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5화] 제1장 신왕 주유검(4)



예수회는 교황청 직속의 남자 수도회다.

그들의 임무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것이고, 이웃에 대한 봉사와 인격 완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포르투갈이 아시아 지역으로 점차 진출함에 따라, 예수회는 선교 활동을 펼치기 위해 명나라와 접촉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가 않았다.

서양의 기술학을 이용해 사대부들의 관심을 산 것은 좋았지만, 정작 황제가 서양학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지 않은 탓이었다.

그래서 명나라에서의 선교는 절반만 성공한 셈이 되고 말았다.

선교사로 파견된 마테오리치의 타고난 수완으로 신도가 15만 명에 육박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지만, 황실의 천주교 탄압(남경교안: 南京敎案)으로 결국 세력이 꺾이게 되었다.

“여러분, 하나님의 가르침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금발의 훤칠한 청년은 여느 때처럼 가르침을 설파하기 위해 몸소 마을을 돌아다녔다.

아담 샬.

그는 마테오리치의 뒤를 이어 명나라로 오게 된 선교사였다.

올해로 열아홉의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농경사회인 명나라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역법과 천문에도 능통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가르침은 됐고, 우리 집에서 밥이나 먹고 가슈.”

“Vielen Dank. 감사합니다.”

“난 박규라고 하오. 저 친구 이름은 유석이고.”

“What the f……!"

동쪽의 나라에 하나님의 가르침을 설파하겠노라는 장대한 꿈을 안고 도착한 젊은 선교사였지만, 무지한 백성들을 교화시키기란 쉽지가 않았다.

조정으로부터 인정도 받지 못했다.

명나라는 유교(儒敎)와 불교(佛敎), 도교(道敎)를 숭상하는 나라였기에, 북경에 지부를 설치하고자 했던 아담 샬의 요청을 거절했다.

사악한 가르침으로 백성들을 현혹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근데 이건 뭐하는 물건이유? 지도 같아 보이기는 하는데…….”

“선교사 양반, 그 먼 덕이지(德意志: 독일)에서 왔담서?”

“고놈의 코는 엄청 크시구려. 코가 크면 그쪽도… 크흠!”

아담은 명나라 외곽에 위치한 연국(燕國)에 머물렀다.

유주는 북경과 인접한 곳이었다.

하지만 오랑캐들의 잦은 침입과 북방 특유의 가혹한 날씨 탓에 백성들이 많지는 않았다.

다른 지역에 비해 교육수준도 열악했고, 심지어 도적떼들이 자주 출몰하면서부터 민심도 흉흉해졌다.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

명나라 사람이 아닌 색목인 선교사조차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망조였다.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이 맞는가?”

선교를 이어나가던 중, 북경에서 사람이 도착했다.

아담은 기품이 넘치는 모습을 한 젊은 청년을 보고서 고귀한 신분임을 직감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옷차림을 통해 신분을 알아차릴 수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청년은 많은 신하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그러하온데 누구신지…….”

“신왕 주유검이다.”

아담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주유검이라고 이름을 밝힌 청년의 뒤에 서 있던 무관이 소리를 내질렀다.

“이놈, 당장 고개를 숙이지 못하겠느냐! 제아무리 색목인이라고는 하나 버릇이 없구나!”

그 으름장에 아담은 넙죽 고개를 숙였다.

명나라 조정으로부터 몇 번이고 탄압을 받은 처지였기에 그는 눈치만큼은 빨랐다.



* * *



주유검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서양학(西洋學)과의 교섭이었다.

이번 건에 대해서는 숭정제가 아닌 자신의 의견에 따라 움직였다.

마테오리치는 명나라가 농업을 중시하는 국가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회에 청하여 농업에 가장 필요한 천문(天文), 역법(曆法)에 능통한 재주를 가진 아담 샬을 후임으로 삼은 것이었다.

주유검에게 있어 서양 선교사는 반드시 필요한 인재였다.

동양에 파견된 선교사들은 수학(數學)과 과학(科學)에 뛰어났다.

심지어 화약(火藥)과 화포(火砲)에도 일가견이 깊었으므로, 장차 여진족과 싸우기 위해서는 그들의 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네가 아담에 대해 어찌 알고 있느냐?]

‘아담 샬은 유명하니까요, 조선과도 역사가 깊고. 적어도 영감님보다야 훨씬 유명하죠.’

[황제인 짐보다 유명하다고? 이런 발칙한 코쟁이 같으니라고!]

숭정제의 물음에 주유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담 샬이란 선교사는 조선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었다.

유사 사학자인 대학생 주유검으로서는 그 이름을 결코 모를 수가 없었다.

그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온 소현세자에게 서양학을 소개하면서 조선의 역사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서양 선교사가 전한 신문물은 박지원, 유득공이 속한 북학파(北學派)를 넘어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에 의해 개화파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훗날 조선에 불게 될 서양학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이 바로 아담 샬이었다.

“덕이지에서 온 자들은 사람을 매수하면서 사특한 마음을 키우고 있습니다. 어찌 저들을 기용하려 하십니까?”

예부시랑(禮部侍郎) 심관이 주유검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했다.

예부(禮部)는 황실의 제사를 담당하고 있는 곳이다.

당연히 유교를 받드는 집단답게 천주교에 대해서 배척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심관이라는 인물은 천주교를 탄압한 관리로 유명했다.

다수의 선교사를 체포하고 신도들을 처형시켰으며, 교당(敎堂)을 부수고 천주교식 무덤을 파헤친 전적이 있었다.

“이미 육부의 재상들과 결정한 일이다. 고작해야 시랑에 불과한 그대가 나설 일은 아니라고 본다.”

육부의 재상들은 주유검의 제안에 동의했다.

어떻게 해서든 직계황족을 변경으로 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주유검은 여러 조건들을 달고서 조건부 동의를 내세웠는데, 재상들은 난감하다고 여기면서도 달리 방도가 없음을 알고는 만장일치로 그의 뜻을 따랐다.

천주교 신자는 고작해야 15만 명.

많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명나라의 인구가 1억 8천만에 이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었다. 그래서 육부의 재상들이 이에 동의한 것이었다.

“조문조, 노상승, 손전정. 세 무관들을 참절제사(僉節制使), 요녕첨사(遼寧詹事)로 삼는다.”

그들은 모두 군략에 능통한 장수들이었다.

하지만 현재 그들은 직급이 낮은 지방 장군들일 뿐이었다.

병부로서는 지방 장군들을 보내버리는 것으로 근심거리를 덜 수 있는 일이었기에, 주유검의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였다.

[역시 넌 짐이 눈여겨본 인재다! 코쟁이와 천주교를 중용하기 위해 육부를 협박한 황손은 너밖에 없을 것이다!]

‘무장들을 차출하라는 건 영감님 생각이잖아요.’

[네가 예부시랑을 협박하는 걸 보고서 응용했을 뿐이다.]

‘머리회전도 빠르셔라.’



* * *



앞으로 10년.

그 안에 누르하치를 죽인다.

요녕에 자리를 잡게 된 주유검은 숭정제와 함께 십년대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확고한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결국 생존을 위해서는 명나라 황실의 부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주유검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이보쇼, 코쟁이 양반. 죽기 싫으면 우리 전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할 게요. 아시겠소?”

“Hilf mir……! 사, 살려주세요!”

주유검에게 중용된 조문조는 체격이 7척에 달하는 거한이었다.

그는 싸움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설령 적이 도망칠지라도 끝까지 쫓아가 반드시 죽이고야 말았다.

전형적인 싸움꾼이라고나 할까. 다수의 적을 앞에 두고서도 물러서지 않으니, 그를 두고 명나라 백성들은 상승장군(常勝將軍)이라 부르며 그를 존경했다.

조문조는 솥뚜껑만 한 손으로 색목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아담의 몸이 빳빳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천문과 역법에 능통하다고 들었다. 그럼 중원식의 역법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겠지. 정확하게 기후를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역법을 만들어라.”

아담이 머무는 집에는 천문과 역법을 기록한 서적들이 가득했다.

선교사들은 모두 학문에 능통했다. 당연히 가지고 있는 서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과학기술서는 물론이고, 마테오리치가 저술했던 천주실의(天主實義), 교우론(交友論) 등의 서양학 철학서까지도 있었다.

“예… 예! 시,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야…….”

아담은 뻣뻣하게 굳은 혀를 힘겹게 굴리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다른 선교사들보다도 먼저 아버지의 품으로 직행할 위기에 놓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최대한 아부성 짙은 말들을 쏟아냈다.

고향에서 머나먼 동양에 온 것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지, 사람 같지도 않게 생긴 거한에게 맞아죽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앞으로 잘해봅시다, 코쟁이 양반. 전하께 무례하게 굴면 그 잘난 이빨을 다 털어버릴 테니까 그리 알고.”

조문조가 손을 내밀었다.

아담은 벌벌 떨리는 손을 간신히 뻗으며 악수를 받아들였다.

조문조는 인상이 성난 곰처럼 생겼다.

심지어 그는 사천성에서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죽인 일화가 있을 정도로 사나운 무장이었다. 말라깽이 몸을 가진 선교사 하나를 죽이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닐 터였다.

“전하, 그런데 왜 저런 놈의 손을 빌리신 겁니까? 소장은 뭔가 찜찜합니다. 눈도 퍼렇고 머리도 금 색깔에……. 저런 낮도깨비 같은 놈이 도움이 될지…….”

아담이 바깥으로 나서자마자 조문조가 입을 열었다.

“명나라에 필요한 인재다. 출신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게다가 남만의 선교사들은 연줄조차 없는 떠돌이들이니 은혜를 베풀어두면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 조문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막상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사실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명나라가 아무리 궁핍하고 어려워도 그렇지, 남만인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조문조는 변방에서 떠돌던 자신을 기용해준 주유검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평생 동안 모셔도 좋을 주군을 만났으니 그에게 충성을 바치고자 했다.

“알겠사옵니다. 소장은 그저 전하를 따를 뿐입니다.”

“그대 같은 장수가 있어 든든하기 그지없다.”

조문조는 숭정제 시절에 두각을 드러낸 4대 명장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뛰어난 무략으로 반란군과 청나라를 격파했다.

황제의 휘하에 수많은 명장들이 있었으므로, 숭정제가 살아있을 때에는 청나라의 어느 누구도 감히 만리장성을 넘지 못했다.

비록 그 결말이 모두 비극으로 끝나버리기는 했지만, 미래를 바꿀 기회는 존재했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반드시 기회는 온다.”

최악의 위기 속에서 최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 말을 믿기로 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죽기 싫으면 살아남아야 한다.

역사의 승자가 되면 살아남을 것이고, 원래 역사처럼 망국의 군주가 된다면 죽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