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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제3장 북원 전쟁(5)



1619년 4월(만력 47년).

북원의 가한 링단이 여섯 부족을 통합했다.

좌현의 차하르, 할하, 우량하이.

우현의 오르도스, 융셰부, 투메드.

명나라 정벌을 명분으로 6부족은 연맹을 이루었다.

북원 왕실이 쇠락한 이후, 지금껏 6부족들이 모두 통합된 적은 없었다. 서로들 자신의 우위를 주장하면서 내란을 일으켜왔기 때문인데, 명나라의 부활을 우려한 ‘투멘’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되면서 연합이 결성될 수 있었다.

“진군하라!”

“우리들의 분노를 한족에게 보여주자!”

십만에 이르는 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뿔나팔이 크게 울리며 몽골의 전사들을 인도했다.

요란스럽게 북을 치거나, 깃발을 든 기병들이 주변을 누비면서 대군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초원을 누비는 십만의 기마군단은 천하를 휩쓸기에 충분해 보였다.

“가한, 삭방군(朔方郡)과 운중군(雲中郡)을 지나면 곧장 거용관(居庸關)입니다!”

“거용관을 뚫으면 바로 북경이니, 파죽지세로 나아갑시다!”

할하의 투멘과 우량하이의 투멘은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각종 진귀한 전리품들이 딸려온다.

몽골족 전사들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열망으로 가득했다. 대대적인 명나라 침공이니 만큼,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두 손을 무겁게 해서 부족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칸!”

포로를 거래하기 위해 떠났던 사신단이 도착했다.

링단 칸이 직접 나가 그들을 맞이했다.

적의 손아귀에 붙잡혀서 많은 노고를 겪었을 전사들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사신단이 데려온 인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매우 기이한 일이었다.

막대한 식량과 물자를 싣고서 떠났거늘, 어찌하여 빈손으로 돌아온단 말인가?

갑작스레 명나라 조정이 변덕을 부렸다 해도, 가지고 떠났던 식량과 물자들만큼은 다시 되돌아와야 했다.

“죽여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인가?”

사신으로 떠난 다루가치들은 침음을 토해냈다.

그 모습에서 링단 칸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주유검, 그 놈이 매복군을 배치하고 기습을 해서 아군의 물자를 모두 빼앗아갔습니다!”

“그놈들이 감히 약조를 어겼단 말이냐!”

“뿐만이 아닙니다. 포로로 잡힌 몽골 전사들을 모두 노비로 만들어 하남성으로 보내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이, 이놈이!”

참담함으로 젖은 사신의 말에 링단 칸은 분노를 토해냈다.

겨우 열일곱밖에 안 된 핏덩이 주제에 감히! 병사들을 동원해 몽골이 어렵사리 마련한 식량과 물자를 모조리 빼앗아갔다.

지금껏 한족에게서 약탈을 반복해온 몽골족에게 있어, 거꾸로 한족에게 물자를 빼앗겼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감히 대칸인 나를 능멸하다니! 우리 몽골족에게 있어 더없을 모욕이다!”

국운이 쇠퇴하였다고는 하나, 천하를 한 번 지배했던 민족이다.

아직도 그 원대한 꿈이 초원에 숨 쉬고 있었다. 원나라 부활의 야망을 가진 링단으로서는, 명나라로부터 받은 모욕은 도저히 이대로 넘길 수가 없는 일이었다.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거용관을 함락시켜야 했다.

“할하 투멘! 우량하이 투멘! 선봉을 맡길 터이니 당장 한족 놈들의 요새를 쓸어버리시게!”

링단은 북원을 이루는 여섯 부족 중, 할하와 우량하이 부족에게 선봉대를 맡겼다.

물론 그들을 부리기 위해서는 대가를 주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거용관을 함락시키고 적의 수도 북경까지 함락시키면, 북경 전역을 하루 동안 마음껏 약탈할 수 있는 독점권을 주었다.

링단이 통 큰 제안을 건네자 투멘들은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인 북경을 약탈하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을 수 있을 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많은 물자들을 약탈하여 부족을 부강하게 만들고, 더욱 세력을 넓히고 싶었다.

“그런데 거용관을 수비하는 장수가 누구라고 하던가?”

“신왕 주유검입니다.”

“마침 잘 됐구나. 내 그 놈의 생살을 씹어 먹어야겠다!”

다루가치의 보고에 링단은 열화를 토해냈다.

눈앞의 거용관에 몽골의 원수가 있다.

놈은 용맹스런 몽골 전사들을 노비로 팔아넘기고 원나라까지도 능멸한 철천지원수였다. 명나라 조정이 어째서 핏덩이 같은 주유검에게 중요 관문을 맡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링단 칸은 오히려 잘 됐다고 여기면서 복수심을 불태웠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소? 거용관이 무너지면 바로 북경이거늘……. 왜 그런 어린놈에게 맡긴 것이냔 말이오.”

“우리를 우습게 본 게 아니겠습니까. 명나라 조정 놈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황족을 내세워 자신들의 명성을 높이려는 수작인 게지요.”

투멘들은 명나라 조정이 자신들을 무시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황제의 실정으로 황실과 조정의 명성이 바닥으로 추락한 지금, 황태자 주상락은 황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신왕 주유검을 파견한 것이었다.

물론 혼자서 파견된 것은 아니었다. 태원 전투에 참전했던 보정총병 왕선, 개원총병 마림은 물론 임진년의 왜란에 참전한 적이 있는 요양총병 유정 역시도 함께였다.

“주변 거점들을 모두 점령한 후, 거용관을 돌파한다!”

“놈들을 궁지로 내몰아라. 저 거용관을 한족들의 무덤으로 만들자!”

다루가치들은 진영을 가로지르며 전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무제한적인 약탈. 각종 보상과 벼슬까지도 약속했다. 그것만으로도 몽골 전사들의 사기를 올리는 데는 충분했다.

“우리들이 먼저다!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리자!”

“진격하라! 저 성을 한족들의 피로 물들이자!”

할하 투멘과 우량하이 투멘은 나란히 병사들을 진격시켰다.

몽골 기병대들은 전장을 돌파했다.

흙먼지를 잔뜩 일으키는 기병대들은 매우 위협적이었고, 그 뒤를 따라는 보병들 역시 공성병기를 이끌면서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뜨거운 열을 뿜어내는 포탄이 떨어졌다.

“크아악!!”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

포탄이 폭발하면서 강한 충격을 토해냈다.

그 주변은 아비규환의 상황으로 변해 있었다.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수십 명의 병사들이 죽어나가고 비명이 울려 퍼졌다.



* * *



주유검은 4개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네덜란드 상인으로부터 홍이포를 사들이기 위해 공을 들였다

그리고 그 결과, 주문한 대포가 무사히 명에 도착했다.

북해항(北海港)에 정박한 상선들이 홍이포 30문을 하선시켰는데, 주유검은 몽골족이 반드시 거용관에 올 것임을 간파하고 그 중 10문의 홍이포들을 거용관에 배치시켰다.

“놈들이 옵니다.”

성벽 위에서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던 홍승주는 마른침을 삼켰다.

분명 몽골은 공성전에 능하지 않다. 대부분 기병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떨리는 손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몽골족은 자그마치 십만에 이르는 대군을 이끌고 왔다. 이를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 규모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포병들 앞으로!”

“연습한 대로만 하면 된다. 장전하고 대기하라.”

서양인들과 교류하며 포병술을 익힌 서광계가 직접 나섰다. 문인들이 전쟁에 나선 것을 두고 장수들은 큰 우려를 보냈다.

하지만 서광계만큼 화포에 능한 인물은 없었다. 그는 직접 훈련한 포병들과 함께 홍이포를 맡았고, 빠르게 장전한 채 몽골군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몽골족이 십만이나 동원할 줄은 몰랐구나. 저 규모를 보니 십만 대군이 확실하다.]

‘내가 죽어서 귀신이 되면 끝까지 영감님을 귀찮게 할 겁니다.’

[지금도 네가 충분히 귀찮게 굴고 있으니 괜찮다.]

거용관을 책임지는 지휘관이 된 주유검은 긴박한 순간에도 숭정제와 티격태격하며 대화를 나눴다.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의 긴장감과 고양감을 달래고자 꺼낸 말이었다. 덕분에 십만 대군을 앞에 두고서도 바지에 오줌을 지리는 일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전 포루, 발포 준비!”

주유검으로부터 준비명령이 하달되었다.

기수들이 붉은 깃발을 올려들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장수들이 격앙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과연 서양에서 들인 최신식 화포가 어느 정도의 성능을 보여줄까. 미리 확인해보고 위력까지 계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장수들은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연습과 실전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정거리에 도달했습니다!”

첨탑 위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던 손전정이 소리를 쳤다.

적의 두 선봉대들이 거용관으로 진격을 개시하고 있었다. 그 선두가 성문의 지척으로 다가오고 후속부대까지도 충분히 다가왔을 때, 주유검은 드디어 발포 명령을 내렸다.

“전 포루, 포격 개시! 몽골 놈들을 불지옥에 빠트려라!”

총 10문에 달하는 홍이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어느 포루에서도 불발이 되거나 빗나가는 일은 없었다. 정확하게 거리를 계산하여 정해진 지점으로 포탄을 쏘아냈다. 포병 소속의 무관들은 대부분 사대부 출신이었는데, 서양 선교사와 교류하며 수학을 배운 덕분에 특히 계산에 능했다.

“아아악!!”

“포탄이다! 적의 포탄이다!!”

몽골족에게도 화포기술은 존재했다.

하지만 홍이포에 필적하지는 않았다. 사정거리도 턱없이 짧을뿐더러, 위력 역시 반절에도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몽골족은 기병대에 치중하면서 화기를 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기술이 전무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홍이포는 계속해서 불을 뿜었다.

몽골의 공병대가 먼 길을 끌고 왔던 공성병기는 겨우 한 발의 포탄에 무너졌고, 성벽과 나란히 할 정도로 높았던 공성병기들 역시 무용지물이 되어야 했다.

“폭발하는 건 아니더라도, 위력만큼은 굉장하네.”

주유검은 망원경을 꺼내들어 전장을 확인했다.

거용관의 성벽 아래에는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다수의 병사들이 팔다리를 잃었고, 육중한 포탄이 지면에 떨어지면서 생긴 위력에 놀란 병사들은 사방팔방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하하하! 계속해서 쏴라!”

“천금을 들인 보람이 있었구나! 오랑캐들에게 아주 제격이다.!”

신이 난 포병들은 계속해서 포를 쏴댔다.

화약과 포탄을 대포 속에 집어넣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최선을 다해 막대기로 포탄을 쑤셔 넣었고, 모든 준비가 끝나자 심지에 불을 붙였다.

꽈아앙!

꽈과과광!!

전장에는 화약 연기가 자욱하게 일었다.

코를 찌르는 초연냄새와 함께 사람의 살덩이가 타들어가는 악취가 진동했다.

“앞으로도 명나라는 더욱 발전해야 한다.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여, 오랑캐들을 견제하도록 할 것이다.”

이번 공방전으로 명나라 무장들은 서양 화포의 위력을 깨닫기 시작했다.

지금껏 반대해왔던 서양 선교사들이 얼마나 고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서양의 기술이 얼마나 방대한 범위를 자랑하는지, 그것들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었다.

“놈들이 도망치고 있습니다!”

“쏴라! 계속해서 쏴!”

드디어 몽골족들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화포의 위력 앞에서 그들은 승산이 없었다. 성문과 성벽의 점령에 성공하기는커녕, 오히려 공성에 동원하려고 했던 공성병기들은 죄다 박살이 나고 말았다.

“퇴각하라!”

“본영으로 물러나 진영을 다시 갖춘다! 전군 퇴각!”

할하 투멘과 우량하이 투멘은 병력을 물렸다.

더 이상은 개죽음일 뿐이었다.

그들에게는 북원 왕실을 위해 부족의 모든 병사들을 희생시킬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북경을 마음껏 약탈할 기회를 준다는 말에 현혹되었을 뿐, 홍이포의 위력에 놀란 투멘들은 자신들의 야욕이 지나쳤음을 인정해야 했다. 이번 전투는 몽골족에게 있어 유래가 없던 대패였다. 한족 국가와의 전쟁 역사상 이 정도로까지 일방적이었던 패배는 없었다.

“적들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전하!”

홍승주가 달려와 격앙된 음성으로 주유검에게 보고를 했다.

아직은 안심하고 있을 때가 아닐지도 모른다. 분명 몽골의 십만 대군은 선봉대의 공격이 막혔다고 해서 그대로 군사를 물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기세를 몰아 공격해올 게 확실했다.

하지만 들뜨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화포의 위력 앞에서 도망치기에 바쁜 몽골족의 모습은 명나라 장수들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주었다.

“포병들에게 화포를 정비하라고 일러라. 계속된 포격은 화포에 큰 무리를 준다. 열을 식혀서 차후의 싸움에 대비토록 하라.”

“예!”

이미 거용관은 축제 분위기였다.

십만 대군이 쳐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그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겨우 열 개에 불과한 화포들이 보인 위력에 몽골족들은 꼴사납게 후퇴했고, 명군 측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첫 번째 수성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