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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제10장 가자, 결전의 땅으로!(2)



명나라의 10만 병력. 그리고 조선의 1만 7천 병력.

모든 병력을 가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과 물자를 필요로 했다.

그 모든 경비를 명나라가 지불했다.

전쟁 준비로 인해 명나라는 세율이 부쩍 높아졌고, 각종 물품에도 세금과 관세가 붙기 시작하면서 점차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전하, 강서성(江西省)과 호광성(湖广省)에서 역졸들이 반란에 가담하였다 합니다.”

손전정의 말에 주유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오랫동안 봉급을 받지 못한 역졸들이 민란에 가담했다. 조정이 더 이상은 봉급을 지불할 형편이 되지 못하자 역졸들이 칼날을 조정을 향해 돌린 것이었다.

명나라의 영토들 중에 대부분이 반란군의 손에 떨어졌다.

지방군이 반란군에 합류하면서 세력이 더욱 커졌고,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반란 세력들은 모두 합쳐 5백만을 넘어섰다. 아직 북경으로 쳐들어오지만 않았을 뿐, 그 세력권은 명나라를 집어삼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북경이 떠들썩하군.”

“백성들의 환호성이 대단합니다. 여진족의 발호는 아국 백성들에게 있어 커다란 위협입니다.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는 아군을 반기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손전정의 말처럼 북경은 며칠간 축제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산해총병 두송이 이끄는 서로군이 출진했다.

병장기와 깃발로 무장한 군단의 출진에 많은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구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손전정의 말처럼 백성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전쟁의 승리에만 있었다.

어느 누군가는 말했다.

전쟁은 인류의 가장 큰 오락이라고. 지금까지는 그것을 부정해온 주유검이었지만, 환희와 열기에 젖은 북경의 백성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 준비에만 엄청난 자금이 소모되었겠지. 그리고 군량은 말할 필요도 없을 테고.”

과연 지금의 혼란기에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최선의 결정이었을까?

어쩌면 최악의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방에서는 가중된 세율로 허리가 휘고 있건만, 이를 돌봐야 할 황제라는 인간은 여진을 쳐부수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미 내정은 파탄 상태에 내몰렸다.

몇 년이나 계속된 흉작과 가뭄으로 인해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들이 대부분이었다. 유리걸식을 하며 전국을 떠도는 유랑민들이 생겨나고 있는 한편, 무기를 쥐고 도적이 된 백성들이 조정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하오나 어찌 되었건… 결국 일어날 전쟁이 아니었겠습니까?”

“장군의 생각은 그러한가.”

“여진에게 천하를 빼앗기면 대명의 내일은 없습니다. 백성들이 가엾고 불쌍하다고는 하나, 지금은 전쟁에만 모든 전력을 쏟으셔야 할 때입니다.”

“그건 장군의 말이 옳다. 대장기를 짊어지게 된 이상, 항상 두 눈은 전쟁에만 몰두하고 있어야 하겠지.”

이번 전쟁에 많은 목숨들이 달려있었다.

그것을 짊어지고 있는 이상, 실패는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이전까지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요동마병과 절강보병들이 지닌 나라를 위한 충성심을 피부로 느꼈다. 나라를 지키고자 무엇을 희생하였는지, 전우를 전장에 묻은 병사들의 복수심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몸소 경험했다.

결사의 각오로 싸워야 한다.

병사들에게서 받은 충성심과 복수심이 전염된 것인지 주유검 역시도 주먹을 쥐며 각오를 다졌다.



* * *



8월이 지나고 9월이 되었다.

원정군의 출병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서로군과 남로군, 동로군과 북로군이 잇달아서 장성을 넘어가는 한편, 주유검의 병력 역시도 조선군과 연합하여 진군을 개시했다.

깃발이 일렁거리고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병사들의 고함소리와 함께 병장기들이 햇빛을 반사하며 눈부신 광채를 뿌렸다.

“신왕 전하, 반드시 이겨주십시오!”

“여진 놈들을 모조리 해치워주세요!”

백성들이 거리로 나와 주유검의 부대를 환송했다.

그 열렬한 환호 덕분에 병사들의 두 발에는 힘이 넘쳐흘렀다. 지엄한 군율 때문에 환호에 응대를 해줄 수는 없었지만, 병장기를 쥔 두 손에 힘을 주면서 응답을 대신했다.

방금 전까지도 농사일을 하고 온 것인지 흙투성이가 된 장정, 냇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급히 온 아낙네와 귀여운 딸아이. 그리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노인들까지. 그들 모두가 뜨거운 열망을 보내며 승리를 기원하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가 과연 대단하지 않습니까?”

부원수 김경서가 말했다.

이에 강홍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홍립의 손에는 어느 이름 모를 여자아이가 건넨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조선군의 대장기를 들고 있었음에도 북경의 백성들은 조선군에게도 열띤 응원을 보내주었다. 조선에서 태어나 군사를 이끌고 명나라의 백성들에게서 환호를 받을 줄이야. 지금 이 순간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명나라는 승리에 목말라 있소. 궁핍한 민생과 가난, 도탄에 빠진 농토까지. 절망뿐인 상황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희망을 바라고 부르짖는 게 아니겠소?”

당장 여진과의 전쟁에서 이긴다고 한들.

명나라의 궁핍한 사정이 나아지는 건 결코 아니었다. 무능하고 사치스러운 황제가 죽지 않는 바에야 이 악순환은 절대로 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명나라 백성들은 승전을 기원했다.

여진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 자신들의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어리석고도 불쌍한 백성들의 덧없는 희망일 뿐이었다.

“군율을 최대한 엄숙히 지키시오. 우리는 임금의 명을 받들고 있는 원정군들이니.”

“여부가 있겠습니까, 도원수.”

조선의 도감군들은 백성들의 환호성에도 불구하고 일사분란하게 행군을 이어가고 있었다. 잘 갖춰진 제식과 굳건한 용맹까지 두루 갖춘 정예들은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몸이었다.

중영장(中營將) 문희성, 좌영장(左營將) 김응하, 우영장(右營將) 이일원.

군대를 통솔하는 부장 역시도 유능한 인물들이었다. 젊을 때에는 왜란에 참전한 경험도 있으며, 그 이후에도 훈련도감에서 두각을 드러낸 자들로 임금이 직접 선발한 장수들이기도 했다.

“하온데 명나라가 저리도 많은 남만화포를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김경서가 후발부대들이 수송하고 있는 화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뜻을 알 수 없는 남만어가 화포에 새겨져 있었다.

분명 명나라가 서양에서 수입한 화포겠지. 저것을 사용해 몽골의 십만 대군을 막아낸 전적도 있음을 강홍립은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전쟁에 화포를 동원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신왕은 여진의 팔기군을 상대로 화포를 선택한 게 분명하오. 자리만 잘 잡는다면 능히 다섯 배가 넘는 병력을 쓸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니.”

“하지만 화포는 대개 방어전에서 쓰이는 병기이지 않습니까.”

“신왕은 방어에 치중할 생각일지도 모르겠소.”

신왕 주유검이 이끄는 조명 연합군은 다른 군단들보다도 뒤늦게 출진했다.

8월 보름에 서로군의 두송이 출진했다.

한편 조명 연합군은 9월이 되어서야 움직였고, 많은 화포들을 나르고 있기 때문에 다른 군단에 비해 진군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북경에서 요동으로 가는 데만 보름이 소요된다.

언제 팔기군과 일전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늦장을 부리는 것 같아 조바심이 들었다.

“무슨 이야기들을 그리 재밌게 하고 계시오?”

신왕의 측근인 노상승이 말을 몰고 와 강홍립과 김경서에게 합류했다.

명령체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 주유검은 장수를 서로의 본군에 보냈다.

명군의 본진에서 노상승이 온 것처럼, 조선군은 종사관 이민환을 신왕의 본군에 보냈다. 교전이 벌어질 경우 두 장수들이 전령 역할을 하며 각 본진에 명령을 전파하기 위해서였다.

“저희를 크게 환영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전쟁에 나가는 장수를 응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유창한 언변으로 노상승이 강홍립에게 말했다.

노상승은 다른 명나라 장수들에 비해 조선어에 능통했다.

드물긴 하지만 명군에도 조선어를 할 줄 아는 장수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 때문에 노상승은 강홍립의 부관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이민환 역시 중원어에 능통하였기에 신왕의 곁을 보필하게 된 것이었다.

“아군은 북경을 지나 요서에 도착할 것이오. 그리고 요서에서 장성을 건너 요동으로 진군하게 될 거요. 장성 안이라고 해서 방심하지는 마시오. 언제 어디서 적이 쳐들어올지 알 수 없으니.”

“명심토록 하겠습니다.”

장성 안이라고 해서 오랑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매번 장성을 넘나들며 약탈을 벌이는 오랑캐 부족이 있는가 하면, 유주(幽州)에서도 반란을 일으킨 민병대들이 많았으므로 언제 습격을 받을지 알 수가 없었다.

명나라의 쇠락은 예상외로 심각했다.

장성 안에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심각한 걸까. 강홍립은 명나라가 멸망 직전에 내몰린 망국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신왕 전하께서는 참으로 대단한 분이신 것 같습니다. 전하께옵서는 지금 4만의 병력을 통솔하고 계십니다. 그 어떤 군단보다도 많은 병력이 아닙니까? 처음에는 겨우 4백도 안 되는 병력뿐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병력을 모으기 위해 전하께서는 강과 바다를 넘나들며 근황(勤皇)의 기치를 높이셨소. 휘하 장수로서 감개무량하기만 하오.”

“반드시 이겨야겠군요.”

강홍립은 고개를 돌리며 신왕이 있는 본군을 바라보았다.

신왕의 본군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많은 호위부대들이 주변에 포진되어 있었지만, 황족의 빛나는 갑옷은 멀리서도 눈에 보일 정도로 화려했다.

앞을 향해 계속해서 행군하던 신왕의 본군이 잠시 멈춰 섰다.

이윽고 다른 부대들 역시도 진군 속도가 느려지다가 걸음을 멈췄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장수들이 고개를 기웃거리는데, 구름처럼 몰린 백성들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인가?”

강홍립이 각 부대들을 돌고 있던 전령에게 물었다.

그러자 전령이 강홍립과 휘하 장수들에게 군령을 전달했다.

“아무것도 아니니 진군할 것이라 명령하셨습니다.”

전령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시 진군이 시작되었다.

강홍립의 부대 역시 진군을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진군이 잠시나마 멈췄는지 궁금했지만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닌 듯 보였다.

신왕과 접촉했던 무리는 다시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철통같은 경호를 서던 근위대가 알아서 자리를 비킨 것으로 봤을 때, 아마도 그 무리는 신왕과 면식이 있는 듯했다.

“남경의 공주마마께서 잠시 오셨던 모양이오.”

“예?”

“정식으로 혼례를 치른 것은 아니나, 전하께서는 남경의 공주마마와 혼약을 맺으셨소.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면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실 예정이시오.”

“그렇군요.”

이게 바로 젊은이의 특권이라는 걸까.

신왕이 혼인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에 강홍립은 실소를 머금었다.

보아하니 남경의 공주라는 여성이 신왕에게 장신구를 건넨 것 같았다.

전쟁터로 떠나는 지아비에게 행운을 기원하며 장신구를 쥐어 보내는 것은 오래 된 풍습이었다. 물론 미신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명군과 조선군 병사들 대부분이 아내에게서 받은 장신구를 품에 두고 있을 정도였다.

‘이 전쟁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그것을 지켜보는 것 역시도 임금께서 내리신 임무다.’

대명을 따르느냐, 아니면 여진과 손을 잡느냐.

조선의 차후 외교노선은 이번 전쟁에 따라서 결론 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