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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몸을 감싸는 따스한 기운에 정신을 차리자, 눈앞에 아는 얼굴이 보였다.

“정신이 좀 들어?”

“형님? 저희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요?”

“무슨 소리야, 그게?”

차지혁이 고개를 갸우뚱해 보였다.

“아, 그냥 꿈을 꿨나 봐요.”

“훈련이 많이 힘든 모양이네.”

“그렇죠. 그런데 형님은 어떻게 오셨어요?”

차지혁은 엷게 웃으며 오른쪽 팔뚝의 십자가 모양이 그려진 완장을 보여줬다.

“탈진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바로 달려왔다.”

“탈진이요?”

“그래. 조달영이 그러는데, 뛰면서 기절한 모양이야. 일단 치료는 다 끝났어. 팀원들은 저쪽에서 기다리는 중이고.”

그의 말에 고개를 돌려 보니, 팀원들이 한쪽에 앉아서 대기하는 게 보였다.

내가 깨어난 모습에 모두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상혁만이 히죽거리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큭큭, 황천길이라도 다녀왔어?”

“그래. 너도 한 번 구경시켜 주랴?”

내가 발끈하자, 차지혁이 웃으며 나를 부축해 일으켜 주었다.

“자, 이제 다시 일어나. 다들 너 깨어나기만 기다렸어.”

그러고 보니 아직 코스를 완주하지 못한 상태였다.

“제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죠?”

“내가 도착한 지 5분 정도 지났으니까, 한 20분 정도 되려나?”

“망했네. 아무튼 고마워요, 형님. 저는 다시 가볼게요.”

“그래. 나중에 또 보자.”

내가 대열에 합류하자, 김중석은 다시 팀원을 이끌었다.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나머지 인원들도 차지혁에게 치료를 받아서인지,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빠른 속도로 산을 내려와 산악 뜀걸음을 마쳤지만, 꼴찌로 통과했기에 보충 훈련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 때문에 팀원들이 보충 훈련을 받게 됐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체력이 회복됐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기초 체력 훈련 코스를 완주해야 했지만, 처음보다는 빠르게 통과할 수가 있었다.

나는 어째서 치유 능력자가 대접받는 것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낮지만, 나도 각성할 수 있다면 치유 능력을 가지고 싶었다.

우리 팀의 보충 훈련이 끝나자, 박은우 중위는 복귀를 명령했다.

“교육대 연병장으로 복귀한다.”

우리는 교장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 교육대로 복귀했다.



교육대에 도착하니 시계가 오후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덟 시부터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쉬는 시간도 없이 일곱 시간을 내리 훈련받은 셈이었다.

하지만 교육대에 돌아오고 나서도 휴식은 주어지지 않았다.

“지금부터 저녁 식사 전까지 실전 격투술을 연마하겠다.”

우리는 곧바로 맨손으로 적을 제압해 살상할 수 있는 기술을 익혔다.

주먹과 발길질은 물론이고, 머리와 팔꿈치, 무릎, 어깨까지 신체의 튀어나온 부분을 모두 사용해 적을 타격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러고 나서 군용 대검을 이용해 적의 급소를 공격하는 것까지 배울 수 있었다.

배워야 할 동작들이 너무 많아서 전부 외우지는 못했지만, 목봉 훈련이나 기초 체력 단련보다는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다.

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검을 휘두르고 있을 때, 박은우 중위가 훈련 종료를 알렸다.

“교육생들은 생활관으로 복귀해 휴식을 취하다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생활관으로 돌아온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중량 장비를 벗었다.

아침부터 나를 짓누르던 무게에서 해방되자,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중량 장비를 벗고 침상 끝에 걸터앉아 쉬는데,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생활관에 돌아와 중량 장비를 벗은 사람은 나를 포함한 신병 셋뿐, 나머지는 아직도 몸에 장비를 착용한 상태로 휴식을 취했다.

나는 김중석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거 왜 안 벗어? 무겁지 않아?”

“무겁지. 그래도 그냥 차고 있는 편이 나아. 저녁 먹고 와서 다시 착용하면 더 힘들게 느껴지거든.”

“응? 다시 착용한다고? 이걸?”

“당연하지.”

“왜? 설마 잘 때도 이걸 입은 채 자야 하는 거야?”

내 질문에 김중석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잘 때는 당연히 벗고 자야지.”

“그럼 왜…….”

“아직 훈련이 안 끝났어.”

“뭐라고?”

“식사 후에 저녁 점호 전까지 팀 단위 야간 전술훈련이 있어.”

“또 훈련을 한다고?”

“그래. 말 그대로 눈 떠서 감기 전까지 훈련만 하는 거지.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야.”

“휴우, 뭐가 더 있어?”

“너희도 3일 동안 교육을 받은 뒤에 점호가 끝나면 다시 생존 훈련장으로 투입될 거야. 보통 새벽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은데, 잠은 못 잔다고 생각하는 게 편할 거야. 그래서 3일째 날은 특별히 체력 관리를 하는 사람이 많아.”

“혹시 오늘이 3일 차야?”

“응. 점호가 끝나면 밤중에 떠날 거야.”

“그럼 지금이라도 좀 자둬야 하는 거 아냐?”

나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김중석이 걱정됐다.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 내 동료들이 이미 진지를 구축해 뒀으니까.”

“동료?”

“그래. 여러 번 탈락하다 보면 교육대에서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게 돼. 그러다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생존 훈련을 헤쳐 나가. 내게도 그런 친구들이 있어.”

“흐음, 효과는 어때?”

“뭐, 그럭저럭. 사람이 많을수록 생존 확률이 높아지니까. 나는 3일 전에 물 뜨러 나갔다가 재수 없게 당했지만.”

김중석이 씁쓸한 미소를 배어 물었다.

“아침에 본 그 사람이구나.”

“응. 그러고 보니, 너희는 누구한테 당한 거야? 한 사람에게 당한 거야?”

“그렇지. 이름은 유미고… 여자였어. 장교라던데, 약간 정신이 이상해 보였어.”

“유미라…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생존 훈련 탈락자들이 부쩍 늘어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 여자 소행인가 보네.”

“그래? 얼마나 늘었는데?”

“보통 하루에 열 명에서 열다섯 명 사이인데, 최근엔 스무 명이 넘는 탈락자가 발생하더라. 어제는 서른 명이나 실려 왔다고 들었어. 그래서 지금 교육대의 인원이 평소보다 많은 거야.”

“서른 명이라…….”

“조심하는 게 좋아. 같은 날 탈락했다는 건 생존 훈련에 투입되는 날도 같다는 뜻이니까. 동시에 투입되는 인원이 많을수록 초반에 싸움이 벌어질 확률은 높아져. 교육대에서 투입되는 인원들에겐 총이랑 총알 한 발이 지급되니까, 생존 훈련 전에 동료를 모으는 게 좋을 거야.”

그의 말에 나는 조달영과 한상혁을 돌아봤다.

둘은 휴식을 취하는 데 여념이 없어 보였다.

그때, 김중석이 내 어깨를 툭, 치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걱정 마, 기회는 많이 있을 거야. 여차하면 우리 파티에 들어오는 것도 나쁘지 않고.”

“진짜? 그렇게 해도 될까?”

내가 조심스럽게 얘기하자, 김중석이 빙긋 웃었다.

“물론,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너 정도면 딱히 성격이 모나지도 않은 것 같고, 다른 동료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을 거야.”

내 입장에선 전혀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정말 고마워. 그런데 괜히 나 때문에 너희들에게 피해가 생길 것 같아.”

“그래?”

“응. 그 미친년, 아니, 유미라는 여자한테 찍힌 것 같아.”

“하하하, 그것참 큰일이네. 걱정 마. 그 여자가 아무리 강해도 우리 전원을 상대하긴 어려울 거야.”

가슴을 치며 장담하는 김중석의 모습에 나도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럼 나도 가입할게. 그리고 가능하면 내 동기들도 같이 가입할 수 있을까?”

나는 조달영과 한상혁을 힐끗 바라봤다.

“안 그래도 제안해 볼까 생각 중이었어.”

“그렇다면 다행이네.”

나는 대기 시간 동안 김중석과 대화를 나누며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저녁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연병장에 집합했다.

연병장에는 승합차 열두 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박은우 중위는 집합을 마친 교육생들을 내려다보며 설명을 늘어놨다.

“지금부터 팀 단위 야간 전술훈련을 실시한다. 총 열두 팀이 참가하고, 1부터 6번까지 2㎞의 전술 교장을 사용한다. 각 팀은 정해진 교장의 A와 B 진지에 들어가 자기 팀의 깃발은 지키고, 상대 팀의 깃발은 빼앗으면 된다. 만약 세 시간 후에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살아남은 팀원 수가 적은 팀이 패배한 것으로 간주하겠다. 전술훈련 대결에서 패배한 팀에게는 야간 경계 근무 임무를 부여하겠다. 그럼 제비뽑기를 진행할 테니, 각 생활관 팀장은 앞으로 나오도록.”

김중석은 물론이고, 다른 팀의 대표들도 망설임 없이 상대를 뽑았기에 결과는 금방 나왔다.

“교장에 도착하면 10분 동안 작전 회의 시간을 부여하겠다. 그 후에 울리는 신호에 따라 전술 행동을 실시할 수 있도록.”

대열로 돌아온 김중석은 급하게 우리를 불러 모았다.

“내가 뽑은 건 1―A 교장이야.”

“몇 생활관이랑 싸우는 거야?”

“글쎄, 저들 중 누군가는 1―B를 뽑았겠지. 우선은 교장으로 이동하자.”

우리는 김중석을 따라 연병장에 대기 중인 차량 중 하나에 올랐다.

다른 팀 교육생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차량에 탑승했다.

김중석이 행선지를 말하자 승합차가 출발했다.

잠시 후, 우리를 태운 차량은 1―A라 적힌 전술 교장 앞에 도착했다.

교장 앞을 지키던 교관에게 우리 진지를 말하자, 그는 바로 손가락으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가리켰다.

“너희 진지는 저쪽으로 가다 보면 나올 거다. 진지 안에는 훈련간에 사용할 장비가 비치돼 있으니까, 신호가 울리기 전까지 작전 회의를 진행하도록.”

우리는 교관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빠르게 걸었고, 곧 붉은색 깃발이 꽂혀 있는 진지에 도착했다.

서둘러 장비를 챙긴 우리에게 김중석이 의견을 물어왔다.

“깃발을 지키는 것을 우선할지, 뺏는 것을 우선할지 방침부터 정하자.”

“지키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 먼저 움직여서 깃발을 뺏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나는 야간 경계 근무만 서지 않으면 돼.”

팀원들이 한마디씩 자신의 의견을 꺼냈고, 먼저 공격을 취하자는 쪽으로 대세가 기울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도 있잖아.”

나도 대세에 따라 깃발을 빼앗으러 가자는 쪽에 의견을 보탰다.

그런데 한상혁이 코웃음을 치며 말을 꺼냈다.

“큭큭, 교관이 한 말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