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4화] 연구소 구출작전 (1)



치직.
-대령님, 1차 이동 포인트에 도착했습니다.
선두 차량에서 무전이 들리고 얼마 안 가 차량들이 속도를 늦췄다.
끼이익.
“모두 하차.”
장갑차의 측면 해치가 열리고 병력들이 신속하게 하차했다.
“5팀은 차량에서 대기. 퇴로 확보 및 접근하는 좀비들을 소탕한다. 개인화기 및 차량 무장은 팀장의 판단에 따라 자유 사격하도록 한다. 1팀 4팀은 목표로 빠르게 이동. 출발!”
5팀 대원들은 장갑차와 험비에 각 2명씩 나눠 타고 운전수와 사수 위치를 잡았다.
성현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4시 21분.
목표까지 2.5㎞ 남았고, 차량들로 막힌 고속도로가 1.5㎞, 산행이 1㎞였다.
“모두 속보, 2차 집결지까지 10분!”
땡볕에 중무장을 하고 뛰는 것만으로도 힘든일이다.
하물며 차량을 건너뛰고 걸리적거리는 좀비 시체들로 인해 갑절은 더 힘든 행군이었다.
10분이 결코 긴 시간은 아니다.
“후-아, 후-아.”
대원들 자체가 체력적으로 거의 완성되어 있고 갖은 훈련으로 단련되어 2차 포인트에서도 체력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호흡을 고르며 가빠진 숨만 조금 다듬을 뿐이었다.
“5분간 휴식하고 바로 출발한다.”
성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원들은 개인 장비를 확인하고, 무장을 점검한다.
기본적으로 대원들에게 휴식은 생존을 위한 브레이크 타임이다.
“지금부터는 대 좀비 전투태세로 전진한다. 적 발견 시 방향 보고 후 자유 사격한다.”
성현이 선두에 서고 대원들이 뒤를 받친다. 해미는 최후방에서 전체를 살피며 따르고 있었다.

* * *

“11시 팔공 셋!”
80m 밖 11시 방향에 좀비 세 마리가 그늘진 수풀 사이에 숨어있었다.
타타탕. 타탕.
드문드문 햇살이 드러나 있어 먼저 덤벼들지 않았지만, 총탄이 날아들고 좀비 하나가 쓰러지자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오오-!
[좀비 Lv.4]
'레벨 4? 3이 최고 아니었어?’
처음으로 4레벨의 좀비가 나타났다. 개체마다 차이는 있어도 2~3레벨인 줄 알았는데 4레벨인 놈도 있었던 것이다.
아직 레벨이 크게 높지 않아서인지 대원들의 소총탄에 4레벨 좀비가 피분수를 뿌리며 쓰러진다.
‘진짜 해미 말처럼 나중에는 10레벨 넘는 그런 놈이 나오면 난감한데······.’
“3시 오공 다섯!”
따다다다당.
분대 지원화기인 경기관총을 든 대원이 지향 사격을 했다.
은폐나 엄폐도 없이 오직 돌격뿐인 좀비다. 근접 거리에서는 지향사격만으로 충분히 유효했다.
그어어어.
따당, 따다다다당!
전신에 총탄 세례를 받은 좀비 하나가 끝내 머리가 터져 비탈길로 굴러떨어진다.
뒤쫓던 다른 좀비의 몸통에서 뭉텅뭉텅 살덩이들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쿠오오오!!
달려오던 좀비 하나가 옆구리가 크게 터져 창자를 쏟아냈고, 이어진 총탄에 퍼걱, 소리를 내며 머리가 폭탄 터지듯 사방으로 흩어졌다.
덩그러니 남은 목에서 꿀렁꿀렁 진득한 피가 솟구쳤다.
“사격중지! 적 침묵, 전원 속보 전진.”
성현이 주먹을 말아지고 추켜올리며 소리쳤다.
대원들이 수풀을 헤치고 성현과 보조를 맞추며 뒤를 따른다.
후-욱 후-욱
한여름의 뜨거운 공기가 폐를 달구고, 대원들의 열기 가득한 입김이 성현의 등에 닿을 듯했다.
가파른 산의 정상을 넘어서자 시야가 넓어졌다.
목표한 건물까지 이제 300여 미터 남짓.
“전방 주차장에서 10분간 휴식, 1팀 4팀 경계 없이 전원 휴식한다.”
드디어 온전한 햇살이 가득한 곳에 도착했다.
국가기록원의 서쪽 주차장이었다.
성현은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구조가 늦어져 해가 지게 되면 낭패였기 때문이었다.
‘5시 8분. 시간이 아슬아슬한데.’
전원 구조해서 1시간 안에 나오지 못하면 땅거미가 지고 숨어있던 좀비들이 사방에서 덮쳐올 것이다.
“전원 탄약 보고!”
“240!”
“210!”
계속해서 대원들이 탄약 재고를 알려왔다.
성현은 창고를 열고 삽탄이 끝난 탄창을 대원들에게 보급했다.
“헐! 아저씨, 저기 창문 보이세요? 엄청 많아요.”
성현의 눈에도 보인다.
국가기록원 1층 대형 창문 넘어 좀비들의 레벨이 표기된 텍스트가 가득하다.
“4팀 절반은 이곳에서 경계에 임하고, 절반은 1층 적 배제 후 추가되는 놈들을 막는다. 1팀은 나와 함께 돌입한다. 전원 야간전투 장비 착용해라.”
1팀 대원들의 손이 분주하다.
헬멧에 적외선 망원경(IT)을 장착하고, 총기 앞쪽에 레이저 조준기를 달았다.
그리고 건빵 주머니에 케미라이트(화학반응 발광체)를 집어넣고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성현도 창고를 열어 준비했다.
덜컥덜컥.
커다란 철제 가방과 탄띠가 일체형인 탄약 가방, 일명 탄통을 꺼냈다. 탄약을 자동 충전시켜주는 배터리 일체형이다.
탄약 가방을 메고 창고에서 휴대용 미니건을 꺼내 탄띠에 연결했다.
“다들 준비하고 내가 1층 중앙 쓸어버리면 진입한다.”
분당 최대 4,000발을 발사하는 미니건 M134을 든 성현이 건물 20m를 남겨두고 굳건히 섰다.
위위윙윙!
모터가 ON 되고 미니건 M134의 6열 총구가 강력한 회전을 시작했다.
드르르르르르륵.
쿠콰콰쾅! 꽈과광!
미니건이 황동 빛 탄피를 초당 수십 발씩 토해낸다.
발사된 탄환들은 창과 건물을 가리지 않고, 통째로 뜯어내며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퍼퍼펑펑!
벽을 관통한 탄환이 좀비들을 찢어발겼고, 어른 머리통만 한 관통상을 만들어냈다.
살짝만 스쳐도 무시무시한 탄환의 스크루에 휘감겨 찢겨 나가고, 휘말리는 순간 다른 탄환들이 날아와 전신을 갈가리 분쇄했다.
드르르르륵.
꽈광! 카카캉!
건물이 이대로 무너지는 건 아닌지 건물 전체가 부르르 떨며 전 층의 창이란 창은 모두 깨어져 부서졌다.
이제는 벽이었는지 조차 의문이 드는 뻥 뚫린 공간은 흩날리는 시멘트 가루와 좀비들의 피가 한 대 뒤섞여 흩날렸다.
자욱한 분홍빛 피안개가 모두의 시야를 잠시 가렸다.
위위윙.
1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탄통에 들어있던 1,200발의 탄약이 모두 소진되어 버렸다.
성현은 미니건과 장비를 벗어 던지듯 내던지고, K2c1을 한 자루 꺼내 잡았다.
그리고 성현은 돌격 지시를 하려고 뒤를 돌아봤다.
“돌··· 니들 뭐하냐?”
처음부터 가까이서 지켜본 해미까지 입을 떡하니 벌리고 볼 정도니 대원들 상태가 정상일 리 없다.
“정신들 안 차려!”
성현의 버럭 하는 소리에 모두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다.
“1팀 따르고 4팀 절반은 1층에서 경계하며 적을 저지한다. 따라와!”
성현이 건물로 뛰어들자 대원들도 바짝 붙어 뒤를 따랐다.
이전에 벽이었던 곳은 천정까지 박살이나 2층의 천장이 훤히 보였고, 폭 15m 정도의 벽은 완벽하게 해체되어 잔해만이 바닥에 수북했다.
들어선 내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
거대한 콘크리트들이 뒤집어져 있고, 좀비였나 싶은 육편들이 1층 로비에 한가득이었다.
철퍽철퍽.
곳곳에 피 웅덩이가 만들어져있어 워커에 질척이며, 묻어나는 느낌이 과히 좋지 않았다.
“4팀 현 위치에서 대기. 해미야, 너도 여기서 대원들 지원 좀 부탁한다. 1팀은 지하로 간다.”
성현은 생존자들이 말한 출입제한 구역으로 향했다.
“이곳은 좀비가 없다고 했지만, 경계에 신경 쓰고 진입한다. 전원 IT 착용!”
성현은 적외선 망원경 착용을 지시하고, 자신도 헬멧에 두르고 헤드 벨트를 조였다.
다행히 지하 1층과 2층은 좀비들이 없었다. 다만 귀찮은 문들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출입제한구역.
문구에 빨간색 두 줄이 처져 있다.
따다다당.
터터터텅.
성현이 쏜 탄환에 3mm의 강철 문을 관통하고 잠금장치를 통째로 부숴냈다.
잠금장치가 부서진 문을 완력으로 열고,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어둡고 긴 복도가 나타났다.
약 15m를 전진하고 성현이 멈추어 섰다.
"역시 안 되나."
엘리베이터의 호출 버튼을 눌러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생존자의 말대로 엘리베이터는 작동되지 않았다.
“비상계단으로 간다.”
비상구는 엘리베이터를 지나자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바로 있었다.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문이 굳게 잠겨있다.
문의 옆에는 카드 출입기인 듯 고장 난 사각 단말기가 붙어 있었고, 안쪽에서만 수동 개폐가 가능했다.
생존자에게서 카드 출입기에 대한 언급이 듣지 못했지만 어차피 큰 상관은 없었다.
파캉!
성현은 카드 출입기를 개머리판으로 박살 냈다. 그럼에도 문을 밀었지만 여전히 열리지 않는다.
“귀찮게 하네.”
뒤로 한발 물러선 성현이 앞으로 크게 뛰어 강하게 발로 찼다.
비상문이 크게 찌그러지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순간 ‘훅’하고 공기가 밀려 나왔다. 밀폐된 지하의 탁한 공기가 문이 열림과 동시에 올라온 것이다.
“가자, 지하 300미터다.”

* * *

다닥, 다다닥.
성현과 대원들은 빠른 속도로 계단을 밟고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지하 300m까지 연결된 계단은 그 끝이 없는 듯했다.
한때 서울의 랜드 마크였던 63빌딩보다 높은 건물을 계단을 통해 내려간다고 보면 되었다.
한참을 내려가던 성현이 케미라이트 하나를 꺾어 아래로 던졌다.
바닥에 닿은 케미라이트가 멀지 않았다.
“얼마 안 남았다, 힘들 내자.”
성현은 게이머로 각성 후 얻은 내성 스텟과 체력 스텟의 영향으로 아직 크게 지치거나 부담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와 달리 대원들은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가쁜 숨소리와 함께 상당히 지쳐 보였다.
‘생각보다 심각해, 산소가 많이 부족하다. 장시간 노출되면 좋지 않아.’
성현의 생각대로 지하는 공기 순환이 멈추고 제대로 산소공급이 되지 못한 상태였다.
“다 왔다!”
마지막 계단을 끝으로 바닥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끼릭.
연구소로 통하는 비상문은 다행히 잠겨 있지 않았고, 열려 있었다.
처척.
이럴 때는 말보다 행동이 빠르다 손을 올려 수신호를 주고 자신만 단독으로 들어갈 뜻을 전했다.
대원들은 문에서 떨어져 뒤로 물러서며 경계를 했다.
‘흐음······.’
연구소 내에 들어서자 처음 눈에 띈 것이 바닥에 적힌 알파벳으로 된 구역 표기였다.
“C-5. 규모가 예상보다 크다.”
최소한 A, B, C에 해당하는 구역이 있음을 알게 했고, 세부적인 규모는 생각이상으로 크고 복잡할 수 있음을 짐작했다.
파바밧.
성현은 빠르게 연구소 안을 달렸다.
성인 서넛 정도가 동시에 다닐 수 있는 통로였다. 콘크리트 벽과 전체가 유리로 된 연구실들을 몇 개 지나자 갈림길이 나왔다.
“일단 좌측.”
바닥에 A-2라는 구역표시를 보고 방향을 틀었다.
‘사람이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산소결핍으로 인해 의식을 잃은 것으로 보였다.
'제기랄. 밖으로 못나온 이유야 이해는 하지만, 어찌 이지경이 될 때까지.'
안타까웠다.
좀비가 득실거리는 건물 위로 나오지 않은건 다행이지만, 이대로라면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터였다.
성현이 다가가 의식이 없는 이의 목에 손가락을 붙였다. 경동맥이 약하지만 뛰고 있었다.
‘살아있다, 당장 산소가 급하다. 발전기를 찾아야 해!’
계단의 위쪽 문이 열려있다고는 하지만 당장 공기의 순환이 아래에까지 이루어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걸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연료가 모두 소진되어 멈춰버린 발전기를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