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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텅텅 빈 생활관에 부동자세로 앉은 나와 한상혁은 강기오 중사의 명령을 기다렸다.

“전투복으로 환복하고 대기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독사가 자리를 비우자, 우리는 그 즉시 전투복을 갈아입었다.

행여 강기오 중사가 바로 돌아올세라, 환복을 마친 나는 다시 침상 끝에 각을 잡고 앉아서 대기했다.

반면, 한상혁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는 티를 팍팍 드러내며 준비를 마쳤다.

누가 지켜보는 것도 아니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침묵.

어색하고 긴 정적이 흘렀다.

나도 그렇지만, 한상혁도 알 터였다.

우리는 이제 좆 됐다는 것을.

그때, 한상혁이 소리 낮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엿 같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하, 기가 찬다. 아주 남 탓하는 게 몸에 배었네. 새끼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담배는 너 혼자 피웠고, 나는 너 때문에 피 본 거잖아.”

“뭐? 애초에 네가 나를 지목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인데?”

“네가 한 짓을 생각해 봐. 나라고 당하기만 하라는 법 있어?”

“하, 그래서 이렇게 치졸하게 복수를 했다?”

“복수는 무슨. 이럴 줄 알았다면 내가 담배 피운다고 할 때 말렸어야지.”

“이 미친놈아, 내가 말리면 넌 들었을 거란 말이냐?”

저벅저벅.

그 순간, 밖에서 들려오는 군화 소리에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다물고 자세를 바로 했다.

하지만 발소리는 멈추지 않고 우리 생활관을 그냥 지나쳐 갔다.

가슴이 콩닥거리는 게 정말 죽을 맛이었다.

차라리 그 자리에서 바로 얼차려를 받고 끝났으면 나았을 텐데, 이런 긴장 속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건 정말 피를 말리는 고통이었다.

“아, 진짜 좆 됐네.”

한상혁이 인상을 팍 구긴 채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긴장이 돼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야, 걱정 마. 설마 죽기야 하겠냐? 연병장 스무 바퀴 정도 돌고 말겠지.”

그때, 방금 전에 들은 것보다 더 묵직한 전투화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올게 왔다.

정면을 응시하며 자세를 고쳐 잡는 순간, 생활관 문이 벌컥 열렸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정면만을 주시했다.

“여기 앉아 있는 훈련병들, 완전군장 싸는 법 알려줘.”

“네, 교관님.”

생활관으로 들어온 건 두 사람이었다.

‘잠깐, 뭐? 완전군장이라고?’

나는 곁눈질로 생활관 입구를 살폈다.

마침 처음 보는 조교가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훈련병들은 완전군장을 메고 연병장으로 나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강기오 중사는 지시를 내린 뒤 다시 생활관을 나갔고, 우리는 조교의 지시에 따라 완전군장을 쌌다.

여벌의 전투복과 속옷, 양말 등을 모두 집어넣고, 반합과 군화까지 모조리 싼 다음, 침낭을 돌돌 말아 올려 끈을 맸다.

말이 쉽지, 군장을 싸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조교는 집어넣으라는데, 아무리 힘을 줘도 군화나 반합은 잘 들어가지 않았다.

상황은 한상혁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군장을 절반도 싸지 못하고 헤매는 중이었다.

“똑바로 합니다. 언제까지 시간을 질질 끌 겁니까!”

하지만 우리를 갈군다고 해서 완전군장이 뚝딱 생겨나는 건 아니었다.

결국 조교의 도움을 받아 완전군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난번에 대충 듣기로는 완전군장의 무게가 30㎏ 정도 된다고 들었는데, 실제론 그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다.

‘이런 걸 메고 연병장으로 나오라니!’

“이제 연병장으로 나갑니다.”

조교의 지시에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뒤로 쏠린 몸을 일으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와 상혁이 한참을 낑낑대자, 보다 못한 조교가 손을 잡아주었다.

그제야 우린 겨우 몸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어깨와 허리를 짓누르는 군장의 무게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빨리빨리 움직입니다.”

조교의 재촉에 한 발을 내딛자마자, 몸이 휘청거리면서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균형 똑바로 잡습니다. 하체로 버티는 겁니다, 훈련병.”

“네, 알겠습니다!”

이를 악물고 대답하자, 조교는 방탄 헬멧을 건넨 후에 총기 보관함에서 총을 꺼냈다.

‘아니, 지금도 무거운데 총까지 들어야 돼?’

“173번 훈련병, 최대길! 총기 번호 009119, 009119. 이상입니다!”

“180번 훈련병, 한상혁! 총기 번호 009127, 009127. 이상입니다!”

총까지 받아 든 나와 상혁은 조교의 뒤를 따라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이제 막 훈련을 마치고 돌아왔는지, 다른 소대 훈련병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됐다.

“뭐야, 저거?”

“완전군장 메고 어디 가는 거지?”

“어? 쟤, 3소대 구멍 아니야?”

“크크크, 병신 새끼. 오늘도 무슨 사고 쳤나 보다.”

“그런데 옆에 있는 건 또 누구야?”

우리를 보며 훈련병들이 수군거리자 앞서 걷던 조교가 호통을 질렀다.

“모두 조용히 하고, 생활관으로 신속히 들어갑니다!”

그 사나운 기세에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고 생활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무겁게 걸음을 옮겨 연병장에 도착해 보니, 단상 위에 강기오 중사가 마치 염라대왕처럼 서 있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더니, 일체의 자비도 없이 냉정하게 말했다.

“훈련병들은 교관의 지시를 어기고 무단으로 자리를 이탈했습니다. 또한 교관의 눈을 피해 흡연 행위를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모자라 상급자에게 허위 보고까지 했습니다.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위 세 가지 사항은 원래대로라면 군기 교육대나 영창을 보내야 합니다. 하지만 훈련병이라는 신분을 고려해 완전군장을 메고 연병장 열 바퀴를 도는 것으로 처벌을 대체하겠습니다.”

그의 말은 내게 괴롭힐 수 있는 상대를 쉽게 놓아주고 싶지 않다는 의미처럼 들렸다.

“열 바퀴를 마친 인원은 생활관으로 복귀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포기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포기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내일 다시 열 바퀴를 돌아야 합니다. 이는 성공하기 전까지 계속될 겁니다.”

나는 멍하니 강기오 중사를 올려다보다가 한상혁을 바라봤다.

그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린 채 강기오 중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뛰어!”

“뛰어!”

“갓!”

연병장 열 바퀴.

거리로 따지면 8㎞에 불과하다.

매일 아침마다 구보로 뛰는 거리가 2㎞이니, 네 번만 반복하면 된다.

하지만 맨몸으로 뛰어도 완주하기 힘든 거리를 30㎏ 완전군장을 메고 뛴다는 것은 내게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뛰어야지.’

나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처음엔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사람의 몸이란 게 참 희한한 게, 처음에는 어깨가 부서질 듯 무겁게 짓누르던 군장의 무게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슬슬 적응됐다.

덕분에 이제는 비틀거리지 않고 그럭저럭 뛸 만해졌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연병장 한 바퀴를 다 돌기도 전에 체력이 고갈되고 말았다.

나는 그때부터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속도로 움직였다.

그때, 한상혁이 지친 나를 밀치며 지나갔다.

“큭큭, 벌써 지쳤냐? 나 먼저 간다, 거북이 새끼야.”

힘없이 바닥에 넘어진 나는 먼지가 입속으로 들어와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무릎과 팔꿈치가 아픈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야, 이 새끼야!”

나는 악에 받쳐 벌떡 땅을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고 나서 바로 한상혁을 쫓아갔지만, 걷는 것과 다름없는 속도로 그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힐끗 강기오 중사를 바라봤는데,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우리 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하, 만날 전우애를 강조하더니, 이럴 땐 또 입을 닫으시겠다?’

그 순간, 나는 이를 악물며 무조건 오늘 안에 열 바퀴를 다 돌겠다고 결심했다.

애초에 그 역시 우리가 뛰어서 완주하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으리라.

“후욱, 후욱······.”

앞서가던 한상혁은 나보다 반 바퀴를 더 치고 나간 시점에서 체력이 떨어졌는지 서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절로 코웃음이 나왔지만, 그래봤자 같은 속도인지라 벌어진 거리를 좁힐 수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이미 머릿속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의무적으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는 게 전부였다.

방탄 헬멧 아래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턱 끝에 맺혀 아래로 떨어지길 수차례.

드디어 여섯 바퀴째를 돌았을 때였다.

저만치 앞서가던 한상혁의 뒷모습이 조금씩 커졌다.

벌어진 거리가 조금씩 줄어든 것이다.

나는 걸음 속도를 높여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한 바퀴를 더 돈 시점에서 눈앞에 그를 둘 수 있었고, 다시 한 바퀴를 돌자 마침내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까지 따라잡을 수 있었다.

“먼저 간다더니··· 헉, 헉··· 다시 따라잡혔네, 이 토끼 새끼야?”

“흥, 이제 겨우 쫓아왔냐, 이 거북이 새끼야?”

한상혁은 슬쩍 나를 바라보더니, 입술을 깨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평소라면 뭐라 비아냥을 할 법한데, 녀석은 말을 줄인 채 걷는 데 집중했다.

아마도 다시 거리를 벌릴 작정인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게는 지고 싶지 않다는 한상혁의 마음이 느껴졌다.

나도 기왕 이렇게 된 거,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한 바퀴.

둘 모두 체력은 이미 오래전에 바닥난 상황이다.

악만 남은 나는 눈에 불을 켜고 한상혁의 등을 집요하게 바라봤다.

지금껏 당한 수모를 돌려주고 말겠다는 의지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후욱, 후욱······.”

내가 필사적으로 따라붙자, 한상혁은 질 수 없다는 듯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 바람에 다시 거리가 벌어졌지만··· 그뿐이었다.

얼마 못 가 그 역시 숨을 헐떡이며 걸음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흐읍!”

이제 내가 마지막 스퍼트를 할 차례였다.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지만,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달렸다.

이것은 얼차려를 떠난 남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기다려라, 내가 간다.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소용없어. 끝까지 따라가서 어깨빵을 먹여주마!’

그때였다.

머릿속으로 훈련병들의 군가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그 소리는 이내 사라졌지만, 환청처럼 귓가에 남아 맴돌았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어째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른걸레를 쥐어짜 물방울을 만들 듯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나이로··· 헉,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군가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정신없이 걸음을 옮기는 와중, 마침내 반 바퀴만을 남긴 상황에서 한상혁을 다시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

“큭, 뭐야? 드디어 미친 거냐?”

한상혁은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뒤돌아보지도 않고 한심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그저 앞을 보고 걸으며 계속해서 군가를 중얼거렸다.

“미친놈, 느긋하게 군가나 부르면서 와라. 나는 먼저 갈 테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상혁은 좀처럼 거리를 벌리지 못했다.

오히려 내 걸음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조금씩 솟아나는 힘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야!”

희한하게도 군가를 크게 부를수록 더욱 힘이 솟아났다.

어느새 나는 한상혁과 나란히 선 채 단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깜짝 놀란 한상혁의 멍청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씨익 웃어 보인 뒤, 오른발에 힘을 줘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단상 앞을 통과하며 연병장 바닥을 굴렀다.

강기오 중사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없이 쓰러진 우리를 그저 내려다볼 뿐이었다.

푸르던 하늘이 어느새 붉게 물들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나는 왜 군인들이 그렇게 목 놓아 군가를 부르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때,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땀으로 범벅이 된 내 몸을 시원하게 훑고 지나갔다.

“흐흐흐, 복수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