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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서점 2화

1. 오후 3시 (2)



엎드린 채 서점 내부로 눈을 굴리던 태하는 내 어깨너머로 무언가를 보더니 눈을 반짝이며 물어 왔다.

“저거 터지겠다. 나 먹어도 돼?”

뒤돌아본 곳에는 아까 내려놓은 요구르트 병이 있었다. 나는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안 돼.”

“왜? 안 마실 거라서 저렇게 방치해 둔 거 아냐?”

“어쨌든 안 돼. 마시고 싶으면 내일 와서 마셔.”

“그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오늘까지만 기다려 보자. 마셔 버리면 이유도 모르는 사과를 받는 느낌이라 마음이 찝찝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남자의 마지막 흔적을 지운다는 사실이 이상하리만치 아쉬웠다.

태하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옆에 미리 골라 두었던 책 몇 권을 안아 들고 추천 도서 코너로 향했다. 제일 오래 전시된 책 몇 권을 빼내고, 새로 들고 온 책을 채워 넣었다. 매일같이 읽어 주던 사람이 오지 않으니, 전등 빛에 바래지고 있는 책들이 불쌍하게만 여겨졌다.

문득 서점 가운데 벽을 올려다보니 아날로그시계 바늘이 8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진짜 안 오려나 보다. 자주 오던 손님의 부재란 새삼스러울 일도 아닌데 꼭 체한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뭐. 또 이 책들 봐 줄 손님은 오겠지. 요란해지는 사념을 차단하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오늘 남아서 책 보기는 글렀네. 일찍 닫고 태하랑 술이나 한잔해야겠다 싶어서 말을 하던 때였다.

“장태하, 술이나 한잔하-”

뒤로 돌자마자 보이는 익숙한 얼굴 탓에 끝말이 뭉툭하게 잘렸다. 이제 왔네. 3시 아닌데. 본의 아니게 데드라인에 딱 맞춰 온 깜짝 손님은 멋쩍은 듯 뒷목을 긁으며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그 와중에도 인사는 까먹지 않는 게 한결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아마 서점 문을 열었던 기간 중 가장 반가운 목소리가 나온 게 아닐까 싶었다.

“어서 오세요.”

내 답인사가 끝났음에도, 남자는 여전히 내게 할 말이 있다는 듯 앞쪽으로 모은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뜸을 들였다. 나는 남자가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조금 기다려 주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얼굴에 머물렀다.

밤에 처음 보는 얼굴은 낮보다 더 하얗게 빛나는 것 같았다. 망설이느라 내리깐 눈 위로 길게 뻗은 속눈썹이 그 밑으로 그림자를 깔아 한층 처연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달싹거리는 입술은 얼마나 선이 고운지, 홍주 씨가 왜 인형 같다 했는지 그제야 납득이 갔다. 가까이서 본 이목구비 중 예쁘지 않은 곳이 단 한 구석도 없었다.

색이 번진 수채와 같은 얼굴에 빠져 있을 때, 드디어 말할 마음이 들었는지 굳게 닫혀 있던 입이 꽃봉오리를 틔우듯 화하게 열렸다.

“오, 오늘은 책 사러 왔어요…….”

“네?”

남자가 한 말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나는 바보 같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곧바로 변명하는 듯한 말이 따라왔다.

“맨날 오면서 제가 사지는 않고 너무 보기만 했죠? 죄송해요, 여기 도서관도 아닌데.”

“아.”

그러고 보니 매일같이 서점에 와서 책을 읽기는 했지만 사 간 적은 없었다. 상관없는데. 그런 마음을 표현하기도 전에 남자는 다급하게 말을 채어 갔다.

“원래는 다시 안 오려고 했는데요…… 이만큼 제 취향인 책만 있는 곳은 처음 봐서 안 올 수가 없었어요.”

이번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취향인 책. 내가 고른 책들을 저렇게 칭해 주는 사람에게 어떻게 모진 말을 할 수 있을까.

“안 사도 돼요.”

“네?”

남자는 놀란 듯이 고개를 들었다. 아, 말이 이상했나? 안 사도 되니까 다신 오지 말란 얘기로 들었는지, 남자의 눈에 서러운 감정이 묻어났다. 나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번엔 오해하지 않게 정확한 말로.

“안 사도 되니까. 책 자주 보러 와요.”

그리고 요구르트를 버리지 못하게 만든 미련을 드디어 입에 담았다.

“대신 저한테도 얘기해 줘요. 그 책이 왜 좋았는지.”

동동. 심장이 울리는 기분 좋은 고동 소리는, 책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생겼다는 설렘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



오전 10시는 도토리 서점이 오픈하는 시간이다. 평소라면 문을 열고, 작은 화단과 화분에 사이좋게 물을 주었을 테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한 준비를 해야 했다.

토독, 톡.

멀리 주차해 둔 차에서 서점까지 걸어가는 동안 굵은 빗방울이 초록색 우산을 마음껏 두드렸다. 아직 사람이 밟지 않은 길 위에는 불규칙한 모양으로 나 있는 웅덩이가 찰방거리는 물소리를 냈다. 땅, 벽, 혹은 나무. 다양한 곳에 부딪히는 빗물 소리는 언제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아마, 도토리 서점이 더욱 서점다워 보일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비, 봄비가 오는 날이었다.

입구 위쪽에 천막을 치고, 서점 안쪽에 있던 다양한 모양의 화분들을 밖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조금 번거로워도 봄비에는 거를 수가 없는 일이다. 이렇게 고생, 고생해서 비를 맞게 하면 얼마 후 깜짝 놀랄 만큼 싱그러워지는 풀들을 볼 수 있었다. 운이 좋으면 새싹이 틀 수도 있고.

모든 준비를 마치고 보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목재 기둥이 비에 물들어 진한 갈색으로 변해 가는 과정에 내 마음이 다 녹진해진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기지개를 켜고 안으로 들어가려 하니 입구 옆에 세워 놓은 새집 모양 우체통에 반투명 비닐이 삐져나온 게 보였다.

……저게 뭐지?

말이 우체통이지, 우체부 아저씨가 우편물을 죄다 출입문 사이에 껴 두는 바람에 실제로 이용 되는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비닐 끝을 잡고 죽 잡아당기자 꽤 무게감 있는 물건이 딸려 나왔다.

비닐은 비를 막기 위한 용도였는지 안에는 작은 크기의 우유팩 하나가 덩그러니 담겨 있었다.

웬 우유지?

출처나 추신조차 쓰여 있지 않았지만 문득 아는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그게 요구르트를 준 사람과 동일할 것이라 짐작했다.

그게 답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멋대로 확신에 찬 나는 비싯거리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기 위해 입을 가렸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투명 비닐 속에 우유를 꼼꼼히 감싸는 남자를 상상하니, 심장이 간지러워 견딜 수 없어졌다. 딱 그런 남동생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

‘네. 책 얘기 해 드릴게요.’

내 요구에 웃었던 얼굴이 참 맑기도 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는데, 결국 책 한 권도 사 가고 말았다. 잔잔한 봄날에 읽기 좋은 책. 에쿠니 가오리의 <호텔 선인장>이었다. 고른 책마저 남자의 순한 이미지와 너무 잘 어울려서 선물로 주고 싶다는 말이 턱 끝까지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이 이상 부담스러워지면 정말 발길을 끊을지도 모른다.

카운터에서 계산할 때에는 드디어 남자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서마루예요.’

이름도 예쁘네. 이름을 알았을 땐 마냥 들떠서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내 이름도 물어봐 주지.”

중얼거리며 봉투에 든 우유를 꺼내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섭섭하게도 마루라는 이름의 손님은 나를 계속 사장님이라 부를 생각인 것 같았다. 다시 서점에 오기로 했고, 책도 팔았고, 이름도 알았는데. 도대체 왜 억울한 기분이 드는 건지 모를 일이다.

남자는 이제 스물여섯 살이라고 했다. 나이를 들은 나는 조금 놀란 티를 내 버리고 말았다. 당연히 20대 초반 정도일 줄 알았지. 그게 어딜 봐서 나랑 한 살 차이야. 원래 뼈대 자체가 얇은 건지, 붙어 있는 살도 별로 없이 가는 몸인데 볼만은 보기 좋게 살이 올랐다. 쿡 찔러 보고 싶을 만큼.

마루 씨가 가고 난 후에 기분이 한껏 좋아진 나는, 태하와 술 마시려던 걸 관두고 예정대로 서점 문만 닫고 책을 읽었다. 옆에 달라붙은 태하가 마루 씨에 대해 캐물으며 귀찮게 하는 통에 얼마 못 가 집에 가야 했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으니 하나둘씩 손님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가게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입구에 서서 한동안 여유를 즐기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커피 머신을 돌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건네주곤 했다.

평소엔 뉴에이지 같은 잔잔한 음악을 틀어 놓지만, 비가 오는 날은 예외다. 일부러 삼각형 모양으로 지어 놓은 지붕은, 빗소리를 울려 주는 북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자연이 내는 서투른 연주는 언제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어 입구를 확인했다.

“기다리는 사람 있나 봐?”

깜짝이야. 책을 계산하기 위해 카운터로 온 중년의 남성이 기습적으로 말을 건넸다. 허허, 인자하게 웃는 모습에 순간적으로 들었던 경계심이 허물어지고, 나도 그냥 웃어 버렸다.

“네. 기다리게 되네요, 이상하게.”

“애인이야?”

“예?! 아니에요. 그냥 손님이에요.”

당황스러운 마음에 급하게 부정해 봤지만 믿지 않는 눈치였다. 중년의 손님은 아까보다 입을 더 죽 찢어 웃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계속 아니라고 해도 안 믿을 것 같았다. 보통 이런 소릴 들어도 신경 쓰지 않는 편에 속했는데, 괜히 식은땀이 나는 건 오후 3시가 다 되어 가기 때문이다. 혹시나 마루 씨가 들어올까 싶어, 손님을 상대하면서도 입구를 힐끔거리게 됐다.

“올 때마다 무심해 보이더니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아네? 놀리려는 건 아니고 보기 좋아서 그래!”

“아, 네…….”

최대한 아무렇지 않아 보일 표정을 지어내고 대꾸했다. 여기까지만 해 달라는 무언의 부탁이었다. 하지만 손님은 가게 문을 나서기 직전까지 나에게 꼭 새겨들으라는 듯 말을 강조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웃게 만드는 사람은 놓치면 후회해.”

경험담……인가? 정말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속에 박힐 말이었지만, 아쉽게도 내가 기다리는 손님은 남자였다. 나는 굳이 토를 달지 않고 엉거주춤한 꼴로 목례하며 손님의 배웅을 마쳤다.

그렇게 한동안을 멀뚱하게 서 있다 손을 들어 얼굴을 매만져 봤다. 내가 무슨 표정을 하고 있다고 그러는 걸까? 꽤 진지한 마음으로 고민하고 있으니 검정색 우비를 둘러쓴 사람이 힘차게 발을 구르며 천막 아래로 들어왔다.

봄비라도 우비만 쓰기에는 꽤 비가 많이 내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담뿍 적신 비닐 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머리카락이 비에 쫄딱 젖은 채였다. 들어왔으면 우비를 벗어도 될 법한데 목석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모양새가 퍽 익숙했다.

“마루…… 씨?”

“아, 안녕하세요. 사장님…….”

“헉! 왜 그러고 있어요. 감기 걸리게. 우산은 왜 안 썼어요?”

“비가 갑자기 오는 바람에 못 챙겼어요.”

갑자기? 예고 없던 비이긴 했지만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했는데. 마루 씨는 그것보다 더 빨리 집을 나섰다는 말이 됐다.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급한 불을 끄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서랍에 넣어 둔 수건들 중 하나를 다급하게 꺼내 들었다. 설거지용으로 구비해 두었던 핸드타월이라, 잔뜩 젖은 몸을 닦기엔 턱없이 얇았지만 젖은 채로 두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다.

당장 우비부터 벗기기 위해 손을 뻗은 순간, 마루 씨가 움찔거리며 몸을 물렸다. 너무 저돌적으로 다가갔나. 허공에 머문 손이 민망해서 슬쩍 내리자 마루 씨가 난감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너무 많이 젖어서…… 들어가면 민폐일 것 같아요.”

“그럼 이대로 천막 아래에 서 있을 거예요? 안에 난로 있으니까 말리면 돼요. 얼른요.”

우비를 벗겨 내니 안은 더 가관이었다. 물에 빠졌다시피 푹 젖은 옷은 몇 시간을 말려도 소용없을 듯했다. 흰색이었을 셔츠가 물을 먹어 옷 아래 속살이 투명하게 비쳤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 시선을 돌렸다.

왜…… 화끈거리지?

같은 남자의 몸을 보고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일반적이지 않았다. 괜히 더 아무렇지 않은 척, 씩씩하게 마루 씨의 손목을 잡고 난로가 있는 카운터로 돌아왔다. 급하게 뛰어 들어온다 싶더니, 방금 건져 올린 생선처럼 팔딱거리는 마루 씨의 맥박이 느껴졌다. 그 작은 고동이 손을 떼고 나서도 여진처럼 피부에 감촉을 남겼다. 이번엔 뒷목에 열이 올랐다.

마루 씨를 의자에 앉혀 놓으니 곧바로 옷에서 떨어진 물이 바닥에서 웅덩이를 이루었다. 안 되겠다. 이러다가 진짜 감기 걸리겠네.

“마루 씨. 제가 일 끝나고 책 읽을 때 편하게 입는 옷이 있거든요? 일단 그거라도 갈아입어요.”

“아, 아니에요 사장님! 저 진짜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요. 이러고 앉아 있으면 손님들 눈에 제가 얼마나 비정해 보이겠어요?”

극구 사양하며 저어 대는 손에 여분 옷이 들어 있는 쇼핑백을 단단히 쥐여 주었다. 그제야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는지, 마루 씨는 풀이 죽은 채 카운터 뒤편에 있는 창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창고 문이 다시 열리더니 젖은 머리통만 빼꼼 나와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고맙습니다. 책 안 젖게 조심할게요…….”

그러고는 빠른 속도로 문을 탁 닫고 들어가 버렸다…… 진짜 순하네. 닫힌 문에서 한 번 더 머리통이 나와 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곧이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듯했다. 나는 따뜻한 커피를 내리기 위해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버튼을 누르자 윙윙 소리를 내며 원두가 갈리기 시작했다. 손을 데우기 좋게 커다란 머그잔을 골라 커피 머신 아래에 두었다. 깔끔하게 컵으로 떨어지는 원액을 보고 있으니 금세 옷을 갈아입은 마루 씨가 주춤거리며 창고 밖으로 나왔다.

확실히 많이 크네. 청색 후드 티에 검정색 트레이닝 바지. 내가 입을 땐 딱 맞을 정도였는데 마루 씨가 입으니 이불 담요를 둘러쓴 것처럼 커 보였다. 그래도 같은 남잔데, 너무 귀여워하면 기분 나쁠 수도 있으려나? 나는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커피가 중간쯤 차오른 커다란 머그컵을 마루 씨의 손에 쥐여 주었다.

“저, 사장님 무슨 기분 좋은 일 있으세요?”

“네? 왜요?”

“콧노래를 흥얼거리셔서요.”

“…….”

“……?”

포커페이스는 무슨. 얼굴에 불이 붙은 것처럼 열이 올랐다.

왜 이렇게 웃음이 헤퍼졌지. 아무래도 최근 표정에 대한 지적 아닌 지적들을 받은 걸로 봐선, 머리에 나사 하나가 풀어진 게 분명했다. 그래도 그렇지 콧노래라니. 낯 뜨거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오히려 마루 씨는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지, 호로록 커피 한 모금 들이켠 얼굴이 노곤 하게 풀어졌다.

“따뜻하다. 고마워요, 사장님.”

겨우 커피 한 잔으로 받기에는 꽤 과분한 미소였다.

“별말씀을. 나중에 우산 줄 테니까 쓰고 가요.”

“괜찮아요. 집도 이 근처라서 뛰어가면 돼요.”

“집이 이 근처예요?”

“네. 거북이 슈퍼 있는 곳에서 쭉 올라가면 있는 파란 대문 집이에요.”

내 생각보다 더 가까운 거리다. 근처 사람들에게 듣기로, 거북이 슈퍼는 이 오래된 동네에서 가장 처음 세워진 가게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동네 사람은 건물의 위치를 설명할 때면 보통 그 슈퍼를 기점으로 두고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꽤 정다운 방식이라 생각했다. 같은 버릇을 가지고 있는 마루 씨가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여기서 가깝네요.”

“그러게요. 이렇게 가까운데 이 서점을 이제야 발견한 게 억울할 정도예요.”

마루 씨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책을 많이 좋아하는 게 눈에 다 보일 정도로. 이러면서 서점에 다시 안 올 생각을 했었다는 게 조금 괘씸했다. 덕분에 나만 사흘을 속앓이하지 않았는가. 나는 기쁜 듯이 웃으며 서점 내부를 둘러보는 마루 씨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여기 안 오면 어디서 책 읽으려고 했어요?”

이 주변에 서점은 여기 하나밖에 없다. 마루 씨는 책을 구입해서 읽는 편이 아닌 듯했기에, 인터넷으로 주문할 생각 역시 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주문하려고 했죠.”

“아.”

……아니네.

틀렸다는 생각에 멋쩍은 기분이 들어서 입을 다물었다. 손에 쥐고 있던 축축한 핸드타월을 옆으로 치우고, 뽀송한 새것을 가져온 후에 마루 씨의 머리 위에 얹어 주었다. 커피를 호록 들이켜던 얼굴이 빤히 올려다보는데, 아기 강아지를 돌보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온순하고 충성스러운 강아지.

“한 달에 몇 권 구입하지도 못해요. 어릴 때는 도서관이 집인 것처럼 살았는데, 일을 하게 되니 그런 시간조차 내기 어려워져서요.”

책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말하는 눈빛부터가 달랐다. 팔랑거리는 긴 속눈썹에 시선을 모두 빼앗긴 채 조곤조곤 말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이 서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사장님은 상상도 못하실 거예요.”

눈에 보석을 박은 것 같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아, 서점을 한 10년 전에 지을 걸 그랬다. 아닌가 그땐 마루 씨도 학생 때라 어차피 도서관에 다녔으려나. 도서관에 부지런히 다니는 열여섯의 마루 씨를 생각하니 그건 또 그것대로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때도 인기는 많았을 것 같다. 지금처럼 힐끔거리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개인 서재 말고 도서관이나 다녀 볼걸. 그래 봤자 동네가 멀어 마주칠 일은 없었을 텐데, 우스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