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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영원할 것만 같던 시간이 어찌어찌 흘러, 나를 포함한 동기들은 기초 군사훈련 5주를 마치고 수료식을 앞두게 되었다.

우리의 가슴에는 지난 5주간 함께한 번호 대신 자랑스러운 이등병 계급장과 이름표가 부착됐다.

‘하아, 드디어 끝났어.’

지난 3주간 나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나날을 견뎌야 했다.

각개전투, 사격술, 행군 등의 기초 훈련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기초 훈련을 받는 시간이 내겐 더 좋았다.

강기오 중사의 강도 높은 훈련에 비하면 일과 시간에 받는 기초 훈련은 휴식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행군 훈련을 받은 날은 생일을 맞이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는 30㎏이나 되는 무거운 군장을 메고 걷기만 하는 게 뭐가 좋았냐고 묻겠지만, 행군은 야간에 진행됐다.

덕분에 그날은 강기오 중사라도 지옥 훈련으로 날 괴롭힐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약속대로 일과 시간 이후엔 강기오 중사의 개인 훈련을 받고, 말도 안 되는 훈련량을 소화해 냈다.

덕분에 지난 3주간 육체적인 능력이 껑충 성장했다.

일례로 총을 든 상태로 전력 질주해 축구 골대를 찍고 돌아오는 시간을 2분 후반대로 줄일 수 있었다.

3분의 벽을 깼을 때, 강기오 중사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으나 속으론 깜짝 놀랐을 것이다.

이 모든 게 차지혁의 치유 능력 덕분이었다.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 건 물론이고, 온몸을 괴롭히는 근육통도 가라앉아서 주말 내내 이어지는 지옥 훈련을 버틸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총검술 동작을 매일 수백수천 번씩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총이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내일이면 훈련소를 떠난다는 생각에 조금은 해이해진 훈련병들은 생활관에 앉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물론, 그건 교관들이 어느 정도 눈감아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차지혁 이병, 면접이다.”

차지혁이 관물대 앞에 앉으려 할 때, 생활관 문이 열리며 조교가 호출했다.

“이병 차지혁, 알겠습니다.”

차지혁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조교를 따라 나섰다.

수료식을 앞두게 되자, 전국 각 부대의 인사 담당자들이 훈련소를 찾았다.

그들은 그간 훈련 성적을 바탕으로 우수한 재원을 데려가기 위해 훈련소를 찾았다.

뭐, 하지만 그건 핑계에 불과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차지혁을 제외한 훈련병들은 하릴없이 빈둥거릴 뿐이기 때문이었다.

김태웅 소령이 단단히 엄포를 놓았으나, 인사 담당자들은 쉽게 포기할 마음이 없는 듯했다.

그로 인해 차지혁은 쉴 틈 없이 면접실로 불려갈 수밖에 없었다.

나를 찾는 이는 당연히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CHT 부대의 지원자를 빼돌릴 만큼 간이 큰 사람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지난 3주간 강기오 중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로 알차게 사용한 한상혁이 내게 다가와 껄렁거리며 말을 걸었다.

그동안 내가 먼저 부르지 않으면 결코 먼저 입을 열지 않았는데, 희한한 일이었다.

“크크크, 아무도 안 불러줘서 쪽 팔리나 봐? 그 사람들도 네가 병신이란 걸 알아본 거 아닐까?”

“이놈이 뭘 잘못 먹었나. 형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한상혁은 말끝마다 꼬박꼬박 형님이라고 붙이기는 하는데, 그 태도는 양아치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이 녀석을 어떻게 괴롭혀 줄까 고민하는데, 그는 이죽거리는 웃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이쿠, 형님. 적당히 하시죠. 그래봐야 하루밖에 안 남았슴다. 이제 내일이면 서로 얼굴 볼 일도 없는데, 적당히 말도 놓고 그래야죠.”

아무래도 점심에 상한 걸 먹은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동안 너무 괴롭혀서 정신이 돌아버린 걸지도.

나는 몹시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한상혁을 바라봤다.

솔직히 3주간 강기오 중사의 갈굼을 버틸 수 있던 원동력 중에는 한상혁의 희생도 어느 정도 포함돼 있었다.

‘뭐, 오늘은 나도 기분이 좋으니 봐준다.’

내일이면 더 이상 볼일 없을 거란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의 표정이 남 같지 않게 느껴졌다.

“주접떨지 말고 네 자리로 가. 앞으로 나랑 볼일 없다고 어떻게 장담하는데? 같은 부대로 배치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

그 순간, 뜨끔 놀라며 당황한 표정을 짓는 한상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으름장을 놓았다.

“만약 네가 나랑 같은 부대로 가면, 너는 내가 전역할 때까지 잘 보살펴 주마.”

물론, 그런 일은 없을 터였다.

한상혁은 아마 일반 부대로 가게 될 테고, 나는 CHT 부대 소속이 확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상혁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미간을 좁힌 채 고민에 몰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상혁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큭큭큭,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거요. 왜냐하면 나는 형님이랑 다른 부대로 갈 테니까.”

단언하듯 말하는 녀석의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다 방법이 있으니까, 그렇게만 알고 있으라고.”

녀석은 손을 대충 흔들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혹시 집안에 어디 장군 출신이라도 있어서 저러는 건가?’

솔직히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만약 그런 패가 있었다면, 한상혁의 성격상 3주나 참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생활관 문이 열리며 조교가 들어왔다.

“최대길 이병, 면접이다. 면접실로.”

“이병 최대길! 알겠습니다!”

나는 절로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망설이지 않고 옷매무새를 점검하며 조교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때, 한상혁이 구석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렸다.

슬쩍 고개를 돌려 살피니, 한상혁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설마 정신이상으로 의병 제대를 노리는 건가?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나는 생활관을 나서 곧장 면접실로 향했다.

그러다가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지혁과 마주쳤다.

나는 인사를 건네고 싶었으나,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심각한 표정으로 바닥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왜 저렇게 표정이 어두운 거지?’

차지혁이 고민하는 이유를 떠올리기도 전에 나는 면접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안에는 한 쌍의 남녀가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가슴에 CHT 부대 마크를 달고 있었다.

중령인 남자 쪽은 처음 보는데, 왼쪽에서 서류를 살피는 여성은 어딘가 낯이 익은 듯했다.

‘어? 저 사람은!’

“최대길 이병?”

“이병 최대길!”

“거기 서서 뭐 하나, 왔으면 얼른 앉지.”

“네, 알겠습니다!”

내가 황급히 의자에 앉자, 중령이 서류를 살피며 말을 꺼냈다.

“만나서 반갑군. 나는 대헌터 테러 특수작전 부대의 인사참모인 정의철 중령이다.”

정의철 중령은 왠지 기분 나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나는 전혀 반갑지는 않지만 상급자에 대한 예의로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했다.

“충성! 이병 최대길,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군기가 제대로 잡혔군. 아주 좋아. 자리에 앉게.”

“감사합니다!”

내가 다시 자리에 앉자 정의철 중령이 말을 이었다.

“귀관이 우리 부대에 지원해 준 서류에는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었다. 기초 군사훈련 성적도 나쁘지 않고, 특히 사격 성적이 아주 훌륭하군.”

특별한 결격 사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뭐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럴 땐 지극히 정상인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내일 수료식 후에 푹 쉬고 있으면 교육대로 가는 수송 차량이 도착할 거야. 그럼 그걸 타고 후반기 교육대로 가면 되네. B급 이상 능력자는 후반기 교육이 면제지만, 자네는 해당 사항이 없으니 훈련을 통과해 자대로 갈 수밖에 없겠군. 한 번 열심히 훈련을 받아보게.”

순간, 뭔가 희망적인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그래서 정의철 중령이 말하는 중간에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이병 최대길, 질문 있습니다!”

내 돌발 행동에 정의철 중령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뭔가, 최 이병?”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

“저… 후반기 훈련 후에 자대로 간다고 하셨는데, 만약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정의철 중령은 깊은 한숨을 쉬고는 귀찮다는 듯 옆의 여자 대위를 팔꿈치로 툭툭, 쳤다.

“…대위 양정숙.”

“자네가 대신 설명해 주게. 참, 그러고 보니 둘이 구면이겠군?”

“그렇습니다.”

양정숙 대위가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오랜만이야, 최 이병. 그간 잘 지냈을까?”

나는 그녀의 미소 띤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미인계로 나를 속여서 지옥행 특급열차에 오르게 한 장본인이 아닌가.

“얼굴이 많이 상했네. 훈련이 많이 힘들었나 봐?”

처음 만났을 때는 보험 회사 직원 같던 그녀가 지금은 상급자로서 나를 대했다.

“아닙니다!”

양정숙 대위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내 지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서류를 친절하게 들어 보였다.

“자, 이건 전에 최 이병이 작성한 지원 서류야. 확인해 보고 싶으면 자세히 살펴봐도 돼.”

“확인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궁금해하는 부분을 설명해 줄게. 후반기 교육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에는 지원이 취소되며 계약금 일체를 반환한다. 단, 고의로 탈락하기 위해 훈련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을 경우, 계약 위반으로 간주해 열 배의 위약금을 배상해야 한다.”

양정숙 대위는 입대 지원서에 기재된 내용을 차분하게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본인도 조금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인지, 나와 눈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그때, 정의철 중령이 끼어들었다.

“자, 이제 문제는 해결된 건가? 그럼 계속해 설명하지.”

정의철 중령은 후반기 교육에 대해 언급했지만, 나는 도망칠 구석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에 정신이 멍할 뿐이었다.

만약 성실함이라는 기준을 후반기 교육의 통과 여부로 따지면, 내 기준에선 죽기 살기로 노력해도 열 배의 위약금을 배상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이제 돌아가 보도록.”

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면접실을 나섰다.

여전히 납득은 되지 않지만, 나는 최대한 좋게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찌 됐든 내가 내린 결정이고, 이미 결정 난 일을 돌이키기엔 늦은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면 후반기 교육을 통과할 수밖에 없어.’

이것도 나중엔 다 경험이 될 테고, 특수부대를 다녀온 선배처럼 술주정의 단골 레퍼토리로 우려먹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어딜 가든 독사와 함께한 지난 3주보다 힘들 것 같지는 않았다.



생활관으로 복귀해 보니, 강기오 중사는 한상혁과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나보다 먼저 면접을 마치고 돌아온 차지혁도 있었다.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전히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입술만 잘근잘근 씹어 댔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가? 가고 싶은 부대에서는 면접을 보자고 안 했나?’

그렇다 하더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어딜 가든 CHT보다는 백 배, 천 배 나을 터였다.

“한상혁 이병, 한 번 결정하고 나면 번복할 수 없습니다. 심사숙고해 내린 결정이 맞습니까?”

강기오 중사의 물음에 한상혁이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후우,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면접실로 이동합니다.”

강기오 중사가 한숨이라니, 별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내 관심은 이미 차지혁에게 쏠린 상태였다.

강기오 중사가 한상혁을 데리고 생활관을 나서자, 나는 바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형님, 무슨 일 있었어요? 표정이 영 안 좋아 보이는데…….”

“어, 대길이 왔어?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그나저나 면접 보러 갔다더니, 일찍 왔네?”

미처 다 숨기지 못한 감정 때문인지, 차지혁의 음성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동안 많은 도움을 받아왔으니, 어떻게든 그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고 싶었다.

“네. 저야 이미 CHT 부대에 지원했으니까요. 가서 후반기 교육에 대해서 들은 게 답니다.”

나는 최대한 덤덤히 말했으나, 차지혁의 반응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뭐? 너도?”

“네? 설마… 형님도?”

나는 입을 쩍 벌리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만 배우로서 연예계의 정점을 찍은 차지혁이 뭐가 아쉬워서 CHT 부대에 지원한단 말인가.

나는 그와 같은 부대로 간다는 반가움을 겨우 억누르며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아니, 저야 얼떨결에 지원해서 가게 된 거지만…….”

내가 말을 얼버무리자, 차지혁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자조하는 듯한 미소를 배어 물었다.

“하하… 누굴 탓하겠어, 다 내 탓이지. 평소에 잘하고 다녔으면 이런 일도 없는 건데…….”

차지혁도 내가 함께 간다는 사실이 내심 반가운지, 입소식 때의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도 우리가 인연은 인연인가 보다. 한 번 잘해보자.”

차지혁은 마음속 갈등을 정리했는지,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네, 형님. 잘 부탁드려요.”

그때, 우리 둘의 대화를 들은 동기들이 호들갑을 떨어 댔다.

“야, 군대 오기 전에 들었는데, 거기 가면 무조건 죽는대.”

“에이, 설마 죽기야 하겠냐. 그런데 거기는 복무 기간이 3년이라며?”

“맞아. 게다가 거기 부대 파워가 장난 아니래. 헌병이나 기무사도 꼼짝 못한다던데?”

“그건 나도 들었어. 헌터 범죄자들을 상대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괴물들만 모여 있대.”

“그래도 휴가 나오면 멋지긴 하겠다. 다른 부대 애들은 휴가 때 걔들만 봐도 슬쩍 피한다잖아.

“그렇긴 하지. 그런데 CHT랑 해병대가 밖에서 만나면 누가 더 셀까?”

“아무리 그래도 해병대만 하겠냐?”

“아니지. CHT가 헌병이나 기무 위에 있다고 하잖아.”

“해병대라니까.”

“CHT지.”

소대 동기들은 마치 강 건너 불구경이라도 하듯 저들끼리 신나서 떠들어 댔다.

좀처럼 논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얼른 나서서 한마디 거들었다.

“난 휴가 나가면 안 피할 거다.”

“오∼ 최대길. 그럼 CHT 승리로 결정 났네.”

“하하하!”

“하하하!”

그렇게 면접 시간이 거의 끝날 때 즈음, 한상혁이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인상을 잔뜩 구겼다.

아직도 나랑 같은 부대로 갈까 봐 걱정인 모양이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헤어질 텐데, 얼른 얘기해 주고 악연을 털어버리는 게 나을 듯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CHT만 생각하면 골치가 아픈데, 마지막까지 한상혁과 씨름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진 않았다.

“한상혁, 아까 내가 잘 봐주겠다고 한 말은 농담이니까 안심해라. 사실…….”

“큭큭큭.”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한상혁이 미친놈처럼 웃어 댔다.

정말 실성이라도 한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뭐가 그렇게 웃겨?”

“푸하하하! 내가 무조건 너랑 다른 데 간다고 했지? 그래서 방금 CHT 지원하고 왔다. 큭큭큭.”

한상혁은 한껏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와 달리 난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야이 미친놈아?”

“왜? 뭐가 그리 놀랄 일인데?”

나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그대로 석상처럼 굳었는데, 한상혁은 나를 스쳐 지나가며 의기양양하게 으스댔다.

순간, 나는 사실을 말해줘야 할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지 고민했다.

‘쩝, 내일이면 싫어도 알게 되겠지. 일단 연병장에 나가는 게 우선이야.’

한상혁이 돌아왔다는 건, 강기오 중사가 지옥 훈련을 준비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생활관을 나서기 전에 한상혁을 힐끔 돌아본 뒤, 바로 연병장으로 달려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강기오 중사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시간을 체크하는 중이었다.

“최대길 이병.”

“이병 최대길!”

“개인 훈련은 오늘로 마지막이다, 그러니 그간 배운 총검술 동작을 펼쳐 보도록.”

“알겠습니다!”

나는 강기오 중사의 앞에서 총검술 37개 동작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펼쳤다.

이윽고 모든 연결 동작들을 마친 나는 부동자세로 서서 그의 말을 기다렸다.

‘또 트집을 잡아 얼차려를 주겠지. 안 봐도 빤하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달리 강기오 중사는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주 잘했다. 오늘 훈련은 이걸로 끝내도록 하지.”

순간, 나는 내가 꿈을 꾸는 건 아닌지 조용히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놀랍게도 현실이었다.

“최대길 이병, 그만하면 수료식에서 총검술 시연을 펼쳐도 충분하다.”

갑자기 이어지는 칭찬에 나는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지금쯤 대충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네게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킨 이유는 나 역시 CHT 부대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주말 막장 드라마의 설정도 아니고, 난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올 노릇이었다.

“네가 CHT 지원자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물론 다른 지원자들도 있지만, 너는 유일하게 일반인이다. 앞으로 CHT에서 복무하며 수행해야 할 작전은 하나같이 매우 위험하다. 나는 네가 조금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더욱 혹독하게 단련시킬 수밖에 없었다.”

‘아, 예. 그렇게 깊은 뜻이 있다면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지그러셨습니까.’

“나는 복무 당시 김태웅 소령, 아니, 중령님 휘하의 대원이었다.”

강기오 중사는 과거를 회상하는 듯 아련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허공을 응시했다.

“후반기 교육을 받을 때가 생각나는군. 재미있었어. 나쁜 짓도 많이 했고……. 하지만 내가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어.”

그 말에 김태웅 중령이 언급한 내용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한상혁과 겨룰 때, 그는 내가 죽지 않으려면 상대를 죽여야 한다고 했다.

역시나 그건 괜한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뭐, 거기까진 추억으로 미화시킬 수 있을 정도야. 하지만 진짜 지옥은 그 이후다.”

강기오 중사의 눈빛이 순식간에 바뀌더니, 사나운 독사처럼 번뜩였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악몽을 꿀 정도로 지독했다. 나나 훈련병 같은 노말 병사들은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 곳이야.”

잠시 말을 끊은 강기오 중사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불쑥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을 펼쳤다.

“나는 거기에서 무려 4년을 살아남았다.”

순간,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갑자기 자기 자랑입니까?’

“최대길 이병.”

“이병 최대길!”

내 우렁찬 대답에 강기오 중사가 후배를 너무나 아끼는 선배처럼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살아남아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김태웅, 그 남자를 조심해라.”

강기오 중사는 내게 싸늘한 표정으로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