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1화
다음 날 아침.
기상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리자, 우리 3소대는 축제 분위기에 물들어 다들 싱글벙글 웃으며 눈을 떴다.
생활관으로 들이닥친 강기오 중사도 그런 분위기를 읽었는지, 바로 약속을 지키겠다는 말을 꺼냈다.
“지금부터 3소대는 아침 점호 이후 자유롭게 행동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무단으로 건물을 이탈하거나 소란스럽게 굴 경우, 그 시간부로 자유 시간을 종료하겠습니다. 치킨은 점심 전에 준비할 테니, 부족한 인원들은 점심을 따로 먹도록 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유 시간.
입소 이후 강한 통제 속에서 훈련을 받아온 훈련병들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포상이었다.
귀찮고 힘든 아침 점호를 마치고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소대원들은 부족한 잠을 채우거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등 정말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그러고 나서 고대하던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강기오 중사는 조교들과 함께 생활관으로 들어와 소대원들 앞에 노란색 박스 하나씩을 내려놨다.
고소한 기름향이 코를 자극하니, 입안 가득히 군침이 차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꿀꺽.
여기저기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강기오 중사의 입이 열리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약속한 대로 치킨을 준비했습니다. 취식 시간은 한 시간이니, 혹시 남겨뒀다가 먹겠다는 생각은 버리도록 합니다. 먹을 수 있는 만큼 배불리 먹고, 남은 건 버리도록 합니다.”
과연 남는 게 있을까?
동기들은 치킨의 포장 박스까지 남김없이 먹어 치우겠다는 의지를 활활 불태우는 중이었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식사 시작!”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밝고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구령 소리와 함께 3소대 전원은 분주한 손놀림으로 포장을 풀어 헤쳤다.
그 어느 때보다 소대원 전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도 황급히 치킨 박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황금빛 튀김옷을 입은 프라이드치킨이 들어 있었다.
나는 제일 위에 놓인 큼지막한 다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튀겨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 뜨거운 온기가 손가락을 통해 전달됐다.
바사삭!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치킨을 베어 무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나도 갓 튀긴 닭의 속살을 맛보기 위해 닭다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입소한 지 불과 2주, 통제된 생활 속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치킨의 향연.
코끝에 퍼지는 냄새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닭다리를 뜯으려는 순간, 강기오 중사가 나의 앞에 멈춰 섰다.
“173번 훈련병.”
그의 음성에서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나는 닭다리를 쥔 채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173번 훈련병, 최대길!”
“훈련병은 지금 즉시, 단독군장을 착용하고 총기 소지한 상태로 연병장으로 나옵니다.”
‘아니, 이 양반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내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멀뚱히 바라보자, 강기오 중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훈련병, 대답 안 합니까? 교관의 지시 사항이 들리지 않습니까?”
다 들리고, 왜 그러는지도 잘 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잔인한 처사가 아닐까.
나는 한 가닥 희망을 놓치지 않으며 말했다.
“잘 못 들었습니다.”
강기오 중사는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싸늘한 표정으로 낮게 말했다.
“잘 못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관은 훈련병에게 단독군장을 착용하고 총기 소지해서 연병장으로 나오라고 말했습니다.”
한창 치킨을 뜯는 데 열중하던 소대원들 역시 싸늘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강기오 중사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치킨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나는 이대로 치킨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성을 잃은 척하며 버티자 마음먹었다.
“교관님께서는 분명 주말 동안 자유 시간을 준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강기오 중사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래서 교관은 약속대로 총검술 우승자인 161번 훈련병이 소속된 소대에 자유 시간을 부여했습니다. 이렇듯 교관은 약속을 지켰는데, 훈련병은 약속을 잊은 것처럼 보입니다. 분명 32강 안에 들지 못하면 수료식 전까지 훈련병은 일체의 자유 시간 없이 교관에게 일대일 총검술 지도를 받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강기오 중사의 말에 나는 순간 머리가 멍해지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더욱 냉랭한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훈련병, 대답 안 합니까?”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3분 주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나머지 인원은 푹 쉴 수 있도록.”
강기오 중사는 화가 난 모양인지 경례도 받지 않은 채 생활관을 나갔다.
나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들고 있던 닭다리를 박스에 던지듯 내려놓고 허겁지겁 장구류를 착용하고 연병장으로 달려 나갔다.
죽을힘을 다해 강기오 중사 앞에 도착하자 그는 손목에 찬 시계를 물끄러미 확인하더니,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 모습이 마치 지옥에서 온 사신처럼 느껴졌다.
“훈련병.”
“173번 훈련병, 최대길!”
“정확히 3분 21초 걸렸습니다. 교관이 분명 3분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교관은 훈련병의 정신 상태가 교육에 적합하지 않아 보입니다. 교육에 앞서 썩어 빠진 정신 상태부터 고칠 수 있도록 합니다. 뒤쪽에 축구 골대가 보일 겁니다. 축구 골대 찍고 돌아오는 데 3분. 몇 분?”
“3분!”
“뛰어!”
“뛰어!”
나는 미처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또다시 전력으로 달려야 했다.
단독 군장은 그다지 거치적거리지 않는데, 총을 들고 뛰려니 죽을 맛이었다.
점점 느려지는 다리를 달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지만, 결국 강기오 중사가 부여한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했다.
강기오 중사는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나를 내려다보며 냉정하게 말을 꺼냈다.
“4분 12초. 시간 초과. 이번엔 4분 안에 들어옵니다. 뛰어!”
“헉, 허억… 뛰어!”
처음보다 1분 늘었지만, 그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가슴이 터질 정도로 숨이 가쁘기 때문이었다.
다시 골대를 찍고 돌아왔을 때, 당연하게도 처음 기록보다 훨씬 더 느려졌다.
“5분 33초. 시간 초과. 이번엔 6분입니다. 뛰어!”
“허억, 허억… 뛰어!”
강기오 중사는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이번엔 2분의 시간을 더 부여했다.
하지만 심장이 터질듯이 뛰고 다리근육도 딱딱하게 부풀어 올라서 전력 질주는커녕, 한 걸음을 옮기는 것 자체가 고행이었다.
마음 같아선 들고 있는 총을 냅다 던져 버리고 싶었다.
“6분 55초. 정신 차립니다, 훈련병. 적의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 중에도 지쳤다고 설렁설렁 달릴 겁니까? 이번엔 7분 부여하겠습니다. 뛰어!”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서 있는 게 고작이지만, 그는 독사라는 별명처럼 일체 봐주는 게 없었다.
“뛰어!”
이미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땀에 온몸이 축축했다.
설상가상으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내리쬐는 땡볕에 짜증이 솟구쳤다.
‘이게 무슨 교육이야, 그냥 괴롭히는 거지! 시발 새끼, 개새끼!’
설마 그 말이 들리기라도 한 걸까?
내가 마음속으로 욕을 퍼붓고 있을 때, 망할 독사 새끼가 마음의 소리를 듣기라도 했는지 나를 불렀다.
“훈련병, 원위치.”
“하아, 하아… 원위치.”
“복명복창 안 합니까? 뛰어!”
“뛰어…….”
“원위치!”
“원위치…….”
“목소리가 작습니다. 목소리 패기 있게 안 냅니까?”
강기오 중사는 아무 감정도 묻어나지 않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스멀스멀 퍼지는 그의 악의를 느낄 수 있었다.
독사. 그것도 시퍼런 독액으로 번들거리는, 날카로운 독니를 꺼낸 놈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열망을 떠올렸다.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는데,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이 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말없이 내 시선을 받아내던 강기오 중사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교관을 죽이고 싶습니까?”
‘헉! 어떻게 알았지?’
나는 깜짝 놀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입을 열면 나도 모르게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기오 중사는 마치 내 대답을 듣기라도 한 듯이 말을 이었다.
“훈련병의 실력으론 절대 나를 죽일 수 없습니다. 단언컨대,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다고 확신합니다.”
분한 마음에 손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속으로 참을 인 자를 새겼다.
“포기하고 싶으면 포기하겠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3주 동안 버틸 자신이 없다면, 미리 포기하도록 합니다.”
비웃는 듯한 강기오 중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숙여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한마디를 더 꺼냈다.
“뭐, 지금이 아니더라도 곧 포기하게 될 겁니다.”
순간, 저 재수 없는 놈의 콧대를 꺾어버리고 싶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가 차갑게 식자, 나는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포기 안 합니다.”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봅시다.
강기오 중사는 독기 오른 내 모습에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뛰어!”
“뛰어!”
그렇게 나는 점심시간 전까지 수없이 연병장을 가로질러야 했다.
강기오 중사는 정확하게 식사 집합 전까지 나를 달리게 만들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생활관에 도착한 나는 쓰러지듯 침상에 엎어졌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땀에 푹 찌든 내 모습을 본 소대원들이 걱정 어린 말을 건넸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이미 수거해 갔는지, 한입 먹어보지도 못한 치킨 박스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입안이 바짝 말라서 별로 아쉽지 않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래도 먹고 싶었는데…….’
그때, 식사 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그러자 차지혁이 나를 부축하기 위해 다가왔다.
“가자, 밥 먹으러.”
“…예, 형님.”
다리가 부들거려서 걷기는커녕 일어서기도 힘들었다.
내 옷은 땀으로 잔뜩 젖었지만, 차지혁은 전혀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부축을 받으며 식당으로 가는 동안, 차지혁은 사람들 몰래 치유 능력을 써줬다.
그래서 식당에 도착했을 때에는 체력이 완전히 회복됐고, 근육통도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언제 입맛이 없었냐는 듯 식욕이 폭발했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을 느끼며 평소보다 두 배는 많은 식사를 해치운 후에야 겨우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생활관으로 돌아온 나는 아주 잠시 잠깐 꿀 같은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식사 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생활관 문이 열리며, 꿈에도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173번 훈련병, 지금 바로 연병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합니다. 3분 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상태라 오전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강기오 중사는 내가 도착하자 시간을 체크하더니,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야 정신 무장이 제대로 된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부터 총검술을 지도하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초부터 제대로 다질 수 있도록 합니다. 찔러 동작 1,000회 반복합니다. 실시.”
그 순간, 나는 숫자를 잘못 들은 게 아닌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실시.”
“실시! 하나, 둘.”
그렇게 반복 찌르기가 200회가 넘어갈 무렵, 슬슬 팔근육에 무리가 왔다.
“…213, 214.”
“그만.”
옆에 서서 가만히 나를 지켜보던 강기오 중사가 돌연 훈련을 중지시켰다.
“점점 자세가 흐트러집니다. 정신 똑바로 안 차립니까?”
말을 마친 그는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설마… 아니겠지?’
“골대 찍고 옵니다. 시간은 3분. 뛰어!”
“뛰, 뛰어!”
다음 날 아침.
기상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리자, 우리 3소대는 축제 분위기에 물들어 다들 싱글벙글 웃으며 눈을 떴다.
생활관으로 들이닥친 강기오 중사도 그런 분위기를 읽었는지, 바로 약속을 지키겠다는 말을 꺼냈다.
“지금부터 3소대는 아침 점호 이후 자유롭게 행동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무단으로 건물을 이탈하거나 소란스럽게 굴 경우, 그 시간부로 자유 시간을 종료하겠습니다. 치킨은 점심 전에 준비할 테니, 부족한 인원들은 점심을 따로 먹도록 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유 시간.
입소 이후 강한 통제 속에서 훈련을 받아온 훈련병들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포상이었다.
귀찮고 힘든 아침 점호를 마치고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소대원들은 부족한 잠을 채우거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등 정말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그러고 나서 고대하던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강기오 중사는 조교들과 함께 생활관으로 들어와 소대원들 앞에 노란색 박스 하나씩을 내려놨다.
고소한 기름향이 코를 자극하니, 입안 가득히 군침이 차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꿀꺽.
여기저기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강기오 중사의 입이 열리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약속한 대로 치킨을 준비했습니다. 취식 시간은 한 시간이니, 혹시 남겨뒀다가 먹겠다는 생각은 버리도록 합니다. 먹을 수 있는 만큼 배불리 먹고, 남은 건 버리도록 합니다.”
과연 남는 게 있을까?
동기들은 치킨의 포장 박스까지 남김없이 먹어 치우겠다는 의지를 활활 불태우는 중이었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식사 시작!”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밝고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구령 소리와 함께 3소대 전원은 분주한 손놀림으로 포장을 풀어 헤쳤다.
그 어느 때보다 소대원 전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도 황급히 치킨 박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황금빛 튀김옷을 입은 프라이드치킨이 들어 있었다.
나는 제일 위에 놓인 큼지막한 다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튀겨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 뜨거운 온기가 손가락을 통해 전달됐다.
바사삭!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치킨을 베어 무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나도 갓 튀긴 닭의 속살을 맛보기 위해 닭다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입소한 지 불과 2주, 통제된 생활 속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치킨의 향연.
코끝에 퍼지는 냄새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닭다리를 뜯으려는 순간, 강기오 중사가 나의 앞에 멈춰 섰다.
“173번 훈련병.”
그의 음성에서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나는 닭다리를 쥔 채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173번 훈련병, 최대길!”
“훈련병은 지금 즉시, 단독군장을 착용하고 총기 소지한 상태로 연병장으로 나옵니다.”
‘아니, 이 양반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내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멀뚱히 바라보자, 강기오 중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훈련병, 대답 안 합니까? 교관의 지시 사항이 들리지 않습니까?”
다 들리고, 왜 그러는지도 잘 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잔인한 처사가 아닐까.
나는 한 가닥 희망을 놓치지 않으며 말했다.
“잘 못 들었습니다.”
강기오 중사는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싸늘한 표정으로 낮게 말했다.
“잘 못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관은 훈련병에게 단독군장을 착용하고 총기 소지해서 연병장으로 나오라고 말했습니다.”
한창 치킨을 뜯는 데 열중하던 소대원들 역시 싸늘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강기오 중사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치킨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나는 이대로 치킨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성을 잃은 척하며 버티자 마음먹었다.
“교관님께서는 분명 주말 동안 자유 시간을 준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강기오 중사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래서 교관은 약속대로 총검술 우승자인 161번 훈련병이 소속된 소대에 자유 시간을 부여했습니다. 이렇듯 교관은 약속을 지켰는데, 훈련병은 약속을 잊은 것처럼 보입니다. 분명 32강 안에 들지 못하면 수료식 전까지 훈련병은 일체의 자유 시간 없이 교관에게 일대일 총검술 지도를 받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강기오 중사의 말에 나는 순간 머리가 멍해지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더욱 냉랭한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훈련병, 대답 안 합니까?”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3분 주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나머지 인원은 푹 쉴 수 있도록.”
강기오 중사는 화가 난 모양인지 경례도 받지 않은 채 생활관을 나갔다.
나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들고 있던 닭다리를 박스에 던지듯 내려놓고 허겁지겁 장구류를 착용하고 연병장으로 달려 나갔다.
죽을힘을 다해 강기오 중사 앞에 도착하자 그는 손목에 찬 시계를 물끄러미 확인하더니,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 모습이 마치 지옥에서 온 사신처럼 느껴졌다.
“훈련병.”
“173번 훈련병, 최대길!”
“정확히 3분 21초 걸렸습니다. 교관이 분명 3분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교관은 훈련병의 정신 상태가 교육에 적합하지 않아 보입니다. 교육에 앞서 썩어 빠진 정신 상태부터 고칠 수 있도록 합니다. 뒤쪽에 축구 골대가 보일 겁니다. 축구 골대 찍고 돌아오는 데 3분. 몇 분?”
“3분!”
“뛰어!”
“뛰어!”
나는 미처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또다시 전력으로 달려야 했다.
단독 군장은 그다지 거치적거리지 않는데, 총을 들고 뛰려니 죽을 맛이었다.
점점 느려지는 다리를 달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지만, 결국 강기오 중사가 부여한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했다.
강기오 중사는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나를 내려다보며 냉정하게 말을 꺼냈다.
“4분 12초. 시간 초과. 이번엔 4분 안에 들어옵니다. 뛰어!”
“헉, 허억… 뛰어!”
처음보다 1분 늘었지만, 그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가슴이 터질 정도로 숨이 가쁘기 때문이었다.
다시 골대를 찍고 돌아왔을 때, 당연하게도 처음 기록보다 훨씬 더 느려졌다.
“5분 33초. 시간 초과. 이번엔 6분입니다. 뛰어!”
“허억, 허억… 뛰어!”
강기오 중사는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이번엔 2분의 시간을 더 부여했다.
하지만 심장이 터질듯이 뛰고 다리근육도 딱딱하게 부풀어 올라서 전력 질주는커녕, 한 걸음을 옮기는 것 자체가 고행이었다.
마음 같아선 들고 있는 총을 냅다 던져 버리고 싶었다.
“6분 55초. 정신 차립니다, 훈련병. 적의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 중에도 지쳤다고 설렁설렁 달릴 겁니까? 이번엔 7분 부여하겠습니다. 뛰어!”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서 있는 게 고작이지만, 그는 독사라는 별명처럼 일체 봐주는 게 없었다.
“뛰어!”
이미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땀에 온몸이 축축했다.
설상가상으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내리쬐는 땡볕에 짜증이 솟구쳤다.
‘이게 무슨 교육이야, 그냥 괴롭히는 거지! 시발 새끼, 개새끼!’
설마 그 말이 들리기라도 한 걸까?
내가 마음속으로 욕을 퍼붓고 있을 때, 망할 독사 새끼가 마음의 소리를 듣기라도 했는지 나를 불렀다.
“훈련병, 원위치.”
“하아, 하아… 원위치.”
“복명복창 안 합니까? 뛰어!”
“뛰어…….”
“원위치!”
“원위치…….”
“목소리가 작습니다. 목소리 패기 있게 안 냅니까?”
강기오 중사는 아무 감정도 묻어나지 않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스멀스멀 퍼지는 그의 악의를 느낄 수 있었다.
독사. 그것도 시퍼런 독액으로 번들거리는, 날카로운 독니를 꺼낸 놈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열망을 떠올렸다.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는데,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이 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말없이 내 시선을 받아내던 강기오 중사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교관을 죽이고 싶습니까?”
‘헉! 어떻게 알았지?’
나는 깜짝 놀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입을 열면 나도 모르게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기오 중사는 마치 내 대답을 듣기라도 한 듯이 말을 이었다.
“훈련병의 실력으론 절대 나를 죽일 수 없습니다. 단언컨대,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다고 확신합니다.”
분한 마음에 손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속으로 참을 인 자를 새겼다.
“포기하고 싶으면 포기하겠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3주 동안 버틸 자신이 없다면, 미리 포기하도록 합니다.”
비웃는 듯한 강기오 중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숙여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한마디를 더 꺼냈다.
“뭐, 지금이 아니더라도 곧 포기하게 될 겁니다.”
순간, 저 재수 없는 놈의 콧대를 꺾어버리고 싶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가 차갑게 식자, 나는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포기 안 합니다.”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봅시다.
강기오 중사는 독기 오른 내 모습에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뛰어!”
“뛰어!”
그렇게 나는 점심시간 전까지 수없이 연병장을 가로질러야 했다.
강기오 중사는 정확하게 식사 집합 전까지 나를 달리게 만들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생활관에 도착한 나는 쓰러지듯 침상에 엎어졌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땀에 푹 찌든 내 모습을 본 소대원들이 걱정 어린 말을 건넸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이미 수거해 갔는지, 한입 먹어보지도 못한 치킨 박스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입안이 바짝 말라서 별로 아쉽지 않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래도 먹고 싶었는데…….’
그때, 식사 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그러자 차지혁이 나를 부축하기 위해 다가왔다.
“가자, 밥 먹으러.”
“…예, 형님.”
다리가 부들거려서 걷기는커녕 일어서기도 힘들었다.
내 옷은 땀으로 잔뜩 젖었지만, 차지혁은 전혀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부축을 받으며 식당으로 가는 동안, 차지혁은 사람들 몰래 치유 능력을 써줬다.
그래서 식당에 도착했을 때에는 체력이 완전히 회복됐고, 근육통도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언제 입맛이 없었냐는 듯 식욕이 폭발했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을 느끼며 평소보다 두 배는 많은 식사를 해치운 후에야 겨우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생활관으로 돌아온 나는 아주 잠시 잠깐 꿀 같은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식사 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생활관 문이 열리며, 꿈에도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173번 훈련병, 지금 바로 연병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합니다. 3분 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상태라 오전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강기오 중사는 내가 도착하자 시간을 체크하더니,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야 정신 무장이 제대로 된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부터 총검술을 지도하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초부터 제대로 다질 수 있도록 합니다. 찔러 동작 1,000회 반복합니다. 실시.”
그 순간, 나는 숫자를 잘못 들은 게 아닌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실시.”
“실시! 하나, 둘.”
그렇게 반복 찌르기가 200회가 넘어갈 무렵, 슬슬 팔근육에 무리가 왔다.
“…213, 214.”
“그만.”
옆에 서서 가만히 나를 지켜보던 강기오 중사가 돌연 훈련을 중지시켰다.
“점점 자세가 흐트러집니다. 정신 똑바로 안 차립니까?”
말을 마친 그는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설마… 아니겠지?’
“골대 찍고 옵니다. 시간은 3분. 뛰어!”
“뛰, 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