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꽃눈개비 13화
#2 (4)
“이야, 슈퍼스타 동생이 내 팬이라니. 혹시 너 이거 때문에 드라마 출연하는 거 아냐?”
“…….”
“어어……. 동생들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시는군요.”
농에 대꾸를 안 하니 진짜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름이 뭔데?”
“임주희.”
도하는 예쁜 이름이라 생각하며 사인 옆에 추가로 문장 하나를 덧붙였다.
[주희야 네 덕에 우리 드라마가 대박 날 거 같아.]
기념으로 뒤에 몇 장 더 사인하는데 세진이 손을 뻗어 공책과 허벅지 사이에 껴 있는 핸드폰을 가져갔다. 도하가 놀란 토끼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세진은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긴 손가락으로 비밀번호도 없는 잠금 화면을 자연스럽게 넘겼다.
“뭐 하게?”
“이번에는 좀 머릿속에도 담고 살고.”
그러더니 화면을 빠르게 터치해 자신의 번호를 저장한다. 저장 이름도 정직하게 ‘강세진’이었다. 통화 아이콘을 누르자 세진의 가방에서 작은 진동 소리가 들렸다.
“아하하, 알았어!”
그래도 이번에는 스마트폰이니 핸드폰이 박살 나더라도 어찌어찌 연락은 가능할 터였다. 사인이 담긴 무지 공책을 덮어서 세진이 꺼냈던 뒷자리에 올려 두었다. 매직 뚜껑도 다시 꼭 닫아서 그 위에 올리자 핸드폰이 다시 도하의 허벅지 위로 돌아와 있었다.
도하는 데려다줘서 고맙다 인사를 하며 차 문손잡이에 손을 걸다가 옆자리를 돌아보았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많은 대화를 나눴음에도 아쉬웠다.
“헤어지기 아쉬운데 맥주나 마시고 가는 게 어때?”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제안해 보았지만 세진의 반응은 딱딱했다.
“너는 지금 내가 운전해 온 차가 안 보여?”
“자고 가면 되잖아.”
‘손님용 이불도 있어! 뭐가 문제야?’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자 세진이 움찔거리는 입가에 손을 대며 인상을 썼다.
“내가 왜 넓은 우리 집을 놔두고 좁은 너희 집에서 자.”
맞는 말이긴 했다.
“와, 너무한다. 너랑 내가 가로세로 직각으로 누워도 될 만큼의 자리는 있어! 그래, 가라! 가!”
삐진 듯 툴툴거리다가 손을 팔랑팔랑 흔들어 인사한 도하가 차 밖으로 나왔다. 안쪽에서 큭큭거리는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 때문에 쾅 닫으려던 차 문을 살포시 닫았다.
도하는 건물로 들어가면서도 뒤를 돌아 손을 흔들었다. 차 안의 세진은 불을 꺼 놓고 있어서 어떤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손을 흔들고 있진 않을 것이다. 뭐, 만약 손을 흔들고 있다면 참 웃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도하는 그런 세진을 상상하며 웃다가 총총 뛰며 계단을 올라갔다.
세진의 차는 도하가 층을 올라갈 때마다 켜지는 센서 등이 모두 꺼질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움직이지 않았다.
***
“확실히 강세진 효과가 대단해.”
세진이 ‘이노센트 알파’의 출연을 확정지었다는 기사가 뜨면서 관련 키워드가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강세진
드라마 이노센트 알파
이노센트 알파 원작
윤도하
세진이 음악 방송과 신곡 홍보 겸 나오는 예능 외에 노출이 거의 없다 보니 이례적인 주목을 받았다. 마슈크 팬 외에도 실시간 검색어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원작과 앞서 캐스팅이 확정된 배우들의 프로필을 찾아보는 듯했다. ‘강세진이랑 같이 나오는 윤도하가 누군데?’ 하는 의문에서인지 도하가 출연한 웹 드라마의 조회 수도 급증했다.
가장 이익을 본 것은 최근에 갱신을 시작한 웹 드라마였다. 급상승 순위에 본편과 클립, 메이킹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유입이 늘고 있어 은하에게서 ‘오빠! 나 친구한테서 갑자기 연락이 엄청 와!’ 하고 구조 요청 같은 톡이 오기도 했다.
“역시 배우가 중요하긴 하네요.”
얌전히 메이크업을 받던 도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거울 건너 비치는 매니저에게 말했다. 도하가 총알받이인 것은 여전했지만 화제성이 오르면 것도 나쁘진 않았다.
오늘은 고사와 스타일링 테스트가 있는 날이었다. 겸사겸사 포스터 촬영도 함께였다.
고사는 먼저 지냈고 지금부터는 대략 서너 번 정도 스타일을 바꿔 가며 드라마에 쓸 캐릭터 분장과 의상을 정할 예정이었다. 주인공 형우의 경우 과거 모습도 등장할 예정이기에 조금 시간이 걸릴 듯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세진이 여기 들어온 게 신기하단 말이야.”
아마 이곳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같은 의문을 품고 있을 것이다. 고사를 지낼 때도 도하는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세진을 신기하게 보았다. 다른 배우들이나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봐도 이 현장과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현장에 있는 모두가 땅을 걷는 사람들이라면 그는 혼자 구름 위를 달리는 사람이었다.
“그죠. 저도요. 누나도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네? 아, 그런가요?”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동의를 구하자 그녀가 당황했다. 그리고 생각을 하는 듯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강세진이라는 연예인의 상업 가치는 저예산 드라마에는 조금 과분한 편이잖아요?”
“주연 배우가 이런 소리 한다고 나중에 한 소리 들을까 봐 겁난다, 야.”
“G.I에서 허락한 것도 신기하고. 거기서 밀어주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형이 저번에 말했잖아. 비엘 드라마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이미지가 소비되니 마니.”
“다 기억하지 못하면 말을 말자.”
“역시 내 이름을 보고 온 게 아닐까요?”
“도하야, 정신 차려.”
타박이긴 해도 무심한 목소리로 도하의 말에 하나하나 대꾸를 하는 매니저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후후 하고 작게 웃었다.
준비가 끝난 도하가 머리에서 고정 핀을 빼며 일어났다. 단정히 옷걸이에 걸려 있는 의상을 겉에 걸치고 분장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오늘은 꼭 대답을 받아올게!’ 하는 말을 남긴 채 중대한 임무라도 맡은 표정으로 나갔다.
궁금하긴 했지만 딱히 알 필요는 없는 부분이었다. 매니저는 괜히 강세진을 귀찮게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며 그 뒤를 따라 나섰다.
촬영장에 들어서자 세진은 이미 의상을 쫙 빼입고 테스트로 찍은 사진 몇 장을 감독에게 확인받고 있었다. 분장 팀과 의상 팀도 옆에 서서 꼼꼼히 결과물을 살폈다. 그러다 부족한 점이 보이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눴다.
세진의 머리색은 평소보다 조금 어두웠는데 조금 볼륨을 넣어 꼭 음악 방송 무대에서 볼만한 느낌이 되어 있었다. 괜히 아이돌이 아니라는 것이 절실히 느껴진다.
“재영이는 원래 머리색이 나을 것 같다. 생머리 유지하고…… 의상은 이것보다 좀 밝은 거 없어?”
“있긴 한데 세진 씨가 입으면 분위기가 조금 튀어요.”
“괜찮아, 괜찮아. 무겁게 안 갈 거니까. 세진 씨 한 번만 더 수정할게요.”
“네.”
“세진 씨, 이쪽으로 오세요.”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 틈에서 다시 분장실로 발을 옮기는 세진과 눈이 맞았다. 무어라 말을 걸려고 하자 고개를 저으며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바쁘니까 지금 말 걸지 말라는 뜻이다. 도하는 아쉬움에 삐죽였다.
돌아가는 세진을 보던 감독이 제 쪽으로 걸어오는 도하를 발견하고 손짓했다.
“바로 직전에 고등학생 역할을 해서 그런지 괜찮네요. 앞머리 내리니까 확실히 어려 보이고.”
도하는 과거 시점의 스타일링을 먼저 준비했다. 늘 반 이상 까져 있던 앞머리를 내려 짙은 눈썹을 가리니 날카로운 인상이 죽고 큰 눈이 살아나 한결 어려 보였다.
의상은 몇 가지 종류의 교복 중 하늘색 하복 셔츠와 회색 바지가 최종 선택되었다. 오디션에 입고 갔던 색 조합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위로 짙은 남색 두루마기를 고름을 묶지 않은 채 걸쳤다. 이것이 기억을 잃기 전, 고등학생 시절 김형우의 의상이었다.
“재영이는 아역 쓴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쪽은 중학생이니까. 강세진 씨가 중학생이 될 수는 없잖아요?”
“상대가 어리면 제가 좀 나이가 들어 보일 텐데. 함께 있으면 조카와 삼촌이 되지 않을는지…….”
스토리에서 재영과 형우는 10년 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 형우가 열여덟, 재영이 열다섯 살 때였다. 그리고 그 열여덟의 형우를 지금 스물여덟인 도하가 연기하게 되는데 상대로 진짜 학생인 아역을 데리고 온다니. 도하는 식은땀이 났다.
전에 찍은 웹 드라마는 엮이는 주연이 다 같이 성인이었으니 튀지 않았지만 진짜 학생과 나란히 서면 당연히 튄다. 안 좋은 의미로 튄다. 도하는 그게 걱정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형우도 아역을 쓸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왜 갑자기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세진이 개런티를 많이 가져가서 예산 때문에 그러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도하는 진지하게 고민하며 턱을 쓸었다. 이런 의미에서도 총알받이인 건가.
“괜찮아요. 도하 씨 특기 있잖아요.”
“특기요?”
아, 그 인상 휙휙 바뀐다는 그 얘기구나. 나이까지 속이진 못할 텐데. 도하는 못마땅한 표정을 억지로 삼키며 긍정을 표했다.
#2 (4)
“이야, 슈퍼스타 동생이 내 팬이라니. 혹시 너 이거 때문에 드라마 출연하는 거 아냐?”
“…….”
“어어……. 동생들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시는군요.”
농에 대꾸를 안 하니 진짜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름이 뭔데?”
“임주희.”
도하는 예쁜 이름이라 생각하며 사인 옆에 추가로 문장 하나를 덧붙였다.
[주희야 네 덕에 우리 드라마가 대박 날 거 같아.]
기념으로 뒤에 몇 장 더 사인하는데 세진이 손을 뻗어 공책과 허벅지 사이에 껴 있는 핸드폰을 가져갔다. 도하가 놀란 토끼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세진은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긴 손가락으로 비밀번호도 없는 잠금 화면을 자연스럽게 넘겼다.
“뭐 하게?”
“이번에는 좀 머릿속에도 담고 살고.”
그러더니 화면을 빠르게 터치해 자신의 번호를 저장한다. 저장 이름도 정직하게 ‘강세진’이었다. 통화 아이콘을 누르자 세진의 가방에서 작은 진동 소리가 들렸다.
“아하하, 알았어!”
그래도 이번에는 스마트폰이니 핸드폰이 박살 나더라도 어찌어찌 연락은 가능할 터였다. 사인이 담긴 무지 공책을 덮어서 세진이 꺼냈던 뒷자리에 올려 두었다. 매직 뚜껑도 다시 꼭 닫아서 그 위에 올리자 핸드폰이 다시 도하의 허벅지 위로 돌아와 있었다.
도하는 데려다줘서 고맙다 인사를 하며 차 문손잡이에 손을 걸다가 옆자리를 돌아보았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많은 대화를 나눴음에도 아쉬웠다.
“헤어지기 아쉬운데 맥주나 마시고 가는 게 어때?”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제안해 보았지만 세진의 반응은 딱딱했다.
“너는 지금 내가 운전해 온 차가 안 보여?”
“자고 가면 되잖아.”
‘손님용 이불도 있어! 뭐가 문제야?’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자 세진이 움찔거리는 입가에 손을 대며 인상을 썼다.
“내가 왜 넓은 우리 집을 놔두고 좁은 너희 집에서 자.”
맞는 말이긴 했다.
“와, 너무한다. 너랑 내가 가로세로 직각으로 누워도 될 만큼의 자리는 있어! 그래, 가라! 가!”
삐진 듯 툴툴거리다가 손을 팔랑팔랑 흔들어 인사한 도하가 차 밖으로 나왔다. 안쪽에서 큭큭거리는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 때문에 쾅 닫으려던 차 문을 살포시 닫았다.
도하는 건물로 들어가면서도 뒤를 돌아 손을 흔들었다. 차 안의 세진은 불을 꺼 놓고 있어서 어떤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손을 흔들고 있진 않을 것이다. 뭐, 만약 손을 흔들고 있다면 참 웃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도하는 그런 세진을 상상하며 웃다가 총총 뛰며 계단을 올라갔다.
세진의 차는 도하가 층을 올라갈 때마다 켜지는 센서 등이 모두 꺼질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움직이지 않았다.
***
“확실히 강세진 효과가 대단해.”
세진이 ‘이노센트 알파’의 출연을 확정지었다는 기사가 뜨면서 관련 키워드가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강세진
드라마 이노센트 알파
이노센트 알파 원작
윤도하
세진이 음악 방송과 신곡 홍보 겸 나오는 예능 외에 노출이 거의 없다 보니 이례적인 주목을 받았다. 마슈크 팬 외에도 실시간 검색어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원작과 앞서 캐스팅이 확정된 배우들의 프로필을 찾아보는 듯했다. ‘강세진이랑 같이 나오는 윤도하가 누군데?’ 하는 의문에서인지 도하가 출연한 웹 드라마의 조회 수도 급증했다.
가장 이익을 본 것은 최근에 갱신을 시작한 웹 드라마였다. 급상승 순위에 본편과 클립, 메이킹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유입이 늘고 있어 은하에게서 ‘오빠! 나 친구한테서 갑자기 연락이 엄청 와!’ 하고 구조 요청 같은 톡이 오기도 했다.
“역시 배우가 중요하긴 하네요.”
얌전히 메이크업을 받던 도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거울 건너 비치는 매니저에게 말했다. 도하가 총알받이인 것은 여전했지만 화제성이 오르면 것도 나쁘진 않았다.
오늘은 고사와 스타일링 테스트가 있는 날이었다. 겸사겸사 포스터 촬영도 함께였다.
고사는 먼저 지냈고 지금부터는 대략 서너 번 정도 스타일을 바꿔 가며 드라마에 쓸 캐릭터 분장과 의상을 정할 예정이었다. 주인공 형우의 경우 과거 모습도 등장할 예정이기에 조금 시간이 걸릴 듯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세진이 여기 들어온 게 신기하단 말이야.”
아마 이곳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같은 의문을 품고 있을 것이다. 고사를 지낼 때도 도하는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세진을 신기하게 보았다. 다른 배우들이나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봐도 이 현장과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현장에 있는 모두가 땅을 걷는 사람들이라면 그는 혼자 구름 위를 달리는 사람이었다.
“그죠. 저도요. 누나도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네? 아, 그런가요?”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동의를 구하자 그녀가 당황했다. 그리고 생각을 하는 듯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강세진이라는 연예인의 상업 가치는 저예산 드라마에는 조금 과분한 편이잖아요?”
“주연 배우가 이런 소리 한다고 나중에 한 소리 들을까 봐 겁난다, 야.”
“G.I에서 허락한 것도 신기하고. 거기서 밀어주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형이 저번에 말했잖아. 비엘 드라마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이미지가 소비되니 마니.”
“다 기억하지 못하면 말을 말자.”
“역시 내 이름을 보고 온 게 아닐까요?”
“도하야, 정신 차려.”
타박이긴 해도 무심한 목소리로 도하의 말에 하나하나 대꾸를 하는 매니저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후후 하고 작게 웃었다.
준비가 끝난 도하가 머리에서 고정 핀을 빼며 일어났다. 단정히 옷걸이에 걸려 있는 의상을 겉에 걸치고 분장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오늘은 꼭 대답을 받아올게!’ 하는 말을 남긴 채 중대한 임무라도 맡은 표정으로 나갔다.
궁금하긴 했지만 딱히 알 필요는 없는 부분이었다. 매니저는 괜히 강세진을 귀찮게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며 그 뒤를 따라 나섰다.
촬영장에 들어서자 세진은 이미 의상을 쫙 빼입고 테스트로 찍은 사진 몇 장을 감독에게 확인받고 있었다. 분장 팀과 의상 팀도 옆에 서서 꼼꼼히 결과물을 살폈다. 그러다 부족한 점이 보이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눴다.
세진의 머리색은 평소보다 조금 어두웠는데 조금 볼륨을 넣어 꼭 음악 방송 무대에서 볼만한 느낌이 되어 있었다. 괜히 아이돌이 아니라는 것이 절실히 느껴진다.
“재영이는 원래 머리색이 나을 것 같다. 생머리 유지하고…… 의상은 이것보다 좀 밝은 거 없어?”
“있긴 한데 세진 씨가 입으면 분위기가 조금 튀어요.”
“괜찮아, 괜찮아. 무겁게 안 갈 거니까. 세진 씨 한 번만 더 수정할게요.”
“네.”
“세진 씨, 이쪽으로 오세요.”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 틈에서 다시 분장실로 발을 옮기는 세진과 눈이 맞았다. 무어라 말을 걸려고 하자 고개를 저으며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바쁘니까 지금 말 걸지 말라는 뜻이다. 도하는 아쉬움에 삐죽였다.
돌아가는 세진을 보던 감독이 제 쪽으로 걸어오는 도하를 발견하고 손짓했다.
“바로 직전에 고등학생 역할을 해서 그런지 괜찮네요. 앞머리 내리니까 확실히 어려 보이고.”
도하는 과거 시점의 스타일링을 먼저 준비했다. 늘 반 이상 까져 있던 앞머리를 내려 짙은 눈썹을 가리니 날카로운 인상이 죽고 큰 눈이 살아나 한결 어려 보였다.
의상은 몇 가지 종류의 교복 중 하늘색 하복 셔츠와 회색 바지가 최종 선택되었다. 오디션에 입고 갔던 색 조합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위로 짙은 남색 두루마기를 고름을 묶지 않은 채 걸쳤다. 이것이 기억을 잃기 전, 고등학생 시절 김형우의 의상이었다.
“재영이는 아역 쓴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쪽은 중학생이니까. 강세진 씨가 중학생이 될 수는 없잖아요?”
“상대가 어리면 제가 좀 나이가 들어 보일 텐데. 함께 있으면 조카와 삼촌이 되지 않을는지…….”
스토리에서 재영과 형우는 10년 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 형우가 열여덟, 재영이 열다섯 살 때였다. 그리고 그 열여덟의 형우를 지금 스물여덟인 도하가 연기하게 되는데 상대로 진짜 학생인 아역을 데리고 온다니. 도하는 식은땀이 났다.
전에 찍은 웹 드라마는 엮이는 주연이 다 같이 성인이었으니 튀지 않았지만 진짜 학생과 나란히 서면 당연히 튄다. 안 좋은 의미로 튄다. 도하는 그게 걱정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형우도 아역을 쓸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왜 갑자기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세진이 개런티를 많이 가져가서 예산 때문에 그러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도하는 진지하게 고민하며 턱을 쓸었다. 이런 의미에서도 총알받이인 건가.
“괜찮아요. 도하 씨 특기 있잖아요.”
“특기요?”
아, 그 인상 휙휙 바뀐다는 그 얘기구나. 나이까지 속이진 못할 텐데. 도하는 못마땅한 표정을 억지로 삼키며 긍정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