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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년 전의 그 남자(1)


“어머?”
서울의 모 대학 병원.
하얀 옷의 간호사가 눈을 끔뻑거리며 얼굴을 비볐다.
“오늘 피곤한가? 왜 헛것이 다 보이지.”
그녀는 다시 그 환자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꽥, 소리를 질렀다.
“어머나, 세, 세상에!”
병실 문이 다급히 벌컥 열렸다.
“선생니임! 환자가 깼어요, 깼다구요!”
“아니, 김 간호사. 병원에서 당신이 뛰면 어떻게 해요.”
“선생님, 움직여요! 그 환자, 살아 움직인 다구요.”
“누가요?”
“잠자는 봉이요.”
“누구?”
“아유, 참! 특수격리실 강산하 환자요. '시간 동결'인지 뭔지 때문에 20년째 털끝 하나 안 떨어지던 그 환자!”
“뭐? 그 '동인천 게이트 크래쉬' 사고 희생자?”
- 우당탕탕!
환자라던 젊은 남자는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의사의 당황한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뭐 좀 묻겠는데, 여기 혹시 병원 아닙니까?”
“마… 맞습니다.”
“그러면…….”
그는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좀 조용히 다니시죠. 여긴 병원입니다.”

***

“그 새끼… 아니, 우리 오빠 어디 있어요?”
“검사실에 가셨다가 지금 들어오셨을 거예요.”
여자는 급히 발을 놀렸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병실 문을 걷어차자 침대에 앉아 있던 산하는 한숨을 폭 쉬었다.
“여긴 병원이 아니라 태권도장인 모양이야. 다들 문을 발로 여네.”
“오빠!”
“그래, 동생아.”
달려온 그녀가 와락 안기자 산하도 그녀를 같이 안아주며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예정아.”
“응, 오빠.”
“20년 만에 상봉한 오빠에게 하는 감동적인 포옹은 좋은데.”
“응.”
“포옹이란 건 상대를 부드럽게 안아주는 거다. 목을 조르는 게 아니라…….”
- 으드드드
두 남녀의 손아구가 서로 맞잡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왕 20년 잠든 거 영원히 다시 깨지 못하게 해주려고 했지.”
“참 고맙다. 그리고 앞으론 포옹과 함께 니킥을 날리진 말아 줄래?”
“쳇.”
“그리고 바나나에서 손 떼. 나 먹으라고 갖다 둔 걸 왜 니가 처먹냐.”
“쳇.”
아쉽다는 표정으로 물러난 여성, 강예정은 한참 동안 강산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때? 네 오라비 미모. 아직 쓸 만하냐?”
“20년이나 손가락 하나 까닥 못하는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는데 잘도 움직이네. 눈으로 보는 지금도 솔직히 안 믿겨져.”
“믿어도 된다, 예정아. 나 다시 돌아왔다.”
“그러네.”
만면에 미소를 지은 예정은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오빠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다행이야, 오빠. 이렇게 다시 볼 수 있어서.”
“안 죽는다고 했잖아. 내가 언제 약속 어기는 거 봤어?”
“어, 20년 동안 가슴을 후벼 파면서 봤지. 왜 거기 가는 걸 막지 못해서 이 꼴을 만들었나, 자책하면서 말이야.”
“……할 말이 없다.”
잠시 끊어진 대화 뒤에 산하는 침대 팔걸이를 문지르며 물었다.
“이 병원비용은 누가 냈어?”
“걱정 마, 난 한 거 없어. 각성자 협회에서 다 내줬으니까. 내가 오빠 살리자고 내 인생까지 포기할 사람은 아니잖아?”
“그게 문제가 아니지. 병원비는 그렇다 쳐도 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데?”
“…….”
“동인천 작전에 참여했을 때 난 스물여덟이었고, 넌 열일곱 코흘리개였어. 그 뒤로 지금 20년이 지났다더군.”
“열일곱도 알바 할 수 있어. 그리고 또-”
“한국이 부모님 다 돌아가신 열일곱 소녀가 알바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나라냐?”
“…….”
말이 없어진 예정 앞에서 산하는 씹어내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고생했다. 그리고 이제 고생 안 하게 해줄게.”
“다 지나간 일이야. 그리고 뭐래? 이젠 내가 오빠보다 나이 많거든?”
“아… 생각해보니 그렇구만.”
“나 벌써 결혼했어. 식은 못 올렸지만 애도 하나 있고. 오빠 없어도 나 혼자 여기까지 잘 버텨왔다고… 근데 지금 뭐 하는 거야?”
“뭐긴. 너 때매 신세 망친 그 남자 만나서 석고대죄하려고 그런다. 하필이면 몬스터도 꽁지 빼고 도망갈 너 같은 여잘 만나서 그 인생 참 고단하겠-”
“아주 그냥 매를 벌어라, 벌어!”
병실 안에 장렬한 등짝 스매쉬 소리가 울려 퍼졌다.

***

“동생분과 계실 때랑 분위기가 많이 다르시군요.”
침대에서 차가운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산하에게 남자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일찍 돌아가셨지. 이렇게라도 분위기를 띄우지 않으면 둘 중 하난 언젠가 목을 맸을 거야. 정신 건강을 위한 우리 남매의 암묵적인 룰이라고 보면 돼.”
“그렇군요. 좋은 방법 같습니다. 그럼 먼저 강산하 씨의 현재 상황과 각성자 협회의 입장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걸 먼저 듣는 게 순서가 아닌 것 같은데.”
“예……?”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 앞에서 강산하의 눈빛은 더욱 싸늘해졌다.
그때 일행으로 보이던 여자가 일어나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무사히 귀환하신 걸 환영합니다, 강산하 씨. '동인천 게이트 크래쉬 사건'에서 희생한 각성자들 덕분에 세계는 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 당신은 좀 말귀가 통하는 모양이야.”
“어…….”
여전히 상황을 이해 못하는 그를 두고 산하가 내뱉듯이 말했다.
동인천 작전. 그건 작전이 아니라 그냥 자살 행위였어. 게이트를 박차고 튀어나온 몬스터들은 누가 봐도 그간 상대한 것들과 비교도 안 되게 강해보였고, 투입 가능한 각성자는 평소의 절반 이하였지.
“…….”
“헌데 무능한 각성자 협회는 정부와 한통속이 돼서 우리더러 어떻게든 해결하라고 으름장만 놓더군. 그러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해야 한단 걸 말끝마다 강조했지.”
각성자 협회의 직원인 남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입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지금 20년 만에 간신히 깨어났더니 웬 애송이 하나가 나타나서 입장이 어떠네, 상황이 어떠네… 개소리부터 늘어놓는 건가?”
“죄, 죄송합니다. 미처 그 부분까진 생각이-”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니 바뀌어도 두 번은 바뀔 시간이야. 당신은 예의도 모르는 건가? 설마 세월이 흘렀으니 그냥 없던 걸로 하잔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결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뭐, 좋아… 덕분에 이걸로 대충 파악이 됐어. 동인천 작전은 이제 세상에서 잊힌 거로군. 우릴 그렇게 부려먹다 결국 사지로 밀어 넣었으면서.”
무거운 침묵.
그리고 잠시 후 옆에 있던 여성이 입을 열었다.
“한국 각성자 협회, 대외 지원 4팀의 신유라 부장입니다. 무례함이 있었던 건 사과드립니다. 말씀대로 이젠 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은 건 사실입니다만, 협회도 나름의 배려를 해왔습니다. 실제로 강산하 씨의 치료비용은 전부 협회에서 부담을-”
“치료? 나의 뭘 치료했지? 난 시간째로 동결된 상태였어. 칼로 찌르든 미사일로 폭격하던 아무 변화를 줄 수 없을 텐데?”
“…….”
“하다못해 내 동생에게 금전적 지원이라도 해줬나? 아니, 분명히 안했을 테지. 각성자 협회의 무능함은 내가 잘 알아.”
“최근에 와선 협회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실제로 5년 전 동생분께 보상금 명목으로 연금을 제시했었습니다만…….”
“당연히 거부했겠지. 20년 넘게 내팽개쳤던 건 둘째 치고, 자기 오빠 목숨 값을 받느니 굶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애니까.”
“바로 그와 똑같은 말씀을 하시며 거절하셨습니다.”
“흐…….”
비웃음 소리와 함께 산하는 턱짓을 했다.
“좋아, 당신 얼굴을 봐서 여기 온 용건을 들어주지.”
“감사합니다. 저희가 필요한 건, 당시 사건의 진술입니다. 동인천 게이트 크래쉬의 결말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그게 중요한가?”
“당시 대한민국의 각성자 절반, 총 스물두 명의 인원이 투입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최초의 게이트 크래쉬 현상으로 보고되어 있죠, 알아둘 가치는 충분합니다.”
“게이트 크래쉬… 그 안의 괴물들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현상을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야?”
“맞습니다.”
잠시 말을 아끼던 강산하는 곧 별 것 없다는 투로 어깨를 으쓱했다.
“굳이 말할 게 있나? 실제로 밖으로 튀어나온 것들은 어마어마하게 강한 놈들이었고, 우리 스물 두 명의 각성자 전원이 목숨을 걸고 놈들을 물리쳤지. 승리 했지만, 전부 몰살당했고 유일하게 나만 살아남은 거야.”
“강산하 씨가 '시간 동결 상태'로 발견된 것은?”
“명단이 기록에 없나? 우리 팀원 중 시간 동결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었어. 마지막 몬스터를 쓰러뜨린 순간 큰 폭발이 일어났고, 그 사람이 내게 능력을 써주었어. 덕분에 살았지.”
“왜 강산하 씨에게만 시간 동결 능력을 사용해 줬을까요?”
“몰라, 내가 맘에 들었나 보지.”
“그리고 그 능력의 지속시간은 채 1분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강산하 씨는 20년이 넘게 동결되어 있었습니다.”
“몰라,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
“…….”
“사람이 죽기 전에 최후로 발휘한 능력이니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 아닐까?”
“기적… 말씀입니까?”
“응, 기적.”
엄청 성의 없게 대답하는 산하의 얼굴을 보며 신유라는 이를 악물었다.
“말씀 잘 알겠습니다. 그럼 강산하 씨는 각성자로서 계속 활동하실 생각이신가요?”
“이 나이 먹도록 배운 거라곤 괴물 때려죽이는 법뿐이라서 말이야. 높은 자리에 계신 누구들 덕분에 이 꼴이 됐지.”
“알겠… 습니다. 그럼 시간 되시는 대로 각성자 협회에 들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요즘 세상은 각성자라고 누구나 함부로 게이트에 들여보내지 않거든요.”
“지금 세상 구하랍시고 자살 폭탄 같은 작전에 던져졌다가 20년을 날려버린 내게 ‘누구나 함부로’ 같은 취급을 하겠다고?”
“죄송합니다. 규칙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대신 협회에 오시면 과거 동인천 게이트 크래쉬 사건에 대한 작전 수당을 받으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있을지도’라니 그거 아주 신뢰가 가네.”
산하가 싸늘한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볼 때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허리 숙여 사과하는 것밖엔 없었다.
“협회의 일원으로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강산하 씨.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

“씨발, 거 되게 생색내네.”
돌아가는 차량 안에서 남자는 계속해서 짜증을 부렸다.
“아니, 20년 전이면 고작 1세대 각성자들이 활동하던 시대 아녜요? 시팔, 지금 '헌터'나 '가디언'들이랑 비교해보면 조또 실력 없는 놈일 텐데 건방지게 진짜.”
“언어 순화.”
“네네. 그런데 신 부장님은 화 안 나세요? 지 혼자 지구를 구한 것도 아니면서 정말 더럽게 구네.”
“그간 협회가 이 문제에 대해 쉬쉬해왔던 것도 사실이야. 당사자 가족조차 챙기지 못했으니 우린 할 말이 없지.”
“아니 그러니까 그런 델 왜 우리가 가냐고요?”
“그럼 협회 고위직이 여길 오겠어? 오면 제대로 고개 숙이면서 사과할까?”
“그, 그건… 안 하겠죠, 아마.”
“그래서 우리가 여기 온 거야.”
“아오, 씨발!”
“언어 순화.”
툴툴거리는 그를 내버려 두고 신유라는 아까까지 하던 생각을 다시금 이어나갔다.
‘20년 동안 시간째로 정지되었다가 간신히 되살아난 사람이… 어째서 그렇게 침착하고 냉정한 걸까. 마치 언젠가 깨어날 줄 알았다는 것처럼…….’

***

퇴원 수속을 밟고 로비로 걸어 나온 산하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낯선 하늘 그리고 낯선 건물, 자동차와 간판들.
그 한가운데서 강산하는 자기 손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 ’그 순간‘의 힘과 비교하면 정말 처참할 정도로 미약하구나.’
그리고 펼쳐진 손아귀가 꽉 움켜쥐어졌다.
‘이제부터 하나씩 준비해 나간다. 내가… 돌아올 모든 녀석들을 삼켜버릴 수 있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