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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두 달의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다.

포포비치는 정기적으로 왕국과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하니, 끽 해봐야 한두 번 속이는 게 다다.

클라우드는 그 전에 경지를 더 높여야 했다.

포포비치와 싸우며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덕분에 혈맥이 넓어진 상태였다.

앞에 버티고 있는 벽을 뚫을 길이 만들어졌으니.

새로운 경지를 향한 시도만 남았다.

‘달도 떴겠다. 시도하기 좋은 날이야.’

늦은 밤.

월광이 비추는 창가로 가서 빛을 맞았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침대가 아닌, 창가로 걸어가 가부좌를 틀었다.

곧바로 흑영심법을 운용했다.

은밀하게 돌던 기운이 단전에 하나씩 모였다.

수십 개의 얇은 물주기가 하나로 합쳐져 강이 되고, 강이 모여 호수가 되듯 세력을 점점 불려갔다.

‘할 때마다 새로워.’

절대자의 경지에 다다랐던 그였다.

왔던 길을 다시 걸어가는 게 이렇게 재밌을지 몰랐다.

자신의 무공이 이세계에 통하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에드가 백작의 인정을 받으려고 달려왔다.

그러나 현재는 아니었다.

젊은 육체에 들어와서 그런지 무공을 익히는 게 즐거웠다.

‘이보다 더 많이.’

호수의 물이 커진 혈맥을 주저 없이 돌아다녔다.

그걸로 만족이 안 되는 듯, 곳곳의 기운을 끌어왔다.

텅 비어있던 혈맥은 거대한 폭포수로 인해 가득 찼다.

‘더 빠르게.’

천천히 돌아다니기도 모자랄 판에 이번엔 빠르기까지.

내부의 폭포수는 갈수록 힘차게 쏟아지며, 절정에 치달았을 때는 제어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미친 듯 달렸다.

엄청난 기운에도 전처럼 검은 아지랑이가 밖으로 표출되지 않았다.

대기만 요동칠 뿐.

전쟁을 앞두고 사기를 고양시키는 전사와 같았다.

‘간다.’

강철같은 두께를 지닌 관문을 깨야, 한 단계 나아갈 수 있었다.

세차게 달리고 있는 폭포수를 컨트롤 하던 걸 풀었다.

고삐가 풀린 망아지처럼 난폭하게 혈맥을 내달렸다.

그러다가 쿵―

수천의 병사들이 길목을 차단하고 버티는 것 같은 벽에 부딪혔다.

‘크흡!’

아찔하다.

한 번 겪어본 길이이었지만, 관문을 뚫는 순간만큼은 적응이 안 됐다.

정신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며 고삐 풀린 망나니를 제어하며 기운을 다시 끌어모았다.

그러고 나서 전과 똑같이 관문을 향해 내달리게 했다.

쿵, 쿵, 쿵.

계속된 공격.

막히면 다시 시도했다.

그럴 때마다 클라우드의 낯빛은 창백하게 변했다.

‘거의 다 뚫었어.’

반복된 시도에 벽에 균열이 찾아왔다.

그곳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물고 늘어지니 철옹성같이 견고하던 벽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그와 동시에 정신도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이 한 번으로 끝낸다.’

호수의 물이 마를 때까지 한 곳으로 집중해 막힌 혈도로 진격시켰고, 마침내 부딪쳤다.

쿠와와왕!

몸이 들썩이며 흔들렸다.

앙다문 입술을 뚫고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죽은 피가 나온 걸 보니 마침내 가로막은 벽을 뚫은 듯 했다.

공중에는 전과 같이 자주색 해골 모양이 잠시 떴다가 사라졌다.

‘하나의 금제가 또 풀렸어.’

가슴에 둘둘 감겨 있던 족쇄가 풀리자, 어마어마한 기운이 해일같이 일어났다.

그와 함께 팔찌에서 나온 기운과 합쳐져 혈맥을 돌아다니며 상처를 치유했다.

자신과 비슷한 기운.

정확히 말해 흑영심법과 상당히 흡사한 기였다.

‘나와 상성이 잘 맞아.’

기연 덕에 굉장한 속도로 과거의 경지를 어느 정도 되찾았다.

세 달 만에 일류를 지나, 절정의 완숙에 들어왔다.

이곳의 경지로는 소드 마스터 초급.

영약과 기연이 있었다지만,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무림사와 이세계를 통틀어도 이런 기록은 없을 것이다.

클라우드는 흐뭇하게 웃으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봤다.

호수였던 단전이 바다가 되었다.

무림에서 완전한 절정의 경지에 들어섰을 때와는 많이 달랐다.

내공의 농도와 양이 1.5배는 짙고 컸다.

이게 다 에드가 백작이 먹인 영약 덕분인가?

어떤 영약을 스튜에 탔길에 이러는지 궁금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하 감옥에서 얻은 단검도 한 몫 거들었다.

‘다른 공능이 있는지 알아봐야겠어.’

내기를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많이 보던 인물이 뒤에 시립해 있었다.

“이젤라?”

“끝나셨습니까?”

“언제부터 있던 거야?”

“일주일가량 지났습니다.”

“뭐? 일주일?”

많이 지나봤자 이틀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일주일이라니, 너무 자주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 같았다.

“주군께서 오러 연공에 깊이 빠지셔서 백작님께는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잘했다.”

때마침 오늘은 백작 부인의 처우를 결정하기 위해 모이는 날이기도 했다.

“백작님께서 주군이 깨시면 가주실로 모시라 했습니다.”

“알았어, 씻고 바로 갈 테니 준비해.”

“네.”

클라우드가 욕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이젤라가 묘한 눈으로 봤다.

‘또 경지가 높아지셨어.’

주군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이대로면 그의 발끝도 쫓아 갈 수 없었다.

‘놀고 있을 때가 아니야.’

더욱더 수련하여 어떻게든 주군의 뒤꽁무니라도 쫓아가야 된다고 생각한 이젤라였다.



***



가주의 집무실.

그곳에 백작 내외와 클라우드, 율리 그리고 올코프 기사단장이 모여 있었다.

에드가 백작은 클라우드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기가 느껴지지 않아’

전에도 아들의 기는 은밀해서 기감을 높여야지만 잡을 수 있었다.

한데, 지금은 그조차도 아예 느껴지지 않았다.

일주일 새에 아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이렇게 변한 것일까.

‘어쌔신 마스터라도 된 거냐?’

카시아스의 기도 손쉽게 잡는 그였다.

그런데 아들의 기는 잡을 수 없으니.

자신보다 높은 경지가 아니라면 말이 안 됐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봅니까?”

말투가 사뭇 공격적이었지만, 누구 하나 꼬집는 사람이 없었다.

에드가 백작도 옛날이었다면 버럭 화를 냈을 터.

그러나 지금은 잠자코 있었다.

하지만, 백작 부인은 아니었다.

“애야 아버지께 예의를 차려야지.”

“당신은 가만히 있으시오.”

“클라우드가 버릇이 없어…….”

그녀는 율리가 가문의 후계자를 포기한다는 말에 자신의 처지도 생각하지 않고, 클라우드에게 적대적이기만 했다.

백작이 그런 그녀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오늘은 그간 미루어졌던 부인의 처우에 대해 말해 줄 것이오.”

“네? 제 처우라니요.”

백작 부인이 뻔뻔하게 나가자, 율리는 그런 어머니를 애써 외면했다.

“부인이 포포비치를 사주해서 클라우드를 죽이려 했다고 들었소.”

“그건 다 거짓말이에요. 저를 음해하려는 수작이라고요.”

“그 말, 책임질 수 있소?”

백작의 눈에는 아무 감정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 눈을 본 백작 부인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작자는 죽고 없는데, 그가 한 말을 어떻게 믿어요!”

“그래서 말에 책임질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요, 제가 책임질게요. 단 증거가 없으면 백작님도 각오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리아나 블라드는 왕국 동부에 위치한 가문인 블라드 가문의 방계였다.

부인이라고 하나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백작이 올코프 기사 단장을 쳐다보자 집무실 밖으로 가서 한 사람을 데려와 무릎을 꿇렸다.

“주군의 앞에서 진실만을 말하시오.”

백작 부인의 눈이 떨렸다.

“시녀 장?”

그녀의 측근이면서도 치부도 알고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백작이 몸을 덜덜 떠는 시녀 장에게 물었다.

“부인이 클라우드를 죽이라고 사주했나?”

“…….”

“주군께서 묻는다, 어서 대답하지 못할까!”

올코프 기사단장의 위압적인 목소리에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네. 주인마님께서 클라우드 도련님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어요.”

“너, 그게 무슨!”

에드가 백작이 손을 들어 부인을 가로막았다.

“내 질문 아직 안 끝났소.”

“이익!”

“증거는 있느냐 여기서 거짓을 고하면 네 가족은 물론 친척까지 모조리 죽는다는 걸 명심하거라.”

“여, 여기 있어요.”

시녀 장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하나의 종이를 내밀었다.

백작이 하얀 종이를 펼치자, 공중에 글씨가 뜨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에는 백작 부인의 인장까지.

증거가 확실했다.

하얀 종이를 본 순간부터 백작 부인의 얼굴은 누가 봐도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 그건…….”

분명 증거는 모두 불태웠다고 시녀 장이 말했다.

그런데 증거가 떡 하니 있는 게 아닌가.

백작 부인이 시녀 장을 노려봤지만, 그녀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이년이 날 물 먹여?’

이가 갈렸다.

저런 년을 심복이라 둔 자신이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이래도 발뺌할 생각이오?”

포포비치가 죽은 걸 이용하는 건, 물 건너갔다.

계속 발뺌만 하면 오히려 에드가 백작의 화만 돋굴 것이다.

빠르게 잘못을 인정하고 비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사, 살려 주세요.”

“죄를 인정한다는 말이 맞소?”

“네, 제가 눈이 잠깐 돌아갔었나 봐요. 정말 죄송해요.”

“나에게 미안할 필요 없소.”

백작은 자신에게 사과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 한 명이 남았다.

그녀가 무릎을 꿇으며 클라우드에게 손을 빌었다.

“이 어미가 미안하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다오.”

“역겹군.”

그럼에도 백작 부인은 뻔뻔스럽게 행동했다.

“앞으로 이 어미가 정말 잘하마. 그러니 용서해 다오.”

가증스러운 모습에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율리의 속내를 알고 나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문득 그에게 좋은 해결책이 떠올랐다.

‘죽는 것보다 더한 생을 살게 해주겠소.’

그녀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삶은 끝이었다.

“용서하겠습니다.”

“저, 정말이야? 고, 고맙다.”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율리는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래도 기쁜 얼굴이었다.

“네. 대신 평생을 저택 밖으로 못 나오실 겁니다.”

“뭐?”

“당신이 아끼는 율리 또한 다시는 보지 못할 겁니다.”

“그런 게 어딨어!”

그녀가 빽 하며 소리쳤다.

클라우드가 생각하기에 백작 부인을 죽이지 않고 살려둔 채 가하는 최고의 형벌은 율리와 다신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안 돼! 저택에 가만히 있으라면 가만히 있을 테니까 율리만은 제발…….”

“거절하겠습니다.”

“아악! 그럴 수는 없어!”

“전 할 말 다 끝났습니다. 더 이상 여기에 있기 고역이군요.”

클라우드는 에드가 백작을 돌아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도 괜찮다는 신호.

클라우드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주 집무실을 나갔다.

그 뒤로 백작 부인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차라리 날 죽여! 내 아들을 평생 못보면 어떻게 살라는 거야! 이 악마!”

“올코프, 부인을 장미 저택에 감금하시오. 시녀 하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그녀를 만나지 못하게 하시오.”

“주군을 명을 받듭니다.”

“당신이 이럴 수 없어요! 가만 안 둘거야, 율리야, 율리야아아!”

그녀는 끌려가는 내내 발악을 했으나, 기사 단장의 손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에드가 백작이 씁쓸한 얼굴로 율리에게 물었다.

“이 애비가 밉느냐?”

“아니에요, 어머니를 살려 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고맙구나.”

“그럼 저도 나가보겠습니다.”

율리가 가주의 방을 나갔다.

혼자 남은 집무실.

에드가 백작이 허공에 말을 했다.

“너도 클라우드의 기운이 안 느껴지느냐?”

“네, 저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허공에서 불쑥 그림자가 튀어나와 백작의 앞에 섰다.

“녀석이 어느 수준인지 알아야 할 텐데.”

“아무래도 지하 감옥에 갔다 오고 난 후부터 그리된 것 같습니다.”

“네 말은 가문의 금지라도 들어갔다는 말이냐?”

“그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에드가 백작이 집무실 책상에 기대어 손가락을 툭툭 쳤다.

골똘히 생각할 때면 나오는 그의 버릇.

‘일리있는 말이나,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 아니면 금지는 못 들어간다.’

클라우드가 들어갔다면, 소드 마스터가 됐다는 말.

스물 셋의 나이에 소드 마스터가 된 것도 엄청난 일.

그런데 마나 하트가 생긴 지 세 달 만의 일이었다.

이런 경지에 올랐다는 건 대륙 역사를 통틀어 전무했다.

심지어 대륙의 천재이자 가문의 시조인 글랜 카시미르조차 스물다섯에 소드 마스터에 발을 들였다고 했으니.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

“이제 감시도 불가능합니다.”

“그것도 문제구나.”

“멀리서 지켜보긴 하겠으나, 기대치 마십시오.”

말을 끝낸 카시아스가 집무실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들아 너는 지금 어느 선상에 서 있느냐.”

이야기하는 내내 표정 변화가 없던 백작이 클라우드의 경지를 생각하며 얼굴에 작은 미소가 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