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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른 새벽이었다.
지저귀는 새소리에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킨 석후는 가부좌를 하곤 내공을 일 주천시키기 시작했다.
일다경쯤 두 눈을 감고 운기를 하고 있던 석후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처음 잠에서 깼을 때와 달리 두 눈은 반짝이고, 축 처져 있던 두 어깨는 곧게 펴져 건장한 체구가 드러났다.
느긋한 걸음으로 움막을 벗어난 석후는 공터에서 간단한 육합권을 펼치며 몸을 움직였다.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였을 때, 돌연 석후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잠시 호흡을 고른 석후가 정면의 바위에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내지르자, 굉음과 함께 바위가 산산조각이 났다.
“원래 이 정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걸까…….”
부서져 버린 바위를 보며 석후는 자신이 익힌 심법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석후가 익힌 것은 장삼봉 진인의 ‘태극연단비결’에 실린 심법이었다.
하지만 심법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호흡법에 불과하였다.
태극연단비결은 무공서나 내공서가 아니었다.
그저 도교 사상 전파를 위한 이론적인 내용과 건강 증진 호흡법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소위 내공 심법이라 불리지도 못할 호흡법.
그것이 바로 석후가 익힌 심법이었다.
석후는 무가(武家)가 아닌, 상가(商家)에서 나고 자랐기에 높은 수준의 무공서나 내공서를 접할 일이 전혀 없었다.
어릴 적 유일하게 접할 수 있던 것은 취미 삼아 읽은 태극연단비결이고, 이는 석후가 복수를 위해 신체를 단련하며 기반을 삼을 수 있는 유일한 호흡법이었다.
태극연단비결에 적힌 호흡법의 설명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남성은 본디 양기가 강하여 음기를 느끼기 쉬운 존재이다.
자정 무렵, 음기가 강한 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을 크게 들이마신다. 이후 입과 코로 내보내지 않고 단전의 울림이 느껴질 때까지 버틴다. 격동이 심해져 깨질 듯한 고통이 이어진다면, 단전에서는 자연의 숨결을 신체의 각 부분으로 내보내기 시작한다.
그것이 운기의 첫걸음이며, 피부를 통해 호흡이 배출되는 것이 그다음이다. 마지막으로는 자연의 숨결을 입과 코뿐만 아니라 전신의 피부로 얻으며 다시 배출할 수 있는 단계이다.
호흡은 쌓아 두는 것이 아니며, 자연에서 얻어 자연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이것이 곧 등선(登仙)을 이루는 깨달음이며, 영생의 이치이다.
설명은 매우 단순하지만, 석후가 두 번째 단계까지 이르기에는 팔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후, 기운을 피부로 배출할 수 있게 되자, 석후는 자신이 행하는 모든 움직임에 강한 기운을 담아낼 수 있었다.
석후는 자정 외에도 틈이 날 때마다 꾸준히 운기 하였으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할 단서를 얻지 못했다.
상념에 빠져 있던 그때, 십 장 밖에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아저씨가 오실 시간이 되었군.’
석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한가득 들고 있는 사냥꾼을 향해 빠르게 뛰어갔다.
“짐은 제게 주시지요.”
석후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고맙네. 짐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 자네가 조금만 도와주면 될 것 같구먼.”
사냥꾼의 말과는 달리 장정 둘이 들어도 힘겨울 정도로 많은 짐이었다.
“무슨 소리세요. 얼른 이리 주세요. 그런데 이게 다 무엇인가요?”
“짐승 가죽일세. 겨울을 나는 동안 식량이 전부 동나 버렸네. 오늘은 마을에 내려가 식량으로 바꿔 오세.”
석후와 사냥꾼은 마을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장정 여러 명이 나누어 들어야 할 짐을 혼자 들고 움직이고 있음에도 석후는 조금의 땀도 흘리지 않았다.
“비루하게 비쩍 마른 열 살의 아이가 이렇게 건장한 사내로 자라다니. 시간이 참 빠르구먼.”
석후를 찬찬히 바라보던 사냥꾼이 말했다.
그는 추억에 잠긴 듯 석후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십 년 전, 사냥감을 뒤쫓고 있던 그는 상처 입은 아이가 동굴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놀란 마음에 집으로 데려가 치료를 하고 먹을 것을 주었으나, 아이는 이튿날 말도 없이 집을 나섰다.
한마디 말도 하지 않던 소년이 엉성한 움막을 지어 놓고 내뱉은 첫마디가 인상적이었다.
“사냥을 가르쳐 주세요.”
아이는 먹여 주거나 재워 달라는 부탁이 아닌, 사냥을 가르쳐 달라 했다.
나이 어린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갓 열 살이 넘어 보이는 소년에게 사냥은 위험한 것이라 타이르던 사냥꾼이었다. 하지만 소년이 부상이 낫지 않은 몸으로 곡기까지 끊어 가며 고집을 부리자, 또다시 쓰러질까 우려가 든 사냥꾼은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사냥꾼은 소년과 함께 사냥을 하게 되었다.
회상에 잠긴 사냥꾼을 잠시 바라보던 석후가 말했다.
“모든 게 아저씨 덕분이에요. 아저씨가 저를 길러 주신 것이나 다름이 없어요.”
“그렇겠지? 내 자네를 키우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네.”
“어려움이라니요. 제가 얼마나 아저씨 말을 잘 따랐는데…….”
사냥꾼은 큰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 고집을 꺾지 못하여 내가 마지못해 자네를 따른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말에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석후를 향해 사냥꾼이 다시 입을 떼었다.
“아니, 기억은 나는가? 매일 밤마다 사라지는 자네를 찾으러 다니고, 또 못 찾으면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루기도 했지.”
‘내가 처음 내기(內氣)를 익히기 시작했을 때를 말씀하시는구나.’
사냥꾼은 매일 밤 산속으로 사라지는 석후를 꾸짖어도 보고 움막 앞을 지키며 막아 보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몰래 빠져나가는 석후를 막을 재간이 없었다.
“고작 열다섯이 되었을 무렵엔 홀로 맹수를 잡아 보겠다며 산속으로 뛰쳐나가더니, 나흘이 지나고 나서야 전신에 피 칠갑을 한 채 늑대를 질질 끌고 돌아왔지.”
‘초식동물을 상대로는 익힌 무공을 펼쳐 볼 기회가 없어서 그랬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사냥꾼의 말대로 석후는 자신의 고집대로 행동을 해 온 것이 분명했다.
석후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렇기에 뼈를 깎듯이 수련하고 이 결과를 맹수와의 사투로 확인하려 했다.
그리고 맹수들과의 목숨을 건 싸움은 석후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
잠시 회상에 잠겨 있던 석후가 사냥꾼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제가 아저씨 속을 많이도 썩였네요.”
“그걸 이제야 알았는가. 그래도 이렇게 건장한 청년으로 잘 자라 주어 항상 감사한 마음이라네.”
훈풍이 가득한 대화를 주고받던 그들은 어느새 마을 어귀에 들어섰다.
잠시 고민하던 사냥꾼은 이내 마음을 정했는지, 평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오늘은 유가상단으로 가세나. 회음현 내에서 근래에 그곳만큼 물건 값을 잘 쳐주는 곳이 없다고 하네.”
“새로 생긴 상단이라 그런지, 물건 값을 더 후하게 지불하는 모양이군요.”
“명가상단의 손님들을 끌어오려면 그래야만 하겠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두 상단의 경쟁이 잘된 일이야.”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그들은 유가상단에 도착하였다.
정문의 경비를 맡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 석후와 사냥꾼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방문하셨소?”
“사슴 가죽과 늑대 가죽을 팔러 왔소.”
“따라오시오.”
경비병은 사냥꾼의 대답을 듣고는 직접 석후와 사냥꾼을 안내하였다.
유가상단에 들어선 그들은 이내 넋을 잃었다.
“상단 내의 모든 건물이 웅장하면서도 우아함을 갖추고 있구나!”
사냥꾼이 감탄하며 말하였다.
“엄청난 자본을 바탕으로 상단을 시작한 것 같아요. 명가상단과 경쟁하려 한다는 것이 뜬소문만은 아닌 것 같군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경비병이 유가상단을 칭찬하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신이 나서 입을 열었다.
“그뿐만이 아니오. 우리 유가상단의 최고 장점은 명가상단보다 고객들에게 더 좋은 가격으로 물건을 매입하고 있다는 것이오. 그러니 다른 사냥꾼들에게도 많이 이야기 좀 해 주시오.”
경비병과 함께 진입한 건물에는 천경각(天驚閣)이라 쓰인 현판이 붙어 있었는데, 석후와 사냥꾼은 왜 그런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온갖 보화로 치장된 내부는 말 그대로 하늘도 놀랄 만큼 화려했다.
경비병이 안내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가자, 넓은 탁자에 홀로 앉아 있는 중년인이 물었다.
“무엇을 가지고 오셨소?”
“사슴과 늑대의 가죽을 가져왔습니다.”
사냥꾼이 대답하자, 석후가 짐을 풀어 하나씩 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한참이나 가죽들을 하나씩 만져 보던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으음… 품질이 생각보다 좋군. 은자로 열 냥 쳐주겠소.”
“열 냥 말입니까?”
“부족하시오?”
중년인이 되묻자, 여덟 냥 정도면 잘 받는 것이라 생각하던 사냥꾼은 크게 놀라며 대금을 건네받았다.
석후와 사냥꾼은 두둑한 주머니를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유가상단을 나섰다.
그런 후, 시장을 돌아다니며 양손 가득 식량을 구매한 그들은 평소 들르는 객잔으로 향했다.
간단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던 중 석후의 귀를 사로잡는 대화가 들려왔다.
“자네, 그 소문 들었나? 요즘 근방 마을에서 아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구먼.”
“문천현 마을 이야기로군. 나도 들었다네. 장정 여러 명이 쳐들어와 어린아이들을 전부 납치해 갔다지?”
‘객잔엔 여전히 뜬소문이 넘쳐 나는군. 관아가 있는 마을에서 백주 대낮에 납치라니.’
석후가 속으로 코웃음을 치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사냥꾼과 석후는 젓가락을 분주히 움직이며 식사를 시작하였다.
양손 가득 식량을 짊어지고 있음에도 석후와 사냥꾼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또한 이때가 석후와 사냥꾼에게는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
겨울 내내 추위와 싸우며 열심히 사냥한 그들에게 보상과도 같은 하루이기 때문이다.
한창 가벼운 걸음을 옮기던 석후의 시야에 뭔가 특이한 장면이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저 멀리 절벽을 타고 움직이는 세 사람의 존재였다.
‘저곳은 길이 닦여 있지 않은 곳인데, 어째서 저들은 힘들게 저리로 움직이는 것이지?’
석후의 머릿속은 그들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하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고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석후는 다시금 바삐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두 사람은 정오가 되기 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냥꾼의 아내는 밝게 웃으며 석후와 사냥꾼을 반겨 주었다.
“어휴, 추위에 고생 많았어요. 방을 데워 놓았으니, 몸 좀 녹이며 쉬세요.”
사냥꾼과 석후는 그녀의 말에 밝은 웃음으로 화답하며 방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는 사냥꾼의 두 아들이 두 사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석후가 보이자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형, 어서 와!”
두 아이는 어릴 적부터 석후를 유독 잘 따랐다.
그런데다 말문이 트이고 나서는 석후에게 글을 배웠기에 아이들에게 석후는 형이자 스승이었다.
“이놈들아, 아비는 보이지도 않느냐?”
“헤헤, 아빠, 마을에서 우리 간식도 사 왔어?”
둘째인 묵이가 천진하게 물었다.
“바보야, 저번에도 아빠가 엄마 몰래 사탕 사 왔다가 혼났잖아! 당연히 못 사 왔겠지.”
첫째인 영이가 묵이에게 핀잔을 주듯 대답하였다.
둘의 대화를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석후가 입을 열었다.
“형이 식사를 마치면 숙제 검사를 할 것인데,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것을 보아하니 요새 영이와 묵이 숙제가 부족했나 보구나.”
석후의 말에 화들짝 놀란 영이가 다급하게 대답하였다.
“절대로 아니야. 형이랑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어서 우리가 숙제를 열심히 해 놓은 것이라고!”
“영이 형 말이 맞아! 후 형은 식사 마치고 나선 우리에게 공부만 시키다가 다시 산속으로 사라져 버리잖아! 우리랑 더 놀아 주지도 않구…….”
두 아이의 말에 눈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은 석후가 대답하였다.
“좋아. 너희의 숙제가 완벽히 되어 있다면, 오늘은 반 시진가량 더 놀아 줄게.”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몸이 따듯함이 오가는 대화에 절로 녹는 것만 같았다.
석후는 미시(13~15시)경 사냥꾼의 집을 나섰다.
해가 지기 전까지 사냥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평소 가지 않던 길로 들어선 석후는 곧 낯선 흔적을 발견하였다.
거대한 짐승이 벌집을 누른 것인데, 발톱의 모양으로 보아 곰의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이 정도 크기의 발자국을 남긴 곰은 지금껏 본 적이 없고, 흔적 곳곳에 검은 털 뭉치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흑웅인 것 같았다.
놈은 백호 다음으로 쳐주는 귀한 영물 중의 영물이었다.
‘나 혼자 흑웅을 사냥할 수 있을까?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고민하던 석후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위험한 일에 아저씨를 끌어들일 수는 없지.’
홀로 흑웅을 사냥하고자 결심한 석후는 남아 있는 흔적을 따라 추적하기 시작하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른 새벽이었다.
지저귀는 새소리에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킨 석후는 가부좌를 하곤 내공을 일 주천시키기 시작했다.
일다경쯤 두 눈을 감고 운기를 하고 있던 석후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처음 잠에서 깼을 때와 달리 두 눈은 반짝이고, 축 처져 있던 두 어깨는 곧게 펴져 건장한 체구가 드러났다.
느긋한 걸음으로 움막을 벗어난 석후는 공터에서 간단한 육합권을 펼치며 몸을 움직였다.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였을 때, 돌연 석후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잠시 호흡을 고른 석후가 정면의 바위에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내지르자, 굉음과 함께 바위가 산산조각이 났다.
“원래 이 정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걸까…….”
부서져 버린 바위를 보며 석후는 자신이 익힌 심법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석후가 익힌 것은 장삼봉 진인의 ‘태극연단비결’에 실린 심법이었다.
하지만 심법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호흡법에 불과하였다.
태극연단비결은 무공서나 내공서가 아니었다.
그저 도교 사상 전파를 위한 이론적인 내용과 건강 증진 호흡법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소위 내공 심법이라 불리지도 못할 호흡법.
그것이 바로 석후가 익힌 심법이었다.
석후는 무가(武家)가 아닌, 상가(商家)에서 나고 자랐기에 높은 수준의 무공서나 내공서를 접할 일이 전혀 없었다.
어릴 적 유일하게 접할 수 있던 것은 취미 삼아 읽은 태극연단비결이고, 이는 석후가 복수를 위해 신체를 단련하며 기반을 삼을 수 있는 유일한 호흡법이었다.
태극연단비결에 적힌 호흡법의 설명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남성은 본디 양기가 강하여 음기를 느끼기 쉬운 존재이다.
자정 무렵, 음기가 강한 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을 크게 들이마신다. 이후 입과 코로 내보내지 않고 단전의 울림이 느껴질 때까지 버틴다. 격동이 심해져 깨질 듯한 고통이 이어진다면, 단전에서는 자연의 숨결을 신체의 각 부분으로 내보내기 시작한다.
그것이 운기의 첫걸음이며, 피부를 통해 호흡이 배출되는 것이 그다음이다. 마지막으로는 자연의 숨결을 입과 코뿐만 아니라 전신의 피부로 얻으며 다시 배출할 수 있는 단계이다.
호흡은 쌓아 두는 것이 아니며, 자연에서 얻어 자연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이것이 곧 등선(登仙)을 이루는 깨달음이며, 영생의 이치이다.
설명은 매우 단순하지만, 석후가 두 번째 단계까지 이르기에는 팔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후, 기운을 피부로 배출할 수 있게 되자, 석후는 자신이 행하는 모든 움직임에 강한 기운을 담아낼 수 있었다.
석후는 자정 외에도 틈이 날 때마다 꾸준히 운기 하였으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할 단서를 얻지 못했다.
상념에 빠져 있던 그때, 십 장 밖에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아저씨가 오실 시간이 되었군.’
석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한가득 들고 있는 사냥꾼을 향해 빠르게 뛰어갔다.
“짐은 제게 주시지요.”
석후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고맙네. 짐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 자네가 조금만 도와주면 될 것 같구먼.”
사냥꾼의 말과는 달리 장정 둘이 들어도 힘겨울 정도로 많은 짐이었다.
“무슨 소리세요. 얼른 이리 주세요. 그런데 이게 다 무엇인가요?”
“짐승 가죽일세. 겨울을 나는 동안 식량이 전부 동나 버렸네. 오늘은 마을에 내려가 식량으로 바꿔 오세.”
석후와 사냥꾼은 마을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장정 여러 명이 나누어 들어야 할 짐을 혼자 들고 움직이고 있음에도 석후는 조금의 땀도 흘리지 않았다.
“비루하게 비쩍 마른 열 살의 아이가 이렇게 건장한 사내로 자라다니. 시간이 참 빠르구먼.”
석후를 찬찬히 바라보던 사냥꾼이 말했다.
그는 추억에 잠긴 듯 석후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십 년 전, 사냥감을 뒤쫓고 있던 그는 상처 입은 아이가 동굴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놀란 마음에 집으로 데려가 치료를 하고 먹을 것을 주었으나, 아이는 이튿날 말도 없이 집을 나섰다.
한마디 말도 하지 않던 소년이 엉성한 움막을 지어 놓고 내뱉은 첫마디가 인상적이었다.
“사냥을 가르쳐 주세요.”
아이는 먹여 주거나 재워 달라는 부탁이 아닌, 사냥을 가르쳐 달라 했다.
나이 어린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갓 열 살이 넘어 보이는 소년에게 사냥은 위험한 것이라 타이르던 사냥꾼이었다. 하지만 소년이 부상이 낫지 않은 몸으로 곡기까지 끊어 가며 고집을 부리자, 또다시 쓰러질까 우려가 든 사냥꾼은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사냥꾼은 소년과 함께 사냥을 하게 되었다.
회상에 잠긴 사냥꾼을 잠시 바라보던 석후가 말했다.
“모든 게 아저씨 덕분이에요. 아저씨가 저를 길러 주신 것이나 다름이 없어요.”
“그렇겠지? 내 자네를 키우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네.”
“어려움이라니요. 제가 얼마나 아저씨 말을 잘 따랐는데…….”
사냥꾼은 큰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 고집을 꺾지 못하여 내가 마지못해 자네를 따른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말에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석후를 향해 사냥꾼이 다시 입을 떼었다.
“아니, 기억은 나는가? 매일 밤마다 사라지는 자네를 찾으러 다니고, 또 못 찾으면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루기도 했지.”
‘내가 처음 내기(內氣)를 익히기 시작했을 때를 말씀하시는구나.’
사냥꾼은 매일 밤 산속으로 사라지는 석후를 꾸짖어도 보고 움막 앞을 지키며 막아 보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몰래 빠져나가는 석후를 막을 재간이 없었다.
“고작 열다섯이 되었을 무렵엔 홀로 맹수를 잡아 보겠다며 산속으로 뛰쳐나가더니, 나흘이 지나고 나서야 전신에 피 칠갑을 한 채 늑대를 질질 끌고 돌아왔지.”
‘초식동물을 상대로는 익힌 무공을 펼쳐 볼 기회가 없어서 그랬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사냥꾼의 말대로 석후는 자신의 고집대로 행동을 해 온 것이 분명했다.
석후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렇기에 뼈를 깎듯이 수련하고 이 결과를 맹수와의 사투로 확인하려 했다.
그리고 맹수들과의 목숨을 건 싸움은 석후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
잠시 회상에 잠겨 있던 석후가 사냥꾼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제가 아저씨 속을 많이도 썩였네요.”
“그걸 이제야 알았는가. 그래도 이렇게 건장한 청년으로 잘 자라 주어 항상 감사한 마음이라네.”
훈풍이 가득한 대화를 주고받던 그들은 어느새 마을 어귀에 들어섰다.
잠시 고민하던 사냥꾼은 이내 마음을 정했는지, 평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오늘은 유가상단으로 가세나. 회음현 내에서 근래에 그곳만큼 물건 값을 잘 쳐주는 곳이 없다고 하네.”
“새로 생긴 상단이라 그런지, 물건 값을 더 후하게 지불하는 모양이군요.”
“명가상단의 손님들을 끌어오려면 그래야만 하겠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두 상단의 경쟁이 잘된 일이야.”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그들은 유가상단에 도착하였다.
정문의 경비를 맡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 석후와 사냥꾼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방문하셨소?”
“사슴 가죽과 늑대 가죽을 팔러 왔소.”
“따라오시오.”
경비병은 사냥꾼의 대답을 듣고는 직접 석후와 사냥꾼을 안내하였다.
유가상단에 들어선 그들은 이내 넋을 잃었다.
“상단 내의 모든 건물이 웅장하면서도 우아함을 갖추고 있구나!”
사냥꾼이 감탄하며 말하였다.
“엄청난 자본을 바탕으로 상단을 시작한 것 같아요. 명가상단과 경쟁하려 한다는 것이 뜬소문만은 아닌 것 같군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경비병이 유가상단을 칭찬하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신이 나서 입을 열었다.
“그뿐만이 아니오. 우리 유가상단의 최고 장점은 명가상단보다 고객들에게 더 좋은 가격으로 물건을 매입하고 있다는 것이오. 그러니 다른 사냥꾼들에게도 많이 이야기 좀 해 주시오.”
경비병과 함께 진입한 건물에는 천경각(天驚閣)이라 쓰인 현판이 붙어 있었는데, 석후와 사냥꾼은 왜 그런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온갖 보화로 치장된 내부는 말 그대로 하늘도 놀랄 만큼 화려했다.
경비병이 안내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가자, 넓은 탁자에 홀로 앉아 있는 중년인이 물었다.
“무엇을 가지고 오셨소?”
“사슴과 늑대의 가죽을 가져왔습니다.”
사냥꾼이 대답하자, 석후가 짐을 풀어 하나씩 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한참이나 가죽들을 하나씩 만져 보던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으음… 품질이 생각보다 좋군. 은자로 열 냥 쳐주겠소.”
“열 냥 말입니까?”
“부족하시오?”
중년인이 되묻자, 여덟 냥 정도면 잘 받는 것이라 생각하던 사냥꾼은 크게 놀라며 대금을 건네받았다.
석후와 사냥꾼은 두둑한 주머니를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유가상단을 나섰다.
그런 후, 시장을 돌아다니며 양손 가득 식량을 구매한 그들은 평소 들르는 객잔으로 향했다.
간단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던 중 석후의 귀를 사로잡는 대화가 들려왔다.
“자네, 그 소문 들었나? 요즘 근방 마을에서 아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구먼.”
“문천현 마을 이야기로군. 나도 들었다네. 장정 여러 명이 쳐들어와 어린아이들을 전부 납치해 갔다지?”
‘객잔엔 여전히 뜬소문이 넘쳐 나는군. 관아가 있는 마을에서 백주 대낮에 납치라니.’
석후가 속으로 코웃음을 치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사냥꾼과 석후는 젓가락을 분주히 움직이며 식사를 시작하였다.
양손 가득 식량을 짊어지고 있음에도 석후와 사냥꾼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또한 이때가 석후와 사냥꾼에게는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
겨울 내내 추위와 싸우며 열심히 사냥한 그들에게 보상과도 같은 하루이기 때문이다.
한창 가벼운 걸음을 옮기던 석후의 시야에 뭔가 특이한 장면이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저 멀리 절벽을 타고 움직이는 세 사람의 존재였다.
‘저곳은 길이 닦여 있지 않은 곳인데, 어째서 저들은 힘들게 저리로 움직이는 것이지?’
석후의 머릿속은 그들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하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고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석후는 다시금 바삐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두 사람은 정오가 되기 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냥꾼의 아내는 밝게 웃으며 석후와 사냥꾼을 반겨 주었다.
“어휴, 추위에 고생 많았어요. 방을 데워 놓았으니, 몸 좀 녹이며 쉬세요.”
사냥꾼과 석후는 그녀의 말에 밝은 웃음으로 화답하며 방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는 사냥꾼의 두 아들이 두 사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석후가 보이자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형, 어서 와!”
두 아이는 어릴 적부터 석후를 유독 잘 따랐다.
그런데다 말문이 트이고 나서는 석후에게 글을 배웠기에 아이들에게 석후는 형이자 스승이었다.
“이놈들아, 아비는 보이지도 않느냐?”
“헤헤, 아빠, 마을에서 우리 간식도 사 왔어?”
둘째인 묵이가 천진하게 물었다.
“바보야, 저번에도 아빠가 엄마 몰래 사탕 사 왔다가 혼났잖아! 당연히 못 사 왔겠지.”
첫째인 영이가 묵이에게 핀잔을 주듯 대답하였다.
둘의 대화를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석후가 입을 열었다.
“형이 식사를 마치면 숙제 검사를 할 것인데,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것을 보아하니 요새 영이와 묵이 숙제가 부족했나 보구나.”
석후의 말에 화들짝 놀란 영이가 다급하게 대답하였다.
“절대로 아니야. 형이랑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어서 우리가 숙제를 열심히 해 놓은 것이라고!”
“영이 형 말이 맞아! 후 형은 식사 마치고 나선 우리에게 공부만 시키다가 다시 산속으로 사라져 버리잖아! 우리랑 더 놀아 주지도 않구…….”
두 아이의 말에 눈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은 석후가 대답하였다.
“좋아. 너희의 숙제가 완벽히 되어 있다면, 오늘은 반 시진가량 더 놀아 줄게.”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몸이 따듯함이 오가는 대화에 절로 녹는 것만 같았다.
석후는 미시(13~15시)경 사냥꾼의 집을 나섰다.
해가 지기 전까지 사냥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평소 가지 않던 길로 들어선 석후는 곧 낯선 흔적을 발견하였다.
거대한 짐승이 벌집을 누른 것인데, 발톱의 모양으로 보아 곰의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이 정도 크기의 발자국을 남긴 곰은 지금껏 본 적이 없고, 흔적 곳곳에 검은 털 뭉치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흑웅인 것 같았다.
놈은 백호 다음으로 쳐주는 귀한 영물 중의 영물이었다.
‘나 혼자 흑웅을 사냥할 수 있을까?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고민하던 석후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위험한 일에 아저씨를 끌어들일 수는 없지.’
홀로 흑웅을 사냥하고자 결심한 석후는 남아 있는 흔적을 따라 추적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