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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지상으로 (2)



[좀비 Lv2]
“······좀비?”
놈의 머리 위에는 좀비 Lv2라는 표기가 띄워져 있었다.
투투퉁.
총구에서 불꽃이 튀며, 소음기로 인해 조금 억눌린 총성이 튀어 나왔다.
퍼퍼퍽.
스킬의 효과로 일반 소총탄에 맞는 소리가 아닌 조금 더 묵직한 탄착 음이 들려왔다.
좀비의 왼쪽 어깨는 직경이 3㎝가 넘는 관통상이, 한쪽 허벅지는 거칠게 찢겨졌다.
투투투투투.
고통을 모르는 듯. 놈이 한쪽 다리를 크게 끌며, 다가오자 성현은 성한 다리 한 짝에 집중사격을 했다.
퍼퍼퍼걱. 퍼억!
철퍼덕.
집중된 탄착군에 다리 한쪽이 떨어져 나갔고, 잘린 단면에서 굵은 핏줄기가 ‘피싯’ 거리며 뿜어졌다.
쓰러지며 앞으로 기우는 모습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눈에 또렷이 잡혔다.
오랜만의 실탄 사격으로 인해 아드레날린 분비가 촉진되어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소총의 위력이 상당히 강해진 건 확실하다.’
그어억!
놈은 달려오던 상태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한참을 굴러 성현과 해미가 있는 곳에서 불과 5m 떨어진 곳까지 굴러왔다.
구오오어.
처음과 달리 통증은 일부나마 느끼는지 좀비는 고통에 찬 괴성을 뿜어댔다.
핏발선 눈은 튀어나올 만치 돌출해있고, 성한 팔로 바닥을 긁으면 기어왔다.
콰곽, 콰직.
그어어!
“아-. 귀 아파. 아저씨··· 저기 좀비 레벨2이라고 보이는데, 제가 잘못 본 거 아니죠?”
해미가 예상외로 크게 당황하지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으응? 그래 맞는 거 같다. 아무래도······.”
성현은 말끝을 흐렸다.
인간이었던 거 같다고 말하려 했지만, 차마 잇지 못했다.
“제가 보기엔 사람이 저리 변한 거 같아요. 영화나 소설 보면 사람이 좀비가 되잖아요. 좀비가 그냥 나타나지는 않죠.”
자신의 배려가 무색하다.
보기보다 정신력이 강하다 생각한 성현은 게이머의 특성 효과가 작지 않음을 짐작했다.
“혹시 좀비를 죽이거나 하면 레벨이 올라가는 거 아닐까요?”
성현은 다른 생각을 하느라 미처 놓치고 있던 부분이었다.
“맞다. 충분히 그럴 개연성은 있어. 좀비에게 레벨이 부여된 상태니까. 확인해 보자.”
성현은 느리지만 바닥을 기어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는 좀비에게 다가갔다.
“으그. 징그러.”
함께 다가간 해미가 좀비를 살펴보고 예상외로 눈을 돌리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미간을 살짝 모으고 아미를 찌푸렸다.
어린 소녀가 지렁이나 바퀴벌레를 본 듯 조금은 담백할 정도의 표현에 성현은 다시 해미를 봤다.
“무섭지는 않니?”
“네. 그렇게까지는··· 안 무서운 거 같아요.”
‘좋게 생각하자. 무섭다고 난리 피우지 않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
그어, 그으, 구어어!
발버둥 치는 좀비의 팔을 성현은 발로 찍어 누르고 총구를 좀비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좀비는 버둥대며 팔을 빼려 하지만, 성현의 힘도 상상 이상이다.
비록 해미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성현도 1차 전직은 유지된 상태이고 기본 스펙이 있어 2레벨의 좀비 따위는 힘으로도 압도할 수 있었다.
“편히 보내주마. 잘 가라.”
그어?
투콰. 퍼벙!
성현은 망설임 없이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이미 인간과는 동떨어진 존재에 대해 일말의 동정도 연민도 느껴지지 않았다.
좀비의 이마에 총격이 가해지고 머릿속에든 모든 내용물들이 뒤통수를 통해 폭발하듯 빠져나갔다.
뇌수와 피 그리고 뼛조각이 섞인 걸쭉한 액체가 사방으로 튀어 지하상가의 괴기스러움을 한층 더했다.
“아저씨. 저 지금 경험치가 아주 조금이지만 올랐어요. 파티도 안 했는데 어떻게 된 거죠? 그나저나 좀비가 경험치를 주는 게 정말인가 봐요.”
해미가 캐릭터 창의 레벨 경험치를 살피며 말했다.
“아무래도 너랑 나랑은 강제 파티상태인 거 같다. 경험치 분배가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도 같은 경험치를 얻는 거 같다. 근데 경험치가 상당히 적네. 20마리는 잡아야 1퍼센트라니.”

레벨 : 1 (EXP 0.05 %)

성현도 캐릭터 레벨 옆에 있는 경험치를 확인했다. 게임에서 저 레벨 때는 빠르게 성장하던 것과는 다름을 알게 되었다.
“와 그래도. 완전 현실 게임 대박이다, 그죠? VR 게임은 명함도 못 내밀겠어요.”
‘조금은 현실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니? 내가 이상한 거냐?’
“어라. 아저씨, 저 골드도 늘어난 거 같은데요. 한 마리 더 잡으면 확실히 알 거 같아요.”
성현도 해미의 말에 조금 어리둥절해서 급히 창을 열었지만 정확한 골드를 기억하고 있지 못해 확인은 힘들었다.
“근데 골드는 사용할 방법이 없는데. 있어 본들··· 흠.”
게임 인터페이스에 원래는 있었던 거래소, 무인상점, 특별상점은 모두 지우개로 지운 듯 사라지고 없었다.
게임처럼 마을에 NPC 상점이 있다면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사용처가 없다.
더군다나 물질적인 가치라도 있게 꺼낼 수 있다면 모르지만 그것조차 안 되었다.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다.
“근데 2레벨짜리가 있으면, 3레벨 4레벨 5레벨도 있고 그런 거 아닐까요? 저희 게임 할 때도 그랬잖아요. 사냥터 입구는 저 레벨 몬스터가 있고 중심부로 갈수록 고 레벨 몬스터 나오잖아요. 그러다 나중에는 애들 막 뭉쳐 다니면서 몰려오던데.”
흠칫.
해미가 한 번씩 직관적인 말을 할 때마다 성현은 무서워진다.
사전 추리나 사유 작용 따위는 무시하고 말하는 게 몹시도 두렵다.
“해미야··· 우선 좀 자리를 옮기자. 장소가 그리 좋지는 않잖니.”
“넵.”
해미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성현이 앞서고 해미가 뒤를 받치고 죽은 좀비 시체를 넘어 3번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쿵쾅쿵쾅.
조금 걷기 시작할 즈음 지금 있는 복도가 울릴 정도로 상당한 수의 무언가가 달려오는 진동이 느껴졌다.
“하아······.”
왜 슬픈 예감은 틀려먹질 않나 하고 성현은 생각했다.
말없이 K2c1 소총을 뒤로 걸쳐 매었다. 대량살상이 필요한 시점이라 본 것이다.
창고를 열어 K6중기관총 1정을 꺼냈다. 그리고 200발들이 박스 탄창을 결합시키고 약실에 삽탄했다.
총의 무게만 27㎏에 삼각대 15㎏ 박스탄창까지 더하면 무려 57㎏에 달했다.
‘좀 그런가? 뭐 어차피······.’
사실 꺼내 놓고 보니 좀 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위력 시험을 해본다는 의미로 그냥 사용하기로 했다.
현재 성현의 피지컬이라면 들고 쏘는 것도 가능하지만, 원래 K6 중기관총은 개머리판이 없이 그 부위에 양손잡이와 방아쇠가 붙어있어 가능은 할지라도 제대로 된 사격은 불가능했다.
삼각 지지대를 펼치고 고정핀을 발로 한 번씩 밟아 타일 안으로 박아 넣었다.
구어어어.
삼각대가 낮아 성현은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온다.”
[좀비LV2]
[좀비LV2]
시야에 들어온 좀비들이 머리 위에 레벨을 표기하고 달려온다.
“해미야 혹시 모르니 너도 준비해!”
“네. 아저씨 걱정 마세요!”
이미 해미는 언제 꺼내 쓴 것인지 풀 페이스 헬멧을 쓰고, 바이저를 내려 얼굴까지 가리고 대답했다.
지팡이를 양손으로 꼭 잡고, 일견 보기에는 전의를 불태우는 듯했다.
쿠오오오-!
선두의 좀비가 주변에 거치적거리는 시설이며 장애물을 거칠게 쳐내면서 달려온다.
‘2레벨.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
이미 시야에 20여 마리의 좀비들이 나타나 있었다.
‘지금!’
약 30m 전방까지 좀비들이 접근하자 성현은 지체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
총구에서 뿜어지는 기다란 섬광이 1미터 가까이 뻗어 나왔다.
초탄이 살짝 흔들리며 표적을 벗어났지만, 금세 반동을 제어하고 사격에 박차를 가했다.
어두운 복도가 총구의 화염에 환하게 밝혀졌다 점멸하듯 깜빡인다.
퍼퍼펑.
좀비들의 살가죽이 터져나가고, 관통한 탄환은 뒤따르던 좀비를 일체형처럼 뚫어 버리는 비이상적인 모습을 만들어냈다.
‘스킬도 한몫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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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밖에서 3.2mm의 강판도 찢어발기는 중기관총의 위력은 스킬의 영향을 받아 1.5배 강화되어 근거리의 모든 것을 관통하고 파괴했다.
후드드드득.
좀비를 관통한 탄환들이 벽이며 바닥을 파고들어 파편과 먼지가 비산해 어두운 복도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회색빛을 뛰며 더한 어둠에 잠겨 들었다.
‘어차피 안 보여도 상관없어. 좀비들 표시만 보고 쏜다!’
성현은 좀비들의 표식을 표적삼아 방아쇠를 연신 당겼다.
우측 벽면부터 긁어내듯 좀비를 갈아낸다.
‘거의 정리 된 것 같은데.’
투투투투. 철컥
순식간에 200발 박스탄창의 탄약이 모두 소진되자 빠르게 일어서 등 뒤에 있던 K2c1을 파지하고 사격 자세를 취했다.
조정간 연사로 돌리고 적외선 스코프로 전방을 바라봤다.
녹색 빛 복도가 시야에 들어왔다.
더 이상 서 있는 좀비는 없었다.
시체라기엔 육편에 가까운 것들이 겹겹이 쌓여 공포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보는 듯했다.
후드득.
철퍽. 철퍽.
천정에 붙어있던 큰 살점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질펀한 소리를 낸다.
‘20마리 정도 보인 것 같은데. 너무 화력이 과했나?’
전방은 온통 피바다를 이루고 있다.
두 마리는 기본으로 관통하는 탄환은 수박만 한 관통상을 남겼고. 팔다리는 ‘뻥뻥’ 소리를 내며 풍선 터지 듯 흩어 버렸었다.
성현은 그제야 경계 자세를 풀고 뒤를 돌아봤다.
“휴우. 해미야 다잡은 거 같다.”
해미가 바이저를 올리며, 성현을 듬직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척하니 엄지를 들어 올린다.
왠지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든다.
단둘뿐이지만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가 있다.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이 한층 더 짙어진다.
“아저씨!”
해미가 급히 손가락을 뻗어 성현의 뒤를 가리켰다.
성현이 설마 하며 민첩하게 총구를 돌렸다.
시야에 납작한 원반 형태의 무언가가 날아왔다.
쩌-엉!
번쩍! 하며, 순간 머리에 수백만 개의 카메라 플래시가 켜졌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외부 충격으로 몸이 한 바퀴 돌아간다.
해미가 놀란 눈으로 손에 빛을 뿜어내는 모습이 보이고, 이내 의식이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