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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눈개비 6화

#1 (6)





드라마에 관련된 대사인가? 어떤 캐릭터의 대사일까. 신민기? 아니, 신민기는 ‘구한다.’라는 행동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럼 다른 캐릭터? 굳이 드라마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도 되었지만, 머리가 그런 식으로 돌아가 버린다.

정답은 없다 했으니 상관없을 것이다. 도하는 한 번 더 대사를 눈에 담고 종이 카드를 내렸다. 생각해 봤자 복잡해지니 그냥 제일 처음 생각난 이미지를 쓰기로 했다.

도하는 아이처럼 활짝 웃었다. 살랑거리는 봄바람 같은 미소였다. 만개한 꽃처럼 환한 얼굴로 그가 상대를 안심시키듯 다정하게 대사를 읊었다. 3분의 해석 시간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지나간 단문이었다.

“상대는 누구였나요?”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원작가가 볼펜을 돌리며 물었다.

“강아지요!”

“강아지?”

도하의 대답에 세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새롭게 입양한 강아지가 도랑 같은 곳에 빠져서 안절부절못하는 걸 구해 준 거예요. 다시 같이 걸으려니까 강아지가 두려움에 떨어서 건넨 말이라는 설정이에요.”

“아, 강아지. 하하! 무장 해제 한 얼굴을 보여 줄 만하네요.”

세 사람은 끄덕이며 볼펜으로 무언가를 작성했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멈추며 감독이 고개를 들었다. 이력서에 붙은 사진과 디스플레이 화면을 한 번 힐끔 보더니 말을 붙였다.

“윤도하 씨, 음. 계속 생각했는데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나으시네요.”

“네. 카메라가 제 미모를 담아내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래도 잘생겼다고 들어서 만족합니다.”

칭찬은 빈말이어도 썩히지 않는 것이 도하의 철칙이었다. 그런 모습에 감독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숨을 뱉어 내 웃었지만 도하는 꿋꿋하게 당당한 미소로 일관했다.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까딱 움직인 각본가와 원작가도 감독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맞아요. 얼굴도 좋고 연기도 다 좋았어요. 구성도 나쁘지 않고 좋았는데…….”

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었구나. 도하가 침을 꼴깍 삼켰다.

감독이 뒷말을 끌다가 의자를 앞으로 끌어 앉았다. 그러곤 허리를 펴서 도하를 똑바로 보며 이어 말했다.

“피드백을 하나 하자면 신민기의 양면성이 너무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톤도 좋고 연기 자체는 좋았어요. 그런데 말하자면 표정이, 두 모습이 너무 다른 사람이야. 도하 씨는 지금도 다른 사람처럼 보여요. 표정에 따라 인상이 너무 달라져요.”

도하는 어깨를 움찔하고 떨었다.

‘그렇게 달랐나?’

그런다고 알 리가 없건만 한 손을 들어 뺨을 더듬거려 보았다.

“배우로서는 굉장히 좋은 점이에요. 오늘 보여 줬던 연기가 전부 다른 얼굴로 보였으니까요. 얼굴을 많이 드러내는 주연일수록 감정의 흐름을 보여 주기 쉽고 이전 역할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죠. 하지만 신민기는 분량이 많지 않은 조연이다 보니 하나의 얼굴에 두 성격을 담지 않으면 사람들이 못 알아봐요. 분명 아까 봤는데, ‘어? 이런 조연이 있었나?’ 이런 느낌을 받게 만들 거예요. 물론, 도하 씨는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인상에는 박힐 테지만 그 점이 아쉬웠어요.”

감독의 말을 유심히 듣던 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연으로서의 보여 주기 방식에 대한 지적은 신선했다. 요즘에는 웹 드라마의 주연 아니면 영화에서 잠깐 나오는 단역으로만 나오다 보니 조연의 위치를 잡기 어려웠다. 특히 그의 경우 주연보다 튀어 보인다는 이유로 드라마 조연 오디션에 붙은 적이 거의 없었다.

“조언 감사합니다. 오디션에서 조언을 받은 게 굉장히 오랜만이라 떨리네요.”

도하가 웃으며 가슴께를 쓸어내렸다. 오디션은 많이 봤지만 대부분은 연기를 보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지적할 부분이 있든 없든 많은 연기자들을 피드백해 주는 감독은 많지 않다. 연기 중간에 그만하고 가라고나 안 하면 다행이었다.

처음 소속사에 들어갔을 때와 비슷한 설렘을 느꼈다. 장점을 알려 주고 단점도 지적해 주는 부분이 자존감을 뭉개지 않았다. 실없이 웃는 도하를 의아하게 보던 감독이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그으래요.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결과는 소속사 측으로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역시 복도는 더웠다. 얼굴을 훅 덮치는 후덥지근한 열기에 하늘색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러 훌러덩 상의를 벗었다. 안에 입고 있는 하얀 반소매 티 안으로 바람이 술술 들어오자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숨통이 트인 느낌에 긴 숨을 내쉬었다.

도하가 나온 것을 보고 얌전히 앉아 있던 정군이 쪼르르 달려왔다. 오디션 잘 봤냐고 물을 줄 알았더니 제일 처음 입 밖으로 낸 말이 “우리 뭐 먹어요?”였다. 도하는 정군의 어깨에 팔을 걸고서 “고기!” 하고 외쳤다. 그 말에 정군이 미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형, 오디션은 잘 봤어요?”

“아니, 망한 거 같아!”

재밌게 본 오디션이었지만 결과는 기대가 안 됐다.



***



[도도!]

[도하 오빠!!]

[헐 윤도하 교복 입었어! 범죄야!]

약 300명이 들어와 있는 채팅창이 도하의 이름으로 도배되었다. 웹 드라마 1화 방송 직전에 하는 인터넷 생방송이었다. 드라마에서 입었던 교복을 입은 주연 네 명과 MC 한 명이 스튜디오에 앉아서 한 시간가량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인 소소한 방송이다. 그렇다 보니 시청자의 삼분의 이가 도하의 팬이었다.

무명이라지만 웹 드라마를 챙겨 보는 사람들에게 있어 도하는 꽤나 유명한 배우였다. 이른바 마이너의 메이저. 주인공 역 대부분을 도맡아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웹 드라마에 발을 들이면 대부분 도하를 한 번쯤은 만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도하 씨는 이번 드라마에서 새로웠던 거 있어요?”

“역시 교복이죠. 제가 아직 동안인가 봅니다.”

재킷을 매만지며 뻔뻔스럽게 말하자 채팅창에서 두 가지 반응이 나왔다. 하나는 맞다는 긍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냐며 비웃는 내용이었다. 둘 다 도하의 팬들이었다.

그 순간, 도하를 보며 킥킥 웃던 은하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한 번 치면서 주목을 모았다.

“도하 씨 그것도 했잖아요, 춤. 춤췄잖아요.”

“그건, 그건 새로운 게 아니잖아요!”

춤 얘기가 나오자 도하가 뻘뻘 땀을 흘렸다. 드라마의 내용 중에 춤을 추는 장면이 있긴 했는데, 촬영 당시 그 모습을 진지하게 봐야 할 주인공 은하가 웃음이 멈추지 않고 터져서 NG가 많이 났었다. 잊고 싶은 기억이자 감독님께 지워 달라고 빌고 싶은 장면이기도 했다.

“도하 씨 춤도 췄어요? 이야, 이거 안 보고 넘어갈 수가 없겠는데요? 한번 보여 주세요, 맛보기로!”

“아, 진짜 안 되는데…….”

도리질을 하며 거절했지만, 갑자기 흘러나오는 댄스 음악에 도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하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대체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옆을 힐끗 보자 그의 실력을 아는 배우들이 벌써부터 웃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은하는 음악에 맞춰 손뼉을 쳤고, 채팅창 역시 이미 이상한 이모티콘들이 춤을 추는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 ◝(・ω・)◟ ⁾⁾ ₍₍ ◝(・ω・)◟ ⁾⁾ ₍₍ ◝(・ω・)◟ ⁾⁾]

[٩( ᐛ )وᕕ( ᐛ )ᕗ ٩( ᐛ )وᕕ( ᐛ )ᕗ ٩( ᐛ )وᕕ( ᐛ )ᕗ]

[ዽ ጿ ኈ ቼ ዽ ጿ ኈ ቼ ዽ ጿ ኈ ቼ ዽ ጿ]

윤도하는 깔아 준 판에서 도망갈 수 없는 성격이었다. 울상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MC와 배우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 환호성은 도하가 열심히 몸을 흔들며 춤을 출수록 웃음소리로 바뀌어 갔다.

동작은 어디서 본 듯한 안무인데 팔다리가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렸다. 또한 맞는 박지임에도 어딘가 모르게 어색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움직임 하나는 당당했다. 창피함에 새빨간 얼굴을 해 놓고 말이다.

모든 것을 하얗게 태워 버리고 무념무상의 얼굴이 된 도하가 자리에 앉자 세찬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옆에 앉은 은하는 감동의 눈물까지 흘렸는지 손가락으로 눈가를 비볐다. 한참 ‘ㅋ’만 올라오던 채팅창에 진지한 한마디가 올라왔다.

[아앗, 숙연....... 도도 앞으로 춤은 봉인하는 거로]

그 아래로 동의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와, 푸른 바닷속에서 흔들리는 미역 같은 유연함과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너무 감동해서 눈물이 나네요.”

MC가 손수건을 들고 톡톡 눈물을 닦아 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오는 것이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꾹꾹 누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좋게 포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정진하겠습니다.”

도하는 표정을 싸악 바꿔 말을 했다. 물론 목까지 빨갛게 익은 상태였다.

[하지 마.]

다시 토크로 돌아와 이들은 촬영 중의 소소한 에피소드나 1화의 하이라이트를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춤으로 인해 정신이 쏙 빠진 도하는 후반 토크를 다른 배우들에게 맡기고 맞장구치는 정도의 리액션을 보였다. 가끔 채팅창에 ‘윤도하 정신 가출 중’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바닥에 준비해 둔 물병을 잡았다. 목을 축이며 스태프 뒤에서 서성거리던 매니저를 보니 ‘으이그’ 하고 질린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안 하겠다고 뻐길 수도 없고. 도하가 얼굴이 조금 뾰로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