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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줘


1화
프롤로그


평소와는 달리 간판 불이 일찌감치 꺼진 수제 햄버거 가게.
CLOSE 팻말을 걸어 둔 가게 안은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리저리 널브러진 테이블, 의자, 간간이 바닥에 나뒹구는 프렌치프라이 조각. 그리고 그 가운데, 이 근방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학생 두 명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입 주위에는 벌써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두 남학생은 쥔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
그 사이에서 간신히 화를 억누르며 서 있는 직원이 없었다면 다시 달려들어 서로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그들을 말리고 있던 직원, 세경은 꿈틀거리는 안면을 간신히 억누르며 입술을 끌어올렸다.
“아주 가게 꼴 잘 돌아간다. 야, 이것들아. 싸우려면 너네 놀이터 가서 싸우지, 왜 남의 영업하는 데 와서 싸우고 지랄이야. 지랄이. 어? 이것들이.”
종업원 입에서 흘러나오는 곱지 못한 말에 죽일 듯이 서로를 노려보기만 하던 학생 중 하나가 세경에게로 찌릿 눈총을 주었다. 그리고 그의 가슴팍에 ‘이세경’이라고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보고선 고개를 들어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잔뜩 인상이 나가 있는 남자는 걸레를 있는 대로 구겨 말아 쥔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세경의 짜증 가득 담긴 경고에도 아이들은 다시 맞붙어 싸울 듯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세경은 후, 한숨을 내쉬며 걸레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러곤 유월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야, 당장 이것들 112에 전화해서 신고 처넣어.”
“그만해. 세경 오빠.”
“그만하긴 뭘 그만해. 저것들 때문에 손님들 다 도망가고 오늘 오후 장사도 공쳤는데. 가게를 아주 다 부수려고 작정을 했지, 이것들이. 야, 임유월 빨리 전화 넣어.”
남자의 재촉에 유월이 한숨을 푹 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기름기가 눅눅하게 묻은 손을 톡톡 털어 내며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남자아이들을 향해 다가갔다.
“아직 학생들인데 무슨 경찰이야. 그냥 잘 타일러서 보내자.”
차분하고 느긋한 여자의 목소리가 가게 곳곳에 내려앉았다. 싸움판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목소리에, 아이들이 제 곁으로 다가오는 여자를 슬쩍 돌아봤다. 그러면서도 서로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눈을 씰룩거렸다.
“자, 이거 붙여.”
여자가 내미는 밴드를 보면서도 흥, 하고 고개를 돌린 아이들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중 명찰을 삐뚤게 달고 있는 한 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놓아두었던 가방을 고쳐 잡았다. 유월은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의 명찰을 슬쩍 살폈다.
‘서유원’
이라고 반듯하게 명찰에 새겨진 이름과는 달리 얼굴 이곳저곳이 터져 엉망이 된 남자는 시발, 하고 영락없이 요즘 아이들이 즐겨 쓰는 육두문자를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세경이 걸레를 쥐어 찢을 듯 입술을 잘끈 씹었다.
“야, 너 어딜 도망가려고. 가게 다 때려 엎고, 손님들 다 쫓아 보낸 건 어떡할 거야. 어?”
“곧 남자 하나 올 거예요. 그 사람한테 보상 받으시면 돼요.”
“어쭈. 이게 뭘 잘했다고 고개 빳빳이 들고.”
“보상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 해 준다고요, 보상.”
하참. 하여간 요즘 애새끼들, 하고 입 밖까지 튀어나오려는 경박스러운 말을 간신히 눌러 참았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우선 죄송하다고 사과부터 해야 한다는 건 학교에서는 가르치지도 않는 건가. 그놈의 국영수의 폐해다. 그렇지만 굳이 기대도 않았던 보상을 해 준다는 말에 세경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져 헛웃음만 흘려댔다.
입술에 엉겨 붙은 피를 묻힌 채 잔뜩 반항기 섞인 눈매를 한 유원이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쳐 멨다. 그리고 아직 씨근덕거리고 있는 제 또래 남자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좆같게도 생겼네.”
“뭐야? 이 새끼야?!”
유원은 더 볼일 없다는 듯 딸랑이는 문을 열고 가게를 나가 버렸다. 남아있던 남자아이가 급하게 유원을 따라 가게를 뛰쳐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세경이 뒷목을 붙잡고 입술을 콱 깨물었다. 덕분에 장사 공친 것도 공친 거지만 이리저리 뒤엉켜 엉망이 되어버린 가게 의자들을 보자 당장에라도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았다. 간신히 심호흡을 하며 눈을 꾹 내리감았다.
유월은 세경의 거친 호흡에도 가만히 가게를 정돈할 뿐이었다. 결국 건네주지 못한 밴드를 바지 주머니 속으로 넣고 테이블 위를 닦았다. 여자의 가녀린 손이 꼼꼼하게 테이블 위를 지나다녔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갈색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 넘기는 손목이 더없이 가녀렸다. 그러면서도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유난히 환했다.
엉망이 된 테이블과 제 손목시계를 번갈아 내려다보던 세경이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테이블을 닦고 있던 유월이 들리는 한숨 소리에 세경을 돌아보았다.
“세경 오빠. 먼저 들어가. 내가 뒷정리하고 들어갈게.”
“너 혼자 이걸 어떻게 다 정리해.”
“오늘 어머니 생신이잖아. 어서 가 봐.”
“……그럼 어차피 내일 휴업이니까 내일 와서 정리할까? 아니, 근데 이종현은 시장 간 거 어떻게 됐나 몰라. 종현이한테는 내가 가면서 전화 넣을게.”
“응. 그렇게 해.”
어서 가 보라고 말하는 유월의 차분하고 침착한 얼굴이 달처럼 밝았다. 좀처럼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는 그녀의 눈매는 유난히 고왔다. 지나치게 부드럽고 조용했으며, 그러면서도 빈틈 하나 없이 단정했다. 가만히 제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게 또 야무졌다.
세경은 앞치마를 벗는 유월의 모습까지 보고 나서야 저도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핸드폰을 꺼내 한 손으론 급하게 자판을 두들기면서도 한 손으론 가방 지퍼를 열어 내용물을 구겨 넣었다.
“그럼 먼저 퇴근한다.”
그렇게 말하며 세경이 습관처럼 유월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아냐. 어서 가 봐. 어머니께 생신 축하드린다고 전해줘.”
손을 흔들며 가게를 나가는 세경을 확인한 유월은 다시 대걸레를 잡아 들었다.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제가 나서서 얼른 해버리면 한 사람이라도 쉴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대걸레 아래로 땟물이 줄줄 쏟아져 내렸다.
몇 번을 갈아 빨며 가게를 정돈한 유월은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가게 문을 평소보다 일찍 닫은 탓에 가게 주위는 온통 환한 불빛이었다. 그리고 그 환한 불빛을 맞고 있는 여름 초입의 밤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테이블을 다 정리하고 걸레까지 완벽하게 정리하고서야 퇴근 준비를 하는 유월의 뒤로 딸랑,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CLOSE라고 걸어 놓은 팻말도 분명 보았을 텐데, 노크 한 번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인기척에 유월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천천히 뒤돌아서 가게 안을 가득 메운 낯선 향의 주인을 찾았다.
강력한 남성의 기운이 이 정도 가게쯤은 우습다는 듯 가게 안을 빈틈없이 메웠다. 분명 가게가 풍선이었으면 그의 기운에 부풀 대로 부풀어 터졌으리라 생각했다. 유월의 숨통을 조인 중압감의 주인은 제 기운을 헤치고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차분하게 슈트를 입은 남자는 지나치게 정장풍이지도 지나치게 캐주얼하지도 않은 차림이었다. 날렵한 몸 선에 맞춰 떨어지는 흰 셔츠가 남자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허공을 헤매고 있던 시선이 마주쳤다.
유월은 얽힌 두 눈동자에 순간 저도 모르게 호흡을 멈추었다. 뒤늦게야 나지막이 숨을 내쉬는 뺨이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날카롭지만 섬세하게 뻗은 남자의 눈꼬리가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네가 어떻게, 라는 눈동자가 서로를 얽매고 있었다. 한참이었다. 서로를 마주보며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한 채 굳은 숨만 내쉬고 있었다. 자갈을 씹어 삼킨 듯 거친 공기였다.
그리고 한참 만에 침묵을 깬 것은 무언가에 젖은 듯한 저음의 보이스였다.
“얼마죠.”
“네?”
“수리비.”
수리비, 라고 말하는 남자의 다소 딱딱한 음성에 유월은 그제야 그가 밤중에 이곳을 찾은 이유를 알아차렸다.
‘곧 남자 하나 올 거예요. 그 사람한테 보상 받으시면 돼요.’
서유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학생의 목소리가 눈앞에 있는 이 남자와 오버랩되고 있었다.
유월은 저도 모르게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는 가게를 훑었다. 24도로 맞추어 놓은 가게 안 에어컨 공기가 차갑게 살갗으로 달라붙었다.
유월은 차분히 다시 그를 향해 시선을 두었다. 그리고 저를 표정 없이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보며 침착하고 고요한 목소리를 했다. 떨리는 음성을 숨기려 부러 더 차분하게 말꼬리를 늘였다.
“아니에요. 크게 부서지거나 흠집이 난 건 없어서.”
한참을 서로를 마주한 채 있었다. 누구 하나 먼저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지만, 누구 하나 살갑게 응시하지도 않았다. 유월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눈에 다소 차가운 기운이 돌았다. 남자는 쥐고 있던 흰 봉투를 유월에게로 내밀었다. 남자의 차림새만큼이나 단정한 봉투는 구김 하나 가지 않아 눈이 부실 만큼 새하얗다. 유월은 저에게로 내밀어진 봉투에 가만히 눈을 깜빡이다, 곧 봉투 안에 들어 있을 내용물을 인식하고 얼굴을 굳혔다.
“아닙니다. 정말 괜찮아요.”
“받아요. 이 일로 더 귀찮아지고 싶지 않아 그래요.”
남자는 이런 일 많이 겪어 봤다는 듯 담담하게 봉투를 테이블 위로 올려 두었다. 봉투가 날이 서 있었다.
“확인해 봐요. 모자라면 더 채워 주고요.”
“정말 괜찮습니다.”
짙은 한숨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불편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할퀴듯 휩쓸었다. 유월은 남자의 잘 닦여진 구두를 바라보다 다시 매서운 눈과 마주했다. 이번에도 시선이 단단히 얽매였다. 여전히 남자의 눈동자에는 닿을 수조차 없을 만큼의 열기가 일렁였다. 흘러 버린 세월 속에 더욱 무거워진 남자의 분위기는 쉽사리 입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먼저 고개를 돌린 것은 유월이었다. 유월은 그에게서 등을 돌려 선반 위에 올려 두었던 핸드폰을 가져와 남자에게로 천천히 내밀었다.
“아까 서유원 학생이 두고 간 거예요.”
내밀어진 핸드폰을 받아 든 남자는 표정 없는 눈으로 유월을 응시했다. 남자의 무거운 시선이 노골적으로 그녀에게 닿았다.
“…….”
“…….”
이상한 침묵이었다. 이번에 이 이상한 침묵을 깬 것은 남자였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 차갑고 담담해 목이 다 조여 왔다.
“오랜만이네요.”
서로에게 맞붙은 눈동자가 틈 없이 맞물렸다.
이준우, 그와 유월의 시선이 꽤 오랫동안 맞물려 있었다. 서로를 마주 보는 시선이 깊고 길었다.
그날의 그 여름이 떠올랐다.

1. 네가 있었던 그 여름(1)

평범이라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았지만, 확실히 자신은 평범의 틀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유월은 생각했다.
남들처럼 매점에서 파는 딸기우유를 좋아하고, 밀크딸기 맛 막대사탕을 좋아하고, 혀를 쫀득하게 녹이는 초콜릿을 좋아하는 평범한 여고생. 이맘때 다른 아이들과 다른 게 있다면 학교 화단을 자발적으로 관리한다는 것, 그리고 남들보다 몸이 약하다는 것 정도. 해서 서울에서 평택 고등학교로 전학 와 적응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그래도 책과 싸움하고 문제집과 씨름하며 고3 수험생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건 남들과 다를 바 없었다.
유월은 그날 아침도 교실로 곧장 가지 않고, 가방을 멘 채 교사 화단으로 향했다.
손길이 닿지 못해 모가지가 다 꺾인 잎을 가엾이 여겨 작은 손으로 그것을 살려 낸 것이 바로 며칠 전이었다. 영양분을 빨아 먹고 몸통을 지탱해 빳빳하게 선 잎사귀가 불어오는 바람에 고개를 까딱거렸다.
유월은 흙을 토닥이며 정성을 쏟았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흙더미의 촉감에 마치 흙 속을 누비는 애벌레가 된 듯했다. 영양분을 빨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애벌레. 그런 애벌레를 유월은 좋아했다.
밤새 가랑비가 왔다 했더니 알맞게 흙이 젖어 유월은 더없이 행복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잠시간 몸을 웅크려 말고 앉아 흙을 토닥이던 유월은 학교 울타리 안으로 들려오는 1교시 시작 종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흙이 묻은 손을 채 털지도 못한 채 교실로 달려갔다.

“올바른 피임법을 아는 것은 지금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임유월, 지각이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덕분에 아이들의 관심이 그녀에게로 달라붙었다. 유월은 반쯤 허리를 숙여 제 자리에 착석했다. 선생의 입에 올려진 제 이름에, 유월의 뺨이 붉어졌다. 양호선생 석진은 그런 유월을 보며 자연스레 다시 수업을 이어 나갔다. 뒤늦게야 흙이 묻은 손을 털어 낸 유월은 칠판 위 하얗게 적힌 판서를 보았다.
SEX. 올바른 성관계에 대해 바로 알기, 피임법 바로 알기, 콘돔 씌우는 법 알기.
민망한 문장들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읽으며 석진의 입이 이 나이 때 아이들의 초미의 관심사인 섹스를 남발했다. 남자아이들이 워우, 하고 호응을 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릴 때마다 교실 안은 푸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1교시임에도 졸린 눈을 비비며 기어코 잠을 이겨 낸 아이들은 지나칠 정도로 수업에 집중했다.
“이 바나나에 콘돔 씌우는 걸…… 오, 그래 준식이 네가 한번 해 봐.”
손을 번쩍 드는 남학생 하나를 불러내자, 성큼성큼 책상으로 다가가 책상 위에 놓인 바나나 위에 콘돔을 들고 쫘악 씌워 냈다. 아이들이 휘파람을 불며 공놀이에 성공한 물개처럼 박수를 쳐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