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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디온이 클라우드의 멱살을 잡았는데도 말리는 사람 하나 없었다.

정작 가문의 사람인 율리가 가만히 있는데 어느 누가 나서서 말리겠는가.

디온은 율리의 눈을 바라 봤다.

그럼에도 그가 가만히 있자 착각에 빠졌다.

‘너도 내 생각과 같단 말이지?’

머저리 같은 형.

검술 천재인 율리에게 하나 걸리는 건 가문의 법도인 차남이라는 것.

그 한계만 아니면 진작 후계자로 자리 잡았을 텐데.

이참에 모든 귀족 자제들이 있는 무도회장에서 망신을 당하면 후계자는 확실해지지 않을까.

‘친구인 내가 너의 골칫거리를 덜어 줄게.’

디온은 엄청난 완력을 바탕으로 클라우드의 몸을 번쩍 들려고 했다.

그런데.

‘왜 들려지지 않지?’

팔뚝에 핏줄이 불끈 솟을 만큼 힘을 주었다.

바위도 손쉽게 부술 완력이지만 클라우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허, 꼴에 오러를 쓴 거냐? 그러면 어디 한번 개망신 당해 봐라.’

무도회장의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엘리나와 이름 모를 여기사.

그녀들이 보고 있어 대충할 마음이 없었다.

여기서 자신의 대단함을 보여줄 것이다.

마나 하트에서 오러가 격렬히 회전하며 팔에 힘이 들어갔다.

손에 모인 푸른빛은 점점 선명해졌다.

‘흐흐, 그럴 줄 알았지.’

클라우드의 몸이 들썩이는 걸 보면 격렬히 저항하는 듯 싶었다.

입술이 비틀리며 그를 비웃으려는 순간.

‘무슨 놈의 눈이…….’

이전에도 마주친 강렬한 눈빛.

감정이 메말라 있는 사막과도 같았다.

그럴수록 오러는 격렬하게 회전하며 손에 집중되었다.

자신이 겁먹은 걸 숨기기 위해 살기까지 내보였는데.

“그 살기, 더 내보였다간 너 죽어.”

클라우드의 입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고는 서릿발 같은 기세를 표출하며, 디온의 팔목을 잡고 힘을 주었다.

“아악!”

“그리고 내가 너보다 나이 많은 걸로 아는데, 아닌가?”

클라우드의 손에 잡힌 팔이 비틀어졌다.

디온의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손을 빼려고 안간힘을 썼다.

몸에 깃든 오러를 모두 끌어올렸는데도 손이 빠지기는커녕 아픔만 전해졌다.

“이, 이 손 놓지 못…해?”

“아직 주제 파악을 못하는 것 같구나.”

클라우드가 팔목을 쥔 손에 더욱 강한 힘을 주었다.

“아아아악!”

그가 단번에 무릎을 꿇으며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잡힌 손은 빨갛다 못해 파랗게 물들어졌다.

디온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놔…줘.”

“뭐라고?”

“놔… 주라…고.”

“분명 말하지 않았나? 내가 너보다 나이 많다고? ‘주세요’라고 해야지.”

“제발… 놔…주세요.”

클라우드가 잡고 있던 손을 놔주었다.

주위는 삽시간에 대혼란에 빠졌다.

그들이 예상한 결과와는 정반대로 나왔으니, 당황스러웠을 터.

“지,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디온 센이드님이 무릎을 꿇었어.”

“장남은 개망나니라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클라우드의 귀까지 들렸다.

“세간의 이목을 숨기고 비밀병기로 키운 거 아닌가?”

“카시미르 가라면 가능해.”

그중 율리는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했다.

‘디온을 완력으로 제압했어? 오러를 썼을 텐데.’

무려 소드 익스퍼트 초급이었다.

자신과는 한 단계 차이가 나긴 하나 웬만한 기사는 찜쪄 먹을 수준.

그런데 저항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항복을 하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형님의 몸에 오러가 깃든 걸 보지 못했어.’

디온의 오러를 제압해버리는 힘.

순수 완력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러 외에 다른 힘을 썼다는 건데, 그 힘이 뭔지 알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느낀 기세의 성질로만 볼 때는 어쌔신과 같아.’

아주 끈적끈적하면서도 은밀하고, 살기 짙은 기운.

어쌔신의 고유 특징이었다.

‘좀 더 지켜봐야 하나.’

클라우드의 처우는 뒤로 미뤘다.

실력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알 수 없는 힘은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클라우드에 대해 자세히 파악될 때까지 잠자코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가 쓰러진 디온에게 다가가더니, 허벅지를 발로 툭 건드리면서 말했다.

“내 앞에서 살기 보이지마라. 만약 또 살기를 보이면.”

그의 눈에서 붉은 귀화가 피었다 사라졌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릴 거니까.”

디온은 그 말을 듣긴 한 건지, 그저 고통에 몸을 떨면서 신음하고 있었다.

클라우드가 몸을 돌렸다.

“어디 가십니까?”

“여긴 답답해. 잠시 밖에 나갔다 올 테니 이젤라는 무도회 좀 즐겨.”

“제가 보필하겠습니다.”

“됐다, 너는 딱딱하게만 굴지 말고 말 들어.”

그 말을 끝으로 클라우드가 무도회장을 나갔다.

그가 나간 무도회장은 엉망이었다.

수습되지 않는 어수선한 분위기.

율리가 디온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으…어. 괘, 괜찮아.”

그가 민망한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일행인 오른 제아고가 작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의외로… 멋있어……….”

녀석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한 율리였다.

형은 변하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자신이 몰라 볼 정도로 변해 있었다.

속내도 전혀 모르게끔.

무심한 눈동자를 보니, 낯설었다.

전혀 다른 영혼이 든 것만 같았다.

언제까지고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율리는 정신을 차리고 장내의 분위기를 수습했다.

“자자, 분위기가 가라앉았으니, 악단들의 경쾌한 음악으로 다시 시작할까요?”

그가 악단에게 신호를 보냈다.

끊어진 음악의 선율이 다시 흘렀다.

이전 곡이 느리고 아름다운 음악이었다면, 지금은 템포가 빠르고 발랄한 음악이었다.

혼자 남은 이젤라는 이곳이 어색했다.

같은 남작가의 자제지만, 기사로서 수련하다 보니 무도회에 참석해 본지는 오래됐다.

자신을 보는 눈빛이 부담스러워 창밖 테라스로 자리를 옮겼다.

“저…….”

누군가 말을 걸어, 살짝 보니 주군께 시비를 건 디온이라는 자였다.

그자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 애써 무시했다.

그러자 그가 자신을 따라 테라스로 들어왔다.



***



시끄러운 무도회장과는 달리 고요하고,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꿈의 정원.

향기로운 향기가 가득한 그곳에 클라우드가 있었다.

“그 녀석의 의중을 알 수가 없어.”

디온의 흥분에도 가만히 있던 동생.

사절단에 포함된 자가 타 가문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진작 막고도 남았을 녀석인데, 녀석은 막지 않았다.

이젤라까지 막으면서 무언 가를 보고 싶은 눈치였다.

‘아마 내 능력이 궁금하던 거겠지.’

그래서 보여줬다.

자신의 경지를.

하지만 율리는 모를 것이다.

그 힘이 무엇인지.

마나 하트와 흑영심법이 어떻게 다른지를 말이다.

율리가 본 이들은 전부 심장에서 힘을 뿜어내고 있는 사람들.

자신과는 전혀 다른 기관에서 힘을 내고 있으니 모를 수밖에 없다.

“내 힘을 봤으니, 움직임이 있겠지.”

자신을 죽이던가, 아니면 다른 계획을 짜던가.

하나 걸리는 건 율리의 눈동자.

다른 이들은 보지 못했지만, 자신은 똑똑히 보았다.

흔들리는 초점.

그 속에 담긴 건 분명 걱정이었다.

웃는 미소로 일관되던 율리의 평점심이 흩어졌다.

“머리 아픈 건 딱 질색이야.”

때가 되면 율리가 알아서 행동하겠거니 생각하며 산책에 집중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사색.

페시아도 이젤라도 옆에 없이 홀로 걷는 건 이 세계로 와 처음이었다.

정처 없이 정원을 걷다보니 어느새 예배당까지 왔다.

그때 귀로 들리는 목소리.

“죽이… 안가로… 피하…….”

“조장…….”

클라우드가 기감을 더 끌어올려 자세하게 들으려 하는데, 이미 말은 끝난 것 같았다.

더 이상 말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예배당에서 나온 대여섯의 그림자가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누구지?’

저택을 순찰하는 경비원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모습.

‘보통 도둑고양이가 아닌데?’

잘 정련되고,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 같은 느낌이었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잘 알았다.

암살자들.

그들은 은밀하고 조용했으며 섬뜩한 날을 품에 숨겼다.

‘누가 목표지?’

저들이 은밀히 움직이는 방향은 가주전과 정반대 방향이었다.

그렇다는 건 에드가 백작이 목표가 아니라는 말.

다음으로 자신을 생각해 봤지만 오늘은 다를 수 있었다.

카시미르 가에 침입해 암살 대상으로 지목될 만한 인물은 백작과 자신 말고도 많았다.

율리의 생일에 초대받은 사절단 중 꽤 중요한 이들이 있었다.

블라드, 제아고, 센이드 가문의 후계자들이 대표적이었다.

누구 하나 죽으면 혼란을 야기시킬 만한 인물들.

카시미르 가를 음해하려는 세력은 이 기회에 초대된 사절단을 노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암살 대상이 누군지 짐작가지 않았다.

물론 제일 높은 대상은 자신이지만.

‘원한도 많고, 백작 부인이 못 죽여서 안달이니까… 우선 따라가 보자.’

저택 지붕을 타고 움직이는 대여섯 명의 인물들을 뒤를 밟았다.

야조 여섯 마리가 하늘을 날며 전진해 간다.

은밀하기 짝이 없는 움직임이었다.

저택 밑을 배회하는 병사들은 침입자가 있는지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지형도 완벽하게 외웠다 이거군.’

나가는데 거침이 없었다.

저택의 지형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으며,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듯한 행동이었다.

‘소드 익스퍼트, 이젤라와 비슷한 경지야.’

아마도 자신과 율리, 이젤라를 제외하고서는 그들을 막을 자는 없을 것 같았다.

암살자의 장점은 기습으로 적의 목을 따는 자들.

경지가 높은 자도 되레 죽일 수 있는 이들이 암살자였다.

그러니 자신보다 낮은 이들은 얼마나 쉽게 죽이겠는가.

밤에는 한없이 두려운 사신과도 같은 존재.

그런 이들이 한 목표를 죽이려고 이동 중에 있었다.

‘어디로 가는 것이냐.’

지붕을 밟고 전진해 가는 일곱 명의 그림자.

클라우드의 눈이 깊어졌다.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긴 엄연히 클라우드의 영역 안이었으니까.

그래서 뒤를 따르는 거기도 했다.

누가 이들의 대상인지, 어떤 인물이기에 감히 자신의 영역 안에서 어쌔신 흉내를 내는지를 확인하려고 말이다.

지붕을 타고 밤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움직이다가 멈춰선 곳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저택이었다.



***



“정지.”

브루안이 손을 들자 수하들도 덩달아 멈춰 섰다.

그들이 있는 저택 바로 아래인 테라스에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처리할까요?”

수하가 단검을 꺼내 들고 나서려다가 브루안의 저지로 멈춰 섰다.

“클라우드의 생김새는 알아?”

“돼지였을 때는 알지만, 현재는 잘생겼다는 것 말고는 모릅니다. 옆에 여기사가 항시 붙어 있다고 합니다.”

“저기 우리 목표가 떡 하니 있네.”

테라스에 나와 있는 일 남 일 녀.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옆구리에 찬 검이 흔들거렸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목표가 바로 아래에 있는 것 같았다.

원래대로라면 다른 조가 무도회장의 정반대 지역에 폭음을 터트리면, 병력들이 그곳으로 몰리는 틈을 타 기습해 클라우드를 제거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목표가 테라스에 나와 있으니.

운이 좋았다.

“처리하고 안가로 간다.”

“네!”

마침 저택의 불이 꺼졌다.

“응? 뭐야?”

“깜깜해서 앞이 안 보여.

우당탕탕.

장애물에 걸려 서로 뒤엉켜 쓰러졌다.

불이 꺼진 것만으로도 무도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엘리나가 불의 마법을 일으켜 불을 밝히려는 찰나.

와장창!

창문을 깨고 뭔가가 날아와 하얀 연기를 뿜었다.

순식간에 퍼지는 연기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수면구! 호흡을 멈추고 저택 밖으로 나가십시오.”

수면구는 어쌔신들이 주로 쓰는 물건으로 연기에는 졸음이 쏟아지는 수면 성분이 들어 있는 구슬이었다.

콰앙!

무도회장과 정반대 지역에서 폭음이 터지며 불이 났다.

그곳은 가주전이 위치한 곳이었다.

잠시 생각을 한 율리는 이윽고.

“가주 전에 침입자가 발생했다! 절반은 무도회에 참석한 이들을 데리고 빠져나가고 나머지 병력은 나를 따라 가주 전으로 간다.”

율리의 명에 병사들은 사절단을 데리고 무도회장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