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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클라우드의 방에서 나온 페시아는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였다.

마침 지나가던 그녀의 동료가 말을 건넸다.

“페시아, 말했어?”

“무슨 말이요?”

“아이참. 휴가 말이야. 넌 집에 안 내려가?”

“아, 그게…….”

페시아의 집은 카시미르 영지에 속한 작은 마을이다.

이곳과는 열흘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그녀가 뜸을 들였다.

그러자 한 살 언니 릴리가 말을 가로채며 속삭였다.

“얼굴을 보니 딱 알겠다. 도련님이 안된다고 했구나.”

“아니에요.”

“그러면? 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어?”

“도련님이 걱정되서요… 조금만 다쳐도 엄살 피우던 분이신데…….”

릴리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넌 도련님께 그렇게 당하고도 걱정돼? 난 솔직히 암살자가 나타났을 때 그냥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녀의 막말에 페시아가 꽥! 하고 소리쳤다.

“언니, 그런 소리 마세요!”

“다들 클라우드 도련님이 언제 예전처럼 바뀔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어.”

‘제가 보기엔 요즘은 좀 달라지셨어요…….’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페시아만 클라우드의 변화를 조금 눈치챘다.

그러나 차마 변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고용인들과 기사들은 그의 행동을 단순한 변덕이라 치부하기에 자신도 그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시녀장께서 휴가 날짜 정해지면 말해 달라니까 도련님께 어서 말해.”

“네.”

“으휴, 누가 사제 후보 출신 아니랄까봐 착해 빠져가지고.”

“다 옛날 일이에요.”

페시아가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등지며 몸을 문에 기댔다.



***



길게 숨을 들이쉬며 호흡을 멈췄다.

그러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

계속해서 심법을 반복하니, 저번같이 운공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몸을 관조했다.

혈맥을 타고 돌아다니는 기.

거침없이 돌아다니다가 배꼽 아래와 심장, 머리 부분을 통과하려 하자, 불에 덴 듯한 화끈거리는 통증이 나타났다.

계속해서 내공의 흐름이 막히자, 클라우드는 어떻게 이를 뚫을지 결정을 해야 했다.

‘계속 생각만 해봐야 답은 안 나와. 주화입마에 걸리는 걸 각오하고 금제 된 단전을 뚫던, 안전하게 조금씩 뚫던 둘 중 하나밖에 없어.’

선택지는 두 개.

클라우드의 선택은 전자였다.

주화입마에 걸리는 걸 각오하고 단전을 뚫는 게 빨리 강해지는 방법이었다.

암천제로서의 자신감과, 내기의 날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점이 그의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

몸 곳곳에 퍼지며 돌고 있는 기를 단전으로 끌어모았다.

도박에 가까운 시도.

이걸 한꺼번에 풀어 리면 더는 기를 통제할 수 없다.

그래도 해야 했다.

“으윽!”

단번에 기를 풀자, 마른 강에 해일이 밀려왔다.

살을 칼로 후벼 파는 고통에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피가 흘러내렸지만,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고통 때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통제할 수 없는 힘이 성난 파도처럼 내부를 들쑤시고 돌아다녔다.

그럴수록 극심한 고통이 더해지며 의식이 흐릿해져 갔다.

‘안…돼. 여기서 의식을 잃으면…….’

다시 한번 찾아온 생.

개망나니의 몸으로 영혼이 들어왔지만, 허무하게 잃을 수 없었다.

‘버텨야 해…….’

지금 기를 거두기에는 이미 늦었다.

정신력 하나로 버텨야 했다.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져 마치 흉신악살을 보는 듯 했다.

눈에는 실핏줄이 터지며 피눈물이 흐르고, 동시에 입에선 피 분수를 뿜었다.

“쿨럭!”

기침에 침대의 하얀 시트가 피로 얼룩졌다.

이런 상황에도 다행히 정신은 놓지 않았다.

무림의 정상에 섰던 그의 정신은 이를 가능하게 하였다.

기운이 단전을 지나 심장 부위에 다다를 즘 정신이 다시 아득했다.

전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이 수반되었다.

“허억.”

그때였다.

몸 어딘가에서 나타난 새로운 힘이 파도가 휩쓸고 간 혈맥을 치료하며 내달렸다.

파리했던 혈색은 차차 좋아졌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 모른다.

1초가 하루 같고, 1분이 한 달 같았다.

기가 머리를 무사히 지나, 심장 부위까지 통과할 때 원하던 흑영심법(黑影心法)이 몸에 자리 잡았다.

‘됐…다.’

무공을 극성으로 익혔을 때보다 더 기뻤다.

공기 중에 퍼져 있는 기를 코로 빨아드리고 눈을 떴다.

“흑마법?”

자신의 머리 위에 해골 모양의 연기가 나타났다가 곧 사라졌다.

“누군가 흑마법을 사용해서 몸에 금제를 가한 거였어.”

흑영심법을 익힌 이상 같잖은 수작은 통하지 않지만.

흑마법을 완전히 소멸시킨 건 아니었다.

아직 두 개의 금제가 남아 있었다.

가슴과 머리.

심법의 성취가 높아진다면 남은 금제도 저절로 풀릴 것이다.

“누가 이런 고약한 짓을 했을까?”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은 많았다.

수도 없이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운이 좋은 건 흑마법을 행할 정도면 그자는 적어도 일반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신분이 어느 정도 있고 나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범인이라는 건데.”

자신이 마나하트를 가지면 피해를 보는 이가 누굴까.

문득 떠오르는 두 명의 인물이 있었다.

눈을 뜨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

한 명은 좋은 기억이 남은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정반대로 자신을 괴롭힌 사람이었다.

“만나보면 알겠지.”

자신을 공격한 암살자들과도 연관이 있을지 몰랐다.

흑마법에 암살자까지.

정말 이 몸의 원주인은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적은 많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살수들은 잠잠하지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방심할 수 없어. 그래도 당장 급한 이젤라의 일부터 해결하자. 내 무공을 다시 찾다 보면 그놈들도 상대할 수 있겠지.”

자신을 공격한 그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노릇.

배후까지 샅샅이 밝혀내 죽일 작정이었다.

일을 해결하기 전에 당면한 과제부터 해야 했다.

빌어먹게도 저질스러운 체력을 가진 놈부터 사람 구실 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먼저였다.

덩치만 컸지 몸 자체는 영 형편없었으니까.

“응?”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느낌에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자신의 시선에 잡힌 건 흔들리는 커튼과 창 말고는 없었다.

“분명 누군가 나를 보는 것 같았는데.”

평범하던 인간이 내공을 배워 감각이 예민해진 통에 발생한 착각이라 치부하긴 자신의 감은 특출 났다.

그래서 살수계의 최고가 된 것이고.

꼬르륵―

그보다 더 큰 일은 배가 고팠다.

열심히 수련하고 머리를 굴렸더니, 밥을 달라고 배에서 천둥소리를 쳤다.

아직 해가 떠있어서 밖에 있을 페시아를 불렀다.

“페시아, 거기 있어?”

벌컥!

문이 사정없이 열리고 페시아가 들어왔다.

그런데 어째 전과 똑같은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

“배가 고픈데, 먹을 거라도 있나?”

그녀가 피로 얼룩진 자신의 얼굴과 흥건하게 젖은 시트를 보며 화들짝 놀랐다.

“피, 피?”

“아, 이거? 수련하다 발생한 영광의 상처이니라.”

그녀가 놀라든 말든 클라우드는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괘, 괜찮으세요?”

“수련하다 보면 이럴 때가 있느니라.”

흑영심법이 단전에 자리 잡아 무공을 익힐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목구멍까지 넘어온 걸 간신히 참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반응에 그녀는 오해하고 말았다.

“어디 아프시면 제게 꼭 말씀해 주세요.”

“알았으니까 음식을 좀 내오면 좋겠다.”

그녀가 방을 나가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걱정 가득한 눈을 하고 있는 게 어느 순간 눈물을 왈칵 쏟을 거 같았다.

병이 걸렸다고 착각한 걸까.

‘피를 왕창 쏟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굳이 그녀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귀찮았다. 지금으로서는 피에 젖어 더러워진 몸을 씻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클라우드가 몸을 씻은 사이 주방에 갔다 온 페시아가 커다란 그릇을 들고 서 있었다.

“많이 시장하실 테니 어서 드세요.”

그릇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클라우드는 스튜를 받아 들고 체통도 잊은 채 허겁지겁 먹었다.

음식을 먹자 전과 같이 활력이 돋아났다.

내상을 입은 곳이 조금 아문 느낌이랄까.

확실히 음식에 영약 비슷한 걸 섞은 것 같았다.

그릇은 금세 비워졌다.

“더 드릴까요?”

“크흠, 맛이 좋구나.”

“풉!”

페시아가 웃었다.

‘웃는 모습은 처음 보는군.’

지금껏 두려워하거나, 당황, 걱정하는 표정밖에 보지 못했다.

‘웃으니까 딱 십대 소녀 같아.’

손녀를 보는 느낌이었다.

“왜 그러느냐?”

“죄, 죄송합니다.”

“널 나무라 한 게 아니고, 날 보고 왜 웃었냐고 묻는 거다.”

“제가 만든 음식이 이전에는 먹지 못할 만큼 맛없다고 하신 게 갑자기 생각나서.”

“그땐 정신이 잠깐 나갔나보구나.”

한결 편해진 걸까.

페시아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이대로 지낸다면 언젠간 편하게 웃는 날도 있을 것이다.

클라우드는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딴청을 피웠다.

“밥도 얼추 먹었으니, 운동을 해야겠다.”

“운동이요?”

“자고로 식후 운동이 최고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그녀가 대뜸 소매를 잡았다.

몸을 떨어 대는 모습이 많이 용기를 낸 듯하다.

“도, 도련님이 식사하신 지 얼마나 지났다고 생각하세요?”

“한 5분?”

“사흘이나 지났어요.”

“방금 먹었지 않았나?”

“그게 사흘이 지나고 먹은 첫 끼니셨어요.”

‘해가 떠 있어서 반나절정도 지난 줄 알았어.’

사흘이나 지났다는 말은 믿기 어려웠다.

흑마법의 일부를 풀고 흑영심법을 몸에 자리 잡게 한 것이 이렇게 오래 걸렸을 줄이야.

‘그동안 수련을 못 했으니 지금이라도 다시 해야지.’

한 달도 촉박해 죽겠는데, 사흘을 낭비했으니 더 열심히 수련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계속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어서 그런지 좀이 쑤신다.”

그녀가 항상 보던 눈으로 쳐다봤다.

“그렇게 안 봐도 된다.”

“저…….”

“됐다니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그녀를 뒤로 하고 자신의 전용 연무장으로 가서 달렸다.

내공을 쓰지 않고 육체의 힘만을 사용해 달렸다.

이날은 어쩐 일인지 다섯 바퀴를 도는데 성공했다.

숨도 별로 차지 않았다.

‘전생에는 말이야. 철근을 달고 뛰었어.’

자신감이 붙었다.

말 나온 김에 철근을 구할까 보다.

여섯 바퀴를 도는 순간!

“아악!”

역시나 발에 쥐가 나는 바람에 가문의 기사들에 의해 자택으로 고이 모셔졌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기사들의 비아냥은 덤이었다.



***



“클라우드는 아직도 연무장을 돌고 있나?”

에드가 백작이 햇빛이 내려 쬐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벌써 삼 주 째 뛰고 있습니다.”

백작의 얼굴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감정이 나타났다.

즐거움.

망나니 아들의 변화된 모습에 웃음꽃이 피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홀로 수련을 한다는 말에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기억이 돌아올 기미는?”

“클라우드의 시녀 말로는 많은 걸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단지…….”

카시아스가 뜸을 들이다 말했다.

“자신을 바꿔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하, 하하하. 그 망종이 말이냐? 이거 기억을 잃게 해 준 암살자 녀석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에드가 백작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차가운 안광으로 반짝였다.

망나니라고 하나 아들이, 그것도 가문의 장남이 자신의 영지에서 습격당했다.

그건 카시미르 가에 대한 도전과 다름없었다.

“제가 직접 찾아볼까요?”

“됐다.”

“클라우드가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에드가 백작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꼬리 말고 몸통을 잡아야지. 그러기 위해선 미끼가 필요해.”

배후를 밝혀내려고 아들을 이용하는 에드가 백작의 결정에 카시아스는 혀를 내둘렀다.

이제 정신을 차린 망나니긴 하나 백작가의 장남.

씨 하나가 중요한 가문에서 자칫 혈육을 잃는다면, 망나니를 키웠다는 오명보다 더 큰 곤욕을 치를지 몰랐다.

“클라우드가 뭐를 하는지만 지켜봐.”

“그러지요.”

에드가 백작의 호위인 카시아스는 백작을 암살하러 온 어쌔신을 되레 죽이는 인물이었다.

그런 실력을 가진 자가 클라우드의 암중 호위를 맡았다는 건 더 이상 어쌔신들의 암살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카시아스 이상의 실력자가 아니라면, 클라우드는 이제 죽을 일이 없었다.

하지만 책상에 놓여 진 편지가 그를 불편하게 했다.

한 달 후에 생일에 맞춰서 그의 둘째 아들 율리와 아내가 아카데미에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에 에드가 백작의 이마에 내 천자가 그려졌다.

“클라우드가 정신을 차리자, 두 사람이 돌아온 다라… 이게 과연 우연일까.”

둘째 아들 율리는 클라우드와 배다른 형제로 어머니가 달랐다.

하지만 둘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친하게 지냈다.

이것도 다 옛날 일이지만.

문제는 율리를 가문의 후계자로 만들려는 자신의 아내에게 있었다.

“백작님의 뜻을 부인께 말씀하시는 건.”

“그건 안 될 말이야. 가문을 이으려면 어미의 품에서 벗어나 율리 스스로 더 단단해 져야 해.”

모두가 적장자인 장남을 가문의 후계자로 지정한다.

유독 카시미르 가만은 장남이 아닌 차남을 밀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그러기엔 율리가 검술 천재로 차기 검성 후보라지만, 아직 스물두 살밖에 안 된 청년이었다.

“그래야지만 우리 가문을 지킬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