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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한아, 약 먹어야지?”

“네에!”

집에 도착한 지 3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한은 제 방문을 열고 나왔다.

한을 재워 두고 밀린 일을 처리하던 진욱은 배고플 아이를 위해 저녁을 차렸다. 자고 일어나서 입맛이 없을 법도 한데 한은 차려진 밥을 양 볼이 빵빵해지도록 오물거렸다. 반대편에서 같이 밥을 먹던 진욱은 한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아이는 제 볼을 꼬집는 진욱에 코를 한번 찡긋거리고는 다시 오물거렸다.

밥을 다 먹은 아이는 제 밥그릇을 가져다 설거지통에 넣었고 식탁을 다 치운 진욱은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약을 먹이려 약봉지를 들고 거실로 향했다. 아이는 진욱의 손에 들린 약봉지에도 투정 없이 진욱의 앞에 앉았다. 그럼에도 약이 먹기 싫은 듯 눈썹이 아래로 축 처져 있는 것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아이의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진욱은 아이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

“한이, 약 먹기 싫어?”

“아니요오. 괜찮아요.”

“에이, 우리 한이 눈이 이렇게 내려가 있는데?”

진욱이 양손으로 한의 축 처진 눈썹을 문질렀다. 진욱의 장난에 아이가 꺄르르 웃었다. 진욱은 아이를 한쪽 무릎에 앉히곤 다른 손으로 약봉지를 뜯었다.

“우리 한이, 이거 먹어야 안 아픈 거 알지?”

“네에.”

“우리 아들 다 컸네? 아, 해.”

“아아.”

진욱을 따라 입을 크게 벌린 아이에 진욱이 수월하게 약을 먹였다.

“자, 꼴깍!”

진욱의 말에 따라 약을 꿀떡 삼킨 아이는 쓴지 얼굴을 찌푸렸다. 진욱은 얼른 아이의 입에 조그마한 초콜릿을 넣어 주었다. 아이는 갑자기 느껴지는 달콤함에 기분이 좋은지 진욱을 보고 환히 웃었다. 진욱은 아이를 옆에 앉히고 다 먹은 약봉지를 집어 들었다.

“한아, 초콜릿 다 먹으면 이 닦아야 해. 알지?”

“네!”

가만히 소파에 앉아 가지고 놀던 퍼즐을 다시 맞추는 한을 보다가 진욱이 부엌에 있는 휴지통에 약봉지를 버렸다.

식탁 의자에 놓인 한의 가방을 열어 보니 오늘 가져간 종이컵으로 만들었는지 가방엔 아침과 다른 모양의 알록달록한 종이컵과 원아 수첩, 연습장이 들어 있었다. 진욱은 어제와 같이 원아 수첩을 펼쳤다. 어제 내용에 이어 오늘 역시 한의 사진 한 장과 함께 가정으로 보내는 연주의 말이 쓰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분홍반입니다.

오늘은 종이컵으로 전화기를 만들어 전화 놀이를 했습니다. 한이 역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색종이를 이용해 예쁜 전화기를 만들었답니다. 오늘 한이가 아이들이 하원하고 난 뒤 교실에 있는 책장 정리를 도와주었습니다. 한이처럼 착한 아이가 있어 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많이 칭찬해 주세요!

내일은 원 아이들 모두 텃밭 가꾸기를 할 예정이니 원복을 입혀 보내 주시길 바랍니다.

내일은 한이 약도 같이 보내 주세요!




원아 수첩을 다 읽은 진욱이 저도 모르게 씩 웃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연주를 본 지 고작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진욱이 느낄 정도로 연주는 아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픈 그에게 자신의 것을 선뜻 내미는 배려가 있는 사람이었다.

원아 수첩을 다시 가방에 넣은 진욱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한편, 동네 초입에 위치한 부동산뿐 아니라 옆 동네에 있는 부동산까지 돌아보고 온 연주는 수중의 돈으로는 집은커녕 방 한 칸 구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이라는 것에 암담함을 느꼈다.



“뭐, 정 급하면 이 밑에 있는 고시원에 가 보슈.”



딱 봐도 돈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지 심드렁한 표정을 지은 채 지도나 뒤적이며 말하는 부동산 주인들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근처 고시원을 가 봤지만 헐렁한 문고리에 옆방 말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등 생각보다 너무 열악한 환경에 연주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아, 진짜…….”

연주는 계단을 오르면서 자꾸 울컥하는 마음에 입술을 꽉 물었다. 도대체 왜 이런 시련이 자신에게 닥친 것인지, 제가 무엇을 그리 잘못하며 살았는지. 이젠 하늘이 다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연주는 마저 계단을 올랐다. 무슨 일이 있냐는 듯 옥상은 고요했다. 연주는 조금이라도 빨리 쉬고 싶은 마음에 얼른 열쇠를 꺼냈다. 하지만 곧이어 울리는 목소리에 뒤를 돌았다.

“방은 알아보고 왔어?”

“아저씨!”

“이왕이면 이번 달 안으로 빼 줬으면 좋겠는데.”

“아저씨, 진짜 왜 그러세요. 제 사정 뻔히 다 아시면서…….”

“그래서 일부러 돈도 빨리 입금해 줬잖아. 이제 나도 줄 거 다 줬으니까 피차 힘 빼지 말고 얼른 방 구해. 그럼.”

“아저씨!”

딱 제 할 말만 하고서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려가는 주인에 연주는 감정이 북받쳐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뜨렸다. 연주는 쉼 없이 흐르는 눈물에 집으로 들어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문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한동안 옥상에선 연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 *



“어머, 유 선생님! 얼굴이 왜 이래?”

“아…….”

“그러게요.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제 처지가 안쓰러워 밤새 울었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던 연주는 별다른 말없이 그저 살짝 웃었다. 연주의 표정에 무언가를 눈치챘는지 박 선생이 다른 말로 주위를 환기시켰다. 연주는 모두의 시선이 제게서 멀어지자 책을 집어 들고 교무실을 빠져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그렇게 많이 부었나?

화장실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쳐다보던 연주는 제 눈을 손등으로 꾹꾹 누르다 손목에 찬 시계를 보고 얼른 화장실에서 빠져나왔다. 벌써 아이들의 등원 시간이었다.

“안녕하세요오!”

“선생니임!”

“안녕하세요!”

아이들이 하나둘씩 유치원 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연주는 아이들에게 한 명씩 친절히 인사했다. 그러다 문득 보이지 않는 한에 연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오늘 역시 아버님이 데려다준다고 말씀하셨는데.

평소보다도 훨씬 더 늦은 등원이었다.

혹시 많이 아픈 건가? 갑자기 어젯밤에 열이 올랐다든지. 아니면 혹시 아버님이 아프신…….

연주는 어제 들은 말이 번뜩 생각났다.



“원래 위염이 좀 있어서…….”



어제 보니 만성 같던데. 혹시 아버님이 쓰러지신 건가? 집에 할머님도 안 계시다고 들었는데!

연주의 머릿속에 쓰러진 아빠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울고 있을 한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이럴 때가 아니야!

연주는 단지 상상일 뿐임에도 얼른 아이의 집에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저 멀리서 뛰어오는 아이를 보곤 연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근데 잠깐…….

“선생니임!”

“어어, 한이 안녕?”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할머님께서 어떻게…….”

천진난만한 얼굴로 다가와 인사를 하는 아이 옆에는 아버님이 아닌 할머님이 계셨다. 연주는 당황한 얼굴로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윤 여사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갑자기 친구 한 명이 급한 일이 있다고 해서 어제 새벽에 같이 올라왔어요.”

“아아, 네. 그럼 아버님은…….”

“워낙 바쁜 녀석인지라 아마 지금쯤 회사에 있을 거예요.”

“아, 네.”

“아참, 우리 아들한테 들었어요. 어제 신세를 졌다고 하던데.”

“신세요?”

“신세 진 게 있다고 나중에 유 선생님한테 선물 하나 사다 주라고 하던데.”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내가 나중에 꼭 선물할게요. 우리 아들이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마음에 걸렸나 봐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럼 오늘도 수고하세요.”

연주는 왠지 모를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지만 이내 웃는 얼굴로 윤 여사에게 인사한 후 한을 데리고 유치원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들어오면서도 윤 여사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딱히 무엇을 바라서 한 행동이 아니었다. 진욱은 그것을 갚아야 할 빚이나 신세라고 생각하는 것을 알게 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저는 단지 챙겨 줘서 고맙다는 말만 들어도……. 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연주는 갑자기 엉뚱한 쪽으로 흐르는 생각에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교실을 향했다.

그날, 근무하는 내내 연주는 표정이 좋지 못했다. 아이들 앞이기에 내내 웃는 얼굴을 해 보였지만 그조차 힘든 감정이 느껴질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연주의 기색을 느꼈는지 아이들과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올라온 연주에게 원장이 말했다.

“유 선생님, 오늘따라 컨디션이 별로야?”

“죄송합니다.”

원장의 물음에 연주는 두말없이 죄송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자신이 제일 잘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거처할 곳이 없어지는 마당에 솔직한 심정으론 수업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집이나 알아보러 다니고 싶었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도 여전히 표정이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연주에 원장이 의아하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다른 연주에게서 시선을 돌린 원장은 그녀의 옆자리 박 선생에게 조용히 나오라고 손짓했다. 박 선생은 연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원장을 따라 교무실을 나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아, 그게…….”

유치원에서 근무하는 몇 년 동안 한 번도 밝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연주였다.

처음 연주를 만난 건, 연주가 일할 수 있게 도와 달라며 저를 찾아왔을 때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연주는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했다. 여자라서 공사장 같은 곳은 가지 못했지만 패스트푸드점부터 식당 일까지 하며 돈을 모아 공부를 마쳤다고 했다.

원장은 아직도 연주를 보면 그때가 생각나곤 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원장은 가끔 연주에게 반찬도 가져다주며 그녀를 챙겨 왔다.

그런데 늘 밝던 연주가 요 근래 힘든 기색을 비췄다. 특히 오늘따라 유독 더 그랬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사실은 연주 씨가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어요. 글쎄 집주인이 마음대로 방을 빼라고 했대요.”

“그게 정말이야?”

“네, 어제 연주 씨가 말해 줬어요. 보니까 아까 쉬는 시간에도 부동산에 전화하고 있더라고요.”

“세상에!”

원장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신의 무심함을 안타까워했다.

“하여튼 연주 씨가 진짜 안됐어요. 돈도 다 돌려받은 것도 아니고, 당장 유치원 방학도 아닌데……. 혹시 원장님 댁 빈 방 없으세요?”

“알잖아. 우리 집…….”

“에휴, 교무실 선생님들이 그때 같이 얘기했는데 다들 사정이 있으니까……. 진짜 그 주인집 너무한 거 아니에요? 주인이면 다인 가.”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대?”

“그러게 말이에요. 연주 씨만 불쌍하죠. 보니까 저희들한테도 신세 지기 미안한지 딱히 말을 안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원장님도 모른 척해 주세요.”

“알겠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지 박 선생은 연신 주인집에 대한 원망을 하고 있었다. 원장 역시 겉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주인집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그나저나 큰일이네. 당장 지낼 곳이나 찾았는지…….

원장의 입에서도 걱정의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모두 하원하고 연주는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얼른 짐을 챙겨 유치원을 빠져나왔다. 한시라도 지체할 수 없었다. 연주는 유치원 근처에 있는 부동산부터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들어가는 곳마다 원하는 대답을 듣기는 어려웠다.



“안 그래도 전세난인데, 그 돈 갖고는 방 못 구해요.”

“차라리 고시원에 가는 게 어떠세요?”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안 그래도 손님 없어 죽겠고만. 썩 나가쇼!”




말하는 어투나 표현은 달랐지만 다들 답은 같았다. 연주가 가진 돈으로는 방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다섯 번째 부동산에서 퇴짜를 맞고 나온 연주는 이미 어둑해진 하늘에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하루가 저물었다. 그건 집에서 나와야 할 날도 그만큼 다가왔다는 걸 의미했다.

연주는 빠른 걸음으로 정류장에 도착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선잠이 들었던 연주는 이윽고 들리는 안내 음성에 천근만근인 몸을 간신히 일으켜 버스에서 내렸다.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다리가 퉁퉁 부어 있었다. 그 상태로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그런지 다리가 더욱 아파 왔다. 더 아파지기 전에 얼른 집에 들어가려 부지런히 걷던 연주는 저의 이름을 부르는 듯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연주네 집 지하에 살고 있는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어? 아주머니, 오랜만이에요.”

한동안 뭐가 그리 바빴는지 제대로 얼굴을 보지 못한 두 사람이었다.

“인사는 나중에 하고, 지금 시간 괜찮아?”

“아, 네. 그럼요.”

“그럼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하러 가자고.”

“네? 저, 저기…….”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연주는 손에 이끌려 집에서 조금 떨어진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 안은 조용한 골목과는 달리 사람들이 많았다. 개중에는 연주가 아는 얼굴들도 있었다. 아주머니는 연주를 빈자리에 앉혔다.

“도대체 무슨…….”

“연주 씨, 연주 씨도 쫓겨나게 생겼다며?”

“네. 어떻게 아셨어요?”

“그 문제 때문에 이야기하자고 한 거야.”

한껏 비장한 표정을 한 아주머니가 다시 입을 열며 말을 이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 대부분 알지?”

“네. 여기는 1층 김 씨 아저씨, 저쪽에 계신 분은 3층 아주머니시잖아요.”

“사실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부당하게 쫓겨날 사람들이야.”

“그게 무슨 소리…….”

“여기 1층부터 연주 씨네 옥탑까지 시기는 다르지만 모두 주인한테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나가라는 소리를 들었어. 여기 1층 김 씨 아저씨네 아주머니는 하도 시달려서 스트레스로 병원에 입원까지 했대. 게다가 다들 쫓겨나는 판국에 돈도 제대로 못 돌려받았어. 나도 마찬가지고.”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그래서 우리가 주인을 고소할까 해.”

“고, 고소요?”

연주는 놀라 되물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소나 소송이나 그런 법적인 일에는 근처도 가지 않았다. 갑자기 엄청난 일에 가담하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집주인의 행동에 대해 연주 역시 참담함을 느꼈다. 하지만 연주는 고소따위의 제재는 생각지도 못하고 그저 순응하고만 있었다.

“연주 씨는 어떻게 할래. 우리는 모두 고소하기로 뜻을 모았어. 연주 씨한테 강요하지 않아. 싫으면 안 해도 돼. 오늘 연주 씨를 데려온 건 이러한 일이 진행이 되고 있고, 혹시 연주 씨도 집주인한테 사과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같이 했으면 해서 시간 좀 내 달라고 한 거야.”

“저는…….”

연주는 살짝 대답을 망설였다. 아주머니는 편안하게 이야기하라며 언제나처럼 웃어 주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무섭지만 그래도 이 사람들과 뜻을 함께하고 싶었다. 자신 역시 피해를 입었지만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사촌들이 피해를 입고 쫓겨날 처지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되레 뻔뻔스럽게 연주까지 집에서 내쫓으려는 주인의 태도가 부당하다고 생각됐다.

연주는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저도 같이 할게요.”

“정말?”

“네. 같이 해요.”

“근데 한 가지 명심할 건 우리는 보상이 목적이 아니야. 그건 알지?”

“그럼요. 저도 아저씨한테 돈보다는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어요.”

“그래. 그럼 연주 씨도 같이 고소장에 이름 올릴게. 진짜 고마워.”

“아니에요. 저 혼자 좋자고 하는 것도 아닌데요, 뭐.”

“그래. 그러면 고소 진행 상황은 그때그때 연락해서 알려 줄게.”

“네. 그런데 힘드시지 않겠어요?”

“여기 모두들 서로 도와서 하는 건데 힘들게 뭐가 있어. 자, 그럼 다들 이만 일어납시다. 오늘 모두들 수고하셨어요.”

“네, 수고하셨어요.”

“오늘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여자의 말을 끝으로 모두들 각자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연주 역시 아주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옥탑으로 올라갔다. 오늘따라 옥탑에서 보는 하늘이 유난히 더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