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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제2장 화포와 십자가(2)



다른 관서와는 달리 예부(禮部)는 어떻게 해서든 천주교의 부활을 막아야 한다며 벼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관원들과 합심하여 황제에게 집단 상소까지 올렸다. 과거에 천주교 박해를 명령했던 황제이니 만큼 자신들의 상소를 들어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예부였지만, 불운하게도 그것을 이룰 수는 없었다.

“아바마마께서는 어떠하신가?”

황태자 주상락이 물었다.

이에 황제를 진찰했던 태의령은 고개를 저으며 낯빛을 흐렸다.

“황상께옵서는 예순이 넘으셨습니다. 그런데도 황상께서는 항상 가무를 즐기시니, 그로 인해 몸에 화를 입은 것이옵니다.”

무분별하게 여색을 탐한 탓이 크다.

태의령은 차마 황태자 앞에서는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황제는 늘그막의 나이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색에 관심이 깊었다. 수천 명에 달하는 궁녀들에게서 시중을 받으며 퇴폐적인 생활을 보낸 것은 물론, 정력을 보충하기 위해 잉어의 눈물과 여우의 침을 먹는 등의 괴상한 기행까지 벌였다.

하지만 이제는 무려 30여 년 동안 이어진 주지육림의 삶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왔다.

오히려 지금까지 버틴 게 대단한 일이 아닐까. 가무와 음욕에 탐닉한 황제들 중, 예순까지 버틴 황제는 만력제가 유일할지도 모른다.

“부황께 고해라. 아들이 왔다고.”

“예.”

궁녀가 황제에게 이를 고하고자 잠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안에서 큰 고성이 울려 퍼졌다.

“썩 물러가라고 전해라! 이 아비가 언제 죽을는지 구경이라도 하려고 온 것이로구나, 이 배은망덕한 놈!”

그릇이 굴러다니는 소리. 그리고 요란하게 부딪치며 산산이 깨지는 굉음이 들렸다.

분명 병석에 누운 황제가 강한 분노를 표출하는 소리일 터. 죽을 때가 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부황의 태도에 주상락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서 상순이를 불러다오! 내 죽기 전에 상순이를 봐야겠다!”

그는 황태자는 멀리하면서도 셋째 아들은 오매불망 찾았다.



황제가 쓰러졌다는 소식은 궁궐 전역으로 퍼졌다.

황제는 궁녀들과 뱃놀이를 가던 중에 마차에서 쓰러졌다. 망측스럽게도 마차 안에서 궁녀들을 껴안고 놀다가 정신을 놓았다고 했다. 알몸에 가까운 모습으로 실려 온 황제의 몰골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혀, 형님… 역시 계셨군요.”

곧이어 주상순이 도착했다.

서둘러 달려왔는지 비대한 몸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다. 숨을 헉헉거리면서도 그는 주상락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왜 아니겠는가. 황태자의 입장에서 보면 주상순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것을.

“들어가 봐라. 부황께서 널 기다리신다.”

“알겠습니다, 형님.”

만약 다른 인물이 황태자였다면 주상순은 곧바로 주살되었을지도 모른다. 황제가 쓰러진 지금, 자금성의 주인은 황태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상락은 선한 성품의 황태자였다.

비록 부황의 편애가 심하다고는 하나, 이복동생을 죽일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것을 알기에 주상순 역시 황태자를 경외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 아버님… 하, 할아버님은 괜찮으시옵니까?”

곧이어 황손(皇孫)인 주유교가 도착했다.

주유교는 환관들에게 이끌려 내궁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바깥으로 나온 게 오랜만이었는지 창가 너머로 들어오는 밝은 햇빛에 두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또 목수 흉내나 내고 있었느냐!”

주상락이 짐짓 노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들의 양손은 상처투성이였다. 궁에 틀어박혀 지내느라 얼굴은 새하얬지만, 곱상한 모습과는 달리 양손은 굳은살과 상처로 가득했다.

주유교는 오직 무언가를 만들고 조립하는 일만을 좋아했다.

황제의 손자, 황태자의 적장자가 가질 수 있는 취미는 결코 아니었다.

하루 종일 목공예를 하기 일쑤였고, 자신이 만든 가구를 시장에 내다팔면서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기까지 했다.

“넌 대체 뭐가 되려고…….”

이 정도면 주상락이 못마땅해 하는 것도 당연했다.

주유교는 정비 사이에서 태어난 적장자였다. 언젠가 자신이 황제에 즉위하면 이 아이는 황태자가 될 터.

그리고 또 다시 시간이 흐르면 황태자가 그 다음으로 황위를 물려받을 터였다. 그런데 하는 짓이라고는 망치를 두드리는 것뿐이었으니, 아비로서 탄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 동생은 지금 요서군에서 군사를 지휘하고 있다더라.”

“유, 유검이가요? 저는 그 이야기를… 처음 듣는데요. 안 되는데… 거긴 위험한데…….”

주유교는 몹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상당히 모자라다는 평가는 받고 있었지만, 우애만큼은 끔찍하게 여겼다. 황위계승권을 떠나, 이복형으로서 동생을 크게 걱정했다.

“……됐다.”

황손씩이나 되어서 앞으로 대체 어찌 하려는지.

주상락은 뭐라 더 말하고는 싶었지만, 쇠귀에 경 읽기 같은 일이었기에 관두기로 했다.

결국 사람의 천성이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지금에 와서 뭐라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 * *



성당에서는 먹음직스런 냄새가 풍겨 나왔다.

선교사와 신도들이 모여 무료배식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들은 서양의 상선들이 적선하듯 내려놓은 오래 된 육포와 밀가루, 그리고 곡물들을 모조리 가마솥에 넣어 끓이고 있는 중이었다.

수많은 인파들이 성당으로 몰려들었다.

오랫동안 흉작이 이어지면서 식량사정이 바닥을 쳤기 때문이었다.

곡식의 가격이 폭등하고 먹을 게 귀해진 상황이었기에 군중들은 이 때다 싶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더럽게 맛없네.”

주유검은 죽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하지만 곧바로 바닥에 내뱉고 말았다.

[그러게 왜 그런 걸 먹느냐?]

‘뭔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백성들은 오랜 흉작으로 인해 이웃집하고 자식까지 바꿔가며 잡아먹고 있는 지경인데, 황족이라고 해서 칠첩반상을 먹으면 창피하지 않겠습니까. 남자는 자존심 빼면 시체라고요.’

숭정제 또한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숭정제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그의 육체에 빙의된 주유검 역시, 눈앞의 백성들을 보며 강한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모두 부덕한 우리 황실의 책임이지.]

‘정확히 말하면 우리 공동의 책임이죠. 우린 서로 같은 배를 탄 사이잖아요. 같은 배를 탄 사이끼리 연대책임이라고 해둡시다.’

[녀석.]

조정에서는 여러 번이나 천주교를 반대하는 서한을 보내왔다.

처음에는 정중한 어조였지만, 차츰 말투가 격해지고 있었다. 조정대신들의 대부분이 유교와 불교를 신봉하다보니, 그에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천주교에 강한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숭정제는 개의치 말라고 했다.

주유검은 혹시나 조정에서 강한 제재를 가해오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우선은 숭정제의 말을 믿기로 했다.

‘영감님, 뭔가 믿고 있는 구석이라도 있어요? 우리가 요서군에 부임했다고는 해도, 군사권도 뭣도 없는 나가리 신분이잖아요. 조정에서 압송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복날의 개처럼 끌려가야만 할 텐데.’

그 때, 저편에서 기웃거리던 꼬마가 다가왔다.

병사들이 나서서 제지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주유검은 손을 들어 그들을 만류했다.

그는 다가온 꼬마아이에게 죽 한 그릇을 건넸다. 그러자 꼬마가 반색을 하고 고개를 푹 숙이며 감사인사를 표했다.

주유검이 꼬마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데, 숭정제의 말이 들려왔다.

[이제 곧 폐하께서 쓰러지실 것이다. 수명은 아직 1년 정도 남았지만…….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골골거리실 시기지.]

‘영감님한테는 지금의 황제가 할아버지 아니에요? 엄청 담담하게 말하시네.’

[분명 폐하는 짐의 조부다. 하지만 지금은 병석에 누운 조부를 이용해서라도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국면을 이끌 필요가 있다.]

숭정제는 매몰찬 모습을 보였다.

병석에 누워 골골거리는 황제는 나라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밥을 축내기나 할 뿐이다. 갑자기 황제의 몸 상태가 호전된다 해도 조금도 이로울 게 없다는 말까지 했다.

천하에 어느 누구도 황제에게 기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더 이상 기대를 하기에는 너무도 먼 곳까지 와버린 작금의 황제였다.

“근데 뭘 그렇게 중얼거리세요? 어디 몸이 안 좋아요?”

죽을 한 그릇 뚝딱 비운 꼬마가 고개를 들며 주유검에게 물었다.

간질에 걸린 환자마냥 혼자서 중얼거리는 주유검의 모습에서 이상함을 느낀 것이었다.

주유검의 신분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 역시 주유검을 수상하게 여겼다.

신기가 들린 무당이라거나, 예수회 소속의 귀신잡이 신부라는 오해까지 생겨났을 정도였다.

“내 눈에는 잡귀가 보이거든. 백발이 성성한 젊은 영감님의 모습이 매번 보여.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서른넷인데도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한 가득이다.”

“그래도 대머리는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대머리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죽은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꼬마는 배꼽인사를 하고는 황급히 부모가 있는 쪽으로 가버렸다.

“전하, 혹시 옆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좋을 대로.”

훤칠한 용모를 가진 색목인 미남자가 주유검에게 다가왔다.

이국적인 외모였지만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미남이었기에 그는 명나라 여인들에게서 인기가 매우 높았다.

예수회 소속의 선교사 아담 샬.

그는 직접 주유검에게서 중원에 맞는 역법을 만들라는 명령을 받았었다.

그리고 벌써부터 일을 시작해 1주일마다 중간보고를 하는 식으로 주유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하께서 저희 쪽의 언어에 능통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예수회에 보고하니 그쪽 사람들도 크게 놀랐을 정도였습니다. 대체 언제 익히신 것입니까?”

“누구에게서 배웠겠나. 마테오리치에게서 배웠지.”

“그렇군요. 마테오 선교사님께서도 저와 같은 도이지 출신이시니까요.”

마테오리치는 아담 샬의 전임자였다.

오래 전에 중원으로 건너와 선교사 활동을 했으며,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부지런히 일하다가 북경에서 선종(善終)했다.

전임자인 마테오리치에게서 언어를 배웠다.

물론 그것은 주유검이 거짓으로 지어낸 말이었다.

전생에 고등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어서 얼마간 불어를 할 줄 아는 것일 뿐이지, 마테오리치라는 이름의 선교사를 만난 적은 없었다.

“나는 천주교의 선교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너희들이 명나라에 크게 도움을 주는 한, 나는 너희들을 옹호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홍이포의 수입은 물론, 완벽한 역법을 만들어 이 나라의 농사에 많은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유검은 네덜란드의 상인들을 통해 홍이포를 수입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아담 샬이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예수회 선교사라는 그의 신분을 이용해 네덜란드 상인들과의 교류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회에 도움을 요청하니 의술에 능통한 의사들도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외과술에 능통한 자들이니 분명 전하께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담이 기쁜 듯이 말했다.

명나라 황족이 천주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아담은 예수회에 주유검이 명나라의 황제가 될 인물이라고 보고했고, 그런 인물이 천주교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 예수회는 강하게 반응을 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에서는 신자가 줄어 수도원을 폐쇄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천주교의 힘이 약화되는 것을 우려한 예수회는 점차 미지의 땅인 동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선교 확장의 대표적인 중심지가 바로 명나라였다.

“혹시 총기도 수입이 가능하겠나? 이왕이면 휴대가 편한 총이었으면 좋겠는데.”

“상선들마다 적잖은 총기류들을 보관하고 있으니, 아마 마음에 드는 것을 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후, 아담은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