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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총검술 토너먼트 본선.

연병장에는 사각형으로 총 여덟 개의 경기장이 만들어졌다.

128명의 본선 진출자는 열여섯 명씩 총 여덟 개 조로 나뉘어졌다.

우리 소대에선 나와 차지혁만 본선에 진출하게 됐다.

넓게 만들어진 관람석에는 심사위원 외에도 타 부대에서 온 수많은 장교들이 자리를 채웠다.

그 숫자가 족히 백 명은 넘을 것으로 보였다.

심사 과정에서 흘러나온 김태웅 소령과 강 중령의 대화로 미뤄 짐작할 때, 우수한 훈련병을 차출해 가기 위한 목적일 게 분명했다.

김태웅 소령도 관람석 한쪽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워낙 덩치가 커서 존재감이 큰 탓도 있지만, 김태웅 소령의 주위엔 마치 일부러 비워놓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본선이 시작되자, 1조에 속한 나는 평범한 체구의 훈련병과 마주 섰다.

“차려 총!”

심판의 구령에 서로가 자세를 갖췄다.

나는 예선 때와 마찬가지로 오른손을 내민 자세를 고수했다.

그게 더 자연스럽다면 굳이 교본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관객석이 한차례 술렁거렸다.

“저게 뭐야? 왼손잡이인가?”

“총검술에도 사우스포가 있나? 혹시 교범이 바뀐 적 있어?”

“글쎄요. 저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역시나 내 자세가 평범하지는 않은지, 점점 내 쪽으로 향하는 시선들이 많아진다는 걸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많은 시선이 쏟아지자,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이며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른 출전자가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군중의 시선이 모조리 옮겨가고 말았다.

“차지혁이네?”

“오오, 차지혁! 실물로 보니 화면보다 훨씬 잘생겼군.”

“저 친구는 내가 데려갈 테니, 다들 포기하게.”

“너무하시는 거 아니십니까? 저도 포기 못합니다.”

“이것 봐, 차지혁은 내가 먼저 찍었네!”

“나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식간에 관람석이 크게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내 예측이 틀린 건 아닌지 고민해 봤다.

저런 반응을 보면 우수한 병사를 뽑으러 온 게 아니라 오로지 차지혁을 차지하기 위해 모인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 의심은 차지혁의 경기가 시작되자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미 몇몇 경기장에서 시합이 진행되는 중이지만, 관람석 사람들은 차지혁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울 만도 한데, 차지혁은 진지하게 자신의 시합을 치르고 있었다.

역시 천만 배우에게 이 정도 관심은 당연한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

“시작!”

심판의 구령과 동시에 내 시합이 시작됐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상대는 어느새 코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엇!”

나는 급히 뒤로 물러났지만,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팔을 허용해 1점을 먼저 내주고 말았다.

“청, 1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거리를 벌린 후,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경계를 취하자 섣불리 공격하지 않고 빈틈을 찾기 위해 눈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집중하자, 집중! 예선에 들었다고 끝이 아니야.’

나는 이미 오전에 한상혁을 상대로 대전을 치뤄본 경험이 있기에 유리한 점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긴장이 덜 된다는 점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침착하게 상대의 움직임을 살펴보니, 아이 실드 안쪽으로 김이 서렸다 사라지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시합이 주는 긴장감 탓에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듯싶었다.

문득 어릴 적에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지 마라.

공격의 시작은 언제나 상대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게 먼저다.

진짜 공격에 앞서 상대를 흔들어놓아야 한다.



‘속임수라…….’

나는 슬쩍 오른발을 앞으로 떼며 당장에라도 공격할 듯 상체를 내밀었다.

그러자 상대는 총검을 좌에서 우로 크게 베며 물러섰다.

움직임이 크고 경직된 게, 긴장한 게 확실했다.

하지만 내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그는 뒤늦게 기만전술에 놀아난 걸 깨달은 듯했다.

화가 치밀어 오른 탓인지, 상대는 치켜든 총을 몸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보나마나 찌르기 동작일 게 빤했다.

‘그걸 기다렸다!’

나는 상대가 총을 찌르는 타이밍에 맞춰 앞으로 내민 오른발을 축으로 왼발을 뒤로 빼 몸을 회전시키며 내 총으로 상대의 총신을 눌렀다.

그러자마자 바로 눈앞에 보이는 상대의 어깨를 내 왼쪽 어깨로 강하게 밀었다.

“어?”

순식간에 균형을 잃은 상대는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졌고, 나는 그대로 가슴과 머리에 한 번씩 공격을 성공시켰다.

삐이이!

두 곳의 센서가 동시에 울리며 경기가 종료됐다.

아주 자연스러운 연계 동작으로 상대의 목과 심장을 공격한 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꽤 만족스러운 움직임이었다.

“홍, 6득점. 승리!”

“아자!”

상대와 악수를 나눈 뒤 경기장을 내려왔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지혁에게 쏠려 있었다.

하지만 예외인 사람도 있었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김태웅 소령은 그 와중에도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CHT 부대를 떠올리자, 승리의 기쁨마저 순식간에 사라질 정도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나는 애써 김태웅 소령의 시선을 피하며 대기 장소로 향했다.

‘이제 64강이야. 한 번만 더 이기면 32위 안에 들 수 있어.’

강기오 중사와의 콧대를 납작 눌러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절로 헤실헤실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관람석에서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차지혁이 이겼다!”

“와, 정말 잘하네.”

“상대방이 손쓸 새도 없이 쓰러뜨렸어.”

“더욱 탐나는데? 무조건 우리가 데려가야겠어.”

“무슨 소리입니까. 우리가 점찍어뒀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차지혁의 승리는 굳이 확인해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쏟아지는 관심 속에서 차지혁이 내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헬멧을 벗으며 자리에 앉았다.

“대길아, 64강 진출 축하해.”

“감사해요, 형님. 전 형님이 무조건 이길 줄 알았어요.”

“아니야.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야.”

“에이, 겸손이 지나쳐도 안 좋대요. 제가 여기까지 온 게 다 형님 덕분이니까, 자랑스럽게 여기세요.”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예선도 통과하지 못하고 구석에 처박혀 본선 경기를 구경만 했을 터다.

“하하하, 내가 해준 게 뭐 있다고. 다 대길이 네가 열심히 한 덕분이야.”

“아무튼 감사해요. 이제 한 번만 더 이기면 독사와의 내기에서 이길 수 있어요.”

내가 소대원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자, 따가운 눈빛이 느껴졌다.

큰 부상을 당한 건 아닌지, 한상혁은 소대원들 사이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슬쩍 웃어 보이고는 입 모양만으로 말을 전달했다.



― 눈 깔아, 인마.



내 뜻을 이해했는지 한상혁이 미간을 더욱 좁히며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사람이 웃으면서 얘기하면 만만해 보이는 모양이다.

나는 인상을 팍 구기며 눈알을 위아래로 부라리며 입을 뻐끔거렸다.



― 약속을 잊은 건 아니지? 이제부터 내가 네 형님이다.



한상혁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대길아, 뭐 해?”

“아무것도 아니에요, 형님. 그나저나 이제 1차전 시합은 다 끝났나 보네요.”

“그러네.”

1차전 마지막 시합에서 승리한 병사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기다리자, 강기오 중사가 다가와 2차전에 진출한 64명의 대진표를 공개했다.

여덟 명씩 총 여덟 개 조.

나는 이번에도 1조고, 차지혁은 2조였다.

[잠시 후, 2차전을 진행하겠습니다. 2차전에 진출한 훈련병들은 경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합니다.]

관람석에서 방송이 나오자, 강기오 중사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바로 지시를 내렸다.

“5분 후 1조 경기부터 시작합니다. 1조에 속한 훈련병들은 장비 착용하고 일어섭니다.”

나는 헬멧을 눌러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차지혁이 내 종아리를 툭 치며 응원을 건넸다.

“대길아, 한 번만 더 이기면 32강이야. 여기까지 왔는데, 발악을 해서라도 꼭 이겨.”

“네, 형님. 꼭 이길게요!”

나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다른 1조 훈련병들을 따라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경기장에 도착하자, 조교들은 대전표대로 훈련병들을 나눴다.

이번에 상대하게 된 상대는 어림잡아도 180㎝ 후반은 되어 보였다.

일명 2중대의 거인. 조금 가물가물하긴 한데, 아마 이름이 조달영이라고 들은 기억이 났다.

키가 크다는 건 상대적으로 나보다 먼 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자 총을 쥔 손에 땀이 고였다.

그때, 심판을 맡은 강기오 중사가 우리를 경기장의 중앙으로 불렀다.

“훈련병, 입장.”

“입장!”

강기오 중사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짧고 간결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강기오 중사가 심판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배가됐다.

이번에 이기느냐 지느냐에 따라 남은 기간 동안의 일과 시간이 달라질 터였다.

솔직히 말이 지도지, 그 과정에서 엄청난 얼차려가 부여될 것이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반드시 이긴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기오 중사는 빠르게 경기를 진행했다.

“차렷, 상호 간의 예의.”

“충성!”

“충성!”

“바로. 위치로.”

“위치로!”

“차려 총.”

“차려 총!”

내가 자세를 잡자 다시 한 번 관람석에서 수군거림이 흘러나왔다.

“어? 사우스포다. 저 녀석도 1차전을 통과했나 본데?”

“그러게. 또 나왔네.”

“어디, 이번엔 제대로 구경해 보자.”

관람석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강기오 중사는 곧장 구령을 내렸다.

“시작!”

신호가 떨어졌지만 나와 조달영은 먼저 움직이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차분히 탐색에 들어간 나는 1차전 상대와 달리 조달영의 아이 실드에 김이 서리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후읍, 후우…….”

호흡을 고르며 조달영의 눈을 마주 바라보며 기 싸움을 걸었다.

그러자 조달영은 내 시선을 피하기라도 하듯 먼저 움직였다.

앞으로 달려 나오는 게 팔을 뻗어 총을 찔러 들어올 것처럼 보였다.

나는 즉시 조달영의 총신을 눌러 제치려 자세를 잡았으나, 그는 우뚝 걸음을 멈춰 섰다.

‘내 반응속도를 체크하려는 건가?’

나는 천천히 거리를 좁히며 다가갔다.

그러고 나서 간신히 공격이 닿을 위치까지 접근하자마자 오른발을 앞으로 슬쩍 내밀며 상체를 숙였다.

그러자 그 순간 조달영이 재빨리 뒤로 물러섰고, 나는 즉시 동작을 멈추며 내민 오른발을 당겼다.

조달영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만약 그가 막거나 마주 찔러 들어왔다면 서로 격돌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먼저 공격하기보다는 내가 공격하는 것을 반격하기 위해 준비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대치만 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유효타를 먹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그 순간 조달영이 슬쩍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상대의 의도를 구분할 수가 없었다.

조달영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던 순간, 조달영은 왼발로 땅을 박차며 빠르게 달려 나와 총을 내질렀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방어 자세를 잡았다.

‘이런! 깊은데다 너무 빨라!’

조달영의 총신을 제쳐 비켜내기엔 그의 공격에 실린 힘이 상당해 보였다.

나는 작전을 바꿔 급하게 오른쪽으로 몸을 틀며 오른발을 뒤로 뺐다.

그러자 조달영은 왼손으로 쥔 총신을 놓으며 한 발 더 내디디며 오른팔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큭!”

가속을 받아 조금 더 뻗어 나온 조달영의 공격이 코앞을 스치듯 뻗어나가는 게 보였다.

그의 총구에 달린 뭉툭한 막대가 정말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헬멧에 살짝 닿았다.

만약 실전이라면 작은 찰과상 정도에 불과했겠지만, 보호구 센서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치명상을 판정을 내렸다.

“청, 3점.”

“젠장!”

만약 조금만 고개를 틀었다면 센서가 울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후회해 봤자 이미 지난 일이었다.

그럴 바에는 얼른 마음을 정리하고 실수를 만회하는 것이 우선이다

마침 조달영의 상체는 앞으로 숙여진 상태였다.

나는 몸을 옆으로 튼 자세 그대로 총신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가 개머리판으로 조달영의 헬멧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퍼억!

순간, 찌릿한 진동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제대로 들어갔다!’

한상혁은 방금 이 공격으로 의식을 잃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상대는 큰 충격을 받을 게 확실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게 머리를 가격당한 조달영 역시 크게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뭐야, 저게?”

“저런 건 처음 보는데?”

“개머리판 카운터인가?”

“하지만 저건 득점으로 인정이 안 되잖아.”

“그래도 잘 싸우잖아.”

관람석에서도 결과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무방비 상태의 조달영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활짝 열린 가슴을 향해 총을 쭉 찔러 들어갔다.

심장에 한 방, 그 후에 곧장 머리나 목을 찌르면 내 승리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가 32위 안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조달영은 한차례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그러더니 곧장 공격의 궤적을 읽어낸 듯 얼른 자세를 낮추며 내 무릎을 걷어찼다.

“억!”

불의의 일격에 당한 나는 바로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넘어지고 말았다.

급히 몸을 뒤집은 순간, 조달영과 시선이 마주쳤는데…….

그의 눈은 번쩍이며 푸른 안광을 쏟아내고 있었다.

‘헌터라고?!’

김태웅 소령처럼 사람을 짓누를 정도의 박력은 없지만, 심장이 섬뜩할 정도의 싸늘한 살기가 느껴졌다.

‘이런, 젠장!’

그런 후, 내가 마지막으로 본 건 내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개머리판이었다.

뻐억!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