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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수료식 날, 아침 일찍부터 나는 쉴 새 없이 총검술 동작을 반복 연습했다.
어제 절망인지 희망인지 모를 충고를 전한 강기오 중사는 내 동작을 꼼꼼히 살펴줬다.
“훌륭하다. CHT 전출만 아니라면 조교로 쓰고 싶을 정도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제 그만하고 가서 수료식을 준비해라.”
내가 선배라고 부르자, 강기오 중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어서 가보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후다닥 생활관으로 들어간 난 소대 동기들과 함께 행사장으로 향했다.
수료식 행사는 입소식 때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수많은 군 관계자 및 훈련병의 지인들이 참석하기 때문이리라.
강기오 중사에게 구르느라 연락 한 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지만, 어머니께도 초대장은 보내졌을 터다.
슬쩍 곁눈질로 확인하며 익숙한 얼굴을 찾아보았지만, 많은 인파 속에서 어머니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빠서 못 오셨을 수도 있으니까.’
[지금부터 수료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수료식에 참석하신 귀빈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수료식 시간이 다가오자 사회자가 장내를 정리했다.
그러고 나서 곧장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 그리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이어졌다.
[이어서 연대장님 훈시가 있겠습니다.]
군악대의 경쾌하고 우렁찬 음악을 배경으로 한 남자가 위풍당당하게 단상 위로 향했다.
그러자 입소식 때와 마찬가지로 훈련병 대표로 신고하게 된 차지혁이 대열의 앞에서 크게 소리쳤다.
“부대∼ 차렷! 연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600여 명의 목소리가 하나 되어 실내를 가득 메웠다.
그러자 다시 한 번 군악대의 연주가 울려 퍼졌다.
빠라바라밤, 빠라바라밤!
연대장이 가볍게 경례를 받자, 차지혁이 뒤로 돌아 수료 예정자들을 바라봤다.
“바로!”
차지혁의 구령과 동시에 모든 인원이 차려 자세를 취했다.
중구난방이던 입소식 때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연대장은 마이크를 손으로 톡톡 건드려 보더니,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수료식을 맞아 저희 훈련소를 찾아주신 내빈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 5주 동안 615명의 인원 중 한 명의 낙오자나 부상자 없이 무사히 훈련을 마친 것은 내빈 여러분께서 사랑하는 마음과 믿음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군 생활 동안 수십 번을 반복했을 인사말을 단숨에 뱉어낸 연대장은 지루한 훈시를 한참 동안이나 이어 나갔다.
그것만은 입소식 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앞으로 국가를 수호하는 정예 육군이 되길 바랍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진 연대장의 인사말이 드디어 끝났다.
[이상으로 연대장님 훈시를 마치겠습니다. 부대 차렷.]
사회자의 말에 차지혁이 다시 한 번 이등병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부대 차렷! 연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충성.”
연대장이 경례를 받자, 사회자는 곧장 다음 순서를 안내했다.
[지금부터 우수한 성적으로 교육을 수료한 병사들에 대한 표창장 수여가 있겠습니다. 호명하는 인원은 단상 앞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합니다. 3중대 3소대, 차지혁.]
“이병 차지혁!”
순위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마 순서대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일 터였다.
왜냐하면 매 훈련마다 실수하는 법 없이 최선을 다한 차지혁의 이름이 가장 먼저 불렸기 때문이다.
그는 사격에서 스무 발 중 네 발을 맞춰 낙제점을 받았지만, 그 외의 훈련에선 항상 최고의 성적을 받으며 교관과 조교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차지혁이 단상 위로 향하자, 사회자는 계속해서 이름을 불렀다.
2위는 총검술 대련에서 나를 이긴 2중대 1소대의 조달영이었다.
3위와 4위는 처음 듣는 이름이고, 웬일인지 다섯 번째로 내 이름이 호명됐다.
“이병 최대길!”
내가 앞서 불린 병사들의 뒤를 이어 단상에 오르자, 사회자의 호명이 멈췄다.
아마 1위부터 5위까지만 표창장을 전달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내가 단상 위에 서자, 저 멀리서 목 놓아 내 이름을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대길아!”
그 순간, 나는 인파 속에서 머리 위로 팔을 들어 힘차게 흔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은 신장 때문인지 어머니는 인의 장막 너머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왈칵 눈물이 터져 나올 듯 감정이 북받쳤다.
훈련을 마친 뒤, 힘들고 지친 몸을 누일 때면 가장 먼저 눈앞에 떠오르던 그 얼굴은…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보다 조금 더 지쳐 보였다.
‘어머니…….’
훈련소에 입소하고 3주 차 훈련을 받을 때, 어머니의 편지를 받을 수 있었다.
첫 줄에 ‘사랑하는 아들’로 시작하는 여섯 글자만 읽어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편지를 다 읽는 데 3일이나 걸렸다.
마음 같아선 당장 손이라도 흔들어주고 싶지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돌발 행동을 보일 수는 없었다.
[훈련 성적 종합 1위, 3중대 3소대 차지혁. 위 병사는 우수한 성적으로 교육 훈련을 이수했기에 표창과 함께 포상으로 6박 7일 휴가증을 수여함.]
사회자의 설명이 끝나자, 연대장이 표창장을 건네고 차지혁과 악수를 나눴다.
“이병 차지혁! 감사합니다!”
[종합 2위, 2중대 1소대 조달영. 내용은 위와 같습니다.]
“이병 조달영! 감사합니다!”
3위와 4위의 시상이 이어지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종합 5위, 3중대 3소대 최대길. 내용은 위와 같습니다.]
“이병 최대길! 감사합니다!”
시상이 모두 끝나자 다시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단상에서 내려오며 어머니가 잘 볼 수 있게 표창장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멀리서 지켜보던 어머니가 잘했다며 박수를 치다가 금방 벌게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는 게 눈에 들어왔다.
표창 수여식이 끝나자, 훈련병들은 연병장의 좌우로 갈라져 섰다.
그런 후, 교관들이 돌아다니며 시연을 맡은 훈련병들을 불러 모았다.
“제식 및 구급법, 총검술 시연을 맡은 병사들은 이쪽으로 모입니다!”
나를 비롯해 총검술 시연을 진행할 이들이 강기오 중사 앞으로 모이자, 그는 스무 개의 단독 군장을 병사들에게 나눠 줬다.
그러고 나서 삼각뿔 모양으로 서로 기대어 세워둔 총기를 가리켰다.
“각자 한 정씩 가져갑니다.”
그렇게 시연 준비를 갖추는 사이, 훈련 성적 종합 1위에 빛나는 차지혁이 소감문을 발표하고, 시연에 참석하지 않는 병사들이 호국 결의를 외쳤다.
[이어서 수료자 대표들이 나와 그간의 훈련 성과를 내빈 여러분께 보여 드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시연의 첫 순서는 군인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제식이었다.
과연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병사들답게 교관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나는 시연을 지켜보며 초조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총검술 시연은 가장 마지막 순서라, 마른침을 수도 없이 삼키며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과연 내가 실수 없이 시연할 수 있을까?’
이윽고 바로 앞 순서인 구급법 시연이 끝나자, 강기오 중사가 병사들을 독려했다.
“여러분은 다른 동기들보다 뛰어난 실력으로 선발된 인원입니다. 걱정하지 말고, 혹여 틀리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자신 있게 합니다.”
말을 마친 강기오 중사는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과연 그 의미가 시연을 망치지 말라는 건지, 3주 동안 지옥 훈련을 거친 성과를 보여주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긴장감을 떨쳐 내기 위해 목소리를 돋우며 크게 외쳤다.
곧 사회자의 안내 방송에 따라 나는 다른 이들과 함께 연병장 중앙으로 달려 나갔다.
[지금부터 마지막 순서인 총검술 시연이 있겠습니다, 대표자는 3중대 3소개 최대길 이병입니다. 뜨거운 박수와 함성으로 맞아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연병장 중앙에 자리하자, 내빈석에서 몇몇이 크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차지혁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아니네?”
“그러게. 훈련 성적 최우수자라더니, 시연엔 참석 안 하나 봐.”
“에이, 차지혁을 보고 싶었는데. 왜 차지혁이 안 나오는 거야?”
“조용히 해. 들릴라.”
‘네. 다 들립니다.’
나는 실망감을 드러내는 이들을 향해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곧바로 강기오 중사의 구령으로 시연이 시작되는 바람에 더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전방에 대하여 받들어 총!”
“충성!”
“바로.”
“차려 총!”
“차려 총!”
나는 강기오 중사의 구령에 맞춰 자세를 갖췄다.
평가 때와는 달리, 왼손으로 총신을 잡은, 교본에 충실한 자세였다.
지옥 훈련을 통해 양손을 번갈아가며 수천 번씩 동작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하지 않은 왼손으로도 총검술을 정확하게 펼치는 게 가능해졌다.
수천 개의 눈동자가 대열의 가장 앞에 선 내게 주목되자, 나는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총검술 37개 동작 실시.”
“실시!”
딱, 따닥, 따다닥.
개머리판이 팔을 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조용히 시연에 집중했다.
동작을 마무리하고 총을 거둬들이는 순간까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나는 되레 불안해졌다.
‘혹시 중간에 실수라도 한 건가?’
숨 막히는 고요함이 감도는 가운데, 강기오 중사가 다시 구령을 붙였다.
“전방에 대하여 받들어 총!”
“충성!”
내가 경례를 올리는 순간, 조용하던 내빈석에서 박수와 함께 우렁찬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와아!”
“잘한다!”
“멋지다!”
“훈련병 맞아? 내가 수료식엔 몇 번 와봤는데, 저렇게 잘하는 병사는 처음 봐.”
사회자는 시끄러운 소란 속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상으로 수료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이어 면회를 신청하신 가족 및 친지분께선 면회장에서 병사들을 만나실 수 있으며, 17시 30분까지 면회 시간을 준수해 병사들을 복귀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예전에는 수료식이 끝나고 가족과 함께 외출이 가능했지만, 몬스터 출현 이후엔 외출이 통제되었다.
훈련소 바깥의 공기는 물론이고, 흡연도 가능할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시연에서 사용한 단독 군장과 총을 반납한 뒤 면회장에 도착하자, 가족들과 해후의 기쁨을 누리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도 얼른 주변을 살피며 그리운 어머니의 모습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입구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어머니가 앉아 계시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충성!”
“…어서 와, 아들.”
나는 서둘러 달려가 어머니께 씩씩한 모습으로 경례했다.
어머니는 5주 만에 만나는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 순간,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포근함이 느껴졌다.
“얼굴이 많이 상했네. 걱정 많이 했는데… 이제는 얼굴도 시컴시컴한 게 어엿한 남자처럼 보여.”
“아닙니다, 어머니!”
“고생했다, 고생했어.”
내가 어머니와 감격적인 상봉을 마쳤을 때, 갑자기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어머니께서 꺼내 드신 핸드폰 화면에 발신자 이름이 언뜻 보였다.
‘건물주 김 사장?’
“아들, 잠시만.”
어머니는 당황하신 듯 잠시 뒤쪽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네? 2,000만 원이나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신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내 눈치를 살피셨다.
일부러 통화 내용을 엿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기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주변의 소란스런 분위기 속에서 귀를 기울여 어머니의 통화를 듣기 위해 노력했다.
“갑자기 세를 그렇게 올리시면 어떻게 해요?”
어머니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아무래도 건물주가 세를 올려 달라고 한 모양이었다.
“그냥 가게 빼라는 소리잖아요. 이것 봐요, 김 사장님. 김 사장님?”
어머니가 따지려 들자, 건물주라는 사람은 자기 할 말만 마치고 전화를 끊은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상대를 애타게 부르다가 이내 체념한 채 돌아섰다.
그러더니 아무 일 없다는 듯 애써 웃으시며 내게 다가왔다.
‘2,000만 원이라… 잘하면 이번 기회에 효도 한 번 할 수 있겠네.’
내게 후반기 교육을 반드시 통과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내가 막 어머니께 말을 꺼내려던 그때, 면회실 구석진 자리에서 누군가가 크게 소리치는 게 들렸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나는 그게 차지혁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려는데,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가 내 얼굴을 양손으로 어루만졌다.
“에구, 우리 아들이 군대 가더니 얼굴이 반쪽이 됐네, 반쪽이 됐어. 이제 몇 시간 후면 또 고생할 거라 생각하니, 엄마 마음이 아프네.”
어머니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자,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어머니는 금방 감정을 추스르셨는지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 곧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으시는 모양이었다.
나는 얼른 궁여지책을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차지혁을 어머니께 소개시켜 드리는 것인데, 유명 연예인을 보면 어머니도 좋아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머니, 제게 도움을 많이 주신 형님이 한 분 계시는데, 어머니께 소개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응? 친한 형님? 누구?”
“잠시만 기다리고 계십시오. 제가 형님께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그래, 그러렴.”
나는 방금 전 고성이 들려온 면회실 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작은 방이 있었는데, 커튼으로 창문이 가려져 내부가 보이진 않았다.
게다가 입구 양쪽에는 커다란 덩치의 양복 입은 남자 두 명이 단단히 지키고 서 있었다.
하지만 문틈 사이로 차지혁이 보였기에 나는 방으로 접근했다.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 두 남자가 몸으로 문 앞을 막으며 나를 저지했다.
“죄송합니다만, 안에서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물러서 주십시오.”
하지만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중년 남성은 뭔가 쩔쩔매는 듯했고, 차지혁은 매우 화난 듯 거친 말을 내뱉었다.
“차 배우, 진정 좀 하고 내 말을 들어봐.”
“대표님과 저, 벌써 몇 년입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사람 뒤통수를 칩니까?”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네. 자칫하면 회사가 망할 판이었어.”
“그래서 저를 팔아넘기신 겁니까?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부대에 사람을 보내는 게 살인이랑 뭐가 다릅니까!”
“어허, 큰일 날 소리! 내가 자넬 왜 죽게 만드나? 내가 그쪽 지휘관이랑 잘 얘기해서 자네는 작전에 투입되지 않는 지원병으로 배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네. 그냥 여느 부대로 갔어도 하게 될 얼굴마담 역할에 불과해. 그러니 딱 1년만 더 고생해 줘.”
“하, 매번 이런 식이었죠. 아무래도 대표님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모양입니다. 차후 저와의 계약 연장은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이봐, 차 배우, 차 배우!”
쾅!
차지혁은 화가 가라앉지 않은 듯 세차게 문을 닫아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대길아, 걱정돼서 와본 거야?”
문 앞을 지키던 남자들이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차지혁은 깔끔하게 무시한 채 나에게 다가왔다.
“네, 형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안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던데…….”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그건 그렇고, 어머니께서 오시지 않았어? 근데 여기 있어도 되는 거야? 아, 설마 벌써 가신 건 아닐 테고…….”
“아뇨. 그건 아닌데…….”
심각한 장면을 목격한 뒤라 나는 선뜻 차지혁에게 부탁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차지혁은 굳은 표정을 풀며 피식 웃어 보였다.
“뭔데? 편하게 말해봐. 어차피 CHT 부대에 가서도 함께 지낼 테니까, 웬만한 부탁은 들어줄 수 있어.”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데, 더 망설이는 것도 이상했다.
나는 차지혁에게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차지혁은 당장 내 팔을 잡아끌며 앞장섰다.
“이 녀석아, 그걸 이제야 얘기하면 어떻게 하냐? 혹시 오래 기다리신 거야? 어디 계셔? 빨리 가자.”
우리 어머니를 만난 차지혁은 연예인이 아니라, 마치 오랜 친구의 어머니를 대하는 것처럼 싹싹하게 굴었다.
입소식 때, 일본의 아주머니 팬들이 버스를 대절해 올 정도로 대단한 차지혁의 인기는 우리 어머니라고 예외는 아닌 모양이었다.
차지혁을 코앞에서 만난 어머니는 너무 놀라며 어쩔 줄을 몰라 하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고, 반가워라. 살다 보니 차지혁 배우를 실물로 보는 날도 있네. 진짜 잘생겼어.”
어머니는 차지혁과 셀카를 찍은 뒤, 사인을 받으며 밝게 웃었다.
그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모습이 부러운지, 면회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힐끗힐끗 곁눈질하곤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차지혁과의 수다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방금 전까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 차지혁은 어머니의 끝을 모르는 담화에도 싫은 기색 없이 맞춰주었다.
그렇게 짧은 면회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면회의 끝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어머니, 대길이는 무슨 일이 닥쳐도 잘 헤쳐 나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다음에 같이 휴가 나가면 찾아뵐게요. 그때 맛있는 거 많이 해주세요.”
“아유, 그럼. 우리 지혁이가 오면 내가 빚을 내서라도 한 상 크게 차려야지. 부담 갖지 말고 언제든지 놀러 와.”
어느새 친근하게 이름을 부를 정도로 어머니와 차지혁은 가까워진 듯했다.
아들과의 이별이 서운할 법도 한데, 어머니는 싱글벙글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크게 손을 흔들며 훈련소를 떠났다.
생활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차지혁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형님, 정말 고마워요.”
“고맙긴 뭘.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속 편히 웃고 떠들었어. 너희 어머니께서 낯을 가리는 분이 아니라서. 그런데… 어머니는 모르시는 눈치던데, 말씀 안 드렸어?”
“…네. 걱정하실 게 빤해서 그냥 숨겼어요. 기분 좋으신데 괜히 그런 말을 꺼내는 것도 아니다 싶었고요.”
“음, 당장은 몰라도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셨을 때, 더 크게 충격을 받으실지도 몰라.”
“그럴 수도 있지만, 벌써부터 걱정시켜 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내 대답에 차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힘내라는 듯 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날 저녁, 점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생활관 문이 열리더니, 강기오 중사가 들이닥쳤다.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해하는데, 그는 세 명의 이름을 호명했다.
“차지혁, 최대길, 한상혁.”
“이병 차지혁!”
“이병 최대길!”
“이병 한상혁!”
“후반기 교육 부대로 이동하는 건 원래 내일인데, 예정이 당겨진 모양이다. 지금 바로 짐을 싸서 곧바로 차량에 탑승할 수 있도록 합니다.”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개 자대 배치나 후반기 교육대로 이동하는 건 수료식 다음 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잠을 싸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병 최대길, 질문 있습니다!”
“뭡니까?”
“지금 당장 이동하는 겁니까?”
내 질문에 강기오 중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아주 당연하다는 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뭘 그리 놀랍니까? 이게 바로 CHT다.”
그거면 설명으론 충분했다.
“시간 없습니다. 준비 마치는 대로 생활관 밖으로 나옵니다.”
“알겠습니다!”
갑작스런 통보에 우리 셋은 놀랄 겨를도 없이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짐을 다 싼 우리는 동기들과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는 생활관 건물을 나섰다.
그러자 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는 짙게 선팅이 돼 있어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전면에 CHT라고 크게 새겨진 문구 덕분에 차량의 소속을 알 수 있었다.
“전원 탑승.”
“탑승!”
승합차에는 나와 총검술로 겨룬 조달영 이병이 이미 탑승해 있었다.
우리가 차에 몸을 싣자마자 차량은 바로 출발했다.
나는 급한 마음에 창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강기오 중사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충성!”
강기오 중사는 미소와 함께 천천히 오른쪽 눈썹 옆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나는 강기오 중사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를 바라봤다.
비록 첫날부터 악연으로 맺어진 인연이지만, 그 덕분에 포상까지 받았다고 생각하면 고마운 사람임에는 틀림없었다.
다시 고개를 집어넣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돼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건 바로 한상혁이었는데, 그는 맞은편에 앉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아, 내가 아직 말을 안 했구나?”
“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사실 CHT 부대 지원자야. 앞으로 잘 부탁한다, 동생아.”
빙그레 웃으며 오른손을 내밀었으나, 한상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를 쥐어뜯을 뿐이었다.
“시발…….”
수료식 날, 아침 일찍부터 나는 쉴 새 없이 총검술 동작을 반복 연습했다.
어제 절망인지 희망인지 모를 충고를 전한 강기오 중사는 내 동작을 꼼꼼히 살펴줬다.
“훌륭하다. CHT 전출만 아니라면 조교로 쓰고 싶을 정도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제 그만하고 가서 수료식을 준비해라.”
내가 선배라고 부르자, 강기오 중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어서 가보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후다닥 생활관으로 들어간 난 소대 동기들과 함께 행사장으로 향했다.
수료식 행사는 입소식 때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수많은 군 관계자 및 훈련병의 지인들이 참석하기 때문이리라.
강기오 중사에게 구르느라 연락 한 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지만, 어머니께도 초대장은 보내졌을 터다.
슬쩍 곁눈질로 확인하며 익숙한 얼굴을 찾아보았지만, 많은 인파 속에서 어머니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빠서 못 오셨을 수도 있으니까.’
[지금부터 수료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수료식에 참석하신 귀빈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수료식 시간이 다가오자 사회자가 장내를 정리했다.
그러고 나서 곧장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 그리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이어졌다.
[이어서 연대장님 훈시가 있겠습니다.]
군악대의 경쾌하고 우렁찬 음악을 배경으로 한 남자가 위풍당당하게 단상 위로 향했다.
그러자 입소식 때와 마찬가지로 훈련병 대표로 신고하게 된 차지혁이 대열의 앞에서 크게 소리쳤다.
“부대∼ 차렷! 연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600여 명의 목소리가 하나 되어 실내를 가득 메웠다.
그러자 다시 한 번 군악대의 연주가 울려 퍼졌다.
빠라바라밤, 빠라바라밤!
연대장이 가볍게 경례를 받자, 차지혁이 뒤로 돌아 수료 예정자들을 바라봤다.
“바로!”
차지혁의 구령과 동시에 모든 인원이 차려 자세를 취했다.
중구난방이던 입소식 때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연대장은 마이크를 손으로 톡톡 건드려 보더니,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수료식을 맞아 저희 훈련소를 찾아주신 내빈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 5주 동안 615명의 인원 중 한 명의 낙오자나 부상자 없이 무사히 훈련을 마친 것은 내빈 여러분께서 사랑하는 마음과 믿음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군 생활 동안 수십 번을 반복했을 인사말을 단숨에 뱉어낸 연대장은 지루한 훈시를 한참 동안이나 이어 나갔다.
그것만은 입소식 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앞으로 국가를 수호하는 정예 육군이 되길 바랍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진 연대장의 인사말이 드디어 끝났다.
[이상으로 연대장님 훈시를 마치겠습니다. 부대 차렷.]
사회자의 말에 차지혁이 다시 한 번 이등병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부대 차렷! 연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충성.”
연대장이 경례를 받자, 사회자는 곧장 다음 순서를 안내했다.
[지금부터 우수한 성적으로 교육을 수료한 병사들에 대한 표창장 수여가 있겠습니다. 호명하는 인원은 단상 앞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합니다. 3중대 3소대, 차지혁.]
“이병 차지혁!”
순위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마 순서대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일 터였다.
왜냐하면 매 훈련마다 실수하는 법 없이 최선을 다한 차지혁의 이름이 가장 먼저 불렸기 때문이다.
그는 사격에서 스무 발 중 네 발을 맞춰 낙제점을 받았지만, 그 외의 훈련에선 항상 최고의 성적을 받으며 교관과 조교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차지혁이 단상 위로 향하자, 사회자는 계속해서 이름을 불렀다.
2위는 총검술 대련에서 나를 이긴 2중대 1소대의 조달영이었다.
3위와 4위는 처음 듣는 이름이고, 웬일인지 다섯 번째로 내 이름이 호명됐다.
“이병 최대길!”
내가 앞서 불린 병사들의 뒤를 이어 단상에 오르자, 사회자의 호명이 멈췄다.
아마 1위부터 5위까지만 표창장을 전달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내가 단상 위에 서자, 저 멀리서 목 놓아 내 이름을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대길아!”
그 순간, 나는 인파 속에서 머리 위로 팔을 들어 힘차게 흔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은 신장 때문인지 어머니는 인의 장막 너머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왈칵 눈물이 터져 나올 듯 감정이 북받쳤다.
훈련을 마친 뒤, 힘들고 지친 몸을 누일 때면 가장 먼저 눈앞에 떠오르던 그 얼굴은…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보다 조금 더 지쳐 보였다.
‘어머니…….’
훈련소에 입소하고 3주 차 훈련을 받을 때, 어머니의 편지를 받을 수 있었다.
첫 줄에 ‘사랑하는 아들’로 시작하는 여섯 글자만 읽어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편지를 다 읽는 데 3일이나 걸렸다.
마음 같아선 당장 손이라도 흔들어주고 싶지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돌발 행동을 보일 수는 없었다.
[훈련 성적 종합 1위, 3중대 3소대 차지혁. 위 병사는 우수한 성적으로 교육 훈련을 이수했기에 표창과 함께 포상으로 6박 7일 휴가증을 수여함.]
사회자의 설명이 끝나자, 연대장이 표창장을 건네고 차지혁과 악수를 나눴다.
“이병 차지혁! 감사합니다!”
[종합 2위, 2중대 1소대 조달영. 내용은 위와 같습니다.]
“이병 조달영! 감사합니다!”
3위와 4위의 시상이 이어지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종합 5위, 3중대 3소대 최대길. 내용은 위와 같습니다.]
“이병 최대길! 감사합니다!”
시상이 모두 끝나자 다시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단상에서 내려오며 어머니가 잘 볼 수 있게 표창장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멀리서 지켜보던 어머니가 잘했다며 박수를 치다가 금방 벌게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는 게 눈에 들어왔다.
표창 수여식이 끝나자, 훈련병들은 연병장의 좌우로 갈라져 섰다.
그런 후, 교관들이 돌아다니며 시연을 맡은 훈련병들을 불러 모았다.
“제식 및 구급법, 총검술 시연을 맡은 병사들은 이쪽으로 모입니다!”
나를 비롯해 총검술 시연을 진행할 이들이 강기오 중사 앞으로 모이자, 그는 스무 개의 단독 군장을 병사들에게 나눠 줬다.
그러고 나서 삼각뿔 모양으로 서로 기대어 세워둔 총기를 가리켰다.
“각자 한 정씩 가져갑니다.”
그렇게 시연 준비를 갖추는 사이, 훈련 성적 종합 1위에 빛나는 차지혁이 소감문을 발표하고, 시연에 참석하지 않는 병사들이 호국 결의를 외쳤다.
[이어서 수료자 대표들이 나와 그간의 훈련 성과를 내빈 여러분께 보여 드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시연의 첫 순서는 군인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제식이었다.
과연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병사들답게 교관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나는 시연을 지켜보며 초조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총검술 시연은 가장 마지막 순서라, 마른침을 수도 없이 삼키며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과연 내가 실수 없이 시연할 수 있을까?’
이윽고 바로 앞 순서인 구급법 시연이 끝나자, 강기오 중사가 병사들을 독려했다.
“여러분은 다른 동기들보다 뛰어난 실력으로 선발된 인원입니다. 걱정하지 말고, 혹여 틀리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자신 있게 합니다.”
말을 마친 강기오 중사는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과연 그 의미가 시연을 망치지 말라는 건지, 3주 동안 지옥 훈련을 거친 성과를 보여주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긴장감을 떨쳐 내기 위해 목소리를 돋우며 크게 외쳤다.
곧 사회자의 안내 방송에 따라 나는 다른 이들과 함께 연병장 중앙으로 달려 나갔다.
[지금부터 마지막 순서인 총검술 시연이 있겠습니다, 대표자는 3중대 3소개 최대길 이병입니다. 뜨거운 박수와 함성으로 맞아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연병장 중앙에 자리하자, 내빈석에서 몇몇이 크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차지혁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아니네?”
“그러게. 훈련 성적 최우수자라더니, 시연엔 참석 안 하나 봐.”
“에이, 차지혁을 보고 싶었는데. 왜 차지혁이 안 나오는 거야?”
“조용히 해. 들릴라.”
‘네. 다 들립니다.’
나는 실망감을 드러내는 이들을 향해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곧바로 강기오 중사의 구령으로 시연이 시작되는 바람에 더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전방에 대하여 받들어 총!”
“충성!”
“바로.”
“차려 총!”
“차려 총!”
나는 강기오 중사의 구령에 맞춰 자세를 갖췄다.
평가 때와는 달리, 왼손으로 총신을 잡은, 교본에 충실한 자세였다.
지옥 훈련을 통해 양손을 번갈아가며 수천 번씩 동작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하지 않은 왼손으로도 총검술을 정확하게 펼치는 게 가능해졌다.
수천 개의 눈동자가 대열의 가장 앞에 선 내게 주목되자, 나는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총검술 37개 동작 실시.”
“실시!”
딱, 따닥, 따다닥.
개머리판이 팔을 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조용히 시연에 집중했다.
동작을 마무리하고 총을 거둬들이는 순간까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나는 되레 불안해졌다.
‘혹시 중간에 실수라도 한 건가?’
숨 막히는 고요함이 감도는 가운데, 강기오 중사가 다시 구령을 붙였다.
“전방에 대하여 받들어 총!”
“충성!”
내가 경례를 올리는 순간, 조용하던 내빈석에서 박수와 함께 우렁찬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와아!”
“잘한다!”
“멋지다!”
“훈련병 맞아? 내가 수료식엔 몇 번 와봤는데, 저렇게 잘하는 병사는 처음 봐.”
사회자는 시끄러운 소란 속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상으로 수료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이어 면회를 신청하신 가족 및 친지분께선 면회장에서 병사들을 만나실 수 있으며, 17시 30분까지 면회 시간을 준수해 병사들을 복귀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예전에는 수료식이 끝나고 가족과 함께 외출이 가능했지만, 몬스터 출현 이후엔 외출이 통제되었다.
훈련소 바깥의 공기는 물론이고, 흡연도 가능할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시연에서 사용한 단독 군장과 총을 반납한 뒤 면회장에 도착하자, 가족들과 해후의 기쁨을 누리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도 얼른 주변을 살피며 그리운 어머니의 모습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입구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어머니가 앉아 계시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충성!”
“…어서 와, 아들.”
나는 서둘러 달려가 어머니께 씩씩한 모습으로 경례했다.
어머니는 5주 만에 만나는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 순간,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포근함이 느껴졌다.
“얼굴이 많이 상했네. 걱정 많이 했는데… 이제는 얼굴도 시컴시컴한 게 어엿한 남자처럼 보여.”
“아닙니다, 어머니!”
“고생했다, 고생했어.”
내가 어머니와 감격적인 상봉을 마쳤을 때, 갑자기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어머니께서 꺼내 드신 핸드폰 화면에 발신자 이름이 언뜻 보였다.
‘건물주 김 사장?’
“아들, 잠시만.”
어머니는 당황하신 듯 잠시 뒤쪽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네? 2,000만 원이나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신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내 눈치를 살피셨다.
일부러 통화 내용을 엿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기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주변의 소란스런 분위기 속에서 귀를 기울여 어머니의 통화를 듣기 위해 노력했다.
“갑자기 세를 그렇게 올리시면 어떻게 해요?”
어머니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아무래도 건물주가 세를 올려 달라고 한 모양이었다.
“그냥 가게 빼라는 소리잖아요. 이것 봐요, 김 사장님. 김 사장님?”
어머니가 따지려 들자, 건물주라는 사람은 자기 할 말만 마치고 전화를 끊은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상대를 애타게 부르다가 이내 체념한 채 돌아섰다.
그러더니 아무 일 없다는 듯 애써 웃으시며 내게 다가왔다.
‘2,000만 원이라… 잘하면 이번 기회에 효도 한 번 할 수 있겠네.’
내게 후반기 교육을 반드시 통과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내가 막 어머니께 말을 꺼내려던 그때, 면회실 구석진 자리에서 누군가가 크게 소리치는 게 들렸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나는 그게 차지혁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려는데,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가 내 얼굴을 양손으로 어루만졌다.
“에구, 우리 아들이 군대 가더니 얼굴이 반쪽이 됐네, 반쪽이 됐어. 이제 몇 시간 후면 또 고생할 거라 생각하니, 엄마 마음이 아프네.”
어머니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자,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어머니는 금방 감정을 추스르셨는지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 곧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으시는 모양이었다.
나는 얼른 궁여지책을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차지혁을 어머니께 소개시켜 드리는 것인데, 유명 연예인을 보면 어머니도 좋아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머니, 제게 도움을 많이 주신 형님이 한 분 계시는데, 어머니께 소개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응? 친한 형님? 누구?”
“잠시만 기다리고 계십시오. 제가 형님께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그래, 그러렴.”
나는 방금 전 고성이 들려온 면회실 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작은 방이 있었는데, 커튼으로 창문이 가려져 내부가 보이진 않았다.
게다가 입구 양쪽에는 커다란 덩치의 양복 입은 남자 두 명이 단단히 지키고 서 있었다.
하지만 문틈 사이로 차지혁이 보였기에 나는 방으로 접근했다.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 두 남자가 몸으로 문 앞을 막으며 나를 저지했다.
“죄송합니다만, 안에서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물러서 주십시오.”
하지만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중년 남성은 뭔가 쩔쩔매는 듯했고, 차지혁은 매우 화난 듯 거친 말을 내뱉었다.
“차 배우, 진정 좀 하고 내 말을 들어봐.”
“대표님과 저, 벌써 몇 년입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사람 뒤통수를 칩니까?”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네. 자칫하면 회사가 망할 판이었어.”
“그래서 저를 팔아넘기신 겁니까?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부대에 사람을 보내는 게 살인이랑 뭐가 다릅니까!”
“어허, 큰일 날 소리! 내가 자넬 왜 죽게 만드나? 내가 그쪽 지휘관이랑 잘 얘기해서 자네는 작전에 투입되지 않는 지원병으로 배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네. 그냥 여느 부대로 갔어도 하게 될 얼굴마담 역할에 불과해. 그러니 딱 1년만 더 고생해 줘.”
“하, 매번 이런 식이었죠. 아무래도 대표님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모양입니다. 차후 저와의 계약 연장은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이봐, 차 배우, 차 배우!”
쾅!
차지혁은 화가 가라앉지 않은 듯 세차게 문을 닫아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대길아, 걱정돼서 와본 거야?”
문 앞을 지키던 남자들이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차지혁은 깔끔하게 무시한 채 나에게 다가왔다.
“네, 형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안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던데…….”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그건 그렇고, 어머니께서 오시지 않았어? 근데 여기 있어도 되는 거야? 아, 설마 벌써 가신 건 아닐 테고…….”
“아뇨. 그건 아닌데…….”
심각한 장면을 목격한 뒤라 나는 선뜻 차지혁에게 부탁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차지혁은 굳은 표정을 풀며 피식 웃어 보였다.
“뭔데? 편하게 말해봐. 어차피 CHT 부대에 가서도 함께 지낼 테니까, 웬만한 부탁은 들어줄 수 있어.”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데, 더 망설이는 것도 이상했다.
나는 차지혁에게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차지혁은 당장 내 팔을 잡아끌며 앞장섰다.
“이 녀석아, 그걸 이제야 얘기하면 어떻게 하냐? 혹시 오래 기다리신 거야? 어디 계셔? 빨리 가자.”
우리 어머니를 만난 차지혁은 연예인이 아니라, 마치 오랜 친구의 어머니를 대하는 것처럼 싹싹하게 굴었다.
입소식 때, 일본의 아주머니 팬들이 버스를 대절해 올 정도로 대단한 차지혁의 인기는 우리 어머니라고 예외는 아닌 모양이었다.
차지혁을 코앞에서 만난 어머니는 너무 놀라며 어쩔 줄을 몰라 하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고, 반가워라. 살다 보니 차지혁 배우를 실물로 보는 날도 있네. 진짜 잘생겼어.”
어머니는 차지혁과 셀카를 찍은 뒤, 사인을 받으며 밝게 웃었다.
그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모습이 부러운지, 면회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힐끗힐끗 곁눈질하곤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차지혁과의 수다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방금 전까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 차지혁은 어머니의 끝을 모르는 담화에도 싫은 기색 없이 맞춰주었다.
그렇게 짧은 면회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면회의 끝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어머니, 대길이는 무슨 일이 닥쳐도 잘 헤쳐 나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다음에 같이 휴가 나가면 찾아뵐게요. 그때 맛있는 거 많이 해주세요.”
“아유, 그럼. 우리 지혁이가 오면 내가 빚을 내서라도 한 상 크게 차려야지. 부담 갖지 말고 언제든지 놀러 와.”
어느새 친근하게 이름을 부를 정도로 어머니와 차지혁은 가까워진 듯했다.
아들과의 이별이 서운할 법도 한데, 어머니는 싱글벙글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크게 손을 흔들며 훈련소를 떠났다.
생활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차지혁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형님, 정말 고마워요.”
“고맙긴 뭘.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속 편히 웃고 떠들었어. 너희 어머니께서 낯을 가리는 분이 아니라서. 그런데… 어머니는 모르시는 눈치던데, 말씀 안 드렸어?”
“…네. 걱정하실 게 빤해서 그냥 숨겼어요. 기분 좋으신데 괜히 그런 말을 꺼내는 것도 아니다 싶었고요.”
“음, 당장은 몰라도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셨을 때, 더 크게 충격을 받으실지도 몰라.”
“그럴 수도 있지만, 벌써부터 걱정시켜 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내 대답에 차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힘내라는 듯 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날 저녁, 점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생활관 문이 열리더니, 강기오 중사가 들이닥쳤다.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해하는데, 그는 세 명의 이름을 호명했다.
“차지혁, 최대길, 한상혁.”
“이병 차지혁!”
“이병 최대길!”
“이병 한상혁!”
“후반기 교육 부대로 이동하는 건 원래 내일인데, 예정이 당겨진 모양이다. 지금 바로 짐을 싸서 곧바로 차량에 탑승할 수 있도록 합니다.”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개 자대 배치나 후반기 교육대로 이동하는 건 수료식 다음 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잠을 싸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병 최대길, 질문 있습니다!”
“뭡니까?”
“지금 당장 이동하는 겁니까?”
내 질문에 강기오 중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아주 당연하다는 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뭘 그리 놀랍니까? 이게 바로 CHT다.”
그거면 설명으론 충분했다.
“시간 없습니다. 준비 마치는 대로 생활관 밖으로 나옵니다.”
“알겠습니다!”
갑작스런 통보에 우리 셋은 놀랄 겨를도 없이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짐을 다 싼 우리는 동기들과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는 생활관 건물을 나섰다.
그러자 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는 짙게 선팅이 돼 있어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전면에 CHT라고 크게 새겨진 문구 덕분에 차량의 소속을 알 수 있었다.
“전원 탑승.”
“탑승!”
승합차에는 나와 총검술로 겨룬 조달영 이병이 이미 탑승해 있었다.
우리가 차에 몸을 싣자마자 차량은 바로 출발했다.
나는 급한 마음에 창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강기오 중사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충성!”
강기오 중사는 미소와 함께 천천히 오른쪽 눈썹 옆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나는 강기오 중사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를 바라봤다.
비록 첫날부터 악연으로 맺어진 인연이지만, 그 덕분에 포상까지 받았다고 생각하면 고마운 사람임에는 틀림없었다.
다시 고개를 집어넣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돼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건 바로 한상혁이었는데, 그는 맞은편에 앉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아, 내가 아직 말을 안 했구나?”
“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사실 CHT 부대 지원자야. 앞으로 잘 부탁한다, 동생아.”
빙그레 웃으며 오른손을 내밀었으나, 한상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를 쥐어뜯을 뿐이었다.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