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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레스토랑을 온전히 나서기 전 손도 씻을 겸 거울을 보며 잠깐 매무새를 정돈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하던 길이었다. 길게 나 있는 복도를 따라 안쪽으로 옮기면 옮길수록 영문을 알 수 없는 흐느끼는 소리가 짙어졌다.

“!”

그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거의 자동 반사라도 되는 것처럼 몸이 훅 모퉁이로 숨겨졌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지나다닐 게 빤한 길목임에도 불구하고 주저앉아 처연하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그녀였다.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을까. 그렇게 아무렇지 않고 담담했던 아까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흐윽, 흑…… 흐어엉. 어흐엉.”

운다. 너무나도 구슬프게.

세상에, 그녀가 운다. 너무나도 억울하게.

“큽, 흐윽. 흑…… 나쁜 새끼.”

이게 웬일일까.

운다, 그녀가. 콧물까지 먹어 가며 욕도 섞어 가면서.

그 딱딱하디딱딱한 지영주가.

그렇게 알지 말았어야 할 남의 이별을 알게 되고,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녀의 눈물을 보았다. 아무렇게나 주저앉아서 엉엉 울던 그 모습이 도무지 잊히지 않았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도,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잠에 들기 위해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면서도.

철옹성같이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지영주의 울음이, 화장이 번지며 눈물로 얼룩졌던 망가진 그 얼굴이 신선한 충격과 동시에 흥미를 돋우는 관심으로 다가온 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궁금해졌다, 지영주가.

사람의 호기심이란 게 이래서 무섭나 보다. 그날 이후로 자꾸만 시선이 가게 되었고, 자꾸만 의식이 되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온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는 지영주에게.





1



월요일 오전부터 사무실 내에 냉기가 흘렀다. 출근을 해서 먼저 온 사람들끼리 간단하게 커피나 한 잔씩 하며 이런저런 주말 얘기를 주고받던 중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확인하던 이 주임의 낯빛이 그만 하얗게 질렀던 일과 관련이 있었다.

그녀는 빠르게 휴대폰 화면을 휙, 휙 드래그하다 못해 자리로 돌아가서 열심히 마우스를 달칵달칵거렸다. 그러다 종국엔 고개를 푹 숙이고 나지막이 ‘어떡해, 어떡해.’ 하는 소리를 반복하며 앉은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렸다. 그러더니 몸을 비스듬히 돌려 지 팀장의 자리를 보았다. 지 팀장은 진즉 출근을 해 업무 준비에 한창이었다.

짙은 한숨이 이 주임의 입새로 흩어졌다. 주변의 시선이 그녀를 흘끔흘끔거렸다. 옆자리며 앞자리 사람들이 ‘왜?, 뭔데 그래?’ 하는 질문을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은 넘어야 할 관문이 있으니까.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이 주임은 어디 사형장에 끌려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주춤주춤 지 팀장의 자리로 갔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제가 확인을 한 번 더 꼼꼼하게 했어야 했던 건데…….”

대놓고 지 팀장과 이 주임 쪽을 보진 못해도 다들 할 수 있는 한 온 집중을 기울여 그쪽을 주목하고 있는 중일 거다.

에어컨이 빵빵한 사무실에서도 홀로 사막인 듯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덜덜 떨고 있는 이 주임의 목소리는 그녀가 지금 얼마나 그 상대를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반증했다.

사람이 완벽해 봐야 얼마나 완벽할 수 있을까. 일을 하면서 저지를 수 있는 크고 작은 실수들이 당연 있기 마련이지만 그게 지영주 팀장 앞으로 가면 실수가 아니라 죄가 되어 버렸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것처럼 얼마나 사람을 혹독하게 몰아세우는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굳이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가시처럼 말을 콕, 콕 가슴에 박곤 했다.

“했어야 했던 거면 했어야지, 왜 안 했어요?”

또박또박한 목소리. 단어들이 죄 날을 세워 이 주임을 향하고 있었다. 지 팀장의 시선은 제 옆에 서 있는 이 주임이 아니라 본인의 책상에 놓여 있는 노트북 모니터를 향한 채다. 구태여 눈을 마주하지 않아도 옆얼굴에서 냉기가 철철 흘러넘쳤다.

“아, 저 그게…….”

이 주임의 목울대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되지도 않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지만 마땅히 가져다 붙일 말이 없어서 더 그랬다.

1이 하나 더 들어가 있어야 할 행사 날짜에 1이 없었다. 한마디로 이 주임의 실수로 인해 행사가 10일이나 앞당겨진 일정으로 전 지점에 통보가 된 셈이었다.

“금요일이라 일 끝나고 놀러 가기 바빴던 건 아니고요? 많이도 안 걸려. 5분이면 집중해서 한 번 훑어볼 수 있었을 텐데 그 5분을 더 앉아 있기 싫어서. 그죠?”

안 봐도 훤하다. 유독 치장을 과하게 했던 그날의 이 주임을 안타깝게도 팀원 모두가 기억했다. 주말 끼어서 친구들끼리 근교 여행 일정을 잡아 뒀다고 종일 들떠서 떠들어 대기까지 했으니 지 팀장이라고 그걸 못 들었을 리 없다.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상하를 반복하며 왔다, 갔다 했다. 곧이어 울먹이는 목소리가 이어지나 싶더니 이 주임의 눈에서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참고 또 참아 보았지만 내질러지는 압박에 못 이겨서 나오는 눈물일 테지.

그리고 그제야 지 팀장의 시선이 이 주임에게로 닿았다. 도자기같이 매끈한 미간에 일순 주름이 잡혔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 두고 꽤 피곤하다는 듯 오른쪽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겼다. 그와 동시에 나지막이 한숨 같은 것이 흐르기도 했다.

“이봐요, 이혜경 주임.”

“흐읍…… 흑. 네.”

“여기 회사예요. 실수했다고 지금 내 앞에서 눈물로 호소라도 하는 거예요? 그럴 거라면 납득 가능한 변명거리라도 있어야지.”

“아,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그러면 눈물 보이지 마요. 동정 여론 형성해 줄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자리로 돌아가서 사과문 올리고 정정 메일 발송하도록 해요. 이 이상 더 혼란 안 생기도록.”

우악스럽게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 봐도 뭐가 그렇게 서러운 건지 이 주임의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슈 한 장 내밀어 주는 것 없이 지 팀장은 그녀에게서 빠르게 시선을 거뒀다. 더 이상 두고 보기 싫다는 듯 찰나에 짜증이 깃들어 있는 것도 같았다.

스타기획 마케팅 1, 2팀 모두 남자 팀장이지만 3팀만 여자 팀장인 지영주다. 여자 팀장이라고 퍽 감성적일 것 같다거나 유할 거란 기대는 아예 안 하느니만 못하다. 오히려 1팀 팀장이 섬세하고 팀원들을 더 다독여 주는 편에 속했다. 실적은 3팀 따라오려면 한참이나 아래지만 말이다.

한 번 더 지 팀장의 앞으로 고개를 조아린 후 이 주임은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의 사내 메신저 창에는 벌써부터 위로의 문장들이 한가득 올라와 있었고 중간, 중간 지 팀장에 대한 안 좋은 말들이 섞여 있기도 했다.

이 주임은 긴급 처방으로 제 책상에 놓인 티슈로 눈물을 훔쳐 내고 차마 못 삼킨 울음에 끅, 끅 소리와 함께 서둘러 지 팀장의 지시에 따라 업무에 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무리가 된 모양인지 자리를 떴고 그녀의 뒤를 따라 평소 친하게 지내던 팀원 몇몇이 눈치를 살피며 함께 밖으로 나섰다.

이렇듯 저기압이 흐르고 있는 사무실 안에서 점심때가 올 때까지 부러 저마다 제 할 일에 집중하는 듯 혹은 그러는 척 바빴다. 점심이 되고 나서는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일어났다. 메뉴는 벌써 정해져 있었다.

“가자, 백 대리.”

“아, 네.”

오늘도 역시 아무도 지 팀장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전체 회식을 제외하고는 따로 팀 회식을 한다거나 했던 적도 전무했던지라 그녀와 개인적으로 식사를 해 봤던 직원은 손에 꼽다 못해 아예 없었다. 갓 입사를 했던 막내들이 몇 번 잘 보인답시고 그녀에게 따로 식사를 청했던 것 외엔 말이다. 그렇다고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또 주변에 식당 여럿을 가 보았지만 단 한 번도 마주쳐 본 이력이 없다. 매번 어긋나기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식사를 하기는 하는 건지 미스터리할 정도로.

“…….”

경도가 재킷과 지갑을 챙겨 지 팀장의 자리 쪽으로 시선을 던지니 그녀는 어느 틈엔가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그래서 날짜 정정은 잘 해결됐어?”

오늘 식사의 주제는 역시 이 주임의 실수였다. 그녀는 오전 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아찔하다는 듯 어깨를 잘게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천만다행이죠. 아침에 메일 확인해 보다 이상하게 싸해서 보낸 메일 쭉 읽어 봤던 게 세상에, 그 지경이었던 거예요. 그거 지 팀장이 먼저 알았어 봐요. 아, 끔찍해요.”

“뭐 피 터지게 아주 와장창, 와구장창 깨지는 거지. 표정 하나 안 변하고 독설, 독설. 인간미라고는 어? 찾아보려야 눈곱만큼도 없어요, 아주.”

가장 오래 지영주 팀장의 밑에서 일을 해 왔던 윤 과장이 깍두기 반찬을 오독, 오독, 오도독 씹으며 마뜩찮은 표정을 지었다가 더 남은 말이 있다는 듯 입 안에 걸 삼키지도 않고 문장을 덧붙여 왔다.

“솔직히 좀 재수 없고 살얼음판이어도 일 하나는 아주 깔끔해. 원리 원칙 딱, 딱 지켜 주고. 그거 하나 확실해서 내가 부서 안 옮기고 있는 거야. 인정하긴 싫지만 감각도 있고 능력도 있어. 딱 터지는 건만 맡고. 딱 터지게 만들고.”

“지독하잖아요. 일밖에 모르고. 그 성격에 연애는 하나 몰라요. 지 팀장이 올해로…… 서른셋인가 그렇죠?”

하던데, 연애. 비록 바로 어제 이별을 맞이하긴 했지만.

부러 목소리를 섞지 않은 채 경도는 제 식사를 마저 이어 갔다.

“연애가 뭐예요. 그 흔한 친구도 하나 없을 것 같은데.”

“맞아, 맞아. 진짜 가까이 하기 힘든 사람이에요. 어우, 어쩌다 회식에서 옆자리 앉으면 얼마나 불편한데요. 딱 물어보는 것만 대답하고 혼자 말없이 홀짝, 홀짝.”

죽이 척척 맞아 신이 난 모양이었다. 상사 없는 자리에서 상사를 씹어 대는 것도 뭐, 회사원의 낙이라면 낙이니까. 다만 경도는 동조를 할 수가 없었다. 하기 싫다, 좋다 하는 것을 다 떠나서 그들과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야, 지영주는.”

“암요. 아무리, 아무리 아파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릴걸요? 아픔이 뭔지, 슬픔이 뭔지 모를 거예요. 사람이 좀 사람 냄새가 나야지.”

고개들이 모두 끄덕끄덕거린다. 그것도 아닌데. 슬퍼할 줄도 알고, 눈물을 흘릴 줄도 알던데. 사람이 무척이나 사람다울 정도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던 화장실 앞에서 부끄럽거나 창피해하는 것도 잊은 채.

“그나저나 경도 씨는 왜 이렇게 조용해? 당한 게 없어서 그런가?”

저들끼리 키득키득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다 이내 경도 쪽으로 모두 집중했다. 하지만 답이 어려운 질문이 아니라는 듯 건너에 앉아 있던 팀원 중 하나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에이, 백 대리님 원래 말수 별로 없으시잖아요.”

“하긴, 그래. 그럼 요즘 백 대리 관심사가 뭐야? 말수 없는 양반 말수 있게 만들어 볼 만한?”

부러 괴롭히려고 한다거나 골리려고 하는 의도는 없었다. 타고난 윤 과장의 성정 자체가 그랬다. 돌아올 경도의 반응이 시답잖을 게 빤하니 늘 하던 대로 그냥 물음을 던져 보다가 자연스레 다른 주제로 말을 틀 참이었다. 그러니까 관련한 제대로 된 대답을 바라거나 기대하고 물은 게 아니었다.

“글쎄요.”

본래라면 사람들이 무엇에 대해서 어떻게 떠들든 별 관심이 없었는데 먼저 물어보니 저도 말을 시작하기 위해 서두를 뗐다. 모든 이들이 그런 경도에게 주목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전 지 팀장님 괜찮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