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39화] 제10장 가자, 결전의 땅으로!(1)



먼저 움직인 것은 누르하치였다.

그는 팔기군을 이끌고 요동의 성채 20여 개를 함락시키면서 기염을 토해냈다. 여진의 선공은 명나라 조정을 향한 도발과도 같았고, 만력제는 그 도발에 훌륭하게 넘어갔다.

“이 씹어죽일 오랑캐들이……!!”

여진족의 통치방식은 매우 잔혹했다.

투항하는 자들은 병사건 백성이건 모두 살려주었지만, 통치에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매우 잔인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전장에서 죽은 병사들만 애처로울 뿐이었다.

그들의 시체가 산을 이룰 지경이었고, 그들의 피는 요하를 붉게 물들였다. 총병 장승음이 이끌었던 요동마병들의 시체조차 수거하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여진족의 난립으로 명나라 군단은 뒤숭숭하기 그지없었다.

“양호! 당장 심양으로 쳐들어가 놈들을 도륙 내라!”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양호는 부대를 5개로 나누어 진격시키려는 작전을 계획했다.

북로군(北路軍). 남로군(南路軍). 동로군(東路軍). 서로군(西路軍). 유격군(遊擊軍).

개원총병 마림은 북로군을, 요동총병 이여백은 남로군을, 요양총병 유정이 동로군을, 산해총병 두송이 서로군을 이끌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 부대인 유격군(遊擊軍)은 신왕 주유검이 이끌게 되었다.

요동마병 7천에 절강보병과 휘하 보병부대 2만 3천으로 보충된 병력은 다른 부대에 비해 그 규모가 상당했고, 본군과는 떨어져 단독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몽골의 십만 대군도 이겼으니 분명 잘해내겠지.’

‘그래도 그렇지, 그 권한이 상당한데……. 황태자 소생의 황손인데도 페하께서 잘도 윤허를 하셨군.’

유격군의 존재에 대해서는 무장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과연 유격군의 존재가 전장에서 어떤 영향력을 미칠까.

총사령관 양호의 지시와 명령을 받기는 하나, 군단장인 주유검이 독자적인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내키지 않는 반응을 보이는 자도 더러 있었다. 군단장이 너무 젊지 않느냐, 경험이 아직 부족하다는 의견도 종종 표출되었다.

하지만 그 반대의 목소리를 복왕 주상순은 일축했다.

주유검이 자칫 전장에서 빠지기라도 하면 자신이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실제로 만력제는 주유검의 자리에 주상순을 앉히려는 노력을 몇 번이나 한 적이 있었다.

“진격에 나서기 전에 각 군단장들의 의견을 듣고 싶소.”

황제를 알현한 이후.

총사령관 양호는 각 군단장과 부장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산해관을 통해 요동으로 나아가기 직전, 사기를 탱천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당장 누르하치의 목을 베어 폐하께 바치고 싶은 마음뿐이오!”

서로군을 맡은 산해총병 두송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작전상 서로군이 가장 먼저 여진과 교전에 들어가게 된다.

선봉장을 맡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는 매우 들뜬 모습을 보였다. 누르하치의 수급을 베어오기만 하면 총사령관 양호가 차지하고 있는 병부상서의 자리와 황제의 총애는 따 놓은 당상이었으니, 수급에 욕심을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말에 북로군의 마림이 짐짓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병력을 분산시킨다는 것은 아군에게 있어 불리한 점으로 작용할 것이오. 약속대로 5개의 군단이 서로 연계를 펼치지 않는다면 요동 벌판에서 여진족들에게 각개격파를 당할 것이니 말이오.”

가장 중요한 것은 유동적인 움직임이었다.

각 부대들 간에 손발이 얼마나 잘 맞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갈라진다. 어느 하나의 군단이라도 전과에 취해 단독행동에 돌입했다가는 모든 것을 그르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맞는 말이오. 기마군단을 이끄는 여진이 노리고 있는 게 바로 각개격파가 아니겠소. 아군의 핵심은 보병이니, 서로 밀집하여 대형을 구성한다면 여진의 기병 따위로는 결코 뚫지 못할 것이요.”

최대한 신중을 기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선봉장이 된 두송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다른 장수들이 모두 동의하였기에 결국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적진에 도달해서 각 군단들이 합류한다는 것은 매우 위태로운 작전이지 않은가. 자칫 도달하기도 전에 낙오하는 부대가 생길 수도 있을뿐더러, 적의 팔기군에게 격멸당할 우려가 있다. 요동의 어귀에 들어섰을 때에 합류하는 게 어떻겠나.”

요동은 이미 적의 본진이 되어버렸다.

이번 토벌전은 적의 덫에 스스로 들어가 싸워야 하는 일이었다. 군단을 분산시켜 요동을 횡단한다는 양호의 작전은 구멍투성이에 가까웠다.

군략을 아는 병부상서가 맞기는 한 건가?

거짓승전보와 뇌물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고는 하나, 십만 대군을 모두 인솔하는 총사령관이 아닌가. 그런 인물이 내놓은 작전이라고 하기에는 허점이 너무나 많았다.

“전하, 그리하면 진군에 지장이 있지 않겠습니까? 자칫 속도가 느려질지도 모릅니다.”

“적들에게 각개격파당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소.”

주유검의 의견을 양호는 반박했다.

주유검의 말처럼 각 군단들이 요동 어귀에서 합류하면 진군속도가 대폭 느려진다. 각개격파를 당하지는 않겠지만 작전시일이 늦어져 적에게 대응할 수 있는 여유를 주고 만다. 속전속결로 처리하고픈 양호로서는 주유검의 제안이 못마땅하기만 했다.

“그리고 각 군단들이 누르하치의 본거지로 진군하게 되면 후방에 있는 사령관의 본대와 멀어지게 되오. 본군의 명령체계가 어지러워질 수도 있을 터인데, 이는 어떻게 보완할 생각이오?”

“그때는 각 군단장들에게 지휘권을 양도할 생각입니다.”

“선두전장에서 병력을 총괄할 장수를 임명해주시오. 그에 따를 것이니.”

주유검의 계속된 말에 군단장들도 ‘이번 작전의 문제점’에 대해서 얼추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구멍투성이인 작전뿐이었다.

군단들의 합류지점도 위태로운 지역이었고, 총괄명령을 내려야 할 총사령관 양호의 군단은 가장 늦게 전장에 도착하게 된다.

유사시에 각 군단들을 통솔할 수 있는 사령관이 없게 되는 것이다.

누르하치가 이를 간파하여 팔기군 전 병력을 동원해 기습이라도 해온다면, 각 군단들은 총사령관에게서 제대로 된 명령조차 들어보지 못한 채 대패할 위험이 있었다.

“그럼 요양총병을 총군의 부장으로 명하여 군권의 대리를 수행토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각 군단들 또한 누르하치의 본거지인 혁도아랍(赫图阿拉)이 아닌 사르후에서 합류토록 하겠습니다.”

“그저 심려가 들어 한 말이니 너무 괘념치는 말아주었으면 하오.”

“전하께옵서 하신 말씀을 어찌 불편하게 여기겠습니까.”

양호도 아주 무능한 인물까지는 아니었다.

조목조목 근거와 이유를 들어 반박하는 주유검의 말에 무언가 느낀 점이 있었는지, 그에 대한 보완책을 들고 나왔다.

이번 전쟁에서 지면 총사령관의 목은 단숨에 날아간다.

대명의 2인자가 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위태롭고 위험한 길이기도 했다. 자신의 안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양호로서는 전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건 아니었다.

아들뻘밖에 되지 않는 황손이 일일이 지적을 해댄다는 것은 양호에게 있어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황태자의 아들이다 보니 그 지적을 받아들이기는 하겠지만, 내심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 * *



주유검이 궁궐을 나오며 물었다.

‘그래서 총사령관이 말을 듣겠습니까?’

[시늉은 해주겠지. 하지만 결국 무능한 인물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결국 천성을 따라가는 법이다. 옆에서 충고를 하고 경고를 하더라도, 결국 그 천성이 변하는 건 아니지.]

‘하긴 물건은 고쳐 써도,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란 말도 있으니.’

양호에게 충고를 한 덕분에 1차적인 위험은 막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르후 결전에서 대패한다는 결과는 아직 변한 것이 아니다. 역사를 바꾸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명나라 멸망의 운명을 바꾸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사르후 결전에서 대패당할 운명을 막는 것은 결국 그 첫 번째 과정일 뿐, 멸망을 막기 위한 과정들은 산더미를 이룰 정도로 많이 남아 있었다.

‘북경까지 왔는데 아버님이나 만나고 갈까요? 아니면 형님이라던지.’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나와는 남이다.]

‘농담입니다, 농담. 영감님은 농담이라는 걸 모르신다니까.’

숭정제는 자신의 아버지인 황태자 주상락과 형인 주유교를 극단적으로 미워했다. 그들과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지극히 노골적인 불만을 늘어놓을 정도였다.

혈육임에도 불구하고 철천지원수처럼 여긴다고나 할까.

물론 명나라 황실이 개족보에 막장으로 뒤섞인 파탄 수준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지금의 황제인 만력제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나 부모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주유검이었지만, 점차 명나라 황실에 익숙해지면서 막장 가족의 극한 경우가 어떤지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따라 방울 없는 녀석들이 눈에 띄는데요?’

주유검의 눈에 부리나케 움직이는 환관 무리들이 보였다.

물론 황제가 거처하는 자금성에 환관들이 줄을 잇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환관들이 자주 모습을 보였다.

무려 한 달 동안을 건물에만 처박혀서 업무만 보는 환관들이 있을 정도로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그들이다 보니, 환관들의 빈번한 움직임은 수상쩍을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수명이 다할 때가 됐다. 바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 깊은 병마에 들었을 게다.]

‘황제가 죽으면 그를 따르던 환관들은 나가리 신세가 되겠죠. 그래서 다음으로 기생할 곳을 찾는 거군요.’

만력제가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은 숭정제로부터 매번 들어온 말이었다.

목숨이 끊어지는 날은 사르후 결전으로부터 1년이 지난 뒤다.

하지만 벌써부터 그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매번 술과 고기, 그리고 여색으로만 세월을 보낸 황제치고는 제법 수명이 길었다고 할 수 있었다.

“전하! 조선군의 선봉대가 방금 동래항에 상륙했습니다.”

“수고했다. 맞이하러 가지 않으면 안 되겠군.”

홍승주의 보고에 주유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동원할 수 있는 상선들은 모조리 동원해서 조선군을 명나라 영토에 들였다.

조선군이 자칫 여진과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위기설이 나돌았지만, 조선을 끔찍하게 여기는 만력제 덕분에 일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황제는 황실의 국고를 탈탈 털어서 조선군의 수송을 지원했다.

원래 계획은 조선군이 압록강을 직접 건너 요동에서 명군과 합류하는 것이었지만, 각개격파를 당하다가 괴멸될 우려가 있었으므로 해로를 이용해 조선군을 동래성에 집결시켰다.

“거리가 짧기는 하나, 화포와 물자들을 한꺼번에 이송하다 보니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이번 전쟁에서는 화포가 아군의 핵심전력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이송하라.”

“알겠습니다.”

사르후 결전을 준비하기 위해 주유검은 환관에 대한 일은 잠시 잊기로 했다.

지금은 여진족과의 결전을 앞두고 있는 시국이다.

황제의 붕어와 환관의 득세가 명나라의 정치체계를 뒤바꾸는 일이 될 것이라고는 하나, 여진족과의 결전에 천하가 달려있었으므로 결전에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출병의 때가 멀지 않았다.’

모든 병력들이 산해관을 넘어 요동으로 진군하기까지는 앞으로 한 달.

이번 전쟁은 황제가 꾼 악몽이 결정적인 요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대명과 후금의 전쟁은 정해진 수순과도 같았다. 천하를 빼앗으려는 후금과 천하를 지키려는 대명. 천하를 둘로 쪼개어 사이좋게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이를 두고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대가 어떻게 바뀔지는… 모두 너에게 달려있다.]

‘알고 있습니다.’

정벌군에 동원된 모든 병력들이 북경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시기가 무르익었다.

이제 드디어 천하를 건 결전이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북경에서부터 시작된 전쟁의 징조는 곧이어 명나라 전역을 들끓게 만들었다.



1619년 8월.

서로군을 지휘하는 선봉장 두송이 가장 먼저 산해관으로 출병했다.

또한 주유검의 휘하로 편입된 조선의 도감군들이 동래성에 집결하여 북경으로 이동했으며, 북로군과 동로군, 그리고 남로군 역시도 출병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