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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 *



[글로벌 앤티크 주식회사]

장미는 3층짜리 컨테이너 건물 맨 위 상단에 붙은 간판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건물이 허름한 건 그렇다 쳐도 지리적으로 너무 외진 곳에 있었다.

‘골동품 취급하는 곳은 다 이런가? 가 본 적이 있었어야지.’

집에서 15분 거리라 좋아했더니 어째 걸을수록 점점 인적이 드물어 꺼림칙했다. 제가 사는 동네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기 짝이 없는 분위기에 장미는 괜히 불량배라도 나타날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불안해했다.

‘혹시 유령 회사 아니야?’

장미는 면접도 보기 전에 저 회사가 과연 자신에게 월급을 줄 수 있는 곳인지조차 의심되었다. 대박인 줄 알았더니 그 반대였나? 장미는 들어갈까 말까 건물 앞에서 심란하게 서성이다 결국 3층으로 향하는 바깥 계단에 조심스럽게 발을 올렸다.

삐걱삐걱. 계단을 한 칸 오를 때마다 철이 맞닿아 음침한 소리가 났다. 장미는 두 손에 휴대폰을 꼭 쥔 채 천천히 계단을 타고 올라가 사무실로 추정되는 3층 문 앞에 섰다.

‘설마 조폭 사무실 같은 건 아니겠지.’

“서, 섬으로 팔려 나간다거나…….”

장미는 자기도 모르게 흘러나온 암울한 중얼거림에 흠칫 놀랐다가 애써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쳐 냈다. 그리고 몇 번 심호흡을 한 뒤 문고리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미처 그걸 잡기도 전에 문이 안쪽으로 거칠게 열렸고 장미는 깜짝 놀라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문 안쪽에서 나온 남자가 장미를 발견하고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장미는 그와 얼굴이 마주치자 이내 눈을 크게 떴다.

“……?!”

어제의 그 미남!

잘생겼지만 성격 지랄 같을 거 같은…….

“뭐야.”

과연 그는 장미를 보자마자 인상을 썼다. 장미는 경험상 상대가 저런 표정을 지을 때 결코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여긴 잡상인 출입 금지야. 꺼져.”

오. 저 눈에 보이는 살기.

안 그래도 갈팡질팡했던 장미는 남자의 말로 여기서 일할 마음이 완전히 싹 가시는 걸 느꼈다.

“아, 네! 안녕히 계세요!”

CF 모델처럼 발랄하게 외치곤 미련도 없이 홱 돌아섰다. 그때 문 안쪽에서 또 다른 사람이 그 남자를 스치고 뛰쳐나오며 계단을 도로 내려가려는 장미에게 소리쳤다.

“잠깐! 잠깐만요!”

그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훤칠한 소년이었다. 소년은 의아하게 뒤를 돌아보는 장미에게 해맑게 웃으며 성큼 다가와 물었다.

“혹시 어제 전화로 알바 면접 예약하셨던 분 아니세요? 들어와요. 들어와!”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소년은 장미를 부드럽게 사무실 안으로 이끌다가 아직도 문 앞에서 썩은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에게 말했다.

“팀장님은 뭐 하세요? 얼른 일하러 가셔야죠.”

팀장이라 불린 남자는 장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이내 깔보듯 코웃음을 한 번 치곤 걸음을 뗐다. 장미는 지나쳐 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흘긋 보며 말없이 입을 삐죽였다. 얼굴이 잘생기면 뭐 하나. 진짜 기분 나쁜 남자였다.

소년은 장미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어디 앉으란 말도 없이 다짜고짜 물었다.

“이름하고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오장미예요. 나이는 스물다섯이고요.”

어차피 들어온 김에 면접이나 보자는 생각이 들어 장미는 순순히 대답했다. 팀장이란 남자만 봤을 땐 진짜 거지 같았지만 지금 눈앞에서 맑게 웃고 있는 소년을 보면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년이 여전히 구김 없는 얼굴로 더욱 활짝 웃었다.

“아하. 내가 연상이네요. 아까 그분이 팀장님이고 전 대리직을 맡고 있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근데 말 놔도 될까요? 전 스물아홉이거든요.”

“네?”

근데 알고 보니 소년은 소년이 아니었다는 사실. 장미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반문했다가 이내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 얼굴로 연상?’

“네에…….”

“그래. 고마워. 앞으로 잘 지내보자.”

소년 같은 대리는 장미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말을 놓았다. 근데 반말을 해도 어투가 부드러워서 그런지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거기다 이 미친 친화력은 뭘까. 앞으로 잘 지내보자니, 그럼 나 이대로 뽑힌 건가?’

“이력서 가져왔어?”

“여기요.”

장미는 메고 온 가방에서 이력서를 꺼내 대리에게 건넸다. 대리는 그것을 받아 챙기며 사무실의 한편에 있는 책상을 가리켰고 책상 위엔 영수증으로 보이는 종이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대리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한데 지금 일이 많이 밀려서 바로 시작해 줬으면 하는데 괜찮을까?”

“네. 괜찮아요.”

장미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대리는 이제야 살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다행이다! 원래 있던 알바생이 급하게 그만둬 버리는 바람에 진짜 곤란했거든.”

“제가 뭘 하면 되는데요?”

“응. 여기 영수증들을 날짜별로 정리해서 장부에 기록해 주면 돼.”

“네.”

장미는 바로 책상 앞에 앉아 일단 아무렇게나 쌓인 영수증들을 날짜별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장미를 보고 흐뭇하게 웃은 대리도 곧 자기 책상에 앉아 펜을 들었다. 그의 책상 위에도 일거리로 보이는 종이가 잔뜩 쌓여 있었다.

한참 동안 기계적으로 영수증을 나눈 뒤 비로소 펜을 들어 장부를 정리하기 시작한 장미는 대리가 커피 마시려고 잠시 일어났을 때 별생각 없이 물었다.

“근데 왜 장부 정리를 손으로 해요?”

“컴퓨터를 잘 못 하거든. 난 기계치라.”

“…….”

뭐시? 장미는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아직 한참 젊은데 노인네 같은 소릴 한 대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러다 자길 빤히 쳐다보는 장미와 눈이 마주치자 ‘커피 타 줄까?’라고 물었고 장미는 고개를 젓고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노트북 가져와서 정리해도 될까요?”

“응?”

“집 여기서 가까워서 금방 가져올 수 있거든요. 이런 건 엑셀로 수식 짜면 빠른데…….”

그렇게 정리해서 프린트해 드리면 어떻겠냐고. 마침 사무실 구석에 먼지 쌓인 복합기도 보였다.

혹시 싫어하려나 싶어서 약간 눈치 보며 묻는 장미에게 대리는 금세 얼굴 가득 화색을 띠었다.

“진짜?”

“네?”

“진짜진짜 그렇게 해 줄 수 있어?”

진짜가 두 번이나 들어갔다. 장미는 적잖이 당혹스러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겐 어렵진 않으니까요…….”

“야호!”

대리는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리며 굉장히 기뻐했다. 그러다 한 손에 들린 커피가 쏟아질 뻔도 했지만 그 직전에 무사히 커피 잔을 세운 대리가 말했다.

“이번 알바생은 알짜배기가 들어왔구나! 저번 알바처럼 선불을 요구한 다음에 다음 날 연락이 안 되는 일은 없겠어.”

“그런 일이 있었어요?”

“응! 그 전 알바는 더 괴상했어. 우리 물건을 항상 두 상자씩 잃어버려 가지고 이상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온라인에 역판매를 하고 있더라고!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

뭔가 최악의 알바생만을 경험했던 것 같다. 좋은 사람들도 많은데. 멋쩍게 웃은 장미는 집 열쇠와 휴대폰만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녀올게요.”

“응∼ 다녀와, 다녀와∼”

대리가 웃는 얼굴로 손을 붕붕 흔들었다.

그렇게 노트북을 가지러 집으로 가던 길, 미진과 자주 가는 봉봉 비어 앞을 지날 때였다. 거기엔 어째선지 아까 일하러 나간다던 팀장이 옆구리에 여자를 낀 채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장미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서서 눈가를 찡그렸다. 어제오늘 계속 눈에 걸리는구나. 근데 사실 생각해 보면 집 근처에 사무실이 있는 것치고 저 남자를 그동안 전혀 못 봤던 게 더 이상하기도 했다.

‘근데 일하러 간다며.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지.’

노는 게 일인 백수? 못마땅하게 그를 바라보던 장미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 발걸음을 뗐다. 그래도 일단 완전히 정체 모를 괴한은 아니다 싶어서 그런가 장미는 저 남자가 어제만큼 무섭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근함을 느끼지도 않았으므로 필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장미는 집에서 노트북만 챙겨서 금방 나왔다. 돌아가는 길 다시 봉봉 비어 앞을 지나면서 흘긋 보니 팀장은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여전히 그를 향한 불편함이 남아 있던 탓이었을까. 장미는 그가 제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왠지 안도하며 봉봉 비어 근처의 골목 앞을 막 지나가려 했다. 그때 장미는 무심코 눈길을 돌렸다가 골목 안쪽에 쓰러져 있는 인영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

아까 지날 때까진 아무도 없던 곳이었다. 그래서 장미는 전날 스치듯 봤던 광경을 떠올리며 별문제 없었나 보다고 안도하기까지 했었다. 근데 갑자기 또 다른 피해자라니. 혹시 여기가 뱀파이어들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라도 되는 걸까?

동족은 이미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안전하겠다 싶자 비로소 골목으로 달려 들어간 장미는 굳이 자세히 보지 않고도 여자의 가느다란 호흡을 느낄 수 있었다. 장미는 약하긴 해도 일단은 뱀파이어라서 선천적인 감각이 꽤 예민한 편이었다. 하얗게 질려 기절한 여자의 목엔 동족이 남긴 두 개의 이빨 구멍이 남아 있었고 그곳에서부터 피가 흘렀다. 방금까지 먹히고 있었던 것 같다. 장미는 자기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굴렀다.

“어, 어…….”

‘어떡해. 많이 먹혔나 봐.’

여자는 이대로 두면 위험할 것 같았다.

신고해도 되나? 하지만 보복당하면 어쩌지?

‘진짜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