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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루 1권 4화

第一章 주방의 황태자(4)





투욱 투욱.

주동동은 면을 뽑기 위해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었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밀가루 덩어리를 다루는 주동동의 손은 일정하지만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천태성, 그는 팔짱을 낀 채 주동동만 바라보고 있었다.

‘반죽은 물의 섞임이 제일 중요하지. 그 다음은 이른바 손맛이라는데 그것까진 잘 모르겠고.’

천태성은 성격상 알고 싶은 것은 꼭 알아야 하는 성미이기 때문에 음식 또한 어떻게 만들었는지 꽤나 알고 있었다.

교(敎)에 있던 시절 생소한 음식이 나오면 꼭 만든 숙수한테 물어보곤 하였다. 하지만 방법만을 들었지 직접 만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천태성은 은근히 게을러서 만들기 귀찮아 했다.

주동동은 밀가루 반죽을 다했는지 툭툭 치면서 면을 뽑기 시작했다.

투욱 투욱.

그리고는 한 곡조 뽑는데.



宮門步念之

궁문을 나와 생각하노니.

今日不作樂

오늘을 즐기지 못하면

?待何時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夫爲樂

무릇 즐거움을 누리려면

爲樂?狂時

마땅히 미쳐야 할지어다.



밀가루 반죽하는 소리를 장단 삼아 한 곡조를 뽑아내는 주동동의 목소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미소 짓게 만들었다.

지금 주동동이 부르는 노래는 즉흥적으로 부른 것이기에 출처는 ‘자작’이었다. 한데 주동동의 성정에 반해 가사가 꽤나 파격적이었다.

노래를 들은 천태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좋은 목소리구나. 그런데 궁문이라, 황궁(皇宮)사람인가…….’

천태성은 면을 뽑고 있는 주동동의 모습을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고생 한 번 안 한 듯한 곱디고운 피부와 손, 그리고 왠지 기품이 느껴지는 외모, 복장으로 아무리 가렸다고는 하지만 절대 일반 평민은 아니야. 황족인 게 분명해…….’

주동동이 황족이라고 자체 판단한 천태성은 썩소를 그렸다.

‘이 녀석 진짜 재밌는 놈인데. 좋아, 나도 평범한 건 싫어한다구.’

천태성은 자신이 개업하게 될 객잔의 숙수로 주동동을 앉히는데 거의 구 부 능선을 넘은 상태였다.

‘면의 굵기가 적당하군, 흐음.’

면의 굵기를 바탕으로 육수의 특징을 대략 유추할 수 있는데 면이 굵으면 아주 진한 육수가, 그 반대로 가늘다면 은은하거나 옅은 맛의 육수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나 주동동이 뽑은 면발의 굵기는 일반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평범한 굵기였다.

독특한 것을 원했던 천태성은 약간 아쉬운 감이 들었다.

주동동은 면을 뽑고 있는 요리사에게 다가가더니 물었다.

“채소는 어디 있죠?”

요리사는 굳은 인상으로 대답은 하지 않고 옆에 있는 보조에게 턱짓을 하였다. 그러자 보조는 알았다는 듯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보조가 안내한 곳은 역시나 식재료 창고였는데 한쪽에 채소가 쌓여 있었으며 다듬은 흔적 때문인지 채소 조각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주동동은 채소 더미로 가까이 걸어가더니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이유인 즉, 채소가 종류별로 나누어져 있지 않았고 마구 섞여 있던 것이다. 그것도 사십대 아줌마 뱃살처럼 전부 축 늘어진 게 대다수였다.

주동동은 이에 굴하지 않고 개중에 그래도 괜찮은 것을 찾아 뒤적거렸다. 그리고는 찾은 채소를 들고는 주방으로 돌아온 후 물 몇 바가지를 푸더니 가져온 채소를 말끔히 씻었다.

축 늘어진 채소는 씻어도 늘어진 건 변하지 않았는데 물기라도 머금고 있으니 그나마 봐줄 만했다.

그것을 본 천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채소의 특성상 객잔 뒤 텃밭을 가꾸지 않는 이상 저렇게 될 수밖에…….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주동동은 채소를 도마 위에 올리더니 칼을 스윽 빼들었다.

이화접목까지 쓸 수 있는 주동동의 칼 솜씨는 어떠할까 내심 기대하는 천태성, 그런데 주동동의 한번 칼질에 그의 기대감은 와르르 무너졌다.

탁탁탁.

주동동이 그저 평범하게 천천히 칼질하였기에 기대한 천태성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우우우, 예측할 수 없는 놈이군.’

분명 주동동의 무위는 절정고수 반열이었다. 때문에 칼 쓰는 솜씨 또한 보통이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주동동은 천천히 툭툭 썰었다.

천태성은 괜히 한 방 먹은 느낌이었다.

‘칫.’

채소를 다 썬 주동동은 기름 솥이 있는 곳으로 채소를 들고 갔다.

“보자, 기름은 어디 있지?”

기름은 적당한 크기의 그릇에 담겨 가까운 곳에 놓여져 있었는데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니 파 기름이었다.

“파 기름이네. 저기요! 다른 기름 없어요?”

요리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주동동이 물어보자 요리사는 대뜸.

“없어!”

“췌!”

주동동은 아쉽지만 옆에 놓인 파 기름으로 채소를 볶기로 하고 불을 붙인 다음 기름을 부었다. 그런 후 채소를 넣고 솥을 들고 볶으면서 또 한 곡조 뽑기 시작했다.



煮籌燃籌寄

파를 삶는데 파를 때니

籌在釜中泣

솥 안에 있는 파가 눈물을 흘리네.

本是同根生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相煎何太急

어찌 그리도 세차게 삶아대는가.



―조식―



노래를 듣고 있던 천태성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아하하하!”

‘사람을 웃길 줄 아는 재주도 있다? 저 녀석 못하는 게 뭐지.’

노래도 잘해 무공도 잘해 거기다 얼굴도 미남에다가 요리까지, 마지막으로 황족이라는 신분. 다른 사람이라면 신은 불공평하다라고 말할 수 있으나 천태성은 그러지 않았다.

‘갖고 싶다!’

이 말을 젊은 처자가 들었다면 어마나 왜그러셔요 하며 한 대 툭 치고 얼굴을 붉혔겠건만 안타깝게도 주동동은 남자였고 천태성은 속으로만 생각한 것이었다.

채소를 기름에 살짝 데친 후 접시에 담은 주동동은 육수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는 두껑을 열고 코를 벌렁거렸다.

“킁킁. 흠, 이건 돼지 육수. 킁킁, 이건 닭고기 육수. 킁킁, 흠, 이건 뭐지?”

세 번째 솥에 담긴 국물은 고기 육수 같긴 한데 좀 특이한 것이라 생각된 주동동은 국자로 떠서 맛을 보았다.

‘이건 언뜻 닭고기 같기도 한데.’

주동동은 생전 처음 맛보는 국물인지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리사에게 물어보았다.

“저기 아저씨, 이 육수 뭐예요?”

주동동의 말에 고개를 돌린 요리사는 눈을 크게 뜨더니 성큼성큼 걸어와서는 주동동의 손에 들린 뚜껑을 빼앗아 닫아 버렸다.

쾅!

요리사의 갑작스런 행동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주동동의 얼빵한 표정.

“왜?”

“이건 우리 객잔의 비밀 육수다! 알려줄 수 없어!”

주동동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것이 맛이 좋지도 않은 객잔 주방에서 비밀 육수라고 생색내며 감출려고 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에이 그러지 말고 가르쳐 줘요.”

“안 돼!”

딱 잘라 거절한 요리사는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천태성은 슬며시 주동동에게 다가가서는 국자에 있는 국물의 맛을 보았다.

“어디…….”

천태성은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눈을 반짝였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주동동이 천태성에게 물었다.

“뭔지 알아요?”

그 말에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천태성.

‘개구리.’

요리사가 비밀 육수라며 감추려고 한 것은 개구리를 삶아 우려낸 육수였던 것이다.

개울이나 늪지대에 사는 큰 몸집의 개구리만 선별해 잡아서 내장을 제거한 후 끓는 물에 푹 삶으면 기름기 없이 담백한 육수가 우러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주동동은 황궁 출신인지라 개구리 요리는 절대 맛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알 턱이 없지. 후후후.’

주동동은 모르는데 자기는 알고 있다는 사실이 뭔가 뿌듯한 듯 천태성은 우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뭔데요?”

주동동이 물었으나 천태성은 고개를 저으며 가르쳐 주지 않았다.

“에이, 그냥 안 쓰고 말래.”

주동동은 이 생소한 육수 맛이 좋았으나 뭔지 모르기에 쓰지 않기로 했다.

‘저렇게 좋은 육수를 가지고도 그렇게 맛없는 요리를 만들다니 대단하네.’

면을 물에 삶은 주동동은 차가운 물로 헹군 후 그릇에 담고 볶은 채소를 면 위에 얹은 후 육수가 있는 곳으로 들고 와서는 닭고기 육수와 돼지고기 육수를 섞어 소면을 완성했다.

“자아 완성!”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주동동의 소면은 한마디로 말해 평범했다.

요리사도 육수를 담고 있었는데 그는 세 가지의 육수를 모두 사용하였다. 그런데 요리사가 만든 소면은 면의 굵기도 모양새도 주동동의 것과 비교해 많이 달랐다.

삶은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 고명으로 사용하였고 면발이 얇았다. 무엇보다 채소를 꽃잎 모양으로 썰어 겉보기에 상당히 화려해 보였다.

‘신경 좀 썼군.’

요리사의 표정은 득의만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동동의 소면은 아무런 특징도 없이 투박하고 평범하였기에 맛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벌써 이겼다는 듯 요리사 일당은 우월한 썩소를 그리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서 있던 천태성은 한 손으로 주방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아 결판을 내볼까요?”

주동동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요리사는 낄낄대며 주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뒤를 따르는 천태성은 이미 승부는 뒷전이었다.

‘저 소면이 나를 흡족하게 만든다면 넌 내 거다.’

어렸을 적부터 소유욕이 남달랐던 천태성.

그의 눈빛은 가지고 싶다는 욕망의 불길을 뿜어대고 있었다.

“나왔다!”

“오오오오!”

“꺄악!”

두 사람이 그저 소면 한 그릇 들고 나왔을 뿐인데 사람들은 마치 산해진미라도 기다린 듯한 표정이었다.

주동동과 요리사는 탁자에 서로의 소면을 놓고 작은 그릇 다섯 개에 나누어 소면을 담고 천태성을 바라보았다.

“훗!”

두 사람의 시선을 받은 천태성은 뒷짐을 진 채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그윽한 눈빛으로 좌중을 한번 훑어보았다.

한 번만 더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듯이 방긋방긋 미소짓는 처자들, 괜스레 얼굴 붉히며 고개 돌리는 처자들. 하나 남자들은 영 반응이 없었다.

“여기 두 사람이 소면으로 대결을 벌이고자 합니다. 그러니 네 분만 나와주세요.”

“저요.”

“나도 하겠소.”

사람들은 무료했던지 서로 심사에 참가하겠다고 나섰다.

그것을 본 천태성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양손을 올리며 좌중을 막아섰다.

“아, 너무 많아서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시간 관계상 임의로 뽑도록 하겠습니다.”

천태성은 요리사와 동동에게 시선을 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의 없으십니까?”

“없어요.”

끄덕.

좌중에게 고개를 돌린 천태성은 갑자기 인상을 날카롭게 돌변 시켰다. 그와 함께 객잔의 분위기 또한 급변했다.

파앗.

“헛!”

“허억!”

기가 약한 대부분의 처자들은 주저앉았고 남자들도 놀란 표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훗.”

천태성이 살짝 웃자.

“후아.”

“후우.”

삽시간에 객잔의 긴장이 확 하고 풀려 버렸다.

그런 손님들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태성은 실실 웃으며 걸어 나갔다.

“저기 계시는 미인 한 분.”

아까부터 이쪽은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음식을 먹는 여인 하나가 있었는데 천태성은 그 여인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분…….”

그렇게 해서 천태성은 판결을 내릴 네 명을 뽑았다. 한데 천태성은 심사단을 뽑는다 하고 좌중들에게 왜 투기를 날렸는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자리는 접니다.”

천태성은 주동동이 만든 소면을 꼭 먹어보고 싶었기에 자기 자리는 한 리 비워 놓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