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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정원사 7화

2. 잡초 더미는 나의 집 (7)


“또 노란 튤립이네요.”

“왜, 싫어?”

“이렇게 자꾸 마음 표현하시면 제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잖아요…… 저도 그 손님처럼 버프 걸어 주세요.”

자기가 달라고 해 놓고 마음 표현은 무슨. 아무래도 골드찬은 선물 받는 기분을 즐기는 것 같았다. 매일 내 옆에서 내 어디가 좋냐느니 하는 걸 보면 학교에서 누군가 골드찬에게 고백을 하지 않았을까. 분명 앞에선 아무 말도 못하고 나한테 와서 엉뚱한 질문을 하며 은근슬쩍 자랑하는 거겠지. 안 봐도 뻔하다.

“버프 뻥인 거 알잖아.”

“그래도 받고 싶어요. 저 때문에 만든 버프잖아요, 그거.”

“그럼 이거 들고 있어 봐.”

“네!”

해 달라는데 해 줘야지. 역시 어린애의 고집은 못 이긴다. 나는 남자에게 했던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이슬비 버프를 썼다. 순간 바람이 휑하고 불어서 골드찬의 작은 얼굴에 물방울이 촉촉하게 맺혔다. 그의 말랑한 볼을 엄지로 쓸어 닦아 주자 골드찬이 다급하게 물었다.

“속으로 무슨 생각 했어요? 무슨 의미의 버프예요?”

“뭐일 것 같은데.”

대답하기 어려울 땐 역질문이 최고다. 골드찬은 이 스킬을 쓰기에 아주 좋은 예시였다. 그는 상상력도 풍부하고 말도 많은 아이니까.

“어…… 저를 좋아하게 해 주세요? 아니면…….”

“좋을 대로 생각해.”

“우니버스 님.”

“응.”

“우니버스 님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먼저 고백하는 편이에요?”

“글쎄. 생각해 보니까 그런 것 같네.”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니 역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게 맞나 보다. 기대치를 조금 더 높여 줘 볼까.

“그 사람도 너 좋아할 거야. 기죽지 마.”

“그건 알아요.”

“알면 네가 먼저 해 보는 건 어때?”

골드찬 정도면 금세 여자 친구를 만들고도 남을 텐데 왜 매번 나한테 낑낑대는지 모르겠다. 나한테 자기를 좋아하냐는 장난까지 칠 용기가 있으면 좋아하는 애한테 가서 할 것이지. 고백 받은 게 아니라 고백을 기다리는 건가 보다.

“전 그래 본 적이 없어서 서툴 거예요…… 일단 우니버스 님 뜻을 따를게요.”

“그래, 힘내.”

“계속 돌려 말하시고…… 정말 밀당의 고수시네요. 이만 가 볼게요. 꽃 고마워요.”

“응, 나중에 보자.”

“네에.”

귀여운 대답과 함께 텔레포트 속으로 사라진 그를 보다 손뼉을 짝짝 쳤다. 꽃을 다 팔기 전까진 정원에 돌아가지 않을 거다.

“신비한 꽃이 2만 냥! 이보다 더 쌀 수는 없다!”

현실에선 절대 못 외칠 말을 하며 시원하게 웃었다. 이제야 게임이 더 재밌어지네.



* * *



꽃은 의외로 불티나게 팔렸다. 다른 꽃보다 저렴하기도 하고, 온라인 장터가 아닌 가판대에서 직접 보고 사는 게 더 구매 욕구를 부른다고 했다. 집 장식용, 선물용, 프러포즈용 등 다양하게 팔려 나갔다. 그저께는 곧 결혼식을 하는 신랑이 와서 부케를 제작해 달라고 요청까지 했다. 덕분에 3일 치 판매량을 달성해서 골드찬과 그의 집에서 만찬을 벌였다. 물론 그의 돈으로.

익숙하게 강가 장터에 자리를 잡고 가판대에 소중하게 가져온 꽃을 정렬했다. 채팅 매크로를 띄우고 가판대 오픈을 누르면…… 장사 준비 완료! 어제 새로 산 작업복을 입고 나왔더니 기분이 한결 더 가벼웠다.

셀프 캡처를 찍으며 웃고 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첫날 첫 손님으로 왔던 남자가 나타났다. 벌써 5일째 방문이었다.

“남자 님 오셨네요. 오늘도 빨간 튤립이죠?”

“네, 그걸로 부탁해요. 향기가 너무 좋더라구요.”

“저도 이 향 되게 좋아해요.”

“우니버스 님을 닮은 향기 같아요.”

“예?”

꽃을 포장하다 말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놀랐지만 남자는 여유롭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첫날은 멋들어진 정장을 입고 오더니 요 며칠은 캐주얼한 복장이었다. 모험가 같았는데 정착이라도 한 건가.

“남자 님, 이 마을 주민이세요?”

“네, 우니버스 님 꽃집이 마음에 들어서 이 마을에 정착했어요.”

“……그러시구나.”

“오늘로써 벌써 다섯 송이나 모았네요.”

남자는 훤칠한 미남형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담스러운 미소를 가졌다. 눈을 잘 못 마주칠 것 같은 얼굴이라고 해야 하나. 눈 대신 은빛 머리칼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어찌 됐든 손님이니까 미소를 잃어서는 안 된다.

“2만 냥입니다.”

“네, 여기. 이건 선물이에요. 매번 감사해서요.”

“뭐 이런 걸 다…….”

감사한 건 내 쪽인데 남자는 꽃을 받아 들며 포도 주스를 내밀었다. 가는 건 아쉬워도 주는 건 받고 보는 주의이기 때문에 냉큼 받아 들었다.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주스였다.

“이건…… 왕삼보포?”

하하. 남자가 웃으며 손을 절레 저었다.

“왕삼보포 아니에요. 제가 직접 만든 블루베리 주스예요. 아, 그리고 제 직업은 수리공이니까 집에 고장 난 물건 있으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친추 걸어 둘게요.”

집이 있어야 수리공을 부를 만한 물건도 생기지……. 나는 남자가 보낸 친구 신청을 받으려다 휘청했다. 누군가 내 옷을 쥐려다 놓치며 강물에 풍덩 빠졌다.

“우니버어어…스 님!”

“골드찬!”

습관이 무서운 거라고 벌써 두 번째 사고였다. 내 뒤는 바로 강이라서 두 사람이 서기엔 좁은 공간이라 그렇게 팔로우 하지 말라고 했건만. 물에 흠뻑 젖은 골드찬의 팔을 잡아 올리자 바닥에 물이 후드득 떨어지며 회색 벽돌이 짙게 물들었다.

“조심하랬잖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상의를 비틀어 물기를 짠 골드찬이 아이템 창에서 뽀송뽀송한 수건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여기요. 닦아 주세요.”

누가 보면 손이 없냐 발이 없냐 하겠지만 며칠 전 골드찬이 닦는 걸 보고 기겁해서 내가 닦아 줬더니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땐 닦아도 물기가 옷과 머리에서 새어 나와서 가판대를 흠뻑 적시는 바람에 꽃을 못 팔 뻔했다. 다행히 골드찬이 모두 사 가겠다고 해서 냉큼 팔아 버렸지만.

여태 가지 않고 놀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던 남자가 골드찬을 바라보며 물었다.

“골드찬?”

“둘이 알아요?”

“아니요, 워낙 유명해서요. 제가 알던 모습이랑 다르네요.”

나는 남에게 관심이 거의 없는 편이다. 골드찬에 관해서 아는 거라곤 집 위치, 돈 많은 거, 학생, 고백을 기다리는 상대가 있다. 이 정도였다. 서로 신상을 캐는 질문은 한 적이 없었다. 그게 예의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레벨도 몰랐다. 남자가 아는 걸 보아하니 내 생각보다 레벨이 더 높은 듯했다.

내가 골드찬을 닦아 주던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가 의아한 듯 물었다.

“애도 아니고 왜 우니버스 님이 다 닦아 줘요?”

“…….”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던 골드찬의 표정이 순간 새침해졌다. 나는 뽀송뽀송했던 수건이 축축해질 때까지 골드찬의 젖은 머리를 털어 주고 옷을 들쳐 속살까지 꼼꼼히 닦아 줬다.

“애죠, 뭐. 대충 닦았다간 제 가판대가 다 젖어 버리거든요. 저를 위해서 닦아 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앞머리에서 얼굴로 떨어진 물방울을 톡톡 닦아 주고 나니 골드찬이 다시 기분 좋게 웃으며 수건에 얼굴을 비비적댔다.

“다 됐다. 앞으로 나 장사할 땐 팔로우 금지야. 명심해.”

“네에.”

정신없는 상황이 종료됐는데도 남자와 골드찬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장사해야 하는데 얼른 가 줬으면……. 멀뚱히 선 남자를 올려다본 골드찬이 내게 생긋대며 말을 걸었다.

“우니버스 님, 오늘은 꽃 안 줘요? 노란 튤립이요.”

“갖고 싶으면 사 가. 오늘은 물량도 별로 없다고.”

누구 주는 것도 아니면서 매일 달라고 하네. 아침에 열매도 따서 몇 개 줬건만. 골드찬은 욕심이 너무 많았다. 그때 남자가 골드찬을 나무랐다.

“그래요, 갖고 싶으면 돈 주고 사셔야지. 얼마 하지도 않는데. 제가 사 드려요?”

“저도 돈 있어요. 우니버스 님이 주고 싶어 하실까 봐 물어본 거예요.”

“우니버스 님이 왜 골드찬 님한테 주고 싶어 해요?”

“그런 게 있어요.”

둘은 손님이 구경하지도 못하게 가판대를 막고 서서 대화를 나눴다. 정신없으니까 얼른 보내야겠다.

“골드찬, 오늘은 못 주니까 돌아가. 남자 님도 안녕히 가세요.”

“아직 안 가요.”

“아직 안 가요.”

뭐야, 대사라도 짰나. 같은 말을 한 게 기분이 나빴는지 둘의 눈썹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꼭 삼촌과 조카를 보는 느낌이었다. 남자가 노란 튤립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노란 튤립은 꽃말이 뭐예요?”

“어… 노란 튤립이…….”

“혼자 하는 사랑이에요. 그리고 우니버스 님이 저한테 자주 선물하는 꽃이에요.”

나 대신 골드찬이 남자에게 답했다. 맞다, 외웠는데 까먹고 있었네. 주머니에 넣어 둔 메모를 힐끗 꺼내 봤다. 골드찬이 말한 게 맞았다.

“저도 노란 튤립 한 송이 주실래요? 꽃말이 마음에 들어요.”

“제가 살 거예요. 우니버스 님, 저 다 주세요.”

“남자 님이 먼저 말했잖아. 너도 한 송이 줄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제가 두 배 가격으로 다 살게요.”

“…….”

두 배? 포장하던 손이 멈칫했다. 남자도 내 손을 봤는지 헛기침을 하며 골드찬을 돌아봤다.

“있는 분이 왜 이래요.”

“노란 튤립은 항상 제 거였어요.”

“골드찬, 남은 두 송이 다 줄 테니까 양보해.”

“…….”

내 말에 단번에 시무룩해진 골드찬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바닥에 신발을 슥슥 비볐다. 충동적인 물욕에 단골을 잃을 수는 없다.

“우니버스 님, 돈 받으세요.”

“어, 네…….”

남자가 손을 잡고 2만 냥을 쥐여 줬다. 나는 얼떨결에 돈을 받아 들고 멍하니 둘을 바라보았다. 미묘한 신경전이 돌고 있다는 건 진즉에 눈치챘다. 오늘따라 골드찬이 왜 이러지. 남자는 잡은 내 손을 놓지 않은 채 손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소름이 돋아서 손을 뒤로 확 뺐다. 또 부담스러운 미소다.

“꽃 고마워요. 친추도 얼른 받아 주세요.”

“아, 맞다. 네.”

[꼬출든남자 님이 친구 신청을 보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처음 봤을 때부터 닉네임에 거부감이 들었는데, 막상 보다 보니 이상한 사람 같지는 않았다. 내 꽃을 사 가는 사람 중엔 나쁜 사람은 없을 거다. 수락을 누르고 꽃을 마저 포장했다. 골드찬은 내가 포장하는 걸 보다가 그의 닉네임 근처에 로맨틱하게 휘날리는 장미를 보고 말했다.

“닉네임도 이상해요. 꼬출든남자가 뭐야.”

“대놓고 그러시니 기분이 상하네요.”

“……변태 같아요.”

“우니버스 님은 제 닉네임이 멋지다고 하셨어요.”

“…….”

그런 말은 한 적 없다. 골드찬이 나를 이상하게 보잖아. 나는 골드찬을 보며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굳은 표정이 돌아오지 않는 걸 보니 믿지 않는 모양이다. 남자에게 마저 포장한 꽃을 건네자 또 버프를 요청했다. 대충 이슬비를 뿌려 주고 기계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제 얼른 가라.

“앞으로 노란 튤립까지 두 송이 살게요. 그럼, 일이 있어서 가 볼게요. 내일 봬요.”

“안녕히 가세요.”

남자는 눈앞에서 번쩍인 텔레포트와 함께 사라졌다. 이제 골드찬에게 줄 꽃 두 송이를 포장해야지. 골드찬은 멍하니 가판대를 바라보다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그 남자처럼 손등을 쓸었다. 아까부터 다들 왜 이래.

“우니버스 님은 쉽게 사랑에 빠지는 스타일이에요?”

뭐라는 거야. 짝사랑을 하더니 애가 아주 감성에 취했다. 그래도 골드찬이 하는 질문은 항상 어디서 들어 보지 못한 질문이라 신선했다.

“아니.”

“그럼 첫눈에 반하는 건요?”

“그럴 수는 있지.”

“그래서 저를……. 그럼 동시에 두 명이랑 하는 건요?”

이 녀석 또 주어 빼먹네. 뭘 두 명이랑 하는데……. 내 머릿속엔 음란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린 게 발랑 까져 가지고. 상상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뭐냐고 묻자 골드찬이 사랑이라고 답했다. 골드찬은 저번부터 사랑에 관해서 관심이 많아 보였다.

“그건 안 해 봐서 모르겠다.”

오늘따라 궁금한 게 많은 골드찬은 내 손을 만지작대다 눈을 부릅떴다. 예쁘게 자리 잡은 쌍꺼풀이 살짝 진해졌다.

“지켜볼 거예요…….”

“그러든지.”

누굴 아주 개차반으로 보네. 젖은 것도 닦아 줬더니만. 그는 이번엔 간지럽게 내 손등에 무엇을 그리는 듯 손가락을 빙빙 돌리더니 머뭇대며 물었다.

“그런데요, 우니버스 님…… 이번 주에 밤 축제 열리는데 같이 가실래요? 우니버스 님이 좋아하실 거 같아요.”

“응, 갈래. 재밌겠다.”

“저랑 가서 좋죠?”

“응.”

네가 다 사 줄 거잖아. 나는 뒷말을 삼키며 골드찬의 작은 손을 꽉 잡고 흔들었다. 그제야 그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다.

피플 온라인의 밤 축제는 하루 동안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오를 정도로 규모가 크고 유명하다. 마을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밤 축제가 열리는 기간엔 모험가나 이방인이 많이 들락거려서 그만큼 사건 사고도 잦다고 한다. 기사로만 보던 밤 축제를 드디어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되다니. 그때 제대로 된 옷이라도 한 벌 사 놔야겠다.



골드찬과 둘이 갈 줄 알았던 밤 축제는 동행할 인원이 한 명 더 늘었다. 다음 날 어김없이 찾아온 남자도 나에게 밤 축제를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이미 선약이 있지만 원래 축제라는 게 다 같이 가야 재밌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남자의 제안도 받아들였다.

“그럼 내일 데리러 갈게요. 집이 어디예요?”

집이 없다고 말하기는 민망해서 밤 축제가 시작되는 어귀에서 만나자고 했다. 남자는 웃으며 흔쾌히 수락했다.

“제가 밤 축제 킬러거든요. 이 마을은 처음이라 기대되네요.”

“많이 가 보셨나 봐요. 전 아예 처음인데.”

“정말요? 저만 믿으세요. 제 별명이 밤의 황제입니다. 물론 중의적이에요.”

이럴 땐 보통 오해하지 말라고 하지 않나. 남자의 능글맞은 눈빛이 내 마음속에 기름칠을 했다.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때 반갑게도 골드찬이 뛰어서 가판대 앞에 도착했다.

“넘어질라. 천천히 오지.”

“우니버스 님, 늦어서 죄송해요. 저 꽃 사려고요.”

팔로우를 금지했더니 급하게 뛰어온 골드찬이 가판대를 빠르게 훑었다. 오늘은 하나 있는 노란 튤립을 이미 남자가 산 상태였다. 남자가 여유롭게 웃으며 골드찬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골드찬 님.”

“……벌써 와 계셨네요.”

“한발 늦으셨네요.”

“내 튤립…….”

골드찬이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남자는 그런 골드찬을 놀리기라도 하듯 포장된 노란 튤립을 살살 흔들었다. 어른답지 못하게 애를 놀리다니.

“골드찬, 오늘은 다른 거 살래?”

“저게 아니면 의미가 없단 말이에요.”

매일 노란 튤립을 선물로 달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는 나서서 노란 튤립을 서로 사려고 안달이었다. 노란색이 그렇게 예쁜가. 다른 손님들은 찾지도 않던데. 나는 그나마 비슷한 노란 장미를 내밀었다. 어젯밤 스킬 레벨 업을 해서 수확할 때 독특한 효과가 랜덤으로 하나 추가됐는데 정말 힙해 보였다. 힙한 꽃. 누가 봐도 끌리는 상품일 거다.

“이건 어때? 꽃잎에 무늬도 새겨져 있어.”

“…….”

“새로운 것도 좀 사 봐. 어때? 마음에 안 들어?”

노란 장미의 꽃잎에는 하얀 나비 문양이 연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비의 날개에선 황금빛이 일렁여서 정말로 나비가 팔랑이는 것 같은 착시 효과를 줬다. 골드찬은 말없이 장미를 받아 들더니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변치 않는 사랑.”

“……이럴 수가.”

남자가 품에 든 튤립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애완동물도 아니고. 다행히 골드찬은 꽃말 또한 마음에 드는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역시 우니버스 님은 제 마음을 잘 알아요.”

“왜 저를 보고…….”

“그만큼 저한테 관심이 많다는 뜻이에요.”

“…….”

남자를 향해 말한 골드찬이 내게 2만 냥을 내밀었다. 오늘도 꾸준한 단골 두 명 덕분에 오전 장사는 성공적이었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채팅 매크로 창 아이템을 하나 구매했다. 일주일짜리 효과면서 3만 냥이나 하다니. 하지만 장사에는 약간의 투자도 필요한 법. 바로 적용시키자 단조롭던 말풍선에 정원사와 어울리는 파릇한 잔디와 작은 꽃이 앙증맞게 피어났다.



3. 살랑이는 밤 (1)


밤 축제가 열리는 기간, 약 하루 하고 반나절 동안은 모든 상인의 휴가였다. 오래간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느긋하게 정원을 돌보며 여유를 가졌다. 그러다 문득 밤 축제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궁금해지는 바람에 슬쩍 혼자서 구경을 하려고 했지만, 공사 중이라는 표시가 떠서 보지도 못했다. 나처럼 기웃대던 유저들도 모두 발걸음을 돌렸다.

할 일을 다 마친 상태라 잠깐 로그아웃을 한 채 친구들에게 생존 신고를 하고 저녁까지 든든히 먹었다. 벌써 포털 사이트에는 피플 온라인의 밤 축제 키워드가 대문짝만하게 올라가 있었다. 처음 맞는 밤 축제는 롤러코스터가 떨어지기 직전만큼 기대가 되었다.

미리 들어가 있을까. 시간을 보니 약 30분 정도가 남았다. 골드찬도 지금쯤이면 날 기다리고 있을 거다. 남자와는 축제가 시작되는 6시에 밤 축제 입구에서 만나기로 해서 아직 충분했다.

[우니버스 님, 환영합니다! 접속 시간:17:28:19]

-우니버스 님!

접속하자마자 골드찬에게 귓속말이 왔다.

“응, 준비 다 했어?”

-네, 팔로우 해도 돼요?

“아니, 내가 집 앞으로 갈게. 어차피 가려면 너희 집 지나야 하잖아.”

-에스코트까지……. 기다릴게요. 천천히 오세요.

“그래.”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업복이 그새 꼬질꼬질해졌다. 짙은 흙을 탈탈 털어 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래도 나름 축제라서 다들 꾸미고 올 텐데 나 혼자 너무 초라한 거 아닌가. 아까 밤 축제에 대해서 검색을 해 보니 옷을 싸게 판다고 했는데, 일단 가자마자 쇼핑부터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