨는 옆에 함께 계세요.”

그 말을 끝으로 석후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분노를 삭이며 걸음을 서두르던 석후는 처음 무인들을 발견한 산중에 도착해 있었다.

석후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시각이었음에도 그들이 오르고 있던 절벽 주변의 모든 경로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사천에서 온 것이다.’

무인들이 이동해 온 방위를 통해 어디로부터 왔는지 유추를 한 후에 석후는 남아 있는 옅은 발자국들을 따라 추적하기 시작했다.

감숙성 남방에 위치한 회음현에서 세 무인의 흔적을 따라 사천으로 넘어가는 길은 무척이나 고된 여정이었다.

첫날은 그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흔적을 따라 추적하는 것이 용이하였지만, 이튿날 비가 내리기 시작하며 산에 조금이나마 있던 흔적들이 전부 사라지기 시작했다.

석후는 흔적들이 모두 지워지기 전에 경공을 펼치며 이동을 서둘렀고, 내력의 칠 할을 소진하게 된 신시경(15시~17시) 사천성 북단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흔적은 이제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이 마을에서 그들과 관련된 단서를 얻어야만 한다.’

도착한 마을의 거리에는 이상하리만치 사람들이 없고, 분위기 또한 어째서인지 활력이 없었다.

‘이런 마을이라 하더라도 개방도는 분명 있을 것이다.’

고요함이 가득한 거리에서 마을의 곳곳을 누비던 석후에게 허름한 차림의 인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주루가 위치한 골목에 드러누워 있는데, 음식 적선을 받다가 잠에 들은 모양인지 바가지에 몇 덩이의 식은 밥이 들어 있었다.

“말 좀 묻겠소.”

곤히 잠든 것 같은 거지에게 석후가 다가가 말을 걸었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보시오! 말 좀 묻겠소.”

석후가 목소리를 높여 재차 말했다.

큰 목소리에도 거지가 깨어나질 않아 흔들어 깨우려 하자,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거지가 입을 열었다.

“왜 자꾸 단잠을 방해하는 것이오?”

“개방도가 맞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러오.”

“개방이고 뭐고 간에 귀찮으니 썩 꺼지시오.”

귀찮은 듯 손을 휘휘 젓는 그는 다시 몸을 눕혔다.

“내 질문에 답을 해 준다면 은자 두 냥을 주겠소.”

그 말에 거지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나와 처지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데, 은자 두 냥이 있기는 하오?”

의심 가득한 거지에게 석후가 품에 소중히 갖고 있던 은자 두 냥을 꺼내 보여 주었다.

사냥으로 얻은 것들을 조금씩 모아 마련한 돈이었다.

손을 뻗어 뺏으려 하는 거지의 동작에 석후가 황급히 은자를 등 뒤로 숨겼다.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이 먼저요.”

“무슨 질문인지 들어나 봅시다.”

“세 명의 사내를 찾고 있소. 얼굴의 세세한 특징은 모르겠으나 나이는 사십을 넘지 않았고, 모두 장검을 소지하고 있소.”

“하하하하!”

석후의 말에 한바탕 크게 웃어 대던 거지가 대답했다.

“이 마을에 사람이 아무리 없다고 하여도 그러한 자들이 하루에 몇 명이나 이곳을 거쳐 가는지 알고는 있소?”

“하지만 장검을 소지한 중년인들이 어린아이들을 끌고 가는 경우는 많지 않겠지.”

무겁게 가라앉은 청년의 말에 전신을 엄습하는 오한을 느낀 거지는 표정이 굳었다.

“확실히 며칠간 아이들과 함께 마을에 들어온 자들은 거의 없소. 하지만 오늘 이른 새벽 세 사내가 두 아이를 끌고 주루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소.”

거지가 바로 옆에 위치한 주루를 향해 고갯짓을 하며 말하였다.

“이 주루에 아이 두 명을 끌고 온 사내 셋이 있다는 것이 확실하오?”

거지의 말에 석후가 다급히 물었다.

“맹세코 확실하오. 하지만 오늘 사시 경(09시~11시) 아이 둘은 주루에 머물고 있던 다른 인물이 어딘가로 데리고 떠났소.”

‘영이와 묵이는 다시 어딘가로 끌려갔지만, 둘을 납치한 세 명의 인원은 아직 주루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석후는 손에 쥔 은자 두 냥을 거지의 바가지에 던져 넣고는 주루를 향해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석후는 주루에 들어서며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은 안에 있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무얼 드시겠수?”

얼굴에 검버섯이 한가득 피어 있는 늙은 점소이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으며 다가왔다.

“만두 한 접시와 죽엽청 한 병 주시오.”

석후는 주문을 마치고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주루 안을 살펴보았다.

식사를 하고 있는 인원은 아홉 명인데, 중년인 한 명을 앞에 두고 앉은 네 사내 중 세 명의 얼굴이 낯익었다.

영이와 묵이를 납치한 그들임이 분명하였다.

네 사내는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이따금씩 석후에게 시선을 두었는데, 석후가 이를 느끼고 고개를 돌리면 재빠르게 피하는 것이었다.

석후는 처음 주루에 들어설 때 느낀 이상한 기운이 지금 사내들의 시선으로부터 받는 느낌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시선은 경계심이었다.

석후는 자신이 사냥을 배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멧돼지를 마주친 기억이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멧돼지들은 자신의 영역에 누군가가 침입하였을 때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습성이 있는데, 석후가 마주친 놈은 살기를 뿜어내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달려들지 않았다.

당시 그 멧돼지의 뒤에는 새끼 멧돼지 세 마리가 숨어 있었다.

지금 석후가 사내들에게서 느낀 기운은 마치 그때와 비슷했다.

당장에라도 영이와 묵이를 납치한 세 명의 사내를 죽이고 싶은 심정이나, 순간의 감정대로 행동해서는 절대로 아이들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석후는 알고 있었다.

‘저들의 경계심을 허물어야 영이와 묵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내들은 석후를 향해 노골적인 경계심을 보이고 있지만,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그들의 시선을 모른 척하였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석후가 죽엽청의 반병을 비웠을 무렵, 네 사내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중년인이 능청스레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어디에서 오시는 길이오?”

능청에 걸맞은, 경박한 말투였다

“감숙에서 왔습니다.”

‘이자도 저 사내들과 관련이 있었나?’

석후는 자신에게 다가온 중년인의 시선을 마주 보며 대답하였다.

“젊은 친구가 너무 약소하게 식사를 하는 것 같아 보이는구려.”

“가진 것 없이 홀로 여행하다 보니, 맘껏 먹을 수가 없군요.”

여행에 지친 듯 내뱉는 석후의 대답에 중년인은 잠시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젊은 청년이 배불리 먹지 못하고 어찌 여행을 하겠나. 이보게, 여기 남전계퇴와 육전, 그리고 여아홍 한 병 주시게.”

갑작스레 주문을 한 중년인은 석후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부족하게 먹지 말고, 나와 함께 식사를 더 하시게나.”

“그럼 사양 않고 감사히 먹겠어요.”

석후가 접시에 남은 마지막 만두를 입에 넣었을 때, 중년인이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여기는 만두보다도 튀김 요리가 더욱 뛰어나다네. 남전계퇴 좀 먹어 보시게.”

“하하, 대가없이 음식을 대접해 주는 사람치고 좋은 사람 없다던데……. 제가 아무런 걱정 없이 음식을 먹어도 되겠지요?”

잠시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석후에게 중년인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하, 집에 있는 아들 생각이 나서 사 주는 것이니, 사양 말고 어서 들게.”

석후는 고기를 가득 쑤셔 넣은 입을 열심히 우물거리더니, 중년인에게 말했다.

“저도, 아저씨처럼 돈이 많아서 매일같이 이런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네요.”

“자네 나이에는 다들 빠듯하게 살아가는 것이지. 혹시 자네 여행을 위한 노잣돈이 많이 부족한가?”

너스레를 떨며 돈 이야기를 꺼내는 석후의 말에 중년인이 눈빛을 번뜩이더니 물었다.

‘돈 얘기에 반응을 보이는 것 같군.’

“애초에 가진 것 없이 초행길을 다니다 보니, 힘든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더군요. 돈을 충분히 얻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런 각오라면…… 자네, 나와 함께 일 하나 해 보는 것이 어떻겠나?”

중년인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석후가 대답했다.

“제가 무슨 일을 같이하면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