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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제3장 북원 전쟁(1)



명나라는 피폐해졌다.

본디 한족이 약해지면 북방의 오랑캐들이 강성해지는 법이다. 몽골은 드디어 자신들이 부흥할 날이 도래하였노라고 여겼다.

그들은 빼앗긴 중원을 되찾고 한족들을 다시 복속시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천하를 손에 쥐고서 한족들을 노예로 부리며 찬란한 영광의 역사를 꽃피웠던 몽골족들이었기에 그들은 과거의 단맛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모조리 빼앗아라! 본디 장성 이남은 우리들의 영토였다!”

“우리를 다시 주인으로 받들어라, 한족들아!”

약탈, 살인, 방화, 강간.

몽골족들은 태원군(太原郡)을 누비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사냥 중에서도 가장 돈벌이가 되는 건 역시 인간사냥이다. 마음껏 빼앗고 철저히 유린했다. 매서운 추위로 가득한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약탈에 철저히 의존해야만 했다. 몽골족에게 있어 약탈은 하나의 생존방식이자, 당연시 여겨지는 싸움이었다.

“버러지 같은 한족 놈들. 조금만 기다려라, 언젠가는 네놈들을 다시 무릎 꿇릴 것이니.”

차하르(察哈爾) 가문의 카사르는 씹어 먹던 닭 뼈를 내뱉었다.

그는 지금의 상황에 강한 불만을 느꼈다.자신들은 고작해야 가축과 재산이나 훔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좀도둑 같은 삶을 통해 얻는 생존으로 만족해버리는 순간, 위대하신 선조 테무르(鐵木耳)의 이름은 땅으로 떨어지게 되리라.

그는 천하를 빼앗고 싶었다.

선조들이 이룩한 영광스런 나라. 중원을 모두 정복하는 것은 물론, 색목인들이 살고 있는 드넓은 서쪽 세계를 향해서 나아가고 싶었다.

“장군, 눈이 점점 매섭게 몰아치고 있습니다.”

“군사들을 쉬게 해라. 이런 날씨라면 한족들도 움직이기 어렵겠지. 길목이 모두 눈으로 막혔을 것이니 이 겨울에는 누구도 움직일 수 없을 거다.”

비록 장성 이남에 있는 한족의 영토였지만, 몽골족은 중원과 한족들을 점령했던 민족이었다. 그들은 장성 이남의 지리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자세히 기록된 지도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 부족원들 역시 여러 번이고 약탈을 저질러 온 정예들이었다.

“한족 놈들은 스스로를 천하의 중심이라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만, 놈들은 그저 강한 척을 하길 좋아하는 약자에 지나지 않는다. 나태하고 연약한 모습이 놈들의 본성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다루가치 카사르의 말에 저오파(儲澳巴) 부족의 쉬르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모르겠는가.

한족들은 거들먹거리길 좋아하는 오만한 족속이다.

하지만 저들은 자신들이 오랑캐라며 비천하게 여겼던 부족에게 황제까지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토목의 변)

황제랍시고 수십만 대군을 이끌었다가 대패하고 굴욕을 겪었다. 숫자만 많지, 결국은 오합지졸이고 초식동물에 불과할 뿐이었다. 몽골족들은 한족이 자신들을 업신여기는 것만큼이나, 한족을 매우 우습게 여겼다.

“너희 가문이 가한과 함께 출정하여 누르하치의 아들놈을 격파했다지?”

“가문의 자랑입니다.”

몽골(蒙古). 여진(女眞). 대명(大明).

군사적 요지인 요동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 세 세력들이 충돌했다.

몽골이 요동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누르하치가 여진을 모두 통일하기 이전이었다.

건주여진(建州女眞)을 통합한 누르하치가 해서여진(海西女眞)을 공격했고, 해서여진이 몽골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몽골과 여진의 싸움이 전개된 것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놀랍게도 몽골의 승리였다. 북쪽 초원으로 쫓겨났다고는 하나 몽골 제국의 기상이 아직 남아있었는지, 승승장구하던 누르하치에게 패배를 안겼다.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일했다……. 이제 곧 한족 놈들을 공격하겠지. 놈들은 분명 중원을 빼앗고 나라를 세울 속셈이다. 이대로 가만히 놔두면 선수를 빼앗기고 말 터. 천하는 우리의 것이다. 미개한 여진 놈들에게 빼앗길 수는 없지.”

“물론입니다.”

“보르지긴(孛兒只斤)과 칭기즈 칸(成吉思 汗)의 이름을 걸고서.”

그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고기를 뜯어먹었다.

지금 입에 넣고 있는 것들은 모두가 약탈한 것들이었고, 곧이어 밤을 즐겁게 해줄 한족 여인들 역시 전리품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즐거운 밤을 보내기는 어려울 듯 했다. 신왕 주유검이 이끄는 병력이 1천에 달하는 몽골 부대를 완전히 포위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눈보라에 길목이 모두 막힌 상황. 몽골 전사들은 결코 한족이 쳐들어오지 못할 거라고 여겼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지금까지 명나라의 어떤 장수도 눈보라를 뚫어내며 강행군을 하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 * *



눈보라 속의 강행군.

제법 쌓이기 시작한 눈밭을 걷어내며 내달린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주유검은 새하얀 입김을 토해냈다.

머리와 어깨 위에 쌓이는 눈은 항상 털어내야 했고, 눈보라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제 곧 도착한다.”

주유검은 말고삐를 당기며 멈춰 섰다.

그리고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나침반은 14세기 전후로 중원에 들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원에 나침반을 들여온 것은 몽골의 원나라였다. 남만인과의 교역에 매진하던 몽골이었기에, 그들은 교역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인 나침반을 귀하게 여겼다.

“척후대가 몽골 놈들을 확인했습니다. 1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포위를 모두 끝냈습니다.”

장수들이 연이어 보고를 해왔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장성을 넘어온 오랑캐들을 격멸하는 일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명군은 눈보라 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였다. 몰아치는 바람소리가 병사들의 움직임을 숨겨주었고, 행군을 괴롭혔던 눈이 오히려 매복을 도와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싸워왔던 농민반란군과는 격이 다를 것이다. 몽골 전사들은 사납고 용맹하다. 항상 주변을 경계해라.]

‘예.’

숭정제의 충고에 주유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각오를 다졌다. 자신의 뒤를 따라주고 있는 장수들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주유검은 최대한 ‘황제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호를 보내라! 전군 공격하라!”

가장 먼저 보정총병 왕선이 움직였다.

눈보라 속에서 고함을 내지르며 돌격하는 명나라 군세. 술에 취한 채 보초를 서던 몽골 전사의 표정은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절대로 오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명나라 군세의 등장에 태원군에 주둔하고 있던 몽골군은 크게 요동쳤다.

“오랑캐들을 모조리 척살하라!”

“다 죽여라!”

미처 적이 쳐들어올 줄은 몰랐기에 몽골군의 경계는 허술하기만 했다.

그들은 흔들어도 모를 정도로 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몽골군의 중요병기인 우수한 준마들은 마구간에 묶여 있었고, 방금까지 사로잡은 여인들과 정사를 벌였는지 갑옷은커녕 옷조차도 제대로 입지 않은 병사들도 있었다.

“크아악!”

“저, 적……! 어떻게 여기까지!”

이는 몽골군에게 있어 전혀 예상치 못한 재난이었다.

어느 누가 적들의 기습을 예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명군은 눈보라를 뚫고서 태원군까지 왔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야가 불안정한 환경에서 강행군을 벌인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명나라 군사들은 몽골족이 자살행위라고 생각한 강행군을 해서 태원군을 습격했다.

“백성들을 피신시켜라. 백성들이 우선이다!”

조문조는 시가지를 누비며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손전정과 노상승 역시 몽골군을 상대하면서도 백성들을 구출하는 모습을 보였다. 몽골군을 많이 죽여 봤자 백성들을 잃으면 본말전도의 결과일 뿐. 진정한 승전보를 위해서라도 우선해야 할 것을 지켜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장수들은 많지 않았다.

주유검 직속 휘하의 장수들과 몇몇의 장수들만 그렇게 생각할 뿐, 대다수의 무관들은 적의 수급을 취하는 것을 우선시 여겼다.

“귀걸이를 단 놈을 죽여라! 그놈들이 대장들이다!”

“얼굴 표식을 확인하고 그 목을 가져와라. 큰 포상을 내릴 것이다!”

몽골족은 얼굴에 표식을 새겨서 계급을 구분한다.

머리에 요란한 장식을 하거나, 몸에 장신구를 달기도 했다. 가장 먼저 그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당연했다.

명나라 장수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전공을 쌓고 싶어 했다.

굴러다니는 보물덩이와 같은 적장의 수급을 챙기기에 바빴고, 탐욕이 짙어질수록 더욱 치열한 살육이 벌어졌다.

“전하!”

홍승주가 검을 들어 주유검의 앞을 막아섰다. 바로 눈앞에서 몽골족 병사가 주유검을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적병의 모습을 확인한 주유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겨버렸기 때문이었다.

타앙!!

호쾌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화승 권총에서 불이 뿜어지면서 쇠구슬이 날아가 적의 미간을 꿰뚫었다.

“한 번 쏘면 다시 재장전을 해야 한다니……. 이게 무슨 경우인지.”

주유검은 권총에 다시 화약과 쇠구슬을 집어넣었다.

더불어 철막대를 꺼내 화약을 밀어 넣는 수고까지 해야 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 이 시대의 총기 기술은 그다지 발전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사격은 물론, 장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엉성하고 불편하기만 했다.

“전황은 어떠한가?”

“대승입니다. 적이 혼비백산하여 뿔뿔이 흩어지고 있습니다.”

홍승주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더러운 몽골족을 물리쳤다. 적들에게 포로로 사로잡혔던 백성들을 구출하는 데도 성공했고, 만리장성을 넘으면 죽음뿐이라는 점을 몽골족들에게 톡톡히 보여주었다.

“적들이 도망친다!”

“잡아라! 끝까지 쫓아가서 잡아라!”

몽골족은 장성을 넘어와 태원군에서 사냥을 벌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사냥을 당할 차례였다. 기름종이로 꽁꽁 묶어두었던 조총들이 드디어 빛을 발했다.

종이를 걷어낸 조총들이 불을 뿜으며 발포되었고, 그 때마다 고라니마냥 몽골족 병사들은 차가운 눈밭을 굴렀다.

“발포하라!”

“백성들을 살해한 대역무도한 놈들이다!”

병사들은 사냥에 열중했다.

서로 소리를 지르며 오락에 빠져들었다. 몽골족들이 생존을 위해 사냥을 했듯, 명나라 병사들 역시 오랑캐 죽이기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삶과 죽음을 오고 가는 난전이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방적인 학살과 살육이 난무하는 전투였기에, 명나라 병사들은 희희낙락하기까지 했다.

“놈들의 본진이 붕괴되었다. 이제 사기를 완전히 잃었을 터이니 모두 포로로 잡아라. 저항하는 무리들만 죽이되, 투항의 뜻을 나타내는 자들은 포로로 삼겠다.”

“명을 전달하겠습니다.”

주유검의 명령을 들은 홍승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말을 탄 무관들을 소집했다. 그들로 하여금 시가지를 돌아다니며 총대장의 명령을 전파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아악!!”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장에 끊어질 것 같은 처절한 단말마였다. 어느 쪽의 비명이었는지는 모르나, 주유검은 듣기에 썩 나쁘지가 않았다.

[전화(戰火)에 너무 빠져들진 마라. 넌 황제가 될 몸이다. 절대로 전쟁에 미쳐서는 안 된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주유검의 모습에, 숭정제는 강하게 그를 제지했다.

전쟁에 미친 황제들이 나라를 말아먹는 경우는 역사 속에 몇 번이나 있었다. 비록 장정을 이끌고 전장을 누비는 전쟁군주가 될 지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차가운 평정심을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죽이는 경우가 있으면, 언젠가는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있는 거겠죠. 그것을 저들에게 보여주려는 겁니다. 이미 우리들은 몇 번이고 이런 광경을 봤잖아요. 농민 반란군이건, 몽골군이건. 언젠가는 여진족과도 싸워야 하는 입장이고.”

주유검이 입을 열어 말했다.

제3자가 이 모습을 본다면 신왕이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말을 건네고 있다 생각할 것이다. 헛것을 보는 것이라며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주유검은 숭정제와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지금만큼은 주변의 시선 따위는 모두 잊어버리고 숭정제와 이야기를 나누고픈 생각뿐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