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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들어오세요.”

시계 초침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사무실 안,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은영은 제가 들어왔는데도 한 번 고개를 들지 않는 진욱이 익숙한 듯 책상 오른쪽 위에 서류를 올려 두었다.

“무슨 서류입니까?”

진욱은 여전히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말했다.

“이번 달 무료 변호에 채택된 주택 관련 건입니다.”

“아, 날짜가 벌써 그렇게 됐나요? 어디 한 번 봅시다.”

진욱은 서류 봉투를 집어 들었다. 무료 변호란 진욱이 다니는 로펌 청송에서 오랜 기간 진행하고 있는 일종의 사회봉사 활동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무료 변호가 필요한 사람들의 사연을 채택해 변호사가 사건을 맡아 무료로 변호해 주는 것이 청송만의 무료 변호 활동이었다. 실제로 이 무료 변호로 청송의 이미지가 다른 로펌들에 비해 월등히 좋은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고소인은 세입자들, 피고소인은 집주인으로 집단 소송 건입니다. 의뢰인은 고소인 쪽입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오늘 저녁 8시에 방문하시겠다고 하시는데…….”

“알겠습니다. 나가 보세요.”

“네.”

은영이 사무실을 나가자 서류를 찬찬히 살피던 진욱은 생각보다 많은 피해자들에 혀를 찼다.

어지간해서는 이렇게 집단소송으로 가는 일이 드문데, 생각보다 피곤할 수도 있겠네.

다 읽은 서류를 한쪽에 내려놓은 진욱은 탁상 위의 시계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휴대폰을 집어 들어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 있니? 이 시간에 연락을 다 주고. 한창 바쁠 시간 아니니.

“한이는 왔어요?”

-그래, 방금 들어와서 지금 손 씻고 있어. 바꿔 줄까?

“아니에요. 다름이 아니라 오늘 좀 늦을 것 같아서요.”

-많이 늦니?

“조금 늦을 것 같아요.”

-끼니 거르지 말고 몸 챙겨 가면서 일해라. 건강이 우선이야.

“그럼요. 잘 알죠. 아, 저기…….”

-응?

“아, 아니에요. 이따 저녁에 봬요.”

이상했다. 윤 여사의 걱정 어린 당부에 대답하던 진욱은 갑자기 연주가 생각났다.

윤 여사에게 연주에 대해 물어보려던 그는 이내 생각을 접곤 전화를 끊었다.

진욱은 연주에 대한 생각을 아직 갚아야 할 신세가 남았기 때문이라 치부하고 다시 서류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그래서 말인데, 연주 씨가 가서 이야기하고 서류 좀 받아다 주면 안 될까?

“제가 가도 될까요?”

-그럼. 이미 서류는 다 보내 놔서 어떤 상황인지 다 알 거야. 가서 이야기 잘 듣고 오면 돼. 부탁 좀 할게.

“네. 그럴게요.”

-주소는 내가 보내 줄게. 고마워!

“아니에요.”

전화가 온 것은 아이들을 모두 하원시키고 난 뒤였다. 여러 번 울리는 휴대폰에 급하게 전화를 받은 연주는 아주머니의 부탁을 들어주게 됐다. 자신이 오늘 소송에 대해 변호사를 만나기로 했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갈 수가 없어 연주에게 대신 가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사실 연주는 다소 부담을 느꼈으나 이야기만 듣고만 오면 된다는 여자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메시지로 온 주소를 확인한 연주는 어느 정도가 걸릴지 시간을 가늠했다. 여기서 약속 장소인 로펌까지는 유치원 정리를 끝내고 가면 딱 맞는 시간이었다. 연주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른 교실로 돌아가 정리를 마저 했다.



* * *



8시가 되기까지 약 20분 정도를 남겨 두고 있었다. 진욱은 곧 도착할 의뢰인의 서류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벗어 놓아 둔 양복 재킷을 다시 입고 거울 앞으로 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무엇보다 의뢰인에게 보여질 이미지가 중요한 직업이었다. 진욱은 약간 삐뚤게 된 넥타이를 바르게 고쳐 맸다. 의뢰인을 맞을 준비를 마친 진욱이 의자에 앉았다.

한편 연주는 빠른 걸음으로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약속 시간까지 10분이나 남았지만 각보다 늦게 도착해 마음이 급해져 연주는 얼른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9층을 누르고서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청송법률사무소 9층 최진욱 변호사 오후 8시 약속.>



연주는 메시지를 보고 있다가 9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바로 앞 데스크에 앉아 있던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어느 변호사님 찾아오셨나요?”

곧은 자세로 친절히 물어 오는 여자에 방금 전 본 메시지에 찍혀 있던 이름을 기억했다.

“최진욱 변호사님 만나러 왔는데…….”

“네, 따라오세요.”

여자는 데스크에서 나와 앞서 걸었다. 그녀가 네 개의 사무실 문 중 하나를 열자 거기엔 아까와 같은 모양이지만 좀 더 작은 데스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안내 데스크의 여자는 이쪽으로 들어가면 된다며 말하곤 문을 닫고 나갔다. 연주는 큰 사무실 규모에 주눅이 들었지만 이내 웃으며 은영을 따라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박윤영 님 맞으시죠?”

“아, 그분은 오늘 사정이 있으셔서 대신 왔는데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유연주요.”

연주의 이름에 갸우뚱하던 은영이 이내 서류를 살펴보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고소인 중 한 분이시네요. 반갑습니다. 이은영 사무장입니다.”

“아, 네.”

“변호사님은 사무실에 계십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은영은 갈색 문 쪽으로 걸어가더니 두어 번 노크를 했다.

“변호사님, 의뢰인 도착하셨습니다.”

은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주는 긴장되는 마음에 작게 숨을 고르고 은영의 안내를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은영이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에 놀라 연주는 뒤를 돌았다. 하지만 곧이어 들리는 목소리에 다시 앞을 쳐다봤다가 그대로 얼어 붙었다.

“안녕하세요, 변호사…….”

“어, 아버님?”

연주는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남자를 가리켰다. 남자 역시 당황했는지 제대로 소개를 미처 끝내지 못하고 연주를 쳐다보고 있었다. 연주는 여전히 놀란 기색을 띤 채 손가락을 내릴 줄 몰랐다.

진욱이 먼저 정신을 차리곤 웃으며 연주의 손가락을 손수 잡아 내려 주었다. 그조차 깜짝 놀라는 연주와 달리 진욱은 웃으며 마저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변호사 최진욱입니다.”

“아, 네. 저는 유연주라고…….”

“압니다. 한울유치원에서 근무 중이시구요.”

“그, 그렇죠.”

얼결에 명함을 받아 든 연주 역시 제 소개를 하는데 진욱이 대신 말을 마쳐 주었다. 진욱은 연주를 자리로 안내하고 문을 열어 은영에게 커피 두 잔을 부탁했다.

자리를 잡고 앉은 연주는 오히려 경직된 상태였다.

하필 왜 한이 아버님이!

연주의 머릿속은 오만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찼다. 종국에 생각의 화살은 모두 지하 아주머니에게로 향했다. 왜 하필 오늘 일이 있으셨는지. 연주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진욱이 건너편에 앉은 것도 보지 못했다.

진욱도 건너편에 앉아 아무런 말없이 가만히 연주를 쳐다봤다. 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 제가 앉은 것도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지난번 유치원에서도 딱 저 모습이었는데.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지 수시로 표정이 바뀌는 연주가 웃겨 그대로 놔둘 생각이었지만 그랬다간 늦은 시간에 이야기가 끝날 것 같아 먼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우연이네요.”

“네? 아, 네. 정말 우연이에요. 저도 변호사님이 아버님이실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래도 다시 뵈니까 반갑네요.”

“저도 선생님 다시 뵈니까 그렇습니다.”

연주의 눈동자가 살짝 커진 채로 진욱을 향했다. 분명 평소 눈은 날카로운 편인데 웃으니 희한한 형태로 둥그렇게 휘는 것이 마치 한을 생각나게 했다.

역시 아들이라 그런가?

연주의 생각이 삼천포로 빠져가고 있었다.

그걸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진욱이 헛기침을 했다. 그제야 연주의 눈동자의 초점이 또렷해졌다.

“소송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까요.”

“네.”

“일단 보내 주신 서류는 잘 봤습니다. 꼼꼼하게 기록해 주셔서 잘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아, 사실 오늘 오실 분은 지하에 사시는 아주머니였어요.”

“박윤영 씨 말씀이신가요?”

“네.”

“그러시군요. 그나저나 어떤 일인지 자세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의뢰인의 경험이 포함된 직접적인 설명이 사건을 파악하는데 좀 더 도움이 돼서요.”

“아, 이걸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천천히 편안하게 말씀하세요.”

진욱의 친절한 목소리에 연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처음 집을 계약했던 일부터 한 달 전 집주인의 일방적인 통보, 얼마 전 통장으로 입금된 돈까지. 거기에 덧붙여 다른 세입자들의 피해까지 설명하는 연주의 목소리를 진욱은 가만 듣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끝이에요.”

연주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는 이미 한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진욱의 입은 열릴 줄을 몰랐다. 다만 뭔가를 참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기, 변호사님.”

“네. 말씀하세요.”

“그게 아니라…….”

진욱이 왜 그러냐는 듯 연주를 쳐다봤다. 연주는 진욱의 시선이 제게 닿자 얼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니,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잠깐 생각하느라 그랬습니다.”

연주가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잠시 침묵한 것은 화를 참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도 어이가 없어 연주의 이야기를 듣다가 헛웃음이 흘러나올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아니, 그런 파렴치한 집주인에게 행패를 당하고도 집을 나갈 생각을 하다니.

연주가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려 했다는 말에 진욱은 집주인을 같이 고소하자고 말해 준 여자에게 감사 인사라도 전하고 싶었다.

착한 사람에게 복이 온다, 라는 좋은 말도 있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변호하며 진욱이 느낀 것은 개중에 착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진욱은 조용히 이를 갈았다. 어떻게든 집주인에게 최대한의 처벌을 받게 할 생각이었다.

진욱은 제 앞에 앉아 있는 연주를 보며 입을 열었다.

“많이 힘드셨죠. 버티시느라.”

“…….”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부턴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저만 믿으세요.”

“…….”

“제가 확실하게……. 선생님?”

연주는 뜻밖의 말에 울컥했다. 제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은 모두 연주를 딱하게 바라봤다. 그게 오히려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 같아 애써 밝은 척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저로 인해 걱정하는 것이 연주로서는 힘들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반대로 다른 한쪽 구석엔 누가 자신을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부유하지 못한 집안 사정으로 돈을 벌기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빈손으로 서울로 상경했었다.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집도 없었다. 제일 처음 숙식이 제공되는 곳에서 일을 시작했었다. 처음 해 보는 식당 일에 손에 물기가 마를 날이 없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일을 하고 돈을 모았다. 모은 돈으로 시골집에 조금의 생활비를 보내고 남은 걸로 공부를 했다. 힘겹게 공부를 마친 연주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원장 선생님을 만나 취직을 하고 그때부터 열심히 일해 서울에 작지만 내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기까지 연주는 늘 혼자였다. 힘들었지만 곁에서 누구 하나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어린 나이부터 일하는 연주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껏 연주는 혼자 모든 일을 감내해 왔다.

그런데 버티느라 고생 많았다는 진욱의 말이 그동안 남들 앞에서 강한 척, 괜찮은 척했던 연주의 가슴에 와 닿았다.

갑작스럽게 눈물이 터져 버린 연주를 앞에 두고 진욱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연주에게 간간이 휴지를 건네주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연주의 눈물이 잦아들었다. 다 울고 나자 속에 있던 모든 것을 쏟아낸 듯 후련했지만 제 앞에 버티고 앉아 있는 진욱에 민망함을 느꼈다. 게다가 얼마나 뚫어지게 쳐다보는지 저도 모르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말았다.

“죄, 죄송해요.”

“아닙니다. 변호사 일을 하면 별별 일 다 겪게 되는데요.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래도…….”

“기분은 다 풀리셨습니까?”

“네, 덕분에.”

“기분 괜찮으시면 이제 일 이야기도 끝났고 식사하러 가시죠.”

“네, 이제 가야……. 네?”

“1층 로비에서 기다리세요. 이건 가져가셔서 박윤영 씨 드리시면 됩니다.”

당연히 이제 집에 가라는 이야기를 할 줄 안 연주는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경악했다. 하지만 진욱은 번복할 마음이 없는지 단호한 말투로 1층 로비에서 기다리라 말하곤 서류를 정리하기 바빴다. 연주는 먼저 사무실에서 빠져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잠깐, 내가 왜 이분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있는 거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던 연주가 곧 뭔가 이상함을 직감했다. 그냥 거절을 했으면 되는데 왜 자신이 진욱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못했는지.

원래 변호사랑 상담이 끝나면 식사도 하고 그러는 건가?

“둘이서 밥 먹으면 되게 어색할 것 같은데…….”

연주의 머릿속에 피어난 갖가지 생각들은 곧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알림음으로 인해 사라졌다.

“왜 이렇게 어둡지?”

연주가 회사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환했던 내부가 최소한의 불만 켜진 채 아무도 없었다. 연주는 놀란 마음에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0시 38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그러게요. 벌써 시간이 11시가 다 되어 가네요.”

“엄마야!”

갑자기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연주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텅 빈 로비에 연주의 목소리가 울렸다. 진욱은 시끄러울 법도 한데 별다른 찡그림도 없이 연주를 쳐다볼 뿐이었다.

연주는 괜히 저 혼자 오버한 것 같아 약간의 창피함을 느꼈다.

“시간이 좀 늦어서 웬만한 식당은 다 문을 닫았을 거예요.”

“그럼 그냥 가도…….”

“이 앞에 괜찮은 포장마차가 있는데 거기로 갑시다.”

“아, 저는 괜찮…….”

“배고프니까 일단 갑시다.”

연주는 지금이라도 집에 가고 싶었지만 앞서 걷는 진욱을 뒤따라 걸었다.

사실 진욱과 마주 앉아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얼굴에 철판을 깔 성격이 아니었다. 진욱을 알게 된 지 겨우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그의 앞에서 창피한 모습이란 모습은 다 보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진욱이 제 담당 원생의 학부모라는 사실이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부끄러울 지경인데 하물며 언제 마주쳐도 이상하지 않을 사이였다.

그녀는 진욱을 따라가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진욱이 이제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과연 이런 선생에게 내 자식을 맡겨도 좋을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아닐지 걱정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바로 앞이라고 하더니 정말 몇 분 걷지 않아 나온 포장마차는 언뜻 보기에도 사람이 많았다. 진욱은 아무렇지도 않게 포장마차의 비닐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적당한 자리를 골라 잡자 연주도 따라 앉았다.

“어머님, 여기 우동 두 그릇만 주세요.”

주문을 마친 진욱은 각자의 앞에 휴지를 깔고 위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올려 두었다. 물도 한 잔 따라 연주 앞에 놓아주었다.

얼마 보지 않았지만 진욱은 늘 연주에게 의외의 인물이었다.

처음 유치원에서 봤을 때 진욱은 학부모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외모의 소유자였지만 아이에게 너무나 다정한 아빠였다. 냉정한 성격일 것 같았는데도 제 사정을 듣고서 공감해 주고 위로해 줬다. 지금 제 앞에 높인 숟가락과 젓가락 또한.

하지만 예상외의 모습이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어딘가 이질적이기도 했다. 감정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해 연주는 그저 제 기분이 낯설게 느껴졌다.

연주의 생각은 진욱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면서 끝났다. 눈을 들어 올리자 진욱은 제 앞에 놓인 우동 그릇을 가리켰다. 언제 나왔는지 우동은 아주 먹음직스럽게 하얀 김을 뿜고 있었다.

“맛있게 드세요. 이래봬도 회사 근처에서 알아주는 맛집입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연주는 감사 인사와 함께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안 그래도 약속 시간에 맞춰 오느라 저녁도 굶고 왔었는데 방금 전 울기까지 해서 슬슬 배가 고프던 찰나였다. 연주는 면발을 집어 들어 입속에 넣었다.

“우와!”

연주는 우동을 한 입 먹고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진욱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지금까지 연주가 먹어 봤던 우동들은 잊혀질 정도로 맛있었다. 연주는 앞에 진욱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우동을 흡입했다.

진욱은 빙긋 웃고는 저 역시 우동을 먹기 시작했다.

“잘 먹었습니다.”

“다 드셨습니까?”

“네, 여기 진짜 맛있네요.”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국물까지 싹 비운 연주가 숟가락을 내려놓자 진욱이 씩 웃었다. 연주 역시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맛있는 밥을 먹었기에 기분이 좋은 듯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진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주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꺼냈다. 하지만 이미 계산을 마치고 포장마차를 나가는 진욱에 얼른 밖으로 나가 진욱에게 우동 값을 내밀었다.

“여기 제 우동 값…….”

“괜찮습니다.”

“아뇨, 그래도 너무 잘 먹었는데 당연히 돈을 내야…….”

“제가 먼저 밥 먹자고 말씀드린 거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럼 다음에는 제가…….”

아뿔싸. 연주는 순식간에 내뱉어진 말을 인지하고 얼른 입을 다물었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유연주!

연주는 당황해 얼른 제가 한 말을 수습하려 했다. 하지만 진욱이 다정한 미소와 함께 내뱉은 말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럼 다음에는 유연주 씨가 먼저 밥 먹자고 하시는 거죠? 연락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