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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제10장 가자, 결전의 땅으로!(3)



위풍당당하게 북경을 나선 명나라의 대병력은 요서군을 가로질렀다.

하지만 겉으로는 제법 의젓하게 보여도, 농사일을 포기한 채 가을철에 전장으로 나온 것이었기에 병사들은 불만이 상당했다. 병사들 중 대다수는 군사훈련은커녕 장거리 강행군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체력이 떨어져 있었다.

“저기 보이는 후미부대는 어느 군단 소속인가?”

“깃발을 보아하니 아마도 서로군으로 보입니다.”

“서로군? 선봉장이 이끄는 군단일 텐데.”

홍승주의 말에 주유검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로군은 십만 대군에 앞장서는 선봉군이다.

한편 주유검이 이끄는 조명 연합군은 대군의 후미를 담당하고 있었다. 선봉군과 후미군이 서로 만나는 광경이 벌어졌다는 것은 곧, 선봉부대에 속한 병력들 중에서 벌써부터 낙오자가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우선 소장이 나아가 병사들을 재촉해보겠습니다!”

손전정이 고삐를 당기며 앞을 향해 나섰다.

그를 보며 주유검은 한숨을 내쉬었다.

북경을 빠져나와 요서군에 진입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추태란 말인가. 아직 장성조차 넘어서지 못하였거늘 벌써부터 행군 중에 낙오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크나큰 문제였다.

“하온데 전하, 공주마마께서 건네주신 것이 무엇이옵니까?”

홍승주가 물었다.

내심 궁금했는지 그는 북경을 빠져나왔을 때부터 궁금하다는 기색을 보여 왔었다.

“여인들이 쓰는 손거울이다. 장식이 많아서 그런지 무겁기만 하군.”

“설마 남경의 공주마마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먼 길을 오신만큼 조금쯤은 시간을 할애해도 괜찮지 않았겠습니까?”

“나는 황제의 명을 받드는 부원수다. 사사로운 일로 진군을 방해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홍승주의 말에 주유검은 짐짓 무게를 보이며 답했다.

경월공주와의 담소는 길지 않았다.

무운을 빈다는 공주의 첫마디 말을 끝으로 이야기가 끝났다. 먼 길을 온 예비신부에게서 매정하다는 말은 듣겠지만, 천릿길을 서두르는 길이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이대로 유성(儒城)을 거쳐 요동으로 가겠다.”

“알겠습니다.”

서로군과는 달리 주유검의 군단은 낙오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정예부대로 갖추어졌기 때문이었다.

조선의 정예인 도감군은 물론, 남경에서 보충된 절강보병과 휘하 보병대들 역시 충분히 진군속도를 따라오고 있었다.

[사르후 전투에 참전하는 부대들을 보는 건 처음이다. 설마 이 정도까지 명군이 엉망진창으로 무너졌을 줄은 몰랐구나.]

주변을 맴돌던 숭정제는 낙오병들을 보며 혀를 찼다.

군기(軍旗)조차 제대로 쥘 힘이 없었는지 축 쳐져 있었다.

요서군을 지나면서 서무산과 노은산을 횡단하였다고는 하나, 그렇게까지 높은 고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명군은 진군을 거듭할수록 뒤로 쳐지는 낙오병들이 점차 늘어나기만 했다.

아직 요하도 건너지 못했다.

요서에서 쩔쩔 매는 형국이라면 여진의 팔기군과 싸우는 건 결코 불가능했다.

“부관들을 보내 낙오병들을 단속해라. 혹여 탈영병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예!”

낙오병을 단속하는 것은 후미부대가 할 일이었다.

주유검은 부관들을 보내 병사들을 단속하는 한편, 그럼에도 느려지는 병사가 있다면 군율로 다스리라는 엄포를 놓았다.

[군율을 세워라. 병사들이 무너지면 장수도 잇달아 무너지기 마련이다.]

숭정제가 충고를 했다.

물론 주유검도 그것이 끔찍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전장에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아군의 칼에 죽는다는 것은 매우 끔찍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사르후 전투에 일념으로 임한 주유검으로서는 숭정제의 말처럼 군율로 다스릴 수밖에 없었다.

“화포들은 잘 따라오고 있는가?”

“예. 요하를 건널 때 화약이 물에 젖지 않도록 신경만 쓰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주유검은 요하를 도하하는 것에 집중했다.

물론 도하는 그리 어렵지 않을 터였다.

선봉부대 측에서 강을 쉬이 건널 수 있도록 가교들을 건설해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하를 건넌다는 것은 곧 적진이 되어버린 요동에 들어선다는 말과 같았고, 지휘관인 주유검으로서는 더욱더 철저히 긴장해야만 했다.



* * *



선봉장 두송은 서로군을 이끌고 요동에 도착했다.

2만 9천에 달하는 병력 중에서는 다수의 낙오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두송은 낙오자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과 함께 오랫동안 전장을 누빈 1만의 정예부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인데, 그 정예부대를 두가병(杜家兵)이라 부를 정도로 그는 과신하고 있었다.

서로군의 부장을 맡은 보정총병 왕선이 말했다.

“하지만 총병, 여진이 차지한 거점들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병력이 필요하지 않겠소?”

먼저 여진이 빼앗은 거점들을 탈환해야만 한다.

하지만 무순성과 심양성 등, 여진에게 빼앗긴 20여 개의 성채들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보병부대들이 절실했다.

지금으로서는 하나의 병력이라도 온전하게 갖춰야 할 때였다.

만약 여진족이 요동의 두터운 성에 의지해서 수성전을 펼친다면 소모전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예상한 왕선이었지만, 요동을 가로지르면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무순성과 심양성이 모두 비어있었습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 여진 놈들이 빼앗은 성들이 모두 비어 있다니!”

“깃발도 걸려 있지 않고, 성문까지도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왕선은 물론 두송도 믿기 어려웠는지,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정찰병들을 보내 상황을 파악하게 했다.

하지만 잇달아 보낸 전령들은 모두 동일한 보고를 해왔다.

요동성의 성도인 심양, 그리고 군사적 요충지인 무순. 이 두 성들은 물론 그 주변의 성채들 역시도 모두 텅 빈 상태였다.

주변에서 여진족 병사를 찾기도 어려웠다.

대체 어디로 내뺀 것인지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으하하하! 분명 놈들은 무서워서 도망을 쳤을 게요!”

두송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는 멍청한 오랑캐들이라 군략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동의 성채들은 수성에 능한 견고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성채들을 스스로 버린 채 도망쳤다는 것은 어리석은 이야기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먼 거리를 행군한 원정군을 상대로 수성전을 택했다면 승산이 있었을 터이거늘.

여진족들은 그걸 생각할 머리조차 없는지, 기껏 빼앗은 성들을 모두 내어주고 내지로 도망을 쳤다.

“총병, 우선 무순과 심양의 탈환을 사령관께 알려야 하지 않겠소? 아군이 머물 거점이 손쉽게 마련되었으니, 이는 곧 총병의 승전보라 할 수 있을 것이오.”

“승전보라. 하하하! 벌써부터 우리 서로군이 공을 세운 셈이로군.”

두송은 출세욕이 매우 강한 인물로 유명했다.

그걸 알기에 왕선은 무순과 심양의 탈환을 이유로 그의 공을 높여주었고, 두송은 그 말이 나쁘지 않은 듯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그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공방전이 없어서 시시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단숨에 요동의 거점들을 탈환하는 쾌거를 이뤘으니, 적어도 자신에게는 그리 나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선봉장으로서 큰 승전보를 전할 수 있게 되어 신이 났다.

“총병님!”

그때, 가장 뒤늦게 보낸 정찰병이 도착했다.

요동 깊숙한 곳까지 둘러보고서 본진에 도착한 정찰병이 입을 열었다.

“후금군은 사르후와 계범에 성을 쌓고 있습니다. 병력은 많아 보이지 않았고, 누르하치와 팔기군의 모습 역시 찾기 어려웠습니다.”

“아군을 상대로 알량한 꾀나 부릴 셈인가.”

정찰병의 보고에 두송은 주먹을 쥐었다.

적이 성을 쌓고 있다면 응당 출격하는 것이 마땅하다.

건축에 재주가 없는 여진족이 쌓는 성이라고 해봤자 당장에 무너질 토성이 전부겠지만, 본대가 머물고 있는 무순성과 인접한 사르후에 성을 쌓고 있다는 후금군의 존재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수작이란 말인가.

방어거점을 세우고자 했다면 산에 성을 쌓을 게 아니라 무순성과 심양성을 방어하면 해결될 문제였거늘. 두터운 성을 버리고 산에 틀어박혀 성을 쌓으려고 하는 후금군의 의도를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총병, 우선 후발부대들을 기다립시다. 이제 곧 북로군과 남로군이 올 것이오. 다 함께 연합하여 공격해도 늦지 않소이다.”

“겨우 후금군의 소규모 부대를 상대하자고 다른 군단들에게 손을 벌리잔 말이오? 급조하여 쌓고 있는 저깟 성채 따위는 단숨에 쳐부술 수가 있소이다.”

“하지만 신왕 전하와 총사령관의 지시가 있지 않았소? 절대 병력을 분산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이오. 이대로 기다렸다가 다 함께 진격합시다. 이미 총병은 선봉장으로서 어엿한 승전을 거두셨거늘, 어찌 군율을 어기려 하시오?”

“어기는 게 아니오. 그저 눈앞에 있는 여진족을 치우려는 것뿐이니. 이것은 전투 축에도 끼지 않는 일이오.”

1만의 두가병을 내세우면 단숨에 사르후와 계범을 점령할 수 있다.

또한 사르후와 계범은 누르하치의 본거지인 혁도아랍과 매우 가까운 곳이었다.

그곳을 전진기지로 삼아 혁도아랍을 위협한다면 후금으로서는 매우 큰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유리한 거점을 점령하는 것은 전략의 기본이었다.

이것은 후금을 멸망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십만 대군의 선봉에 선 장수로서, 두송은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공을 세우고 싶어 했다.

“우선 사르후를 점령하고 올 터이니 안심하시오. 무슨 일이 생기면 총병께서 직접 지원군을 이끌고 오시면 되지 않겠소?”

의심이 깊은 왕선에게 두송이 타이르듯 말했다.

사르후에서 변고가 발생하면 즉시 무순성의 병력으로 지원도 가능했다.

그러면서 두송은 자신의 휘하병력인 1만의 두가병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전쟁터를 누빈 역전의 용사들이니, 후금의 군대쯤이야 단숨에 격파할 수 있다며 호언장담하기까지 했다.

“조몽린 총병, 각 유격장들을 데리고 집합하게.”

“알겠습니다.”

두송은 직접 유격장과 참장들을 불러 모았다.

두가병은 자신을 따라 전장을 누빈 듬직한 전우들이었다.

과격하고 성질이 사납기로 유명했지만, 적병에게는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었기에 명나라에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이번 전투의 승전보 역시 황제의 귀에 들어가겠지.

양회의 뒤를 이어 병부상서가 되고 싶었던 두송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당장에 용맹무쌍한 부대들을 진격시켜 후금군을 쓸어버리고 싶었다.

“가자!”

두송의 출진명령과 함께 1만의 병력이 무순성에서 출격했다.

“진군하라! 여진족들을 모조리 쓸어버리자!”

“우리들은 십만 대군의 선봉대다!”

가장 먼저 노리게 된 거점은 후금군이 성을 쌓고 있는 사르후 산이었다.

사르후에 주둔한 후금의 병력은 많지 않았다.

겨우 2천이 조금 넘을 정도일까. 게다가 병력의 대부분이 성채를 쌓는 데 동원된 공병이었으므로 두가병의 진격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죽어라, 이놈들!”

“오랑캐들을 살려두지 마라!”

두가병은 곧바로 후금군과 교전을 시작했다.

사르후 전투는 명군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양상에서 흘러갔다.

불과 2천도 안 되는 병력이 1만의 두가병을 막아낼 수 있을 리는 없었다. 후금의 부대들은 잇달아 패주하기 시작하면서 방어태세가 무너졌다.

“산을 내려가는 놈들까지 모조리 다 죽여라! 저놈들의 목을 잘라 창대에 꿰어 걸 것이다!”

두송이 칼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괄괄한 성격인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직접 적진에 달려들어 적병 10여 명을 베는 쾌거까지 달성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후금 병사들이 늘어났다.

미처 도망치지 못한 적병들은 병장기를 버리고 투항을 청했지만, 두송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효수해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과연 대단한 전과이십니다!”

“이걸로 누르하치도 겁을 먹었을 게 분명합니다.”

사르후 산에 주둔했던 후금의 수비군을 격퇴했다.

여진과의 전면전에서 첫 승리였기 때문에 선봉군들의 사기가 치솟은 것은 당연했다. 이 승전보가 십만 대군의 사기를 올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

“어서 총사령에게 알려라. 이 두송이 사르후 산을 점거하였다고!”

산해총병 두송은 후금군 수백 명을 죽이고 사르후를 차지했다.

기습을 가하자마자 후금군들이 도망쳐버리면서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군이 거둔 첫 승리라는 점에서 중요한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두송은 사르후에 대명의 깃발을 꽂는 한편, 여진족의 수급을 매단 창대들을 세워두면서 용맹을 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