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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제2장 화포와 십자가(1)



주유검에 의해 중용된 노상승은 양주(揚州)의 남경(南京) 출신이었다.

어린 나이에 무관이 된 그는 반란군을 진압했고, 많은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남경에서도 그에 대한 명성이 자자했다.

이후 그는 조정에서 대명지부(大名知府)의 벼슬을 받았으며, 고위급 장군들이 눈여겨볼 정도로 출중한 유망주였다.

“요동은 사실상 여진족들에게 넘어간 상태요.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영토를 누르하치가 모두 차지했다는구려.”

“위태로운 시국이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노상승의 말에 손전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손전정은 대주(代州) 진무위(振武衛) 사람이었다.

그는 변경에 수성지현(水城知縣)으로 임명된 이후 군법을 바로잡고 병사들을 단속했다.

또한 반란의 수괴를 붙잡아 처형하고 민란들을 모두 진압했으며, 다수의 공훈들을 쌓으면서 조정의 중앙 무관직으로 출세하게 되었다.

조문조와 함께 노상승과 손전정이 주유검의 휘하로 중용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바로 홍승주와 함께 숭정제의 4대 명장으로 평가받는 인물들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요동의 백성들이 장성을 넘어 피난해 오고 있소이다. 분명 누르하치가 움직이려는 것일 게요.”

“요동의 백성들이 전란의 징조를 감지한 것이지요.”

근자에 요동(遼東)에서 피난 오는 백성들이 부쩍 많아졌다.

노골적으로 보이는 전쟁의 징조에 노상승과 손전정은 우려를 드러냈다.

그리고 여진족의 침탈 또한 극심해졌다.

명나라 조정은 요동에 위치한 장정들을 모두 불러들이는 한편, 백성들을 요서군으로 대거 이주시키면서 사실상 요동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요동은 군사적 이점을 가진 중요한 지역이었다.

중원의 입장에서도, 그리고 후금의 입장에서도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중원의 국가들은 매번 요동을 공격했고, 고구려와 고려 역시 요동을 공격하여 제패해왔다.

“요동총병 이성량이 죽은 게 원인이 아니겠소?”

“지금 요동과 만주에서는 누르하치를 막을 자가 없습니다.”

두 무장은 한숨을 토해냈다.

요동총병(遼東総兵) 이성량.

그는 조선으로 출병했던 이여송의 부친이기도 했다.

그동안은 요동의 대군벌이었던 그가 누르하치를 견제해 왔는데, 결국 누르하치를 이기지 못하고 북경에서 병사했다.

다시 말해 요동의 드넓은 벌판이 무주공산이 되었다는 뜻이었고, 그것은 곧 누르하치에게 기회로 작용했다. 이성량을 따르던 여진 부족들을 모두 흡수한 것은 물론, 후금을 건국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놈들, 어서 집합해라!”

손전정은 소리를 치며 병사들을 집결시켰다.

“집결!”

4백여 명의 병사들은 허겁지겁 달려 집결대형을 이루었다.

이들은 바로 주유검을 지킬 근위대들이었다.

수도 방위군에 속한 부대였기에 갑옷과 병장기도 우수했다. 이들은 또한 군사훈련을 제법 엄하게 받았는지, 다소 험하게 굴렸음에도 불평하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우리들은 신왕 전하를 모시는 근위대들이다. 우리는 신왕 전하를 위해 적의 화살을 막는 방패가 되어야 한다!”

뒤이어 입을 연 노상승의 말에 병사들은 주목했다.

황손(皇孫)을 섬기는 근위부대.

그 무거운 책임을 병사들이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근위대 병사로 진급하게 되면서 봉급은 크게 올랐지만, 그만큼 그들에게는 무거운 의무가 가해지게 되었다.



* * *



주유검은 근래에 천주교 성당을 자주 찾았다.

‘영감님, 나라를 세우는 인물들은 죄다 천기(天氣)를 타고 나는 모양이네요. 역시 태조(太祖)라고 불릴 정도면 그 정도는 기본이겠죠?’

[그럴지도 모른다. 누르하치는 하늘로부터 기회를 받은 자다.]

임진년에 벌어진 왜란.

그 왜란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인물이 바로 누르하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고작해야 섬나라를 얻었을 뿐이지만, 여진족은 명나라와 조선이 혼란한 틈을 타 성장하여 천하를 도둑질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아니, 우연이 아니다.

오랑캐라 멸시받았던 여진족들은 이때만을 기다려 온 것이었다.

“요서군의 병력 배치는 어찌 되었는가?”

주유검이 물었다.

손아귀에서 작은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금속으로 만든 톱니바퀴와 나사들. 기계식 시계를 이루는 작은 부품들이었다.

“산해관(山海關)에 3만, 그리고 거용관(居庸關)에 3만입니다.”

홍승주의 보고에 주유검은 인상을 찌푸렸다.

몽골과 여진이 빈번하게 장성 이남을 약탈하고 있거늘, 장성에 주둔한 병력은 고작해야 6만에 불과했다.

“너무 적군. 황실에 보고된 정규 병력은 3백만일 텐데.”

호적에 기록된 인구가 1억 8천만 명.

군적에 등록된 병력은 3백만에 이르러 있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관료는 많지 않았다.

군적 상에는 정규군이 3백만으로 기록되어 있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징집되기 싫어 도망친 장정들이 태반이었고, 그나마 보유한 병력들조차도 군사훈련을 받지 않은 민병대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정규군도 아니고, 설마 징집병을 10만도 동원하지 못할 줄이야.”

멸망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매우 서서히 이루어진다.

지금의 명나라는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정규군 1백만을 항상 유지하면서 북방 초원으로 원정을 보냈을 정도로 강성했었지만, 쇠락을 반복하면서 대부분의 힘을 소진하고 말았다.

“우선 요서군과 주변 지역만이라도 호적을 조사하고 민호들을 파악토록 하겠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수준이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침음을 삼킨 주유검이 숭정제에게 말을 건넸다.

‘상상 그 이상이네요. 명나라 황실에 상이라도 주고픈 심정입니다. 어떻게 매번 예상을 뛰어넘을 수 있죠? 어떻게 명나라가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인구와 국력을 가진 청나라에게 멸망했는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그 의문이 풀렸네요.’

[너에겐 미안하다고 생각한다.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어. 이 모든 것이 우리 주씨들의 문제 때문이다. 우리들의 무능이 명나라를 이리 만들었으니.]

하지만 나라의 멸망이 숭정제에게 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는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건 주유검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몸에 빙의되기 전, 숭정제의 일대기를 파라노마처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 다시 그 끔찍한 결말을 보는 건 사양입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서로 상부상조하기 위해서라도 나라의 멸망을 막아야 하잖습니까.’

[그렇지.]

‘힘냅시다, 우리.’

주유검과 숭정제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금발의 미남자가 들어왔다.

“여기서 집무를 보실 건가요? 이제 슬슬 신도들을 받아들여야 하는데요. 전하께서 계시면 다른 사람들이 못 들어옵니다.”

아담은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주유검은 빈번하게 성당에 들락날락거렸다.

이곳은 천주를 모시는 장소다.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엉성한 모습이었지만, 햇빛을 받아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매우 아름다웠다.

“알아서 나갈 생각이었다.”

선교사의 등살에 못 이겨 주유검은 성당을 나섰다.

바깥에는 수많은 인파들이 구름처럼 모여든 상태였다.

조정이 천주교를 탄압한 남경교안(南京敎案) 사건 이후.

신왕 주유검이 천주교의 선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전국에 숨어 지내던 천주교 신자들이 군집하기 시작했다.

“전하, 시키신 대로 명령하였사옵니다. 화란(和蘭: 네덜란드)에서 답장이 왔습니다.”

군지휘사 서광계가 달려와 말했다.

서광계는 조정에서 이단아로 취급되는 인물이었다.

그는 명나라의 조정 관료였음에도, 천주교를 섬기는 신자였다.

더욱이 세례명이 있을 정도로 신앙이 독실했는데, 서양의 선교사들과 자주 교류하면서 자체적으로 화포 개발에 매진했을 정도로 신문물에도 관심이 깊었다.

“30문에 달하는 홍이포(紅夷砲)입니다! 서양에서 홍이포가 무사히 들어온다면 여진족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일에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 이상으로 크게 소모되었다.

처음에 네덜란드는 명나라에 대포를 판매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오랫동안 교류를 나눈 일본에도 판매한 적이 없는 최신식 화포를 연고도 없는 명나라가 주문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명나라의 도자기와 보물들을 대가로 줘야만 했다.

화포 판매를 반대했던 네달란드 상인들은 말 그대로 파는 게 값인 도자기가 담보로 오르자 명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명나라에서 자체생산이 가능하려면… 몇 년이나 걸리겠는가?”

“어, 어렵습니다. 예산과 시간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조정에서 용납해줄 리가 없습니다. 서양 상인들에게서 수입하는 것만으로도 조정에서 사신이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서광계는 불가하다며 선을 그었다.

현저히 부족한 예산과 시간은 어떻게 해서든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있는 대로 죄다 긁어모으고 손재주 좋은 장인들을 갈아 넣으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서양에 적대적인 조정이었다.

예부(禮部)는 물론이거니와, 천주교 확산에 반대하는 신하들이 많았다.

특히 남경교안을 일으켰던 보수파 관료들이 가장 큰 문제였다.

“장차 화란과 도이지, 포도아(葡萄牙: 포르투갈), 서반아(西班牙: 스페인), 영격란(英格蘭: 잉글랜드)과도 교역을 시작해야 할 텐데…….”

명나라에 처음 무역을 제안한 것은 일본과 자주 거래하던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는 오랫동안 일본과 거래했다.

화승총 기술은 물론, 여러 사치품들을 거래하면서 일본으로부터 은을 챙겨왔다.

하지만 돌연 막부가 쇄국령(鎖國令)을 실시하면서 무역로를 끊어버렸다.

전국시대부터 다이묘들이 외국 문물을 받아들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도쿠가와 막부는 지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일방적으로 서양 문물과의 접촉을 금지시켰다.

“저들은 동방과의 무역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만큼 돈이 되니까. 막부가 쇄국령을 내린 지금, 우리들이 서양의 무역선들을 모두 끌어들여야 한다.”

명나라는 그 어느 시절보다도 궁핍해진 상태였다.

여러 해에 걸쳐 기근이 들었음은 물론, 농사를 지어야 할 백성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나 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현재 조정에는 병장기를 살 돈이 없었다.

세곡은 이미 끊어진 지 오래였고, 벌써 수개월 동안이나 병사들에게 제대로 된 봉급조차 지급하지 못했다.

“어, 어떻게 해서든 방도를 마련해보겠습니다.”

주유검의 말에 서광계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선교사들과 밀접하게 지낸 덕분에 저들의 말을 할 줄 알았다.

서광계는 서양의 신진문물에 관심이 많은 관료였고, 서양 상선들과 교역하겠다는 주유검의 말이 지극히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국수주의에 빠진 관료들과는 달랐다.

서양의 우수함을 배우고 따라해야 한다는 지식인들 중에 하나였다.

그렇기에 서양의 기술을 보급하고자 하는 주유검의 휘하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우선 색목인 상인들에게서 교역을 대가로 화포를 얻어내도록 하겠습니다. 아담 선교사가 저들과 친분이 깊으니, 분명 거래가 성사될 것입니다.”

그의 모든 관심은 서양 상인들이 보유한 신식화포에 있었다.

명나라 관리들이 붙인 서광계의 별명이 바로 화포쟁이였다.

사대부 출신의 관리가 직접 화포를 다루고 화약을 제조하는 등의 기행을 벌였으니 당연한 별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광계는 화포야말로 오랑캐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여겼다.

우수한 기술력으로 오랑캐들의 기병대를 때려 부순다. 지극히 화포쟁이다운 생각이 아닐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