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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도대체 이게 무슨 경우야?!”

박은우 중위가 떠난 뒤, 참을 수 없는 마음에 불만을 토해냈다.

그러자 조달영이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나를 제지했다.

“쉿, 주변에 누가 있을지 모르는데 소리를 내는 건 너무 경솔한 행동이야. 우리 위치가 발각되면 불리하다는 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

나는 실수를 깨닫고 입을 꽉 다물었다.

한상혁은 여전히 말이 없고, 아이 실드 너머로 보이는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그러고 보니 어제 수료식이 끝나고 면회장에서 녀석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설마,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건가?

“이제 뭘 해야 하지? 숨을 만한 곳을 찾을까? 그게 아니면 보급품을 찾으러 돌아다녀야 할까?”

나는 다른 두 사람의 의견을 듣기 위해 조용히 속삭이듯 말을 꺼냈다.

“일단 무기를 찾자. 상대가 무장한 상태라면 아무것도 못해보고 탈락할 거야.”

조달영의 말 그대로 우리는 현재 맨손이었다.

총이나 대검은커녕, 갈아입을 속옷 한 장 없었다.

“근처에 보급품이 있다고 하니까, 그것부터 찾아보자.”

조달영이 앞장서서 걸었고, 나도 별다른 이견이 없기에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러자 한상혁은 조용히 우리의 뒤를 따랐다.

조달영이 앞장서서 걸으며 정면을 살필 테니, 나는 좌우를 살피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초승달의 희미한 빛으로는 주변의 시야를 충분히 확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길조차 나 있지 않은 수풀 사이를 헤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보급품을 수색한 지 3분 정도가 흘렀을 때였다.

타앙!

저 멀리 산 정상 부근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세를 숙인 채 주변을 살폈다.

“방금 뭐야?”

그때, 한 발의 총성이 다시 울려 퍼졌다.

타앙!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다.

“아무래도 전투가 벌어진 모양인데? 일단 판정 시작까지는 1분 정도 남았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일단 빠르게 보급품을 찾아서 이 자리를 이탈하자. 쉴 장소도 찾아야 하니, 최대한 서두르는 게 좋겠어.”

“그래. 그럼 나는 이쪽으로 갈 테니까, 다들 흩어져서 찾아보자.”

나는 세 방향으로 각자 흩어져 보급품을 수색하자는 의견을 내놓았으나, 조달영은 바로 반대 의견을 내놨다.

“여기서 다시 만난다고 약속해도 방향을 가늠하기 힘든 산속에서 헤맬 게 빤해. 그냥 같이 이동하는 게 좋겠어.”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빠르게 의견을 정리한 우리는 자세를 최대한 낮춘 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총성을 들은 이후라 긴장될 수밖에 없기에, 풀을 스치는 바람 소리마저 스산하게 들렸다.

‘으으, 당장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네.’

그때, 무언가 내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우리 뒤를 쫓던 한상혁이 범인이었다.

“왜?”

“저기, 길이 있다…요.”

높임말을 쓸 거면 제대로 하든가, 마지막에 ‘요’ 자만 붙이는 건 뭔지.

어쨌거나 이제 한 배를 탄 입장인데다, 녀석이 CHT 부대에 지원한 데는 어느 정도 내 책임도 있어 이쯤에서 교통정리를 하기로 했다.

“됐어, 그냥 반말로 해. 여기까지 와서 형님 대접해 달라는 소리 안 할 테니까.”

“진짜냐?”

얼씨구나 하며 바로 태도를 바꾸는 한상혁이었다.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남자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거 아니다.”

“알았으니까, 걱정 마라.”

여태껏 어둡던 한상혁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큭큭, 알았어. 아무튼 저기 길이 나 있는 게 보여.”

그때, 우리 둘의 대화를 듣던 조달영이 얼른 끼어들었다.

“어디?”

“저쪽.”

한상혁이 가리킨 방향엔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수풀에 가려진 오솔길이 있었다.

조달영은 잠시 무릎을 꿇고 살피더니,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길 양쪽으로 길게 자란 풀이 누워 있는 걸로 봐서, 최근에도 누군가가 지나다닌 모양이야.”

“아마 우리보다 먼저 온 기수들이 계속 사용한 길이 아닐까?”

“그렇겠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내가 조달영과 의견을 주고받고 있으려니, 한상혁은 답답하다는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쩌긴 뭘 어째, 길을 따라가야지. 우리 이전에 누군가가 사용한 길이라면 이 앞에 뭐가 있다는 뜻이잖아.”

조달영은 고개를 끄덕인 뒤에 의견을 구하는 듯 날 바라봤다.

“그래. 내 생각도 이대로 산을 돌아다니는 것보단 나을 듯싶어.”

하지만 난 자꾸만 등골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불긴한 느낌에 찜찜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알았어. 하지만 누가 숨어 있다가 습격할지도 모르니 조심하자.”

“왜? 쫄기라도 했냐?”

한상혁은 방금 전까지 우울해하던 녀석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태도가 180도 돌변했다.

괜히 풀어줬나 싶을 정도였다.

“일단 움직이자. 이렇게 멈춰 있는 것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야.”

“좋아, 그럼 가보자.”

“그럼 내가 앞장서지.”

이번에도 조달영이 앞서 움직이자, 그 뒤를 한상혁이 따르고, 내가 가장 후미를 맡았다.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주위를 경계하며 신중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조달영이 갑자기 자세를 낮추고 멈춰 서며 주먹을 들어 보였다.

나와 한상혁은 당장 그 자리에 멈추고, 조심스럽게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조달영은 바닥에 배를 깐 채 우리에게 앞으로 나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내가 포복으로 조달영의 옆으로 기어가자, 그는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눈과 전방을 번갈아 가리켰다.

조달영이 가리킨 곳엔 넓은 공터가 자리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무로 조잡하게 만든, 오두막과 같은 구조물도 보였다.

만약 저 장소가 박은우 중위가 말한 거점이라면, 저 안에는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물품들이 있을 터였다.

딱히 위험해 보이는 게 없는데 왜 이렇게 경계를 하는 것인지 의아해하는데, 조달영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세히 봐봐. 누가 있어.”

그 말에 나는 더욱 집중해서 거점 근처를 확인했다.

그러자 곧 시야에 시커먼 물체가 움직이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희미하지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챙겨. 다른 놈들이 오기 전에 뜨자.”

그때, 오두막 안쪽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 온 녀석들은 세 명인가 보네. 총 세 자루에 총알도 세 발이나 들어 있어.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운이 좋았어.”

“괜찮군. 다른 건 없나?”

“뭐, 기초 보급품 정도? 그건 가져가 봐야 짐만 될 뿐이야.”

“그럼 얼른 움직이지.”

“그러지 말고, 근처에 매복해서 놈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죽이는 건 어때?”

“그랬다가 쓸데없이 우리 위치가 발각될 수도 있다. 어디든 안전하지 않다는 걸 명심해.”

“하긴, 이제 이틀만 더 버티면 되는데, 괜히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

“가지.”

그들은 곧 대화를 끝내더니, 거점을 벗어나 숲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그들이 사라진 뒤로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전방을 계속해서 살폈다.

혹시 그들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조달영이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렸는지, 다시 이동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바닥에 엎드린 자세 그대로 포복으로 이동했다.

우리 외에도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서일까, 전투복이 바닥에 쓸리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변에서 시끄럽게 울어 대는 벌레 소리에 그 소리가 묻힌다는 점이었다.

천천히 바닥을 기어 거점에 도착한 우리는 헤집어진 상자를 볼 수 있었다.

상자 안엔 총과 훈련용 대검, 수통과 야삽 등이 들어 있었다.

탄약이 들어 있었으리라 여겨지는 상자는 텅 비어 있었다.

아마도 앞서 방문한 두 사람이 챙겨 간 모양이었다.

“이게 박은우 중위님이 말한 기초 보급품인 모양이군.”

조달영은 총을 집어 들며 말했다.

나 역시 총과 대검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 나서 텅 빈 탄약 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총알만 싹 가져갔네. 남의 것을 마음대로 가져가도 되는 거야?”

그때, 한상혁이 나를 한껏 비웃었다.

“멍청하긴, 나라도 그랬을 거다.”

“뭐?”

“아까 분명히 들었잖아. 교관은 훈련에 일체 개입하지 않는다고. 그 말은 이 싸움에 지켜야 될 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리야. 너라면 눈앞에 경쟁자의 무기가 있는데,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거냐?”

“물론 맞는 말이지. 하지만 이렇게 시작 물품에 손대면 정당한 경쟁이 되지 않잖아.”

“그런 걸 따지니까 병신이라는 거야. ‘다른 사람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 그것만 기억해.”

한상혁은 충고인지 협박인지 알 수 없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 조달영이 인상을 찌푸린 채 우리 둘을 말렸다.

“그만. 이곳은 이미 노출된 장소야. 아까 그들 외에도 다른 경쟁자들이 언제 이곳으로 찾아올지 몰라. 얼른 장비를 챙겨서 자리를 피하는 게 급선무야.”

조달영의 말에 우리는 서로를 노려보다가 각자 야삽과 수통을 벨트에 결합하고, 총에 대검을 결합했다.

세 사람이 장비를 모두 갖추고 거점을 벗어나려 할 때.

“손 들어.”

숲속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상대를 향해 총구를 겨눴고, 조달영은 대검을 빼 들고 당장에라도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려들 것처럼 자세를 취했다.

“어허, 세 사람 다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철컥.

장전 손잡이가 왕복하는 소리가 나고, 그와 동시에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반대편에서 들려왔다.

잠시 대치 상황이 이어지던 와중, 우리가 섣불리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이 총구를 겨눈 채 모습을 드러냈다.

목소리가 귀에 낯익은 걸 보니, 아무래도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보급품을 털어 간 남자들인 모양이었다.

“제길, 당했군.”

조달영이 낮게 중얼거렸다.

“뭐 해? 어서 무기 내려놓고 손 들라니까.”

조달영과 마주 선 남자가 당장이라도 총을 쏠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조달영은 양손을 들어 보이며 천천히 대검을 땅에 내려놓았다.

한상혁도 어느새 항복 의사를 내비치고 있었다.

“거기, 혼자 반항하지 말고 총을 내려놓는 게 어때?”

내 앞에 선 남자도 방아쇠에 손을 걸치며 나를 위협했다.

그러자 조달영 앞에 선 껄렁거리는 남자가 깔깔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차피 총알은 우리가 챙겼고, 너희가 운 좋게 총알을 주웠어도 총을 쏠 수 없었을걸? 쇳덩이나 다름없는 걸 무겁게 왜 들고 있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지?”

조달영이 그에게 반문했다.

“쯧쯧쯧, 이래서 신병들은 안 된다니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팁 하나 줄까? 우리가 호구도 아니고, 설마 총에 아무 짓도 안 해놨겠냐?”

그의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공이를 빼놓은 건가?”

“맞아. 공이도 없는 총이 발사될 리가 없잖아?”

남자는 히죽 웃으며 주머니 속에서 공이 세 개를 꺼내 바닥으로 떨어뜨려다.

‘완벽하게 당했네.’

공이는 총 내부에 있는 아주 작은 부품이기에, 겉보기엔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멀쩡해 보였다.

그러니 우리가 총알을 가진 상태에서 적과 대치한 상황이더라도 낭패를 면치 못했으리라.

뭐, 지금도 충분히 낭패인 상황이지만.

그제야 나는 반항을 포기하며 총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내 정면에 서 있던 남자가 대검을 뽑아 들어 내게 다가왔다.

“그래, 쉽게쉽게 가자고. 우리는 총알 아껴서 좋고, 너희는 쓸데없는 고통을 안 느껴서 좋고. 아무리 고무탄이라지만, 이게 맞으면 제법 아프거든.”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한상혁이 킥킥 웃으며 바닥에 내려둔 총과 대검을 집어 들었다.

“큭큭큭.”

“뭐냐, 넌? 갑자기 실성이라도 한 거냐?”

“그냥 웃겨서 웃는 것도 모르는 거냐? 그렇게 자신 있으면 쏴보시든가.”

“뭐?”

나는 이 순간에 정말 한상혁이 미친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남자가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나도 얼른 총을 들어 차려 총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조달영도 대검을 집어 드는 건지,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야, 뭔 생각이야? 너 미쳤어?”

나는 눈앞에 보이는 남자에게 대검을 겨눈 채 한상혁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한상혁이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미치긴 누가 미쳐? 너도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봐. 아까 너도 분명히 들었잖아. 상자 안에 총알이 세 발 들어 있었다고.”

“그게 뭐?”

“멍청한 놈, 아까 정상에서 총소리가 몇 번 들렸는지 생각해 봐.”

“두 번이잖아.”

“그래. 기초 보급품으로 지급되는 총알은 한 사람당 한 발뿐이야. 즉, 저들도 처음에 총알은 한 발씩 얻었다는 뜻이지. 그리고 이미 썼거나, 어쩌면 우리처럼 누군가에게 뺏겼을 수도 있지.”

“흠, 어렵게 얻은 총알을 우리에게 낭비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인 모양이군.”

한상혁의 설명에 조달영이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하, 헛소리! 우리가 못 쏠 거라고? 지금 당장이라도 네놈 주둥이에 총알을 박아 넣을 수 있어!”

조달영의 앞에 선 남자가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한상혁은 기가 차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쏠 테면 쏴봐. 어차피 우리는 손해 볼 게 없어. 어차피 탈락할 거라면, 3일 후에 다시 만날지도 모를 너희의 총알을 한 발이라도 줄이고 탈락하는 게 이득이지.”

껄렁대던 남자는 정곡을 찔린 모양인지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는 노출된 장소야. 이렇게 시간을 끌면 너희처럼 총알을 노리는 놈들이 더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지. 어쩌면 이미 근처에 숨어서 이 상황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을지 어떻게 알아? 그렇지 않더라도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