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화] 제1장 신왕 주유검(1)



서기 1618년(만력 46년).

명나라 조정은 다시 한 번 참화에 휩싸였다.

후금(後金)을 건국한 누르하치가 요동(遼東)을 차지하였으며, 군현을 다스리던 명나라 지방관을 살해하고 장성을 넘보기에 이르렀다.

명은 조정군을 급파하여 진압에 나섰으나 처참하게 전패(全敗).

조선(朝鮮)에서 발발한 왜란(倭亂)에 참전했던 유능한 장수들이 파견되었음에도, 누구 하나 누르하치를 이기지 못하고 당했다.

“대체 장수들은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여진(女眞)의 기세가 날이 갈수록 사나워지고 있습니다.”

“그러게 왜 조선에 원병을 파견해서는! 결국 병력만 잃은 꼴이 아니오?”

“왜란이 종결된 지가 벌써 20년이오! 대체 언제까지 우려먹을 참인가!”

신하들은 서로를 가리키며 책임을 돌렸다.

이번 원정 실패에 대한 책임은 병조(兵曹)에 있었다.

하지만 병부상서(兵部尙書)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데다가, 나랏일을 다스려야 할 황제가 ‘무려 30년 동안’ 칩거 생활에 들어간 탓에 뒷일을 정리해야 할 책임자가 없었다.

그렇게 명나라는 쇠퇴의 길을 걸어갔다.

옥좌에 앉은 천자가 병환을 핑계로 30여 년이나 파업(罷業)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충무공 이순신이 살아있었다면 누르하치 따위가 감히 설치지는 못했을 거요!”

총병(摠兵) 유정이 조선의 명장 이순신을 거론했다.

함께 참전했던 유정과 양호는 특히 그를 존경했다.

군사를 잘 다루고 용병에 능하니, 필시 누르하치를 토벌할 수 있었겠지.

아니, 토벌을 넘어 여진이라는 족속 자체를 무릎 꿇렸을 것이라고 장담할 정도였다.

명나라 장수들은 왜란이 끝나기 전, 조선 조정에 이순신을 요동에 파견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해전에서 전사했고, 결국 누르하치를 막을 적수가 없어졌다.

“내가 뭐라고 했소? 누르하치가 해서여진(海西女眞)를 무단으로 복속시켰을 때부터 그가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위험하다고만 하고 대비를 하지 않았지요! 장성 바깥에서는 외적이, 안에서는 무지한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키는데 대비할 형편이나 됐었소?”

아무런 성과도 없는 다툼이었다.

육조(六曹)의 수장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할 뿐, 또다시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했다.

허비한 시간만 하더라도 도합 30년에 이르렀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명나라는 외적에 대해 그 어떠한 대비조차 하지 않은 채 허송세월로 시간만 축냈다.

물론 대책을 세우려고도 했다.

뭔가 성과를 내보고자 노력도 했고,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황상께서 아니 계시지 않습니까……. 조정에 갓 임관한 관료는 물론, 여기 계신 중진들께서도 폐하의 용안을 뵌 지 오래 되시지 않았는지요? 신하들이 폐하의 얼굴조차 모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깁니까!”

한 신하의 용기 있는 말에 편전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조정의 복귀를 탄원하는 상소를 올려도 봤다.

수백, 수천…… 아니 수만에 이르는 상소문을 올렸다.

하지만 황제는 그 어떤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고, 도리어 상소문 위에서 낮잠이나 자는 기행을 보였다.

“……얼른 선양(禪讓)이나 해주시지.”

자칫 역모로 몰릴 수도 있는 발언이 이어졌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자들도 있었다.

황제에게 뭔가를 기대하기에는, 그 기대했던 시간이 너무도 길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장성한 태자에게 황위를 물려주기를 바랄 정도였다.



* * *



깊은 고심에 빠진 것은 조정신료들만이 아니었다.

신왕(信王) 주유검(朱由檢).

황태자(皇太子) 주상락의 다섯 번째 아들이자, 현 황제의 손자.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보낸 황자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은 많은 고심으로 넘쳐 나고 있었다.

‘망할, 개뿔이! 명나라 마지막 황제로 환생한 게 뭐가 만족스런 삶이야. 다시 돌려보내줘. 다시 흙으로 돌아갈래.’

갑옷을 멋들어지게 입은 주유검은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북경(北京)에 도착했다.

섬서성(陝西省)에서 벌어진 민란을 진압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황제의 무능과 관료들의 부패로 명나라는 심각한 위기에 내몰렸고, 수탈에 지친 백성들이 봉기를 일으키며 관아를 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주유검이 황실의 일원으로서 병사들을 이끌고 토벌전에 나섰다가 돌아온 것이었다.

[수고했다. 병사를 다루는 재주는 제법인 듯하구나.]

허연 머리카락을 가진 남성이 허공에 둥둥 뜬 상태로 말했다.

귀신(鬼神). 귀신 중에서도 잡귀(雜鬼)에 가까웠다.

주유검은 자신밖에 보이지 않는 남자를 잡귀로 취급하고 있었다.

잡귀로 취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잡귀의 정체가 바로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崇禎帝)이자, 복잡하게 얽힌 관계의 주인공이기 때문이었다.

[짐과 동명(同名)을 지니기에 충분하다. 황제의 휘를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큰 무례지만, 특별히 짐이 윤허하마.]

‘우리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인데, 왜 영감님이 윤허하고 말고를 따집니까?’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유검이란 이름은 숭정제의 휘(諱)이자 21세기에서 17세기의 중국으로 회귀해버린 불쌍한 대학생의 이름이기도 했다.

‘나 좀 돌려보내주면 안 돼요? 물론 이미 죽어서 돌아갈 곳도 없긴 한데……. 그래도 그렇지, 하필이면 빌어먹을 운명의 주인공으로 만들다니.’

주유검은 본디 21세기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던 많은 대학생 중에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런데 웬걸.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했는데, 다시 일어나보니 명나라의 황자가 되어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비참한 죽음과 결말이 빤히 예고되어 있는 운명을 쥐고 있는 주인공으로.

신왕 주유검이 되었다는 사실에 졸도라도 하고픈 심정이었고, 실제로 이를 깨닫자마자 여러 번 졸도하고 깨어나기를 반복했었다.

[짐도 대관절 영문을 모르겠다. 네가 어째서 짐의 육신에 들어왔는지, 그리고 목숨을 스스로 끊은 짐이 어째서 과거로 돌아온 것인지. 어쩌면 하늘이 짐에게 다시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모르지.]

숭정제가 말했다.

그 말에 주유검은 말을 몰고 있는 상태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자신에게밖에는 들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적어도 응답 정도는 해주기로 했다.

‘일단 서로 구별하기 위해서 호칭부터 정합시다. 내 이름이야 원래부터 주유검이니 주유검이라 계속 지칭하고, 영감님은 그냥 영감님이라고 부를게요.’

[흐음, 짐의 나이 서른 중반에 영감이라는 호칭은 좀 그렇지만… 너와 나 사이에 400년이 넘는 시간 차가 있으니 좋을 대로 하거라. 어차피 짐의 모습은 너 외에는 보이지 않을 테니, 호칭이야 아무래도 좋은 문제지.]

그 말에 주유검은 인상을 찡그렸다.

뻔뻔한 인간 같으니.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을 데려다가 고생길을 걷게 하려는 꿍꿍이가 훤히 보였다.

숭정제는 멸망의 위기를 막고 싶어 했다.

젊음과 인생을 모두 다 바치면서까지 나라를 구원하려 했던 황제였기에 다시 한 번 얻게 된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으려 했다.

[나라가 망하면 너 역시 죽는다. 기껏 얻게 된 두 번째 인생이 아니더냐. 그리고 이미 죽은 운명이라면서?]

‘두 번 연달아서 죽는 건 싫긴 한데……. 어쨌거나 해야 되는 일이라면 해야겠죠. 언제까지 돌아가고 싶다고 투정이나 부리면서 현실도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17세기의 명나라로 온 지 무려 한 달이나 지났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전쟁에 참전하거나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보는 등, 수차례의 고난을 겪었다.

이를 통해 많은 것들을 깨달았고 배웠다. 현실에서 눈을 돌려봤자 살아남을 수 없음을 깨달았고, 그렇기에 숭정제와 타협점을 이루며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알았다.]

주유검과 숭정제는 꽤나 합이 잘 맞았다.

17세기의 황제와 21세기의 대학생.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다툰 적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아쉬운 관계였다.

그래서 암묵적인 동맹을 맺으며 협력노선을 밟았다.

주유검은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숭정제의 지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숭정제는 나라의 위기를 막기 위해서 주유검의 협력이 절실했다.

일이 그렇게 흘러가다보니, 서로에게 이를 드러내며 싸워봤자 손해만 볼 뿐이라는 것을 너무도 쉽게 깨닫게 되었다.

“폐하, 신들의 간청을 들어주소서!”

“이제는 국정을 살피실 때이옵니다!”

신하들의 목소리가 담벼락 너머에서까지 들릴 정도였다.

또다시 신하들이 집단 상소에 들어간 것이리라.

병사들을 해산시키고 자금성 대궐에 입성한 주유검은 수백 명에 달하는 신하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그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황제가 두문불출하여 모습을 드러내질 않으니, 매번 신하들이 꽥꽥 소리를 지르며 상소를 하는 게 아닌가. 신하들의 끈질김도 신물이 날 정도였지만, 무려 30년 동안이나 파업에 들어간 황제 역시 제정신은 아니었다.

‘혹시 감이라도 따려다가 나무에서 떨어진 겁니까? 무슨 황제가 30년 동안이나 파업을 해. 그러면서 후궁하고는 잘만 놀던데. 윗도리하고 아랫도리가 따로 노는 양반이잖아.’

주유검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허공에 뜬 채로 주유검의 곁에 있던 숭정제가 소리를 쳤다.

[무엄하다. 그래도 대명의 천자이시다. 만력제 폐하께 무례한 발언은 하지 말거라.]

‘황제로 태어난 게 다행이지, 만약 일반 백성이었다면 게으르다며 맞아 죽었겠구먼.’

그 말에는 도저히 변명할 수가 없었는지 숭정제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해댔다.

나라를 파탄으로 내몬 원흉.

숭정제 역시도 어렵게 국정을 운영하면서 무능했던 선제를 원망했었다.

욕을 한 적도 있었고, 무덤을 파헤칠까 독한 마음까지도 품었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좋건 싫건, 결국 그는 자신의 조부였다.

“신왕 전하!”

신하들이 두 눈을 빛냈다.

마침 주유검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눈빛에 담긴 의미를 보건데, ‘이번에는 신왕을 들먹여서 황제를 끌어내자!’였다.

매번 틀에 박힌 상소를 했기 때문에 신하들 역시 지쳐 있었고, 그래서 주유검을 이용해 황제에게 탄원해 보려는 것이었다.

“폐하, 신왕 전하께서도 오셨사옵니다.”

“부디 황손(皇孫)을 어여쁘게 여기시어 용안을 보여주시옵소서.”

신하들은 주유검의 등을 떠밀며 다시 한 번 읍소했다.

집단 상소는 황제가 기거하는 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작되었다.

매번 상소를 하는 통에, 황제가 시끄럽다고 소리를 치며 신하들에게 접근 금지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황제 역시 신하들의 고집을 이기지는 못했다.

접근하지 말라는 황제의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었기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함을 꽥꽥 지르면서 황제에게 나오라고 읍소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조선의 군왕이 즉위를 윤허해달라는 상소를 보내왔사옵니다.”

신하국과의 외교를 담당하던 예부(禮部)의 상서는 조선에서 도착한 상소를 두 손 모아 올렸다.

벌써 여러 해가 지나도록 조선의 광해군(光海君)을 군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해군은 임진년의 왜란을 정벌한 영웅이며, 정식으로 왕위에 오른 왕자였다.

황제와 신하들이 조선의 광해군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건 간에, 동맹국인 조선을 푸대접하면 장차 외교에 큰 문제가 빚어질 것이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작금의 황제는 내정은 물론, 외교까지도 모두 내던졌다.

명나라가 멸망하는 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원나라를 몰아내고 평민 출신의 황제가 한족의 나라를 세우면서 위엄을 떨쳤지만, 결국 국운이 점점 쇠락해가면서 망조가 들고 만 것이다.

나라의 멸망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잘해봐야 20년 안팎. 그 안에 명나라는 멸망한다.

‘영감님, 명나라가 멸망하면 주씨(朱氏) 일족이 어디 발 뻗고 살 만한 곳은 있수?’

주유검의 물음에 숭정제가 답했다.

[없다. 설령 조선에서 받아준다고 해도……, 더러운 여진 놈들은 분명 황실의 직계들을 끝까지 쫓아가 요절내려 할 것이다. 이 세상 어디로 도망치건 마찬가지겠지.]

이미 누르하치를 겪어본 그였다.

숭정제의 말에서는 깊은 증오가 느껴졌다.

여진은 결코 훗날의 화근을 남기지 않았다.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병사들을 보내 잔혹하게 죽이고 그 씨를 말려 버렸다. 그게 바로 여진의 사냥 방식이었다.

‘결국 나라를 구하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건데.’

유일한 생존법.

그것은 멸망 직전의 기로에 놓인 명나라를 부활시키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