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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구원자

2화


한 발 한 발 규율에 정해진 대로 주기도문을 읊조리며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허공에 두 손을 모은 채 대주교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섰다.

“카야 맥노프.”

높낮이 없는 일정한 울림의 목소리였다. 이자는 평생을 이러한 음성을 가지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대는 평생 에시엣의 헌신적인 종이 되어 그분께 충성할 것을 맹세합니까?”

좆 까라, 에시엣.

나는 대답했다.

“예, 맹세합니다.”

“에시엣께서는 이 세상을 우리에게 하사하시고, 무한한 은총을 듬뿍 내려 이 아름다운 땅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신의 자애로운 사랑을 본받아 세상을 포용할 것을 맹세합니까?”

“예, 맹세합니다.”

그토록 자애로워서,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전부 죽이는 것으로 해결한단 말인가.

견습생 시절의 일이었다.

수도 인근에서, 유독 마녀로 지목되는 이들이 많은 마을이 있었다. 매일같이, 누구에게나 거의 무차별하게 행해지는 사형 선고를 참다못한 이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교황에 반발하여 봉기를 일으켰다. 이들은 신전 앞에 달려가 마녀사냥 제도를 일절 폐지하고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들의 가족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 줄 것을 요구했다.

난생처음이었을 거센 반발을 마주한 교황청은, 이들에게 창칼로 대답했다. 그들이 신전 입구를 점거한 지 이틀째 되던 날, 교황에게 직접 명령을 받은 성기사들이 몰려가 그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마을까지 내려가 남은 인원을 모두 죽인 다음 그 마을을 통째로 불살라 폐허로 만들었다. 교황에게 반발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본보기로 보여 준 것이었다.

“이제 당신은 그분을 위한 가장 훌륭한 도구가 되어, 그분의 영광을 빛내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 본분을 잊지 마십시오.”

“오직, 에시엣의 뜻대로.”

나는 치밀어 오르는 욕을 참고 정해진 대답을 또박또박 뱉는 데 성공했다.

“항상 에시엣의 은총이 함께하길.”

“축복받으소서.”

“세상의 보석이 되십시오.”

대주교는 내 입술 앞에 다이아몬드를 그려 주었다. 이는 가장 귀하면서 단단한 존재라는 뜻으로, 에시엣의 종인 사제들에 대한 은유와도 같았다.

나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수습이나마 ‘사제’였다. 이 순간부터는 파문당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정식으로 성직자라는 신분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제 나가셔도 됩니다. 조심히 가시길.”

서품이 끝난 사제들은 혼란을 막기 위해 강당을 나가도록 되어 있었다. 주교의 인사에 허리를 숙여 화답한 후 통로를 지나 입구에 섰을 때, 나는 나를 반짝거리는 눈으로 보고 있는 많은 신도들과 마주했다. 가족이나 친구의 서품을 축하하러 모인 사람들이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가슴에 붙인 다음 그들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보였다. 신도를 마주할 때마다 행할, 서품을 받는 순간부터 생긴 의무이자 권리였다.

“에시엣께서 여러분과 함께.”

신도들이 나를 따라 손을 모으며 대답했다.

“또한 사제와 함께.”

각자 생김새도 연령도 제각기 다른 이들이었지만, 목소리들만큼은 완벽한 통일성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가벼운 미소를 띤 채 그들을 지나쳐 나왔다.

사제들을 죄다 불러 모아도 남을 정도로 넓은 복도를 보자, 새삼 장소의 광활함이 느껴졌다. 견습생 시절의 신전과는 수십 배 차이가 나는 규모였다.

이 거대한 신전 어딘가에, 교황 카프리치오 7세가 앉아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존재에게 접근하기 위해 이 신전에 들어왔다.

복도 가운데에 크게 설치된 성상이 눈에 들어왔다. 성상은 날개를 활짝 편 채, 검을 치켜든 천사의 모습이었다. 에시엣이 아닌, 그를 가장 곁에서 보좌하는 치천사 중에서도 제일 강한 천사인 미카엘이었다.

사실 이 제국의 신전 어디에도 에시엣의 모습을 딴 성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뿐인 신의 형체는 인간이 감히 눈에 담을 수도, 담아서도 안 될 만큼 신성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사람들은 상상력을 발휘해 에시엣을 보좌하는 천사들과, 에시엣의 계시를 받았다는 예언자들의 상을 곳곳에 만들어 세워 두었다.

굳게 입을 다문 채 칼날을 번득이는 미카엘상을 보며, 나는 수없이 다짐했던 것을 되새겼다.

교황을 죽일 것이다. 반드시, 그의 숨통을 내 손으로 끊을 것이다.

모든 것을 주도하고, 철저히 방관하고 종내는 반발마저 창칼로 밟아 꺼뜨린 그 잔혹한 에시엣의 첫 번째 종을.



* * *



교황은 이 대륙에서 가장 유명하며,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다.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현 교황이 누군지를 물으면 곧바로 ‘카프리치오 7세’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백 명을 모아 놓고 교황의 얼굴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 누구도 그렇다고 하는 이가 없었다.

교황은 에시엣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신성한 권능을 가진 존재였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교황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교황을 볼 수 있는 자는 추기경에 오른 성직자들과 그에 준하는 성녀, 교황을 보필하는 성기사들뿐.

그리고 교황의 개인적인 시중과 일정을 관리하는 보좌 사제 한 명뿐이었다. 그만큼 교황은 사람들 앞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존재였다.

그런 교황도 유일하게 딱 하루. 성 베르테우스 축일에만큼은 직접 광장으로 행차를 했다.

그럴 때면, 교황은 수십 명의 성기사가 호위하는 거대한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 옆에는 당연히 그를 보좌하는 사제와 추기경들이 따랐다.

나는 아직도 두 해 전, 견습 시절에 이곳 테베칸 시국에 와서 봤던 광경을 기억했다.

나와 같은 신전에서 온 견습생들은 모두 들떠 있었다. 그들은 지겨운 교육에서 며칠간 탈피하게 되었다는 기쁨과, 교황을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게 된다는 흥분에 온통 도취된 상태였다.

교황은 시계탑 위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초조하게 손을 모은 채 교황을 기다렸다. 한참의 기다림 끝에, 빈 망루 위로 빨간 성의를 걸친 중년의 추기경이 등장했다.

바닥에서 탑 꼭대기까지 거리가 다소 떨어져 있음에도 그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 조국인 베르시카 제국의 신전 곳곳에 그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그는, 현재 베르시카의 리스텐가(家) 가주 동생인 블라디미르 리스텐 추기경이었다.

그는 팔을 벌린 채 군중을 향해 인자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곧 교황 성하께서 등장하십니다. 모두 준비를 하십시오.’

‘와아아아아!’



군중은 드디어 교황을 본다는 사실에 들떠서 열광으로 화답했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두 손을 모은 채 연신 고개를 숙이는 신자도 있었다.

곧이어 추기경의 옆으로 석상처럼 무뚝뚝한 얼굴을 한 성기사들이 등장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거대한 흰 천과 큰 막대를 들고 나타난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양쪽에 막대를 넓게 내리고 그 위로 천을 걸치기 시작했다.

이내 탑 앞에는 흰색의 휘장이 드리워졌다. 망루에서 물러나는 추기경들과 성기사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교황을 맞을 준비가 된 것이다.

이제 드디어 그 비싸고 고귀한 몸을 드러내시는구나, 빌어먹을 교황 성하. 나는 펄럭이는 천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불쑥 낯선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 천천히 아래에서부터 천을 물들일 때까지. 그것은 금세 형체를 갖추었다.

견고하게 군중과 교황을 분리하는 베일 너머로, 마침내 한 사람의 모습이 비쳤다. 수만 명의 사람이 모인 광장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



드디어 교황이 나타났다. 여전히 비밀을 머금은 채로. 그러나 적어도 그가 이 무수한 신자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큼은 자명했다.

깨끗하고 흰 천 너머, 그의 실루엣이 햇빛 아래 진하게 드러났다. 긴 머리와 성의를 걸친 남자의 윤곽이었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키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뿐. 나이도, 용모도 하나 짐작이 가지 않았다.

몇 초 후, 약속이라도 한 듯 함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교황 성하시다!’

‘와아아아아아!’

‘만세! 에시엣의 충신이시여! 영광받으소서, 만세!’



사람들은 광장이 떠나가라 고함을 마구 질러 댔다. 내 옆에 있던 견습생들도 진짜 교황 성하라며 난리 법석을 떨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광기와 같은 신앙심을 쏟아 냈다.

그 가운데, 오로지 교황만이 정적했다. 광장을 모두 태워 없애고도 남을 열기가 가득 찼음에도, 교황은 신기할 정도로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마구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아니었다면, 조각상을 가져다 비추었다고 해도 의심하지 않았으리라.



‘…….’



그는 그렇게 한참을 잠자코 서 있었다. 목소리도 한번 들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충분했다. 아니, 오히려 그랬기에 더 성스럽고 범접할 수 없는 존재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신이라도 영접한 듯 감읍하며 그에게 기도와 절을 올렸다.

그때만큼은 그를 에시엣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같은 피와 육신을 가진 존재임에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으니, 교황은 에시엣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비밀스러운 성격으로 인해, 교황을 에시엣의 현신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그 교황이 죽어 나빠지는 꼴을 본다면, 천하의 에시엣도 동요하지 않을까. 유일하게 자신을 투영해서 지상에의 힘을 부여한 존재가 한낱 마녀의 딸에 숨통이 끊긴다면, 그 신에게 얼마나 큰 엿을 먹이게 되는 일인가.

나는 잠시 군중을 뚫고 시계탑을 향해 뛰어가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그 안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나는 시계탑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성기사들에 의해 저지당할 것이다. 그리고 몸을 수색당한 후, 칼을 빼앗기고 성기사들에 의해 즉결 처분당할 것이다.

현재 나의 힘으로는 교황의 모습을 제대로 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것을 알았기에, 내 상상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분명 씹어 삼키고 싶을 정도로 증오스러운 존재임은 확실하나, 때를 노려야 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에. 교황을 죽이기 위해서는, 그에게 접근 가능한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것이 내가 속으로만 칼날을 갈며 견습 생활을 버티고 있는 이유였다. 나는 다시금 결심을 다지며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아 이 자리에 모인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교황을 경배했다. 나와 동료 견습생들을 관리하는 주교가 바로 지척에서 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