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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루 1권10화

第四章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1)





커다란 모닥불을 중심으로 거지촌의 모든 사람들이 빙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눠 먹고 있었다.

배가 부르면 기분이 좋아지는 법, 모두의 표정은 한껏 밝아 있었다.

조용히 술을 마시던 천태성이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며 말문을 열었다.

“황보현중.”

“네.”

“오늘부터 할머니를 낙화루로 모셔라.”

고개를 번쩍 치켜든 황보현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요? 그래도 되는 거죠?”

낙화루의 이층은 손님 객실과 더불어 직원들의 방도 구비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황보현중은 그 말을 들었을 때부터 진작부터 할머니를 모시고 오고 싶었지만 말하기를 주저하였다.

“가라.”

“네!”

황보현중은 벌떡 일어나더니 할머니의 움막 쪽으로 뛰어갔다.

천태성은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슬그머니 일어서서 낙화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지금 천태성이 전음을 날리고 있는 상대는 좀 전에 할머니를 보살피던 학자풍의 준수한 노인이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소교주님 그것보다 봉공들이 보고 싶어 하니 교에도 자주 들러 주십시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디 살펴 가십시오.”

천태성이 전서구를 통해 마교에서 초빙한 인물은 십대 봉공 중 한 명인 독천존(毒天尊)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바로는 그는 한 줌의 독으로 마을 하나를 몰살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가 있으면 바로 독을 살포할 정도로 악독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는 소문과 다르게 매우 점잖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독(毒)을 다루다 보니 자연히 의술에도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된 독천존은 마교 최고의 명의였다.



천태성은 어제 황보현중을 제외한 낙화루의 다른 식구들과 회의를 거쳐 서호(西湖) 끝자락에 위치한 거지촌을 도와주기로 하고 보름에 한번씩 찾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기로 하였다.

회의를 마치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천태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마디했다.

“이번 달 녹(월급)은 없다. 전부 불만 없지?”

계획되지 않는 거지촌의 구제 사건으로 인해 낙화루의 예산이 적자가 나 버렸다. 그렇게 낙화루가 개업한 첫 달은 많은 손님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적자를 기록하였다.

품삯을 받지 못한다는 소리를 모두 들었으나 어느 누구 하나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그 날 이후 황보현중은 더욱더 열심히 일을 했고 천태성과 다른 식구들에 대한 신뢰도 쌓여갔다.

‘후후후. 저것은 진정 속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이구나.’

황보현중이 주문을 받을 때 짓는 미소는 접대용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정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천태성은 단박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돌리던 천태성은 한 여자 손님을 보고는 시선을 멈추었다.

북궁설에게 전염이라도 된 것인지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여인.

그녀는 젓가락을 천천히 내려놓더니 한 손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올망졸망한 이목구비의 평범하게 생긴 외모였지만 행동 하나 하나가 다소곳한 게 참으로 여성스러운 여인이었다.

‘무슨 사정이길래 저리도 서글프게 음식을 먹는단 말인가.’

여인은 아무 소리도 안 내고 그냥 탁자 위로 눈물만 뚝뚝 떨굴 뿐이었다.

몇 점 먹지도 않고 여인은 동전을 탁자 위에 놓아둔 채,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밖을 향해 걸음을 옮기다가 입구에서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는 뭔가 결심한 듯 입술을 꼭 깨물었다.

‘흐음.’

그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천태성은 따라가기로 결심하고 음식을 나르던 노득출을 불러 자기 대신하게 하였다.



여인은 뭔가 생각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는 천천히 거리를 걸어갔다.

그렇게 걸은 지 반 시진.

서호가 보이는 작은 절벽 꼭대기에 오른 여인은 아래를 계속 내려다보았다.

이 절벽은 그리 높지 않고 아래에 물이 있다고 하나 떨어지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높이였다.

천태성은 여인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자결하려나?’



한편 절벽 위의 여인은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다 뭔가를 썼다.







허공을 한 번 움켜잡더니 다시 눈물을 흘리는 그녀.

이내 그녀는 그대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역시!’

아래쪽에서 지켜보던 천태성은 여인이 몸을 던지자 재빨리 신법을 전개했는데 허공에 몸을 수직으로 띄워 맹렬히 회전 시키며 떨어지는 여인의 몸을 낚아챘다.

터억.

몸이 물 속에 떨어지기 직전, 천태성은 수면을 발로 차며 한 번 더 도약하더니 근처 바위 위로 무사히 내려앉았다.

바닥에 여인을 살며시 내려놓은 천태성은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다.

여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떠졌다.

그녀의 귓전에 울리는 남정네의 목소리.

“정신이 드시오?”

‘이 남자가 구해 줬단 말인가.’

분명 죽으려고 호수에 몸을 던졌건만 허공에서 자신을 누군가 낚아챘다.

검은색 단삼에 부리부리한 눈매가 인상적인 미남자, 이 남자는 분명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여인은 천태성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저를 구했나요. 죽게 내버려 두지.’

원래 낮선 사람과는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의 여인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여인을 따라 천태성도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을 걸었을까 여인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말문을 열었다.

“사랑을 믿으세요?”

‘갑자기 이 무슨 소리인가.’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한 천태성이었지만 여인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다 담담히 말을 하였다.

“연인간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오?”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여인.

“난 연인 간의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소. 하지만 있다고 믿소.”

천태성의 말을 듣더니 여인은 홱 돌아섰다.

“저는, 저는…….”

또다시 눈물을 주루룩 흘리는 여인.

털썩.

여인은 말을 다 잊지 못하고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재빨리 여인의 몸을 받아든 천태성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일이 이 여인을 이토록 아프게 한단 말인가.’

여인을 데리고 낙화루로 온 천태성은 재빨리 의원을 불러 진맥케 하였다.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의원은 여인의 손목을 잡고 잠시 있더니 말문을 열었다.

“태중(胎中)이라 기가 많이 허약해진 것입니다. 푹 쉬고 좋은 음식을 먹이면 금방 나을 것입니다.”

천태성은 의원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태중이라 함은 그녀가 아이를 가졌단 말이오?”

“모르고 있었소?”

의원의 얼굴에는 아비된 입장으로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이 쓰여져 있었다.

눈치 빠른 천태성은 살짝 미소 지으며 손을 저었다.

“아, 오해 마십시오. 저는 아닙니다.”

“흠흠. 아무튼 푹 쉬고 몸보신 하면 금방 기력을 회복 할 것이오. 약방으로 사람을 보내면 내 약을 지어 주리다.”

“이렇게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뭘 돈 받고 하는 일인데.”

“그럼 살펴 가십시오.”

“수고하시게.”

천태성은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흐음. 아이를 가진 상황인데 목숨을 끊으려 했단 말인가?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천태성은 여인을 방에 둔 채 일을 보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다.

생전 처음 보는 남이었건만 그냥 넘어가기에는 많은 것이 걸리고 해서 천태성은 그녀가 깨어나면 사정을 들어보기로 하였다.

천태성이 아래로 내려오자 황보현중이 다가오더니 여인에 대해 물었다.

“아까 데리고 오신 분은 누구입니까?”

“모르는 사람이다. 것보다 너 약방에 가서 약 좀 지어와라.”

“어떤 약이요?”

“낙화루에서 왔다고 하면 지어 주실 게다.”

“네.”

황보현중은 여인이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갸웃하며 밖으로 나갔다.

좀 전의 일 때문인지 천태성은 여인의 말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사랑을 믿으세요.”



오늘은 웬일인지 손님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천태성은 탁자에 앉아서 헤벌쭉 웃고 있는 유장팔에게 시선을 주었다.

유장팔은 옆 탁자의 식신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식신 소녀는 먹을 때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저런 것도 사랑인가?’

경험해 보고 싶지만 사랑 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천태성이었다.



그날 저녁, 여인이 깨어났는데 때마침 옆에 천태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인은 주위를 둘러보며 두리번거렸다.

“여긴 어디죠?”

“이곳은 낙화루요.”

“그렇군요.”

여인은 벽을 바라본 채 천태성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천태성은 여인을 그저 지그시 바라보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둘은 잠시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내가 먼저 물어봐야 하는가? 가르쳐 줄 것 같지 않은데.’

천태성은 여인이 먼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말이 없자 천태성이 말문을 열었다.

“당신, 아이를 가진 사실을 알고 있소?”

“…….”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알고 있으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소? 그건 너무한 거 아니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신 뱃속의 아이는 아무 죄도 없는데.”

“흑흑흑.”

여인은 침상에서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천태성은 여인이 그렇게 울어도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당신은 무고한 사람을 죽일 뻔 했다 것을 알아두시오.”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울기만 하는 여인이 보기 싫었는지 천태성은 등을 돌렸다.

“흑흑흑.”

천태성은 성큼성큼 걸어서 방을 나가려고 하였다.

그때 갑자기 여인이 붙잡듯이 말문을 열었다.

“사랑을 믿는다고 하셨죠?”

“…….”

그리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여인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저는 가난한 농민의 딸이었답니다. 그리고 이 아이의 아버지는 몰락한 학자 집안의 아들이었죠. 저는 그 집안에서 하녀로 일하다가 그이를 만났답니다.”

여인은 그때가 떠오르는지 옅은 미소를 얼굴에 그렸다.

“저희 둘은 신분은 달랐지만 서로 사랑했죠. 밤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나면서 사랑을 키워 갔죠. 그러다가 그이가 과거를 보러 가게 되었고 전날 밤 그이는 과거를 본 후 돌아와서 저와 결혼하겠노라고 약속을 하였죠. 그런데…….”

여인은 처음 그대로의 우울한 얼굴로 돌아왔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군.’

“그이가 과거에서 장원을 차지하고 나라의 관직을 받은 후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당연히 집안은 온통 잔치 분위기였답니다. 그이의 아버지는 무시받던 지난 시절을 털어 버리게 됐다며 좋아하셨죠. 저도 무척이나 좋아했답니다. 그런데 그이가 저를 데리고 부모님께 승낙을 구했을 때 그이의 부모님들은 등을 돌렸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라며 결사반대를 하셨죠. 그리고…….”

여인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그날 이후 저는 그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답니다. 그이는 저를 사랑했지만 부모님을 거역할 수가 없었는지 쫓겨나는 저를 그냥 보고만 있었습니다. 저는 가슴 아팠죠. 아니, 단호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그를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쫓겨난 후 제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알리러 그 집을 다시 방문했을 때 그이의 옆에는 다른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답고 귀한 집안의 여식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이를 만나지도 그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이는 그 아름다운 여인과 결국 혼인을 하게 되었죠.”

‘조강지처를 버리다니.’

천태성은 속에서 뭔가 울분 같은 게 끓어올랐다.

여인은 시선을 벽에 둔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고 그이를 만나려고 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했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사람들이 저희 집을 찾아왔답니다. 그 사람들은 그이와 혼인한 여인의 집안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돈을 주며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화가 났죠. 그런데 저는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저의 아버지가 큰 병에 걸리셔서 약을 구하려면 돈이 필요했답니다. 그래서 저는 자존심을 구기고 돈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가면서 저를 보며 웃는 표정이 저의 가슴을 난도질했습니다. 항상 그 장면이 떠오르고 저는 점점 무너져 갔습니다. 그러다 결국 이렇게…….”

여인은 말을 끝낸 후 한숨을 쉬었다.

“후우.”

‘어떤 사내자식인지 모르지만 용단이 없군.’

만일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천태성은 어떠하였을까? 아마 온 세상이 그를 막으려 할지라도 막지 못할 것이다.

천태성은 차분한 목소리로 충고하면서 방문을 나섰다.

“그래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되는 것이오.”

그리고는 서호 끝자락에 위치한 거지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상사 웃는 날이 적다고 하지만 너무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