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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습득의 공식 7화

2. 개가 아니라 (6)


설원은 방문이 잠기는 소리에 뒤를 돌았다. 방 안에서 한참 바르작거리고 나서는 발소리가 들려 대충 윤이 일어났겠거니 예상은 했지만 이런 반응은 그가 생각한 틀 안에 없었다. 설원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어제 윤이 쓰러지던 때를 떠올렸다.

문밖에서 미적이며 한참이나 서 있던 윤이 들어오면 설원은 그에게 다가갔다. 아침에 나갈 때와는 다르게 시뻘건 얼굴로 비척거리며 몇 발짝 떼던 윤은 제게 손을 내밀었다. 여태 그 장단에 맞춰 공을 굴려 주고, 손을 들이밀며 개인 척했으나 또?

설원이 윤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채 발길을 멈췄다. 제 생각을 알기라도 하는지 슬쩍 미소 짓던 윤은 별안간 그 자리에 쓰러졌다. 설원은 낯선 윤의 모습에, 그 광경을 보면서도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몸이 바닥에 닿아 큰 소리가 날 때까지 멍하니 있던 설원이 윤에게 달려갔다.

얇게 숨을 내뱉긴 하는데, 죽진 않았는데, 왜 죽은 것처럼 누워 있는지. 설원이 앞발로 윤의 가슴팍을 짚고 흔들었으나 그는 마냥 흔드는 대로 힘없이 흔들렸다. 인간 앞에서 인간으로 변하면 안 돼. 들키면 안 돼. 설원은 인간으로 변해 윤을 둘러업었다.

그는 코트를 벗긴 후 윤을 침대에 눕혀 놓았다. 설원이 윤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안에서 뇌가 끓어오르기라도 하는 건지, 이마는 푹푹 찌는 열기로 뒤덮여 있었다. 그가 찬물에 담근 수건을 짜내 윤의 이마에 올렸다. 찬 바람이 좋냐고 창문을 활짝 열어 두고 잘 때 눈치채야 했는데. 개 흉내를 내 준다고 저도 맞장구를 쳤으니 책임을 회피할 순 없었다.

설원은 윤의 옆에 앉아 제 무릎을 검지로 두드렸다. 고윤. 매번 다치고, 아프고. 손이 많이 가는 인간이었다. 번거롭고 귀찮은 인간.

앓는 소리를 내는 윤의 이마 위에 올려놓은 수건이 달궈지면 설원이 다시 담금질하여 올리는 행위가 몇 번이 반복되고 나자 윤은 울었다. 이리 앓으니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다. 설원은 눈물을 닦아 올렸다. 손길 때문인지, 잠에서 깬 윤과 시선이 얽히면 설원은 일순 숨을 멈췄다. 눈물을 한 겹 뒤집어쓴 각막과 그 사이로 마주한 물기 가득한 빛이 제 주변 공기를 죄다 집어삼켜 제가 삼킬 양이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설원이 다급히 윤의 눈을 가렸다. 윤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아직 열 있어. 더 자. 제 말에 눈꺼풀이 몇 번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손바닥을 간질였다. 가슴이 답답했다. 인간에게 제 모습을 들켰다. 숨이 가빠졌다. 그래도 아직은 죽일 수 없었다.

그가 다 조리된 죽을 냄비째 옮겼다. 지금은 제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윤은 먹지 않을 것이다. 설원이 견고하게 잠긴 방문 앞에 서서 이마를 짚었다. 죽만 해 놓고 다시 늑대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그 전에 윤이 깨는 방향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수가 틀릴 줄이야. 지금 죽여야 하나? 잠시 망설이던 그는 굳게 닫힌 방문을 두드렸다.

“윤아.”

문 너머로 들리는 타인의 저음에 윤이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성치 않은 제 몸은 둘째 치더라도, 이런 상황은 도저히….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급하게 달리는 심장의 박동을 따라가기 위해 짧게 내뱉는 숨이 문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 윤은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제 이름은 어떻게 알았는지, 윤이 입술을 짓뭉갰다. 뉴스 기사에서 몇 번 봄 직한 사건들이 제 이름이 덧씌워진 형태로 떠올랐다.

설원이. 설원이는 어디 있지? 게다가 설원이가 보이지 않았다. 항상 잠은 제 옆에서 잤는데. 택배 기사의 소리만 들어도 요란하게 경계하던 설원이었다. 재영을 보곤 당장 잡아먹을 것처럼 굴기도 했으니 낯선 사람이 내부를 활보하는 꼴을 설원이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제가 봐온 설원은 그랬다. 그러나 집 어디에서도 설원이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저 남자가…. 생각이 극에 치달았다.

“문 열어.”

얘기 좀 해.

윤의 잇새로 새된 소리가 새어 나갔다. 제 상황은 이렇게 심각하고 위험한데 정도를 모르고 따사롭게 부서지는 창밖의 햇빛이 얄미웠다. 차라리 저 밖으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 윤의 집은 7층이었다. 윤은 이러나저러나 죽음으로 가는 갈림길에 서 있는 제 처지가 안쓰러웠다. 그냥 곱게 죽게 해 주시면 안 되나요…. 콧잔등이 시큰하게 아렸다. 안 그래도 몸이 아픈데, 처량하게 눈물까지 날 것 같았다. 잔뜩 겁에 질린 몸은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네가 열래, 내가 들어갈까.”

차라리 지금 죽었으면. 지금, 제발 기절하게 해 주세요. 돌연사로 죽게 해 주세요…. 그러나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을 리 없었다. 덜컥, 하고 밖에서 문고리를 잡아 돌리는 소리가 났다. 윤이 소스라치며 숨을 들이켰다. 그래, 얘기라도 나누면 혹시 모른다. 불쌍한 저를 살려 줄지도.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살인 사건은 금방 덜미를 잡힌다. 그저 넘어가 주겠다고 말이라도 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윤이 후들거리는 다리에 간신히 힘을 보태 일어났다. 그에게 물을 것도 있었다. 누구세요? 설원이는요? 저한테 왜 이러세요? 잔뜩 부은 목 너머로 간신히 침을 삼켰다. 목이 달 듯이 뜨거웠다. 덜컥이는 문고리를 잡고 숨을 골랐다. 윤이 마음속으로 셋을 셌다. 셋에 열면 된다. 하나, 둘… 셋…. 윤이 문을 열었다.

“부수려고 했는데. 열었네.”

남자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는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곤 입을 앙다물었다. 입꼬리가 밑으로 축 처졌다. 기어이 눈물이 흘렀다. 멀쩡하게 잘생겼기만 한데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른다. 윤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눈물을 숨기려 고개를 숙이면 눈물이 점처럼 바닥에 박혔다.

설원은 볼 안쪽을 세게 깨물었다. 문고리를 부수고 안에 손을 넣어 잠금장치를 해제하려 했던 차에 타이밍 좋게 문이 열렸는데, 눈물을 그득히 쌓아 올린 윤이 딱 제 얼굴 너비만큼만 문을 열곤 저를 올려다보는 꼴이 꽤 웃겨서 하마터면 웃음을 흘릴 뻔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참지 못하고 우는 꼴에 설원은 당황스러웠다.

설원이 윤의 턱을 들어 올려 흐른 눈물을 닦아 냈다. 그의 손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윤의 눈물방울이 제 손에서 길을 트는 감각이 선연했다. 윤은 티 나게 숨을 들이켜곤 몸을 움츠러뜨렸다. 어디 둬야 할지 몰라 사방팔방 짚고 다니는 눈동자가 마음에 들었다. 설원은 무릎을 굽혀 눈을 맞췄다. 두 눈에 겁을 가득 밀어 넣은 모습은 꽤 보기 좋기도, 좋지 않기도 했다.

“왜 울어?”

윤은 시선을 바닥에 떨구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입술만 달싹거렸다. 저 방 안에서 혼자 얼마나 씹어 댔는지, 입술에 싯붉게 피가 몰려 있었다. 설원은 그 입술을 가만 보다 조리가 다 된 냄비를 식탁 위에 올려놨다.

“밥 먹어. 뭐 안 먹었잖아.”

윤은 문 앞에 뿌리라도 내릴 셈인지 영 움직이지 않았다. 설원이 의자에 앉아 가만 턱을 괴었다. 윤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다 나른하게 저를 응시하는 설원 때문에 다시 머리를 처박았다. 맥박이 제 한계를 시험하려 미친 듯이 내달리는 바람에 이러다간 곧 멈추지, 싶었다.

“먹기 싫어?”

윤이 고개를 저었다. 발을 질질 끌어 겨우 의자에 앉았다. 그마저도 앉을 때 다리가 풀려, 꽤 큰 소리가 났다. 윤은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남자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 앞에 죽 그릇을 내밀었다. 먹고 약 먹어. 윤이 끄덕였다. 뭐라도 말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하지? 윤은 간신히 숟가락을 쥐었지만 죽을 뜨진 못했다. 숟가락만 지분거리며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

“설원이는요?”

“설원이?”

윤이 꺼낸 첫마디가 이해되지 않아, 설원이 고개를 갸울였다. 네 앞에 있잖아. 하마터면 그대로 말할 뻔한 설원은 제 입가를 매만지며 윤의 안색을 살폈다. 아직도 제가 두려운지 희게 질린 얼굴에 공포가 완연했다. 설원은 이 상황을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웠다. 저렇게 울며불며 난리인 게 지금 설마 저를 몰라봐서 저러는 건지.

설원은 기가 막혀 목청이 붙어 버린 기분이 들었다. 어제 봐 놓고도, 모른다고? 내가 너를 지금까지 살려 두고 있는데?

설원의 기분이 무거운 추를 연달아 매단 양 밑으로 단번에 가라앉은 한편, 윤은 조용한 그를 보며 대답 없는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름대로 추측하고 있었다. 역시 저 남자가 설원이를 해친 게 분명하다. 그 짐승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동물한테 무슨 죄가 있다고. 또 눈가가 아릿해지면 빛깔 고운 죽이 하얀 그릇과 일그러져 제 형태를 잃었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심상한 음성에 윤이 고개를 쳐들었다. 남자에게는 일말의 죄책감도 찾을 수 없었다.

“무슨 상관이냐고, 너랑.”

“왜 그런…… 설원이는 제 가족이에요.”

가족이라고요. 기어이 울음이 터졌다. 한번 범람한 눈물샘은 멈출 줄을 몰랐고 제 훌쩍이는 소리가 불편한 적막을 깼다. 윤이 손바닥으로 눈가를 찍어 눌렀다. 눈물이 손을 타고 팔꿈치까지 이어지면 서러운 마음도 금세 넘실거렸다. 개를 죽인 사람이 저까지 해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으며 그 며칠 같이 있었다고 그새 정이 든 모양이었다.

개는 아니어도, 정말 내 가족처럼 아꼈는데. 늑대… 멸종 위기종…. 그 가여운 동물을.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데. 덩치가 많이 커서, 안을 때는 마치 정말 사람 목이라도 껴안은 듯 팔을 둘러야 했고 북실북실한 털이 뺨이며 목에 닿는 느낌이 아직도 뚜렷했다. 제법 똑똑해서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행동하고 제가 말할 때마다 모르는 척해도 연신 꼼질대는 귀가 귀여웠다. 늘 옆을 차지하고 눕는 것도, 은근슬쩍 뒤를 따라오는 것도 다 좋았다. 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며칠만 더 데리고 있다가 센터든 협회에든 연락하려 했다. 아무리 이별할 예정이라 했어도 이런 방향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