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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강 중령은 김태웅 소령의 발언에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 치며 반문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쉽게 말해서 둘이 싸워서 이기는 쪽을 합격시키자는 겁니다. 어차피 여기 모이신 분들 모두가 강한 병사를 선점하기 위해 오신 거 아닙니까? 혹시 행정반의 잔업을 처리할 병사가 필요하신 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얼마든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

강 중령은 김태웅 소령의 건방진 태도를 더는 지켜볼 수가 없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김 소령, 말이 심한 거 아닌가!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석했을 뿐이네. 아무리 CHT 소속이라고 이따위로 막나가도 되는 건가?”

김태웅 소령은 시뻘겋게 얼굴을 붉히는 강 중령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살벌한 눈빛으로 다시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강 중령님, 제가 지금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김태웅 소령의 하극상에 심사석 일대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 순간만큼은 떠들기 좋아하는 훈련병들도 눈치껏 입을 조용히 닫았다.

군대란 엄격한 계급사회다.

아무리 소속 부대가 다르더라도, 상관에게 대들거나 항명하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런데 김태웅 소령은 상급자인 강 중령을 전혀 상관이라 생각하지 않는 듯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 중 그 누구도 김태웅 소령을 제지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이번 일에 얽히고 싶지 않다는 듯 두 사람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허, 이번 일은 반드시 군사법원에 회부할 걸세!”

강 중령이 질 수 없다는 듯 발악하지만, 김태웅 소령은 그 커다란 몸집에서 아지랑이 같은 것을 피워 올리며 강 중령을 압박했다.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누구의 목이 날아갈지는 빤하지만 말입니다.”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에 있는 심사위원들의 계급이 어떻든 가장 강한 사람은 바로 김태웅 소령이라는 것을.

호랑이, 저 남자는 호랑이였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 그 자체.

김태웅 소령에 비하면 나머지 심사위원들은 초식동물처럼 보일 정도였다.

독사라 불리며 훈련병들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던 강기오 중사 따위는 김태웅 소령 옆에 세우면 지렁이처럼 느껴질 터였다.

꿀꺽.

기에 눌린 강 중령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그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자, 김태웅 소령은 나지막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의가 있다면 어서 말씀하십시오.”

“이, 이익…….”

어떻게든 발악해 보려 노력했으나, 결국 강 중령은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러자 김태웅 소령은 더욱 기세를 끌어 올려 아지랑이 같은 기운을 넓게 퍼뜨렸다.

그 기운은 심사장에 모인 이들을 감싸고도 남았다.

나는 그 기운과 닿자마자 공기가 무거워지며 온몸을 짓누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숨이 막혀 서 있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 되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의는 없는 모양이군요.”

“이, 이…….”

강 중령은 김태웅 소령의 기운을 애써 이겨내며 말을 꺼내려 했으나, 헛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 준비가 되는 대로 시작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김태웅 소령이 기운을 거둬들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무겁던 공기가 다시 가벼워졌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으나, 무릎에 힘을 줘 간신히 버텼다.

그러고 나서 다시 김태웅 소령을 바라봤는데,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올리며 눈을 반짝였다.

“대련 준비 서둘러.”

그때, 강기오 중사가 멍하니 서 있던 조교들을 불러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이어서 갑작스런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라 주변을 연신 두리번거리는 우리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대련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각자 자리로 돌아가도 좋다.”

잠시 후, 교보재 창고로 달려간 조교들이 심사장으로 돌아와 우리 앞에 보호 장비를 내려놓았다.

거창하고 비싼 물건이 아니라, 목 아래까지 덮는 헬멧과 투박해 보이지만 튼튼해 보이는 조끼,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긴 장갑이 전부였다.

한상혁에게 주어진 장비는 파란색이고, 나는 빨간색이었다.

“본선에서 사용될 훈련용 장비다. 어서 입도록.”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김태웅 소령은 강 중령 대신 훈련을 주관하기로 마음먹은 듯싶었다.

강 중령이 인상을 잔뜩 구긴 채 불만을 드러냈지만, 이미 한 번 호되게 당한 후라 말은 못하고 속으로 화를 삭이는 게 빤히 보였다.

조교들의 도움을 받아 장비를 착용한 우리는 총구 끝에 대검 대신 솜이 달린 뭉툭한 막대를 달았다.

“심판을 내가 직접 보도록 하겠다. 룰은 아주 간단한데, 목이나 머리처럼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는 부위는 3점, 그 외엔 전부 1점이다. 먼저 5점을 득점하는 쪽이 승리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럼 서로 마주 보고 서라.”

우리 둘이 지시한 대로 준비를 마치자, 김태웅 소령은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지금부터 너희는 서로 죽여야 하는 적이다. 내가 죽지 않으려면 상대를 죽여야 한다. 상대를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도록. 알겠나?”

“알겠습니다!”

한상혁은 곧장 대답했으나, 나는 멈칫하며 답변을 꺼내지 못했다.

“173번 훈련병은 왜 대답이 없나?”

“173번 훈련병, 최대길! 죄송합니다!”

“그럼 시작하지. 차려 총.”

“차려 총!”

총검술 기본자세를 취하자 한상혁은 왼발이, 나는 오른발이 앞으로 나왔다.

손 역시 마주하듯 왼손과 오른손이 앞으로 나와서 마치 거울을 보는 듯했다.

“시작!”

소령의 구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한상혁은 기다렸다는 듯 내 가슴을 노리고 팔을 쭉 뻗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일격에 내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나는 황급히 오른쪽으로 몸을 움직이며 총을 좌측으로 휘둘러 한상혁의 찌르기를 밀어내려 했지만, 가슴에 그만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퍼억!

“컥!”

나는 그만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내 가슴에 달린 센서가 빛을 내면서 요란하게 울려 댔다.

삐이이!

“청, 선취 3점!”

“끄응.”

갑옷 위로 맞았음에도 몸으로 전해지는 충격이 상당했다.

욱신거리는 통증에 숨을 쉴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엉덩이가 아픈 건 덤이었다.

하지만 한상혁은 마무리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쓰러진 날 향해 주저 없이 달려들었다.

“죽엇!”

한상혁은 총을 비스듬하게 들어 내 머리를 향해 사정없이 찔렀다.

미처 일어설 틈도 없이 나는 오른쪽으로 몸을 비틀면서 왼팔을 들어 녀석의 총을 쳐냈다.

“야, 이 비겁한 자식아! 넘어졌는데 공격하는 건 반칙 아니냐!”

삐이이!

순간, 내 왼쪽 어깨에 달린 센서가 울렸다.

“하, 넌 적한테도 자비를 베풀 거냐, 이 등신아!”

한상혁이 재차 달려들며 총검을 찍으려 하자, 나는 재빨리 왼발로 바닥을 밀며 오른발을 들어 힘차게 녀석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억!”

갑작스런 공격에 한상혁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틈에 잽싸게 몸을 일으켜 세운 나는 김태웅 소령을 바라봤다.

“쓰러져 있는 걸 공격하는 건 반칙이지 않습니까?”

“청, 1점 추가.”

기대와 달리 돌아온 대답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불만스런 표정을 지으며 김태웅 소령을 바라보자, 그는 심드렁하게 말을 꺼냈다.

“쓰러진 상대를 공격해서 안 된다는 말을 언급한 적은 없다. 자네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적이 넘어지면 다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 줄 텐가? 시작 전에 분명히 말했다. 죽지 않으려면 적을 죽여야 한다고.”

젠장,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건 나뿐인 모양이다.

순간, 강기오 중사가 총검술을 배워도 살해당할 거라며 내게 한 말이 떠올랐다.

이를 악물고 한상혁을 살피자, 그는 어느새 다시 일어나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 나를 바라봤다.

한상혁의 시선에서 느껴진 건 나를 향한 강한 적대감이었다.

‘좋아,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똑같이 해주마.’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른 분노가 머리를 뜨겁게 달궜다.

“최대길!”

그 순간, 한상혁이 상체를 숙인 채 총을 몸 쪽으로 당겨 달려왔다.

적의 심장을 노리는 찔러 자세의 예비 동작이 분명했다.

녀석은 관절 부위를 타격해 1점만 더 득점해도 승리할 수 있지만, 확실하게 끝장을 보겠다는 듯 내 심장을 노렸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한상혁의 발놀림을 살폈다.

오른발이 앞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다음에는 왼발을 쭉 뻗으며 파고들어 길게 찔러 동작을 취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한상혁이 왼발을 뻗으며 총검을 찔러왔다.

나는 찔러 들어오는 총을 얼른 위로 쳐 올린 뒤, 텅 빈 녀석의 복부를 왼발로 걷어찼다.

이미 4점을 내준 상황이니, 내가 이기려면 5점을 연달아 따야 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한상혁을 쫓아가 총을 내질렀다.

내 총의 끝 부분이 한상혁의 울대를 강하게 가격했다.

“컥!”

한상혁은 총신을 잡고 있던 왼손으로 자신의 목을 가렸다.

삐이이!

“홍, 3점!”

이제 남은 건 2점.

나는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한상혁을 쫓아가며 왼발을 축으로 돌려차기로 녀석의 허리를 걷어차려 했다.

그러자 한상혁은 발차기를 맞아주고, 왼팔로 내 다리를 단단히 붙들었다.

내가 중심을 잡기 위해 비틀거리자, 한상혁은 몸을 숙이며 박치기를 시도했다.

“크윽!”

나는 다시 뒤로 넘어지고 말았고, 마무리할 기회를 마주한 한상혁은 눈이 벌게진 채 내 가슴을 향해 총을 찔렀다.

‘이렇게 질 순 없어!’

이를 악문 나는 재빨리 왼쪽으로 굴러 한상혁의 찌르기 공격을 피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몸을 일으키는데, 녀석이 휘두른 개머리판이 눈앞에 보였다.

얼른 왼쪽으로 고개를 꺾어 피했으나, 한상혁의 오른팔이 헬멧을 밀어 쳤다.

나는 골이 흔들리는 걸 참으며 될 대로 되란 식으로 왼팔을 쭉 뻗어 올리며 개머리판으로 한상혁의 머리를 가격했다.

빠악!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타격음과 함께 한상혁이 비틀거리다 뒤로 넘어졌다.

나는 득점을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막대로 친 게 아니라 그런지 센서가 울리지 않았다.

김태웅 소령도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서서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한상혁은 의식을 잃은 건지 쓰러진 상태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거, 의무대로 보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며 공격하길 망설이자, 김태웅 소령이 차갑게 말했다.

“뭐 하나, 어서 마무리하지 않고. 적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참인가?”

“아닙니다!”

“그럼 확실하게 마무리하도록. 상대가 몬스터라면 당장 달려들어 자네의 목을 뽑아버렸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나는 쓰러진 한상혁을 향해 다가가 그의 가슴을 살짝 찔렀다.

삐이이!

“홍, 3점. 홍, 승.”

김태웅 소령이 짤막하게 판정을 내린 뒤, 강 중령을 돌아봤다.

“제 안목이 옳은 모양입니다. 합격자는 173번 훈련병으로 하겠습니다.”

강 중령은 벌게진 얼굴로 이를 악문 채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173번 훈련병, 합격!”

“173번 훈련병, 최대길! 감사합니다!”

이겼다.

이제 한상혁은 약속대로 나를 형이라 부르며 절대 복종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쁜 마음보다 걱정스런 마음이 앞섰다.

그걸 김태웅 소령도 느꼈는지 질문을 던졌다.

“왜? 동기를 두들겨 패서 정신을 잃게 만든 것에 죄책감을 느끼나?”

“아닙니다. 실전이라면 제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음, 완벽한 승리를 거두지 못해 아쉬운 모양이군. 하지만 걱정 말게. 자네는 제법 전투 센스가 있어 보이니, 우리 교육대 정예 교관들의 손을 거치면 훌륭한 병사가 될 수 있을 거야.”

김태웅 소령의 말에 내가 CHT 부대 지원자라는, 정말 잊고 싶은 현실이 떠올랐다.

그런 내 속도 모른 채 그는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이곳에서 받는 훈련은 시시하지. 하지만 후반기 교육에 합류하면 흥미로운 훈련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기대해도 좋다. 용맹 정진해 CHT 부대의 정예 용사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지.”

“…감사합니다.”

나는 애써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차마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었다.

‘그 정예 용사라는 거, 안 하면 안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