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4화



나와 한상혁은 인솔 조교를 따라 취사장으로 이동했다.

인솔 조교는 우리에게 먼저 밥을 먹인 뒤, 식사가 끝나자 취사장 출구로 이끌었다.

조교는 잔반통을 가리키며 지시를 내렸다.

“두 사람은 지금부터 여기 있는 잔반통을 나릅니다.”

“네, 알겠습니다!”

잔반, 군대 말로 짬이다.

마찬가지로 잔반통은 짬통이다.

한 끼에 수백, 수천 명이 식사를 하다 보니 그만큼 남는 짬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이제 막 식사가 시작됐는데, 짬통 몇 개는 벌써 가득 차서 국물이 넘실거렸다.

“가득 찬 짬통은 저쪽으로 옮기고, 빈 통으로 교체하면 됩니다.”

조교가 취사장 뒤편의 구석을 가리켰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짬통의 뚜껑을 열어 확인한 뒤, 질질 끌어당겼다.

“끄응!”

고작 무릎 정도 높이의 통이지만, 내용물이 가득 찬 탓에 무게가 상당했다.

게다가 금세 부패하기라도 했는지,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힘겹게 짬통을 꺼내자, 한상혁이 얼른 빈 통을 받쳤다.

그걸 지켜보던 조교 역시 냄새를 맡는 게 고역인지, 작업 지시를 마치자마자 취사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으, 냄새.”

나는 짬통의 손잡이를 잡으려다가 참을 수 없는 역한 냄새에 급히 코를 틀어막았다.

그러자 한상혁 역시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아, 짜증 나. 다른 사람이랑 하지, 왜 나를 끌어들이고 난리야?”

“짜증 내지 말고 해.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잖아.”

“그러니까 왜 하필 그 누군가가 내가 되어야 하는데?”

한상혁은 연신 투덜거렸지만, 결국 짬통의 손잡이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둘이서 뒤뚱뒤뚱 걷는데, 통 안에서 불안하게 넘실거리던 국물이 결국 넘치고 말았다.

“아씨, 조심 좀 하자. 나한테 튀잖아, 새끼야!”

“조금 튈 수도 있지, 그게 나 때문이냐? 말 참 예쁘게 한다.”

“작업 중에 잡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바닥에 흘리면 여러분이 치워야 합니다. 그러니 조심스럽게 옮깁니다.”

둘의 다툼 소리에 밖으로 나온 조교가 주의를 주었다.

우리는 그때부터 말없이 일만 했다.

어느덧 식사 시간이 모두 끝나고 마지막 남은 짬통을 옮기고 나자, 인솔 조교가 다시 등장했다.

“두 사람은 여기서 기다리다가 수거 업체에서 오면 짬통을 실어주면 됩니다. 이후엔 조교가 돌아올 때까지 쉬어도 좋습니다.”

말을 마친 조교는 이번에도 어디론가 쌩하니 사라졌고, 나와 한상혁은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상의는 이미 땀에 젖어 축축했다.

게다가 음식 냄새인지 땀 냄새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악취가 코끝을 찔렀다.

한상혁은 소매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다가 대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우웩, 냄새 한 번 더럽게 역겹네.”

“조금만 참아. 샤워할 시간 준다잖아.”

“샤워고 나발이고, 다음에 또 이런 일에 날 끌어들이면 뒈질 줄 알아, 새끼야.”

“야,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할래?”

“뭐, 꼽냐? 꼬우면 한판 붙든가.”

“이 새끼가 진짜!”

한상혁의 멱살을 움켜쥐려는 찰나, 커다란 트럭 한 대가 다가오며 경적을 울렸다.

곧 운전석에서 덥수룩한 수염의 험악하게 생긴 아저씨가 내렸다.

트럭 짐칸에 ‘재활용’이나 ‘폐기물’ 따위의 글자가 적힌 것으로 보아, 눈앞의 아저씨가 잔반 수거 업체에서 나온 사람임이 분명했다.

아저씨는 우릴 보더니 대뜸 소리쳤다.

“훈련병들, 싸우느라 진 빼지 말고 얼른 실어! 시간 없다!”

“네, 알겠습니다.”

나와 한상혁은 낑낑거리며 짬통을 트럭 위에 실었다.

몇 개 싣지도 않았는데 땀이 코끝을 타고 뚝뚝 흘러내릴 정도로 일은 고됐다.

겨우겨우 작업을 끝내고 땀을 닦아 내리는데, 아저씨가 운전석에서 우릴 불렀다.

“어이, 훈련병들.”

“173번 훈련병, 최대길!”

“180번 훈련병, 한상혁!”

“이리 와봐.”

“네, 알겠습니다.”

아저씨는 우리 어깨를 토닥이며 사람 좋아 보이는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더니 뭔가를 꺼내 우리에게 내밀었다.

“수고했어. 이거 마셔.”

그것은 다름 아닌 탄산음료였다.

“이건!”

“마시면서 좀 쉬고 있어.”

“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 다음, 아저씨는 트럭 짐칸에 올라 통이 넘어지지 않도록 결박 작업을 진행했다.

한상혁은 사막 횡단 중에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기뻐서 방방 뛰었지만, 나는 그런 시간까지 아까워 얼른 캔을 땄다.

치이이익.

차갑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듣는 탄산 소리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꿀꺽꿀꺽.

“캬아!”

톡톡 쏘는 탄산이 목구멍을 찌르는 느낌.

오랜만에 느끼는 청량감은 힘든 노동의 시간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그건 작업 내내 시종일관 툴툴거리던 한상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쩝, 좋겠다. 나도 한 대 피우면 좋겠다.”

“응?”

부럽다는 듯 중얼거리는 말에 무슨 개소리냐는 듯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한상혁은 고갯짓으로 수거 업체 아저씨를 가리켰다.

“담배 말이야, 담배. 저기.”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짐칸에서 내려온 아저씨가 트럭에 기댄 채 담배에 불을 붙이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한상혁은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그러면서 귀신에 홀린 듯 말을 꺼냈다.

“흐음, 이만큼 도와줬는데, 한 대 달라고 해도 되겠지?”

“야, 너 설마······.”

“왜? 너도 한 대 피우고 싶어?”

“야, 이 미친놈아, 그러다 걸리면 죽어.”

“큭, 괜찮아. 조교 오려면 한참 있어야 하는데, 뭐가 걱정이야? 안 피울 거면 넌 망이나 보고 있든가.”

말을 끝낸 한상혁이 아저씨를 향해 다가갔다.

“아저씨, 저도 담배 한 대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 그럴래? 자, 여기.”

아저씨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자연스레 취사장 뒤편 구석을 가리켰다.

“저쪽 가서 몰래 한 대 피우고 와.”

훈련소에 입소한 모든 훈련병은 강제로 금연을 할 수밖에 없다.

훈련과 상관없는 개인 물품은 모두 반납하기 때문에 담배를 소지할 수도 없다.

간혹, 담배를 몰래 숨기려는 이들도 있긴 한데, 그러다 걸리면 강도 높은 얼차려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틀 전이었나, 옆 중대에서 누가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걸리는 바람에 연병장을 스무 바퀴나 돌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한상혁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저씨의 손에서 담배 한 개비와 라이터를 챙긴 한상혁은 누가 볼세라 취사장 뒤편으로 총총 뛰어갔다.

“거기, 그쪽 훈련병은 담배 안 피워?”

“예? 저도 피우긴 하는데······.”

“그래? 그럼 자네도 얼른 가서 한 대 피우고 와.”

마치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은 유혹.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맹렬히 격돌했지만, 결론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뭘 꾸물거려? 남들 안 볼 때 얼른 다녀와.”

고민하는 내게 아저씨가 다시 한 번 담배를 권했다.

덕분에 악마가 승기를 잡고 말았다.

‘에라, 모르겠다.’

담배를 낚아챈 나는 한상혁이 향한 취사장 뒤편으로 달려갔다.

그곳엔 딱히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고, 오직 바깥세상과 훈련소를 분리한 담벼락만이 전부였다.

한상혁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이러다 들키면 끝장인데······.”

막상 담배를 피우려니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한상혁은 스윽 라이터를 내밀었다.

“안 들키면 장땡이야. 너랑 나, 저 아저씨만 입 다물면 되는 거잖아.”

“냄새는 어쩌고?”

“야, 짬 냄새가 이렇게 심한데, 누가 의심하겠냐?”

나는 힐끗 트럭 쪽을 쳐다봤다.

그러자 아저씨는 씩 웃더니, 괜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래. 아무도 모르겠지.’

마음을 굳힌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 나서 막 불을 붙이려는 순간,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사장님, 혹시 여기 지원 나온 훈련병들 못 보셨습니까?”

‘설마, 이 목소리는······.’

내가 멍하니 입을 벌리자, 담배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어? 강 중사, 여긴 어쩐 일이야? 어이쿠, 혹시 그 훈련병들이 강 중사 소대 애들이야?”

아저씨의 당황한 음성이 들려왔다.

걸리면 빼도 박도 못할 테니,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젠장, 난리 났네.”

한상혁은 재빨리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더니, 크게 숨을 쉬며 담배 냄새를 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와중에 나는 라이터를 급히 건빵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디 갔습니까?”

“어, 그게··· 내가 잠깐 뭐 좀 시켰는데······.”

“혹시 또 애들한테 담배 주셨습니까?”

“그건 아닌데······.”

“주셨군요.”

“실은 낑낑대며 일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한 대씩 줬네.”

완전 망하고 말았다.

철석같이 믿은 아저씨가 저렇게 술술 불어버리면 변명조차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때, 강기오 중사의 목소리가 정확히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173번 훈련병, 180번 훈련병, 셋 셀 동안 교관 앞으로 뛰어옵니다. 하나······.”

“173번 훈련병, 최대길!”

“180번 훈련병, 한상혁!”

우리는 반사적으로 관등성명을 외치며 자리를 박차고 튀어 나갔다.

나와 한상혁은 경쟁이라도 하듯 전력을 다해 강기오 중사 앞으로 달려가 차렷 자세로 섰다.

강기오 중사는 들고 있던 손가락 세 개를 고이 접어 내리며 우리를 무섭게 노려봤다.

마지막 희망이던 짬 아저씨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도망치듯 트럭을 몰고 가버렸다.

“훈련병들.”

“173번 훈련병, 최대길!”

“180번 훈련병, 한상혁!”

“교관이 마음대로 자리를 이탈해도 된다고 했습니까, 아닙니까? 게다가 교관이 언제 흡연해도 좋다고 말했습니까?”

“죄송합니다! 저분께서 담배를 주시는 바람에 그만······.”

한상혁은 필사적으로 변명을 늘어놓으려 했지만, 강기오 중사는 애당초 그런 게 먹힐 위인이 아니었다.

얼차려도 많이 받아본 놈이 안다고, 나는 구차하게 변명하길 포기하고 입을 꾹 다문 채 처분을 기다렸다.

“173번 훈련병, 훈련소에서 흡연해도 됩니까?”

“173번 훈련병, 최대길! 안 됩니다!”

“그런데 어째서 교관의 눈을 피해 구석에서 흡연했습니까?”

“저는 흡연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이었다.

나는 실제로 불을 붙이기 직전에 걸려서 한 모금도 빨지 못한 채 아까운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강기오 중사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훈련병,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을 꺼내봅니다.”

“하지만!”

“주머니 속에 든 물건, 꺼내봅니다.”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사실은······.”

내가 황급히 변명하려 했지만, 강기오 중사는 반론 따윈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으르렁거렸다.

“꺼냅니다. 실시.”

“실시!”

나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주머니 속에서 들어 있던 라이터를 꺼냈다.

“훈련병은 흡연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주머니 속에서 라이터가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진짜 흡연은 안 했습니다. 냄새를 맡아보시면······.”

당황한 내가 입김을 불려 하자, 그는 손을 들어 내 입을 막았다.

잠시 말없이 나를 노려보던 강기오 중사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씹어뱉듯 말했다.

“돌발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훈련병. 교관이 질문한 것에만 답변하고, 지시한 대로 행동합니다. 알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라이터는 가지고 있지만, 흡연은 하지 않았다. 맞습니까?”

웬일로 내 말을 믿어주나 싶어서 크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180번 훈련병, 담배 피웠습니까?”

“180번 훈련병, 한상혁! 피웠습니다!”

강기오 중사의 질문에 한상혁은 이미 체념한 듯 흡연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173번 훈련병과 함께 담배를 피운 게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뭐? 야, 이 새끼야!”

“훈련병 조용히 합니다.”

한상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너도 한 번 엿 먹어보라는 그의 속마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한상혁의 대답에 강기오 중사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 모습이 마치 구석에 몰아넣은 사냥감을 가지고 놀다가 죽이려는 맹수와도 같았다.

내가 알 수 없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자, 강기오 중사는 다시 표정을 굳혔다.

“본 교관은 거짓말하는 사람을 무척 싫어합니다. 그런데 눈앞에 확실한 증거를 두고도 끝까지 발뺌하려는 훈련병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아, 시발. 망했네, 내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