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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룡전 1권 (14화)
4장 신위를 드러내다 (4)


“쏴라!”
퓨퓨퓨웃! 쉬이익!
스무 발이 넘는 화살이 무서운 속도로 일행을 향해 날아왔다.
까가강!
홍천상과 제검문 무사들이 검으로 화살을 쳐 냈다.
하지만 워낙에 파괴력이 센 석궁의 화살을 완벽하게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크윽!”
“아악!”
미처 화살을 막아 내지 못한 세 명의 무사가 몸에 화살을 박은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화살은 소은설 일행에게도 여지없이 쏘아져 왔다.
그러나 그들의 조악한 무공 실력으로는 막아 낼 도리가 없었다.
소은설과 소진혁, 용태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으아아아! 천지신명이시여 부처님! 공자님! 태상노군님!”
용태가 괴성을 질러 댔다.
후우우우웅!
순간 소은설은 자신의 등 뒤에서 묵직한 기파가 퍼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급히 눈을 뜬 소은설의 시야에는 그야말로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오문도들을 단숨에 꿰뚫을 듯 무섭게 날아오던 화살이 코앞에서 멈춘 채 허공에 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화살들은 허공에 박혀 있었다.
모든 사람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 이게 대체!”
소은설이 너무 놀라 말을 더듬었다.
그녀는 진운룡을 돌아봤다.
오른손을 들어 올린 진운룡에게서 온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강력한 압력이 느껴졌다.
그가 화살을 허공에 멈춘 장본인임에 틀림없었다.
“날 믿지 못하다니 실망인걸?”
진운룡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우와! 사, 살았다! 형님 최고!”
용태가 펄쩍 뛰며 기뻐했다.
“뭣들 하느냐! 재장전하라!”
정신을 차린 초진도가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석궁은 파괴력이 큰 대신 사거리가 짧고 다시 장전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었다.
스으으!
그때였다.
허공에 멈춰진 화살들이 천천히 방향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어서!”
초진도가 다급한 목소리로 수하들을 재촉했다.
번쩍!
순간 진운룡의 두 눈에서 섬광이 터져 나온다 싶더니, 화살들이 올 때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반대쪽으로 쏘아져 나갔다.
“피해!”
퍼퍼퍼퍼퍽!
십여 개의 화살이 궁사들을 덮쳤다.
“크억!”
쿵! 쿠쿵!
화살에 맞은 궁사들이 그 파괴력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지하석실이 울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이었다.
쩌어엉!
급히 장력을 펼쳐 화살을 쳐 낸 초진도의 손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이놈!”
초진도가 이를 갈며 진운룡을 노려봤다.
우려했던 대로 만만치 않은 상대였던 것이다.
“우와, 형님! 멋져요!”
“뭐 이 정도야 아이들 당과를 빼앗는…….”
소은설도 놀란 눈으로 진운룡을 바라봤다.
고수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그 능력을 보니 그야말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내가 대체 누굴 데려온 거야?’
어쩌면 정말 진운룡이 그의 말처럼 대단한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제검문 사람들도 진운룡의 믿기 힘든 신위에 두 눈을 부릅떴다.
“대체 어디서 저런 고수가!”
홍천상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지금 진운룡이 보여 준 수법은 이제껏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물론, 날아오는 화살을 쳐 내 적에게 돌려보내는 것은 절정을 넘어선 고수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손도 대지 않고 날아오는 화살을 멈추고, 반대로 쏘아 보내다니…… 마치 이기어검을 보는 듯했다.
이기어검을 사용하는 고수가 과연 강호에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 고수가 지금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초가장 무사들 역시 공포에 젖어 있었다.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열 명이 넘는 무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진운룡은 자신들이 어찌해 볼 수 없는 절대고수였다.
진운룡이 철창을 빠져나오는 순간 그들은 죽은 목숨과 같았다.
“장주님 궁사들이 준비됐습니다!”
그때 총관 공탁이 다급히 초진도에게 소리쳤다.
“멍청한 놈! 보고서도 모르냐? 어차피 화살은 소용없다! 모두 빠져나가 진천뢰를 터뜨린다!”
금원각 지하계단 입구에는 진천뢰가 매설되어 있었다.
그것을 터뜨려 제검문과 하오문도들을 한꺼번에 매몰시키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금원각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 규모의 폭발이 일어나면 관원들의 의심도 사게 될 것입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모두 버리고 떠날 것이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공탁이 즉시 고개를 숙인 후 수하들에게 명했다.
“모두 이곳을 빠져나가라! 진천뢰를 터뜨릴 것이다!”
우우우우웅!
그때, 어마어마한 압력이 지하석실 전체를 가득 메웠다.
“저, 저럴 수가!”
공탁이 경악한 얼굴로 말을 잇지 못했다.
드드드드득!
하오문과 제검문을 가둬 둔 철창살들이 마치 엿가락처럼 휘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압력의 중심에는 진운룡이 있었다.
그로부터 퍼져 나오는 강력한 기파가 철창을 구부리고 있었다.
콰드득!
힘을 이기지 못한 철창의 아랫부분이 뜯겨져 위로 천천히 휘어져 올라갔다.
“젠장! 심지에 불을 붙여라!”
초진도와 수하들이 급히 계단으로 빠져나갔다.
“엇! 놈들이 도망치고 있소!”
소진혁이 소리쳤다.
“진천뢰를 터뜨리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오! 모두 날 따르시오!”
홍천상이 위로 말려 올라간 철창 틈으로 급히 몸을 날렸다.
“이봐요! 이대로 있으면 우린 폭사할 거예요!”
소은설이 진운룡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순간, 진운룡의 신형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콰아아아아앙!
동시에 지하계단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 * *

콰아아아앙!
초진도가 지하계단을 빠져나오자마자 폭음과 함께 진천뢰가 터졌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궁사들 몇 명 역시 함께 폭사했지만, 초진도에게 그들의 목숨은 애초에 안중에도 없었다.
“흥, 제깟 놈이 아무리 고수라 해도 입구가 무너진 이상 빠져나오진 못할 것이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초진도가 말했다.
“다행히 금원각이 무너지진 않았습니다.”
일층은 바닥이 내려앉은 상태였으나 나머지 층은 큰 이상이 없었다.
“모든 걸 정리하고 제녕을 뜬다! 서둘러라!”
초진도가 공탁에게 철수를 지시했다.
폭음을 들은 이들이 많을 것이다.
관에서 곧 조사를 나올 건 불 보듯 빤한 일.
더는 제녕에 머물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인 공탁이 무사들에게 명을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드드드드드!
갑자기 금원각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초진도가 급히 고개를 돌려 지하 계단 입구를 바라봤다.
진동과 함께 매몰된 입구에서 파편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순간, 강력한 폭발과 함께 지하계단 입구가 터져 나갔다.
마치 수십 개의 화탄이 터진 것 같은 어마어마한 폭발이었다.
가까이 있던 무사들은 폭발에 휘말려 뒤로 튕겨 나갔다.
주춤 뒤로 물러선 초진도가 부릅뜬 눈으로 지하계단을 바라봤다.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대, 대체! 네놈은 누구냐!”
초진도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흙먼지 속에서 나타난 자는 다름 아닌 진운룡이었던 것이다. 제검문과 하오문도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초장주 모든 게 끝났으니 이제 그만 포기하시오!”
홍천상이 검을 겨누며 말했다.
“하하하! 포기하면 살려 주기라도 할 것이냐?”
“이런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놈! 네놈이 저지른 일을 알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소진혁이 분노한 얼굴로 말했다.
백 명이 넘는 이의 심장을 산 채로 뽑아내고, 무림맹 조사단을 폭사시키려 했다.
몇 십 번을 죽인다 해도 결코 그 죄를 다 갚지 못할 것이다.
“크크크! 이렇게 된 이상 순순히 죽어 줄 순 없지! 이게 다 네놈 때문이구나! 어디서 나타난 놈인지는 모르겠으나, 네놈이 우리 일을 방해한 것을 후회하도록 해 주마!”
진운룡을 노려보는 초진도의 두 눈에서 살기가 일었다.
진운룡만 아니었다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일도 없었고, 제검문과 하오문도들이 살아남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오, 오라버니 대체 무슨 일이에요?”
그때였다.
임덕화의 동생 임설향이 폭음을 듣고 금원각으로 달려왔다.
“하하하! 이거 하늘이 날 돕는 모양이구나!”
“아악!”
초진도가 재빨리 임설향을 붙잡았다.
“서, 설향아!”
“아가씨!”
임덕화와 홍천상이 놀라 외쳤다.
“이년을 살리고 싶으면 모두 물러서라!”
초진도의 오른손은 임설향의 가느다란 목을 당장이라도 부러뜨릴 듯이 움켜쥐고 있었다.
“네 이놈! 당장 놓지 못하겠느냐!”
홍천상의 두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초, 초 장주 왜 이러시오! 동생을 놔주시오!”
임덕화의 애원을 아랑곳하지 않고 초진도가 임설향의 목을 더 옥죄었다.
“흥! 모두 그 자리에 꼼짝 마라! 내가 안전하게 빠져나간 후 이 계집을 보내 주마! 조금이라도 허튼 수작을 한다면 이 계집의 목숨은 절대 살릴 수 없을 것이다!”
초진도가 진운룡을 흘긋거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가장 걱정되는 것은 진운룡의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행방을 알아내려면 저들을 절대 이대로 보내서는 안 돼요!”
소은설이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로 진운룡에게 말했다.
초진도는 아버지 소진태의 행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자였다. 이대로 놓치게 되면 아버지를 찾을 유일한 실마리가 그대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걱정 마. 어차피 놈은 못 도망가니까.”
진운룡이 단언하듯 말한 후 앞으로 나섰다.
“놈! 내 말이 말 같지 않느냐!”
“아악!”
초진도가 목을 틀어쥔 손에 힘을 주자 임설향이 비명을 질렀다.
“공자, 섣불리 움직이지 마시오! 그대가 고수인 것은 알겠으나, 우리 아가씨의 목숨이 달린 일이오!”
홍천상이 급히 진운룡을 막았다.
피식!
진운룡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럼 나는 손 뗄 테니 당신이 해결해 보시든가. 어차피 나는 초진도만 잡으면 되니, 그대들이 다 죽고 나면 그때 움직이도록 하지.”
진운룡이 어깨를 으쓱이며 뒤로 물러서자 홍천상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진운룡이 손을 떼면 제검문 혼자서 초진도와 그 수하들을 상대해야 한다.
초가장 무사들은 제검문에 비해 인원이 배는 더 많았고, 실력 또한 제검문 무사들에 뒤지지 않았다.
제검문 혼자서 덤벼들다가는 임설향을 구해 내기도 전에 몰살당하게 될 것이다.
그나마 여기까지 초진도를 몰아넣을 수 있었던 것도 진운룡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 아니던가.
“그, 그렇지만…….”
홍천상이 말을 잇지 못했다.
진운룡이 물러서자 초진도는 교활한 눈빛으로 퇴로를 살폈다.
그에게는 지금이 기회였다.
진운룡과 제검문이 옥신각신하는 틈을 타 달아나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운룡은 태평하기만 했다.
“어찌 무인 된 자가 연약한 아녀자가 악적들의 손에 잡혀 있는 것을 못 본 채 한단 말이오!”
진운룡의 태도가 못마땅한 임덕화가 목에 핏대를 올리며 소리쳤다.
순간, 진운룡의 시선이 임덕화에게로 향했다.
“헉!”
진운룡의 눈빛을 마주친 순간 임덕화는 마치 가위에라도 눌린 듯 손가락 하나 꿈쩍할 수 없었다.
맹수를 마주한 먹잇감처럼 임덕화는 공포로 온몸이 굳어 버린 것이다.
진운룡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그렇게 정의감이 넘치면, 잘난 네놈이 스스로 구할 일이지 왜 나한테 징징대는 거냐? 고작 화살 따위가 무서워 떨고 있었던 주제에 내가 아주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구나?”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매서운 한기에 임덕화의 얼굴이 흑색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