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0화



창공을 가르며 지붕 위를 지나가는 그림자.

이젤라와 헤어진 클라우드였다.

신법을 펼쳐 움직이자, 가문을 철통같이 경계하는 병사와 기사들이 그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주변 광경이 수시로 바뀌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무가 쫙 늘어선 곳에 도착한 그가 우뚝 멈춰 섰다.

‘여긴가?’

한참을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은 카시미르가의 제일 깊은 심처에 위치한 지하 감옥으로 가는 입구였다.

그곳엔 갈색 갑옷을 입은 이들이 보였다.

‘사막의 안내자 기사단?’

기사단씩이나 되는 이들이 감옥을 지켰다.

대체로 병사들이나 지키는 곳이 감옥 아닌가.

지하 감옥에 포포비치 말고 중요한 인물이라도 잡아 놓은 건지.

클라우드는 영문을 몰라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그래도 안으로 들어가는 건 문제 없어.’

최선을 다해 기척을 숨기면 아무리 기사라도 자신을 발견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가 곧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기를 안으로 갈무리하며, 나무 옆으로 한 발짝 움직이자.

그가 있던 자리에는 신기루처럼 몸이 사라지고 없었다.

날카롭게 생긴 기사의 앞머리가 바람에 흔들거리다가 제자리에 멈췄다.

“어?”

“왜 그래?”

“바람이 살짝 불던데 아닌가?”

“이 사람아. 바람은 지금도 불어.”

“하하, 어제의 일로 신경이 날카로워졌나 봐.”

기사들이 대수롭지 않는 듯 넘어가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했다.

‘입구는 통과, 이제 포포비치를 찾기만 하면 되겠어.’

비좁을 줄 알았던 통로는 덩치 큰 사람 네 명은 들어갈 수 있을 법한 넓이를 가졌다.

처음 들어와 본 곳.

감옥이 다 비슷한 곳이라 생각했지만, 카시미르가의 지하 감옥은 꼭 보물이 숨겨진 공동의 느낌이 났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통로 끝에 다다랐다.

‘더 내려가야 되겠군.’

아래로 내려가는 원형 계단이 있고, 벽에는 마법으로 밝혀진 횃불이 타올랐다.

밑으로 내려가자,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지키고 있는 전력에 비해 죄인은 별로 없어.’

무려 기사들이 지키고 있다.

소드 익스퍼트 초급의 기사들.

검에 불안하게나마 오러를 담아 쏘아 낼 수 있는 자들이 말이다.

그런데 잡혀 있는 죄인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한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

상당히 의아했다.

‘뭐, 내 알바 아니지.’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원래의 목표가 있는 곳이 머지않았다.

길목에는 간수장으로 보이는 인물과 세 명의 기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들을 재워야겠어.’

과거에 항상 해오던 일.

이런 일은 클라우드에게는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부운귀보를 이용해 귀신같이 간수장에게 접근해, 수혈을 찔렀다.

그러자 몸이 허물어지는 걸 붙잡아 조심스럽게 바닥에 놓았다.

다음은 세 기사의 차례.

그들도 간수장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기습적으로 다가가 잠들게 했다.

역시 어려울 것 하나 없었다.

감시자가 없는 틈을 타, 익숙한 기를 가진 이에게 다가갔다.

“포포비치.”

“어, 어떻게, 여길?”

자신을 보자 꽤 놀란 듯 포포비치의 눈이 커졌다.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긴 했는데, 그렇다고 어려운 것도 아니었어.”

“무슨 일로 날 찾아왔지? 내일 가주가 직접 신문할 텐데.”

“그 전에 내가 먼저 알아야 할 게 있거든.”

클라우드는 기분 나쁘게 웃음을 흘렸다.



***



그 시각.

백작 부인은 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버릇인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안절부절못했다.

“내일 백작님이 포포비치 신관을 만날 텐데, 어쩌지?”

“괜찮을 거예요. 주인마님은 율리 도련님을 낳으신 분이시잖아요.”

그녀의 최측근인 시녀 장이 안심을 시켰다.

“내가 클라우드를 죽이려고 했다는 걸 확인하시면 날 죽이실 거야. 백작님은 그러고도 남아.”

싸늘한 얼굴로 자신에게 죽음을 선고할 백작을 떠올리자, 백작부인은 더욱더 불안해져만 갔다.

따뜻할 때는 한 없이 따듯하지만, 가문의 일이라면 가차 없이 행동하는 남편.

그것도 가솔들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란 작자가 아들을 죽이려고 했다는 걸 들켰으니.

가문의 위계질서를 세우기 위해서라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을 것이다.

그게 에드가 백작이었으니까.

가문을 위기에 빠트린 친형도 직접 죽였으니.

아내인 자신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율리 도련님께 말씀해 보심이… 주인님이라도 율리 도련님께서 부탁하신다면 듣지 않을까요?”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모녀가 같이 두 손 두 발을 빌고 빌면 살려라도 줄까?

“안 돼!”

그녀가 시녀 장에게 버럭 소리쳤다.

‘율리는 차기 가주가 될 사람이야. 이런 일로 무릎을 꿇게 해선 안 돼.”

자신의 목숨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만은 차기 가주로 흠잡힘 없이 내세울 것이다.

그때였다.

문을 벌컥 열고 땀에 젖은 율리가 들어온 게.

“율리구나, 무도회는 잘 끝마쳤니?”

초조하던 얼굴을 싹 지우고 환하게 웃는 백작 부인이었다.

“어머니,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래, 할 말 있으면 말하렴.”

“후계자 자리를 포기할까 해요.”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니.”

환하게 웃던 그녀의 얼굴이 이번엔 갑자기 표독스럽게 변했다.

“말씀드린 그대로에요. 후계자 자리 형님께 넘길게요. 그러고 나서 아버지께 가서 그동안에 있던 일을 말하고 용서를 구할까합니다.”

“절대 안 돼!”

율리는 예상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런 말을 하면 어머니가 반대할 거라는 걸.

하지만 어쩌나.

자신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데.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저와 어울리는 자리도 아니었고, 욕심이었어요. 차남인 제가 장남인 형님을 제치고 가주에 앉는 다는 건 애당초 말이 안됐어요.”

백작 부인이 율리의 손을 잡으며 애원했다.

“애야, 차남이라고 가주자리에 못 앉은 건 아니야. 네 아버지도 가문의 막내였는데, 버젓이 가주가 되어 있지 않니.”

“저는 아버지가 아니에요.”

율리의 생각은 달랐다.

아버지는 다른 형제와 사이가 많이 안 좋은 걸로 알고 있었다.

가솔들은 원수라도 믿겨질 만큼 틀어졌다고 했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그러나 자신과 형은 아니었다.

사이가 좋은 걸 어머니가 계속 찢어 놓았고, 심지어 자신의 말을 안 들으면, 형을 죽인다고까지 했다.

15살.

그 어린 나이에 말이다.

‘지금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형님은 나보다 강하니 어머니의 위협으로부터 이미 벗어났어.’

이젠 어머니가 걱정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아버지에게 버림받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끝나면 다행이지만, 최악의 경우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아무튼, 전 할 이야기 다 했어요. 그만 욕심 버리고 제자리로 돌아가요.”

“안 돼! 내가 어떻게 널 키웠는데! 널 후계자로 앉히기 위해 어떤 짓을 했는데! 네가 날 배신할 수는 없어!”

백작 부인이 목놓아 울부짖었다.

율리는 그녀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방을 나가 버렸다.

“아아아악!”

그녀가 악을 지르며 방에 있는 물건을 싸그리 던지며 악에 바친 목소리로 외쳤다.

“클라우드, 클라우드으으으!”



***



“크으으윽. 그, 그만!”

포포비치의 다물어진 입에서 신음이 삐져나왔다.

클라우드가 자신의 내력을 주입해 그의 기혈을 뒤틀었다.

그에 따라 온몸에 기혈이 부풀어 올라 터질듯하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이래도 말 안 할 건가?”

“마, 말하겠소. 그러니 제, 제발 그만!”

고문으로 인해 포포비치의 주름 가득한 얼굴이 십 년은 더 늙어보였다.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에선 시뻘건 물이 흘렀다.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된 그에게 고저 없는 목소리로 클라우드가 말했다.

“국왕이 나를 죽이려는 목적이 뭐지?”

“나, 나도 정말 모르오. 암살단의 일개 조장이 어떻게 국왕의 뜻을 알겠소. 우리는 그저… 폐하계서 시키신 일을 할 뿐이오. 거기엔 질문이 필요 없소.”

“정신을 아직 못 차렸군.”

클라우드가 다시 그의 몸에 손을 얹으려 하자.

“내말 아, 아직 안 끝났소.”

다급하게 외치는 포포비치였다.

“장난치지 말고 빨리 말해.”

간수장이나, 기사들이 혼절해 있지만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

빠른 시간 안에 원하는 정보를 얻고 감옥을 빠져나가야 할 터.

자신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국왕과 우리 고요한 숲 단장이 하는 말을 조금 엿들을 수 있었소.”

“그게 뭐지?”

“카시미르가의 가주는 차남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라 하셨소.”

두루뭉술했다.

왕가와 가문의 밀약.

카시미르가의 차남이 가주가 되는 것.

두 가지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연관된 건지도 의문스러울 지경.

‘머리만 복잡해.’

에드가 백작은 물어본다고 해서 가르쳐 줄 위인이 아니었다.

자신이 직접 알아내는 것뿐.

“더 없나?”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요.”

“마지막 하나 더.”

“정말, 정말로 아는 것이 없소. 그러니 제발…….”

“아니, 네가 아는 거야.”

포포비치와 웃고 있는 클라우드의 눈과 마주치자,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어디서 이런 놈이 튀어나온 건지.’

고요한 숲의 단장을 보는 듯한 느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과 오만함이 느껴졌다.

“말하시오.”

“카시미르가에 수년간 숨어 있으면서 왕국과는 연락을 뭐로 받았지?”

“설마 나더러 왕국과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말이오?”

“맞아.”

클라우드가 태연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포포비치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의도로 자신에게 물어보는지 알았다.

주기적으로 연락하던 자신에게서 소식이 없으면, 왕국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챌 터.

시간을 끌 예정이었던 것이다.

“후우, 내가 여기서 버텨 봐야 어쩌겠소. 왕국도 내가 붙잡힌 걸 알면 날 가만두지 않을 건데, 감옥에서 목숨을 보전하는 게 낫지.”

그가 체념한 듯 말을 이었다.

“마법 문자 통신구를 이용하오.”

블라드 가에서 만든 장거리 연락용 장비.

실용적이라 왕국에서 상용화된 물건이었다.

단, 한 가지 필요한 게 있었다.

“통신구를 작동시킬 열쇠는?”

“예배당 레르히 여신상 아래에 숨겨 놨소.”

“가르쳐 줘서 고맙군.”

용건은 끝났다.

볼일이 다 끝났는지, 클라우드가 무릎을 펴고 일어나 쇠창살을 나가려다 우뚝 섰다.

“아, 깜빡 한게 있었어.”

“또 뭐, 윽……!”

포포비치가 가슴을 부여잡고 신음을 토해 냈다.

어느새 단검이 그의 심장에 박혀 있었다.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고, 입술 사이로 시뻘건 피가 흘러내렸다.

“사, 살려준…다 하지 않…았소?”

“고문을 그만한다고 했지, 널 살려준다는 말은 안 했는데?”

“이런… 개 같은 일이…….”

그리고 동생과의 일도 있고, 포포비치가 죽어야만 이번 사건을 자신의 마음대로 끝낼 수 있다.

포포비치는 원독에 찬 눈으로 클라우드를 바라보다가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몇 번 꿈틀 거리다가 몸이 축 늘어졌다.

죽은 걸 확인 후, 지하 감옥을 유유히 빠져나가려는 찰나.

‘이 기운은 뭐지?’

자신도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특이한 기의 파동이 감옥 아래에서 느껴졌다.

‘가 볼까?’

적의는 느껴지지 않아 순간 호기심이 떠올랐다.

끈적하기는 늪지대의 늪 같고, 날카롭긴 드래곤의 이빨 같았다.

생각도 전에 이미 몸은 더 깊은 지하 감옥으로 움직였다.

지하 감옥 끝.

가로 막힌 벽에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안쪽에서 짙은 기운이 느껴지는데…….”

벽에 손을 더듬더듬 해봤지만, 별다른 장치가 없는 듯했다.

기관이 있으면 자신이 짚은 곳이 움푹 들어가 벽이 움직였을 거다.

“아무것도 없나.”

장치를 찾으려고 벽에 손을 짚은 채 흑영심법을 운용하자.

그르르릉―

문이 위로 움직이며 열렸다.

“허,”

내공으로 열리는 기관이라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역시, 아래에서 기가 흘러나온 게 맞았어.”

클라우드가 계단을 내려가자 불이 파도가 움직이는 것처럼 일렬로 켜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랫층에 도착할 때에 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단검?”

자신을 자극해 오던 끈적하고, 날카로운 기운은 고고한 듯 공중에 떠 있는 단검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