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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본격적인 훈련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입소 후 3일간은 적응 기간을 가질 수 있었다.

수많은 인원들이 각기 소대에 배속되어 건강검진을 받았으며, 개인 보급품과 장구류, 그리고 훈련병 번호를 부여받았다.

나는 훈련병 번호 173번을 받아 161번을 받은 차지혁과 함께 강기오 중사가 소대장을 맡은 3중대 3소대에 배정을 받았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강기오 중사는 독사라는 별명답게 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일과를 보내는 와중에도 유독 나를 유심히 지켜보는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생활관에서 떠들다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강기오 중사에게 얼차려를 받을 때도 내가 제일 먼저 타깃이 되었다.

그리고 무슨 잡일만 생기면 무조건 나를 찾았다.

뿐만 아니라 약간의 실수에도 나를 붙잡아놓고 얼차려를 주거나 훈계를 해 댔다.

어제도 취침 전에 화장실에 갔다가 1분이 늦었다는 이유로 복도에서 슬리퍼 차림으로 30분 동안 서 있어야 했다.

아직 본격적인 훈련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진이 다 빠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훈련소에 들어와서 무엇보다 힘든 점이라면, 그건 바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었다.

빠빠! 빠빠빠! 빠빠바바빠빠, 빠빠빠, 빠빠빠!

오전 여섯 시만 되면 어김없이 기상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학창 시절에도 이렇게 일찍 일어나 본 적이 없는데, 그 때문에 아주 미칠 것만 같았다.

1초라도 더 잠을 자고 싶지만,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었다.

강기오 중사는 생활관 입구에 서서 대기하다가 나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기상! 개인 침구류 정리하고, 전투복으로 환복한 상태로 연병장 집합까지 10분! 늦는 인원은 본 교관이 직접 정신 재무장을 시키겠습니다. 연병장 집합 10분 전.”

“집합 10분 전!”

다들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나는 오늘 하루도 지옥이 될 거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한숨이 터져 나왔다.

왜냐하면 지난 3일 동안 우리 소대는 단 한 번도 제시간에 맞춰 집합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마 오늘도 강기오 중사는 나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을 터였다.

“173번 훈련병.”

“173번 훈련병, 최대길!”

“복명복창 안 합니까?”

“했습니다!”

“교관의 귀엔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목소리 더욱 크게 낼 수 있도록 합니다. 알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엎드려.”

어떻게 한 번을 그냥 넘어가질 않는다.

“교관의 말이 안 들립니까, 훈련병? 엎드려!”

“엎드려!”

찰나의 망설임이 강기오 중사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하나에 목소리를, 둘에 크게 하자. 하나!”

“목소리를!”

“둘!”

“크게 하자!”

소대 동기들은 이런 나를 곁눈질로 살피며 빠르게 환복을 마치고 있을 테지.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십 회의 팔굽혀펴기를 마쳤다.

“일어서.”

“일어서!”

“빠르게 환복하고 집합할 수 있도록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강기오 중사는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더니 소리쳤다.

“5분 남았습니다. 집합 5분 전!”

“집합 5분 전!”

오늘도 지각 확정이었다.

“대길아, 얼른 옷부터 갈아입어. 모포 정리는 내가 해줄게.”

강기오 중사가 생활관을 나가자, 이미 준비를 마친 차지혁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군대 체질을 타고난 듯 전 소대원을 통틀어 준비 속도가 가장 빨랐다.

아니, 중대원 전체와 비교해도 가장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참 고마운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연예인들은 모두 싸가지가 없을 거란 내 편견을 깨고, 그는 벌써 3일 동안이나 나를 도와줬다.

나는 차지혁의 도움으로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전투화에 발을 쑤셔 넣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10분 안에 집합하기엔 빠듯했다.

“형님, 먼저 가세요.”

“같이 가자.”

차지혁이 앞에 서서 기다리자, 나는 속이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형님, 먼저 가라니까요. 이러다가 또 저 때문에 얼차려 받겠어요.”

내 말에 차지혁은 빙긋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됐어. 이미 늦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연병장에 도착했을 때는 대다수의 인원이 집합을 마친 상태로 인원 보고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늦게 등장한 우리에게 쏠리는 시선에서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우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빠르게 대열에 합류했다.

“집합 시간 지난 지가 언젠데, 지금 나타나는 인원은 뭡니까? 전체 엎드려!”

“엎드려!”

“하나에 정신, 둘에 통일. 하나!”

“정신!”

“둘.”

“통일!”

아침마다 점호에 늦는 바람에 첫날부터 오늘까지 600명이 넘는 인원이 매일 얼차려를 받았다.

“아, 쓰벌. 또 쟤네야?”

“연예인이면 다야? 벌써 며칠째야?”

“같은 소대면 속 시원히 욕이라도 했을 텐데.”

팔굽혀펴기를 마치고 숨을 헐떡이는 훈련병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쉬지 않고 흘러나와 귓전을 파고들었다.

“잡담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험담은 조교의 입에서 한소리가 나온 후에야 멈췄다.

물론, 내가 늦은 건 사실이기에 욕을 먹어도 당연했다.

하지만 차지혁은 나를 도와주려다 늦은 건데, 함께 욕을 먹는다는 점이 무척 억울했다.

인원 보고가 끝나고, 바로 도수체조가 시작되었다.

“하나, 둘, 셋, 넷.”

“끄응, 끄응.”

어느덧 입대 4일 차. 손발이 무거워서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훈련병들은 겨우 동작들을 흉내 내는 수준에 불과했다.

거기다가 조금이라도 대충 할 경우, 바로 조교들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훈련병, 동작에 힘줍니다.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조교의 동작을 보고 최대한 따라 합니다.”

“173번 훈련병, 최대길! 알겠습니다!”

겨우겨우 체조를 마치고 나면 지옥의 구보가 우리를 맞이했다.

“전체 상의 탈의.”

“상의 탈의!”

나는 지난 3일 동안 2㎞ 구간을 한 번도 완주하지 못했다.

내 체력이 이렇게나 약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강렬하게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강기오 중사가 팔짱을 낀 채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귀에는 뒤처지지 말라는 그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이윽고 구보가 시작되고, 코스의 절반을 지나자 역시나 숨이 가빠왔다.

그때, 앞에서 소대를 이끌던 강기오 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뜀걸음간 군가 한다. 군가는 진짜 사나이.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아니, 그냥 뛰기도 힘든데 어째서 군가를 부르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길, 괜찮아? 숨 크게 쉬어.”

내가 거칠게 숨을 헐떡이자, 차지혁이 다가와 등에 손을 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조금 숨 쉬는 게 편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이상하게 몸에서 힘이 솟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설마··· 내가 지혁이 형을?’

순간, 머릿속에 익숙한 노래 한 구절이 울려 퍼졌다.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이 어쩌고저쩌고.

“훠이, 훠이! 물러가라, 이 악마야.”

“뭐라고?”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형님.”



갖은 고난 끝에 점호를 마치자, 오전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헥, 헥······.”

기상한 지 겨우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으나, 내 체력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다.

아침 식사를 할 때도 숟가락을 집어 올리는 게 힘들 게 느껴질 정도였다.

식사를 마치고 생활관에 돌아와 잠깐이라도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생활관 문을 열고 들어온 독사, 강기오 중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부터 기초 군사훈련을 실시하겠습니다. 모두 5분 내로 연병장에 집합합니다. 집합 5분 전.”

“집합 5분 전!”

강기오 중사가 등을 돌리자마자 우리 소대원들은 벌 떼가 일제히 날아오르듯 생활관을 뛰쳐나갔다.

연병장에 모여 인원을 점검한 뒤, 단상 위로 올라간 강기오 중사가 교육 내용을 설명했다.

“기초 군사훈련 1주 차는 제식훈련입니다.”

제식훈련은 말 그대로 대열을 만들어 이동할 때의 정해진 움직임을 배우는 게 전부였다.

기본자세인 경례나 차렷, 열중쉬어도 포함되지만, 방향 전환이나 이동에 대한 교육이 주였다.

“교육에 앞서 조교의 시범이 있겠습니다. 조교 앞으로.”

강기오 중사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조교들이 줄지어 걸어 나왔다.

조교 여섯 명은 동작을 맞춰 마치 한 사람이 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꼭 잘 만든 로봇이 줄지어 걷는 것처럼 보였다.

조교들의 시범이 끝난 뒤, 본격적인 실습 시간이 찾아왔다.

소대순인지 1소대가 먼저 연병장 중앙에 집합하고, 나머지 소대는 연병장 외각으로 움직여 자리를 비워줬다.

1소대는 조교의 구령에 맞춰 곧잘 움직였으나, 곧 엉망진창으로 대열이 흐트러졌다.

좌향좌라는 구령에 왼쪽으로 돌아야 하는데, 누구는 왼쪽으로 돌고 누구는 오른쪽으로 돌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한 장관은 훈련병들이 이동하면서 볼 수 있었다.

평소 사람이 걸음을 옮길 때면 오른팔과 왼발, 왼팔과 오른발이 교차하며 움직인다.

그런데 긴장해서 그런지 왼팔과 왼발, 오른팔과 오른발이 동시에 나가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앉아서 구경하던 나와 다른 소대원들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저 쉬운 걸 왜 못하는 거지?’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으나, 내 주위에 앉은 이들은 나름 친해진 모양인지 허물없이 잡담을 나눴다.

“완전 구멍이네.”

“킥킥, 그러게 말이야.”

“훈련병들, 웃지 않습니다.”

조교가 나서서 소대원들의 입을 다물게 했지만, 이어진 2소대의 훈련에도 비슷한 일들이 속속 발생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소대원들은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러고 나서 드디어 우리 소대의 차례가 돌아왔다.

강기오 중사는 소대원들을 모아놓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본 교관은 우리 소대가 교관의 구령에 맞춰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여주길 고대하겠습니다. 자신 있습니까?”

드디어 나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그간의 설움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있는 힘껏 소리 높여 대답했다.

“네!”

“목소리가 마음에 듭니다. 그럼 교육을 시작하겠습니다. 소대 차렷, 경례!”

“충성!”

“바로.”

경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좌향 앞으로 갓!”

나는 강기오 중사의 구령에 맞춰 방향을 틀어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어라?”

차지혁과 정면으로 마주 보게 됐다.

역시나 완벽한 사람은 없는 듯 왼쪽으로 돌아야 하는데, 그만 오른쪽으로 돈 것 같았다.

나는 급하게 그에게 속삭였다.

“형, 반대, 반대.”

“어?”

그런데 왜 나만 빼고 다 반대쪽을 바라보는 걸까?

“모두 원위치.”

“원위치!”

우리 소대는 결국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다시 정렬할 수밖에 없었다.

“173번 훈련병.”

“173번 훈련병, 최대길!”

“왜 교관의 구령에 반대로 움직입니까? 교관의 말이 잘 안 들립니까?”

“아닙니다!”

“처음이라 한 번은 봐주겠습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소대 차렷!”

독사의 구령에 소대원들이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움직였다.

“뒤로 돌아~ 갓!”

“헉!”

‘좌향 앞으로 가’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다른 구령이 떨어지자, 당황한 나는 꽁꽁 얼어붙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다른 소대원들이 전부 뒤로 돌아서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결국, 또 나인가······.’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자 강기오 중사의 묵직한 저음이 천둥소리처럼 들려왔다.

“원위치.”

소대원들이 다시 돌아와 서자, 강기오 중사가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173번 훈련병, 집중 안 합니까?”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목소리가 마음에 들어서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부여하겠습니다. 앞으로 갓!”

“앞으로 갓!”

정신을 바짝 차린 나는 소대원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성공이었다.

“왼발, 왼발.”

옆으로 따라 붙은 강기오 중사가 구령을 넣었다.

그러니 이제 구령에 맞춰 발을 움직이기만 하면 완벽했다.

딱히 문제될 게 전혀 없었다.

그런데 훈련을 마치고 휴식 중인 다른 소대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차지혁이 옆에서 다급하게 속삭였다.

“대길아, 팔, 팔.”

이런··· 낭패다.

강기오 중사의 구령에 왼발만 신경 썼더니, 오른발과 오른손이 같이 나가고 있었다.

그걸 인식하고 어서 손을 바꾸려 했는데, 팔을 정상적으로 흔들려고 하면 할수록 움직임이 더욱 어색해졌다.

“원위치.”

결국 강기오 중사의 날카로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살기등등한지, 다른 소대의 훈련병들조차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고 우릴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봤다.

“173번 훈련병, 교관에게 더 하고 싶은 말 있습니까?”

“없습니다!”

할 말은 없고, 눈물만 핑 돌았다.

‘아, 내가 구멍이었네······.’

“아무래도 제식훈련을 받기엔 제군들의 정신 상태가 너무 썩어빠진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교관의 재량으로 제식훈련 대신 체력 단련을 진행하겠습니다. 전원 저 뒤에 보이는 벽 찍고, 반대편 골대를 돌아옵니다. 선착순 다섯 명!”

“헉!”

아침 구보도 힘들어하는 놈이 선착순 다섯 명 안에 들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나는 유난히 체력이 부족한 소대원 다섯 명과 함께 강기오 중사의 집중 얼차려를 받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