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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내가 한창 한상혁을 골탕 먹이고 있을 때, 조수석에서 굵고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신병.”
“이병 최대길!”
“이동 시에 잡소리 내지 않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쯧, 대답은 짧고 간결하게 합니다.”
“네!”
“목소리 크게 내지 않아도 됩니다. 서로 의사가 전달 가능한 수준으로 말하는 습관을 들입니다.”
“…네.”
“마지막으로, 대답할 때는 관등성명도 생략합니다.”
“네.”
처음 차에 탔을 땐 경황이 없어서 조수석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한 게 오히려 놀라울 정도였다.
이후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은 상태에서 차량은 하염없이 달리기만 했다.
그러자 슬슬 졸음이 쏟아졌다.
다들 마찬가지인지, 조달영은 이미 고개까지 흔들며 졸고 있었다.
나는 힐끔 조수석을 살핀 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고 나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차량이 크게 덜컹이는 바람에 우리 넷은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몽롱한 정신으로 주변을 살피는데, 산길에 접어든 듯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주행 중이었다.
훈련소가 깊은 산속에 위치한 건 아닌지 걱정하며 살짝 속이 거북해질 찰나, 차량이 속도를 줄이며 정지했다.
얼른 창밖을 살폈으나, 컴컴한 산중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라이트에 비친 커다란 철문과 아치 형태의 구조물이 전부였다.
철문의 좌측 기둥 앞에는 커다란 바위가 놓여 있는데,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것 같은 한자가 붉게 새겨져 있었다.
그때, 검은 군복을 입은 보초병이 나타나 지시를 내렸다.
“선탑자 하차.”
조수석에 앉은 남자가 귀찮다는 듯 내리자 보초는 즉시 다시 확인 절차에 들어갔다.
“태풍.”
“양말.”
“누구냐?”
“413부대 박은우 중위다.”
“충성, 근무 중 이상 무.”
“충성.”
“용무를 밝혀주십시오.”
“신병 수송이다.”
박은우 중위의 말에 초병이 다가와 문을 열고는 랜턴을 비췄다.
우리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초병의 눈초리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순간 뭔가 이상한 게 눈이 띄었다.
‘응? 이름표가 없네?’
아니, 그뿐만 아니라 따로 부대 마크도 없었다.
“확인 완료, 경계 해제.”
초병이 인이어로 정보를 전파하자, 어둠과 동화돼 있던 검은 그림자들이 사방에서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도대체 몇 명이나 숨어 있는 거야?’
놀란 나와 달리, 박은우 중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차량에 올랐다.
“통과!”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자, 우리를 태운 차량은 안쪽으로 더 들어간 후 어느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전원 하차.”
“네!”
박은우 중위의 명령에 우리 넷은 짧게 대답한 뒤, 승합차에서 신속하게 내렸다.
그러자 박은우 중위가 옆으로 보이는 건물을 가리켰다.
“들어가.”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건물 내부는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이 아닌, 마치 방치된 창고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의 온기는 일절 없이 한쪽 벽에 수십 개의 더플 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입구에서 본 듯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아래 적힌 한글 풀이는 내가 아는 것과 전혀 달랐다.
살고 싶으면 죽여라. 그래야 살 수 있다.
그때, 박은우 중위가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모를 상자를 내려놓았다.
상자 속엔 검은색 전투복과 시계가 들어 있었다.
“훈련용 슈트와 앞으로 너희가 입고 생활하게 될 복장이다. 슈트 위에 전투복을 입으면 된다. 시계도 착용할 수 있도록.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더플 백에 넣어서 보관한다.”
“네.”
“나는 잠시 보고하고 올 테니, 조용히 대기하고 있도록.”
“네.”
박은우 중위가 건물을 나서자, 우리는 서둘러 환복을 시작했다.
훈련용 슈트는 언뜻 내의처럼 보이는데, 몸에 딱 달라붙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답답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넷 중 체구가 가장 큰 조달영은 어떤가 살폈는데, 그 역시 몸에 딱 맞는다는 듯 전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체 사이즈를 미리 확인해서 제작한 듯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딱 맞을 리가 없었다.
나는 신기한 마음에 몸을 크게 움직여 봤는데, 거치적거리지 않을 정도로 신축성이 좋았다.
거기에 센서처럼 보이는 수많은 점과 목 부분에는 기다란 선이 튀어나와 있는데, 무언가와 연결할 수 있게끔 접속 단자가 보였다.
“이건 뭐지? 센서 같은 게 달려 있는데?”
“같은 게 아니라, 센서가 맞을 거다.”
“그런가? 아, 그러고 보니 인사가 늦었네. 최대길이야.”
나는 방긋 웃으며 조달영에게 인사를 건넸다.
“조달영이다. 차지혁과 넌 구면이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인사를 나눈 조달영이 고개를 돌려 한상혁을 바라봤다.
하지만 녀석은 멘탈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지은 채 멀거니 서 있을 뿐이었다.
“저쪽은?”
조달영이 묻자 차지혁이 대신 소개했다.
“한상혁.”
“아, 그렇군. 잘 부탁한다, 한상혁.”
조달영이 다가가 손을 내밀었지만, 녀석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낯을 가리는 친구인가?”
“아니. 그건 아닌데… 혹시 어디 아픈 건가?”
나는 한상혁의 앞으로 다가가 눈앞에 손을 흔들며 반응을 살폈다.
그런데 그때, 한상혁이 실성한 사람처럼 혼잣말을 내뱉었다.
“내 계획이… 완전 미친 짓이네, 시발.”
날 형님이라고 부르는 게 이렇게까지 힘들어할 일인가 싶지만, 자존심 강한 그에게는 아닌 모양이었다.
“어이, 한상혁. 어서 환복해야지.”
그때, 박은우 중위가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잡담은 그만하고, 빨리 환복을 마치도록.”
“네.”
그제야 한상혁도 정신을 차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내가 환복을 마치고 시계를 살펴보니, ‘168:00:00’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이게 뭘 뜻하는지 고민하는 사이, 박은우 중위가 우리 앞에 다른 상자를 꺼내놨다.
뭔가 둥그스름한 물체가 들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검은색으로 코팅된 헬멧이었다.
그런데 사람 수에 비해 숫자가 적었다.
“환복은 완료했나?”
“네.”
“그럼 차지혁을 제외한 인원은 헬멧을 착용한 뒤, 슈트와 커넥터를 서로 결합시키도록.”
“네.”
일단은 지시에 따라 헬멧을 집어 들었지만, 차지혁을 제외한 이유가 궁금했다.
헬멧은 얼굴을 전부 감싸는 디자인에 전면부에는 투명한 아이 실드가 부착돼 있었다.
예전 선배의 오토바이를 탔을 때 써본 오토바이 헬멧에 비하면 크기도 작고, 무게도 훨씬 가벼웠다.
오히려 훈련소에서 쓰던 방탄모가 훨씬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서둘러 커넥터를 연결한 뒤, 조달영과 한상혁을 살펴봤다.
외견만 봤을 땐, 어엿한 특수부대의 대원처럼 보였다.
세 사람이 헬멧 착용까지 마치자, 박은우 중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식으로 소개하지. 나는 앞으로 여러분의 후반기 교육을 담당하게 된 박은우 중위다.”
그는 인사나 신고 따위의 절차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설명을 이어 나갔다.
“지금부터 후반기 교육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질문은 이 시간 외에는 받지 않으니, 궁금한 건 지금 다 해결하도록. 우리 교육대의 훈련 내용은 간단하다. 앞으로 7일간 이곳에서 생존하면 된다.”
머리로는 박은우 중위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대충 던져 놓고 살아남으라니, 농담이 너무 지나쳤다.
“물론, 진짜 죽고 사는 게 아니니 너무 걱정 말도록. 여러분이 착용한 슈트와 헬멧에는 최신 나노 기술이 결합된 인공지능 센서와 위성 추적 장치가 부착돼 있다. 만약 너희가 피격당할 경우, 인공지능에 의해 대미지 판정을 받게 된다. 판정이 내려지면 슈트에 부착된 센서가 여러분의 신체에 제약을 가한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망 판정을 받은 경우에는 탈락하게 된다.”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하자, 박은우 중위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뭐, 한 번 탈락한다고 바로 퇴출되는 건 아니니 걱정 말도록. 탈락자는 구조대에 의해 교육대로 후송될 것이며, 그곳에서 3일간 생존을 위한 정신 무장을 받게 된다.”
“······!”
박은우 중위는 훈련이란 단어 대신 정신 무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나는 그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이미 강기오 중사를 통해 뼈저리게 배웠다.
“통과 기준은 7일간의 생존이다. 그 후, 여러분은 즉시 합격자로 분류돼 자대로 배치된다. 훈련 기간은 총 10주, 그 안에 합격하지 못하면 불합격 판정을 받는다. 최종 불합격 인원은 CHT가 아닌 다른 부대로 전출 가게 된다. 참고로 한 가지 더. 가능성은 낮지만 합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
박은우 중위는 우리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본 뒤 말을 이었다.
“경쟁자 일곱 명을 탈락시키면 된다. 주의해야 할 점은 경쟁자 여섯 명을 탈락시킨 경우라도 본인이 탈락하면 카운트는 초기화된다는 점이다. 또한 생존 훈련장과 전술훈련을 제외한 장소에서의 전투 행위는 불허한다. 만약 적발 시엔 그 즉시 탈락 대상으로 분류된다.”
합격 직전에 탈락하면 굉장히 억울하리라.
그때, 여태껏 잠자코 듣고 있던 한상혁이 입을 열었다.
“일곱 명만 죽이면 무조건 합격입니까?”
“죽이는 게 아니라, 탈락시키는 것이다.”
“일곱 명을 탈락시킨 직후, 본인이 탈락하는 경우에도 말입니까?”
“그렇다. 그리고 생존 훈련 도중에 교관들은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혼자서 생존할 수도 있고, 누군가와 협력을 모색할 수도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나는 세 사람을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궁금해졌다.
“하나 더 도움이 될 말을 해주자면… 살고 싶다면 죽기 전에 먼저 죽여라.”
박은우 중위는 벽면에 쓰인 글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CHT 부대의 분위기가 어떤지 새삼 알 수 있었다.
“훈련은 지정된 장소로 이동한 이후부터 바로 시작된다. 여러분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의 시간이 다 줄어들 때까지 살아남기를 바란다. 아니면 그전에 경쟁자 일곱 명을 탈락시키든지. 그리고 차지혁 이등병.”
“이병 차지혁!”
“관등성명은 대지 않는다.”
“네.”
“너는 이곳에서 대기하고, 나머지 셋만 나를 따라 이동한다.”
제 할 말만 마치고 등을 돌리는 박은우 중위의 행동에 차지혁이 다급하게 그를 불러 세웠다.
“중위님, 저는 왜 이곳에서 대기합니까?”
“면접 때 설명을 듣지 못했나? 차지혁 이병은 B급 능력자로 분류돼 후반기 훈련 면제 대상이다. 대신 10주간 교육대에서 의무병으로 생활한다. 그러니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의무대 쪽에서 데려갈 거다.”
나는 차지혁이 치유 능력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등급이 B급이라는 건 처음 알게 되었다.
‘어쩐지 체력 회복은 물론이고, 근육통까지 사라지더라…….’
나와 달리 차지혁의 능력을 처음 알게 된 조달영과 한상혁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쩍 벌렸다.
두 사람이 놀라는 가운데, 박은우 중위가 차지혁에게 물었다.
“이해했나?”
“…네.”
그러자 조달영이 슬쩍 손을 들고 질문을 꺼냈다.
“중위님, 생존 훈련 때 능력을 사용해도 됩니까?”
“교육생은 D급 가속 능력자였나?”
“네.”
“상대에게 훈련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해를 입히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박은우 중위는 질문이 더 있느냐는 듯 우리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자,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차지혁 이병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바로 이동한다. 나를 따라오도록.”
“네.”
박은우 중위의 뒤를 쫓는 우릴 향해 차지혁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엄지를 세워 보여줬다.
“형님, 나중에 봐요.”
나는 그런 차지혁에게 인사를 건넨 뒤, 건물 밖에서 대기하던 승합차에 다시 올랐다.
차는 한참 더 산 위로 올라갔다.
한 번의 검문을 거친 후, 차량이 멈춰 섰다.
“전원 하차.”
차에서 내린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없어.’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무성하게 얽혀 있는 풀과 높이 자란 나무뿐이었다.
내 뒤로 한상혁과 조달영이 내리자, 박은우 중위는 창문만 내린 채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훈련은 지금 이 시간부터 시작이다. 가까운 곳에 거점이 있으니, 그곳에 기초 보급품을 챙기도록. 그 외에도 추가적인 보급품이 훈련장 각지에 마련된 거점에서 무작위로 보급될 거다. 경쟁자를 탈락시키면 상대의 보급품을 빼앗을 수 있으니, 그쪽을 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박은우 중위의 설명에 우리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서둘러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했다.
이대로 있다가 바로 탈락하는 건 아닌가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박은우 중위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부족한 설명을 보충했다.
“말하는 걸 깜빡했는데, 훈련 투입 후 최초 10분 동안은 타격을 받든 공격을 가하든 무효 판정으로 처리된다. 그러니 그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장비를 찾아낼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네.”
일단 대답은 했지만,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야심한 시각에 사람을 산속에 던지는 건 물론이고, 갑자기 생존 훈련이라니.
승합차 안에서 잠깐 졸기는 했지만, 피로를 풀 정도로 쉰 건 아니었다.
나는 손을 들고 질문을 던지려 했다.
“더 이상 질문은 받지 않는다. 이미 훈련은 시작됐으니, 현 시각부로 교관은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출발해.”
박은우 중위는 창밖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며 이내 사라져 버렸다.
나는 혀끝을 차며 주변을 살피기 위해 주변을 돌아봤는데, 조달영은 이미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167:55:03
어느새 시간은 5분이나 지나 있었다.
내가 한창 한상혁을 골탕 먹이고 있을 때, 조수석에서 굵고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신병.”
“이병 최대길!”
“이동 시에 잡소리 내지 않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쯧, 대답은 짧고 간결하게 합니다.”
“네!”
“목소리 크게 내지 않아도 됩니다. 서로 의사가 전달 가능한 수준으로 말하는 습관을 들입니다.”
“…네.”
“마지막으로, 대답할 때는 관등성명도 생략합니다.”
“네.”
처음 차에 탔을 땐 경황이 없어서 조수석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한 게 오히려 놀라울 정도였다.
이후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은 상태에서 차량은 하염없이 달리기만 했다.
그러자 슬슬 졸음이 쏟아졌다.
다들 마찬가지인지, 조달영은 이미 고개까지 흔들며 졸고 있었다.
나는 힐끔 조수석을 살핀 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고 나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차량이 크게 덜컹이는 바람에 우리 넷은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몽롱한 정신으로 주변을 살피는데, 산길에 접어든 듯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주행 중이었다.
훈련소가 깊은 산속에 위치한 건 아닌지 걱정하며 살짝 속이 거북해질 찰나, 차량이 속도를 줄이며 정지했다.
얼른 창밖을 살폈으나, 컴컴한 산중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라이트에 비친 커다란 철문과 아치 형태의 구조물이 전부였다.
철문의 좌측 기둥 앞에는 커다란 바위가 놓여 있는데,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것 같은 한자가 붉게 새겨져 있었다.
그때, 검은 군복을 입은 보초병이 나타나 지시를 내렸다.
“선탑자 하차.”
조수석에 앉은 남자가 귀찮다는 듯 내리자 보초는 즉시 다시 확인 절차에 들어갔다.
“태풍.”
“양말.”
“누구냐?”
“413부대 박은우 중위다.”
“충성, 근무 중 이상 무.”
“충성.”
“용무를 밝혀주십시오.”
“신병 수송이다.”
박은우 중위의 말에 초병이 다가와 문을 열고는 랜턴을 비췄다.
우리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초병의 눈초리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순간 뭔가 이상한 게 눈이 띄었다.
‘응? 이름표가 없네?’
아니, 그뿐만 아니라 따로 부대 마크도 없었다.
“확인 완료, 경계 해제.”
초병이 인이어로 정보를 전파하자, 어둠과 동화돼 있던 검은 그림자들이 사방에서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도대체 몇 명이나 숨어 있는 거야?’
놀란 나와 달리, 박은우 중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차량에 올랐다.
“통과!”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자, 우리를 태운 차량은 안쪽으로 더 들어간 후 어느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전원 하차.”
“네!”
박은우 중위의 명령에 우리 넷은 짧게 대답한 뒤, 승합차에서 신속하게 내렸다.
그러자 박은우 중위가 옆으로 보이는 건물을 가리켰다.
“들어가.”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건물 내부는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이 아닌, 마치 방치된 창고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의 온기는 일절 없이 한쪽 벽에 수십 개의 더플 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입구에서 본 듯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아래 적힌 한글 풀이는 내가 아는 것과 전혀 달랐다.
살고 싶으면 죽여라. 그래야 살 수 있다.
그때, 박은우 중위가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모를 상자를 내려놓았다.
상자 속엔 검은색 전투복과 시계가 들어 있었다.
“훈련용 슈트와 앞으로 너희가 입고 생활하게 될 복장이다. 슈트 위에 전투복을 입으면 된다. 시계도 착용할 수 있도록.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더플 백에 넣어서 보관한다.”
“네.”
“나는 잠시 보고하고 올 테니, 조용히 대기하고 있도록.”
“네.”
박은우 중위가 건물을 나서자, 우리는 서둘러 환복을 시작했다.
훈련용 슈트는 언뜻 내의처럼 보이는데, 몸에 딱 달라붙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답답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넷 중 체구가 가장 큰 조달영은 어떤가 살폈는데, 그 역시 몸에 딱 맞는다는 듯 전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체 사이즈를 미리 확인해서 제작한 듯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딱 맞을 리가 없었다.
나는 신기한 마음에 몸을 크게 움직여 봤는데, 거치적거리지 않을 정도로 신축성이 좋았다.
거기에 센서처럼 보이는 수많은 점과 목 부분에는 기다란 선이 튀어나와 있는데, 무언가와 연결할 수 있게끔 접속 단자가 보였다.
“이건 뭐지? 센서 같은 게 달려 있는데?”
“같은 게 아니라, 센서가 맞을 거다.”
“그런가? 아, 그러고 보니 인사가 늦었네. 최대길이야.”
나는 방긋 웃으며 조달영에게 인사를 건넸다.
“조달영이다. 차지혁과 넌 구면이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인사를 나눈 조달영이 고개를 돌려 한상혁을 바라봤다.
하지만 녀석은 멘탈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지은 채 멀거니 서 있을 뿐이었다.
“저쪽은?”
조달영이 묻자 차지혁이 대신 소개했다.
“한상혁.”
“아, 그렇군. 잘 부탁한다, 한상혁.”
조달영이 다가가 손을 내밀었지만, 녀석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낯을 가리는 친구인가?”
“아니. 그건 아닌데… 혹시 어디 아픈 건가?”
나는 한상혁의 앞으로 다가가 눈앞에 손을 흔들며 반응을 살폈다.
그런데 그때, 한상혁이 실성한 사람처럼 혼잣말을 내뱉었다.
“내 계획이… 완전 미친 짓이네, 시발.”
날 형님이라고 부르는 게 이렇게까지 힘들어할 일인가 싶지만, 자존심 강한 그에게는 아닌 모양이었다.
“어이, 한상혁. 어서 환복해야지.”
그때, 박은우 중위가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잡담은 그만하고, 빨리 환복을 마치도록.”
“네.”
그제야 한상혁도 정신을 차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내가 환복을 마치고 시계를 살펴보니, ‘168:00:00’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이게 뭘 뜻하는지 고민하는 사이, 박은우 중위가 우리 앞에 다른 상자를 꺼내놨다.
뭔가 둥그스름한 물체가 들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검은색으로 코팅된 헬멧이었다.
그런데 사람 수에 비해 숫자가 적었다.
“환복은 완료했나?”
“네.”
“그럼 차지혁을 제외한 인원은 헬멧을 착용한 뒤, 슈트와 커넥터를 서로 결합시키도록.”
“네.”
일단은 지시에 따라 헬멧을 집어 들었지만, 차지혁을 제외한 이유가 궁금했다.
헬멧은 얼굴을 전부 감싸는 디자인에 전면부에는 투명한 아이 실드가 부착돼 있었다.
예전 선배의 오토바이를 탔을 때 써본 오토바이 헬멧에 비하면 크기도 작고, 무게도 훨씬 가벼웠다.
오히려 훈련소에서 쓰던 방탄모가 훨씬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서둘러 커넥터를 연결한 뒤, 조달영과 한상혁을 살펴봤다.
외견만 봤을 땐, 어엿한 특수부대의 대원처럼 보였다.
세 사람이 헬멧 착용까지 마치자, 박은우 중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식으로 소개하지. 나는 앞으로 여러분의 후반기 교육을 담당하게 된 박은우 중위다.”
그는 인사나 신고 따위의 절차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설명을 이어 나갔다.
“지금부터 후반기 교육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질문은 이 시간 외에는 받지 않으니, 궁금한 건 지금 다 해결하도록. 우리 교육대의 훈련 내용은 간단하다. 앞으로 7일간 이곳에서 생존하면 된다.”
머리로는 박은우 중위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대충 던져 놓고 살아남으라니, 농담이 너무 지나쳤다.
“물론, 진짜 죽고 사는 게 아니니 너무 걱정 말도록. 여러분이 착용한 슈트와 헬멧에는 최신 나노 기술이 결합된 인공지능 센서와 위성 추적 장치가 부착돼 있다. 만약 너희가 피격당할 경우, 인공지능에 의해 대미지 판정을 받게 된다. 판정이 내려지면 슈트에 부착된 센서가 여러분의 신체에 제약을 가한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망 판정을 받은 경우에는 탈락하게 된다.”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하자, 박은우 중위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뭐, 한 번 탈락한다고 바로 퇴출되는 건 아니니 걱정 말도록. 탈락자는 구조대에 의해 교육대로 후송될 것이며, 그곳에서 3일간 생존을 위한 정신 무장을 받게 된다.”
“······!”
박은우 중위는 훈련이란 단어 대신 정신 무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나는 그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이미 강기오 중사를 통해 뼈저리게 배웠다.
“통과 기준은 7일간의 생존이다. 그 후, 여러분은 즉시 합격자로 분류돼 자대로 배치된다. 훈련 기간은 총 10주, 그 안에 합격하지 못하면 불합격 판정을 받는다. 최종 불합격 인원은 CHT가 아닌 다른 부대로 전출 가게 된다. 참고로 한 가지 더. 가능성은 낮지만 합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
박은우 중위는 우리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본 뒤 말을 이었다.
“경쟁자 일곱 명을 탈락시키면 된다. 주의해야 할 점은 경쟁자 여섯 명을 탈락시킨 경우라도 본인이 탈락하면 카운트는 초기화된다는 점이다. 또한 생존 훈련장과 전술훈련을 제외한 장소에서의 전투 행위는 불허한다. 만약 적발 시엔 그 즉시 탈락 대상으로 분류된다.”
합격 직전에 탈락하면 굉장히 억울하리라.
그때, 여태껏 잠자코 듣고 있던 한상혁이 입을 열었다.
“일곱 명만 죽이면 무조건 합격입니까?”
“죽이는 게 아니라, 탈락시키는 것이다.”
“일곱 명을 탈락시킨 직후, 본인이 탈락하는 경우에도 말입니까?”
“그렇다. 그리고 생존 훈련 도중에 교관들은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혼자서 생존할 수도 있고, 누군가와 협력을 모색할 수도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나는 세 사람을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궁금해졌다.
“하나 더 도움이 될 말을 해주자면… 살고 싶다면 죽기 전에 먼저 죽여라.”
박은우 중위는 벽면에 쓰인 글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CHT 부대의 분위기가 어떤지 새삼 알 수 있었다.
“훈련은 지정된 장소로 이동한 이후부터 바로 시작된다. 여러분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의 시간이 다 줄어들 때까지 살아남기를 바란다. 아니면 그전에 경쟁자 일곱 명을 탈락시키든지. 그리고 차지혁 이등병.”
“이병 차지혁!”
“관등성명은 대지 않는다.”
“네.”
“너는 이곳에서 대기하고, 나머지 셋만 나를 따라 이동한다.”
제 할 말만 마치고 등을 돌리는 박은우 중위의 행동에 차지혁이 다급하게 그를 불러 세웠다.
“중위님, 저는 왜 이곳에서 대기합니까?”
“면접 때 설명을 듣지 못했나? 차지혁 이병은 B급 능력자로 분류돼 후반기 훈련 면제 대상이다. 대신 10주간 교육대에서 의무병으로 생활한다. 그러니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의무대 쪽에서 데려갈 거다.”
나는 차지혁이 치유 능력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등급이 B급이라는 건 처음 알게 되었다.
‘어쩐지 체력 회복은 물론이고, 근육통까지 사라지더라…….’
나와 달리 차지혁의 능력을 처음 알게 된 조달영과 한상혁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쩍 벌렸다.
두 사람이 놀라는 가운데, 박은우 중위가 차지혁에게 물었다.
“이해했나?”
“…네.”
그러자 조달영이 슬쩍 손을 들고 질문을 꺼냈다.
“중위님, 생존 훈련 때 능력을 사용해도 됩니까?”
“교육생은 D급 가속 능력자였나?”
“네.”
“상대에게 훈련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해를 입히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박은우 중위는 질문이 더 있느냐는 듯 우리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자,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차지혁 이병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바로 이동한다. 나를 따라오도록.”
“네.”
박은우 중위의 뒤를 쫓는 우릴 향해 차지혁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엄지를 세워 보여줬다.
“형님, 나중에 봐요.”
나는 그런 차지혁에게 인사를 건넨 뒤, 건물 밖에서 대기하던 승합차에 다시 올랐다.
차는 한참 더 산 위로 올라갔다.
한 번의 검문을 거친 후, 차량이 멈춰 섰다.
“전원 하차.”
차에서 내린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없어.’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무성하게 얽혀 있는 풀과 높이 자란 나무뿐이었다.
내 뒤로 한상혁과 조달영이 내리자, 박은우 중위는 창문만 내린 채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훈련은 지금 이 시간부터 시작이다. 가까운 곳에 거점이 있으니, 그곳에 기초 보급품을 챙기도록. 그 외에도 추가적인 보급품이 훈련장 각지에 마련된 거점에서 무작위로 보급될 거다. 경쟁자를 탈락시키면 상대의 보급품을 빼앗을 수 있으니, 그쪽을 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박은우 중위의 설명에 우리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서둘러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했다.
이대로 있다가 바로 탈락하는 건 아닌가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박은우 중위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부족한 설명을 보충했다.
“말하는 걸 깜빡했는데, 훈련 투입 후 최초 10분 동안은 타격을 받든 공격을 가하든 무효 판정으로 처리된다. 그러니 그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장비를 찾아낼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네.”
일단 대답은 했지만,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야심한 시각에 사람을 산속에 던지는 건 물론이고, 갑자기 생존 훈련이라니.
승합차 안에서 잠깐 졸기는 했지만, 피로를 풀 정도로 쉰 건 아니었다.
나는 손을 들고 질문을 던지려 했다.
“더 이상 질문은 받지 않는다. 이미 훈련은 시작됐으니, 현 시각부로 교관은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출발해.”
박은우 중위는 창밖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며 이내 사라져 버렸다.
나는 혀끝을 차며 주변을 살피기 위해 주변을 돌아봤는데, 조달영은 이미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167:55:03
어느새 시간은 5분이나 지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