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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8장 엘레나(3)


데네브는 나무 하나를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나무 하나의 둘레가 족히 20미터는 돼 보였고, 높이는 40미터 정도 되었다.
“이 나무들은 정령수라고 정령계에 있는 나무인데, 정령들이 우리 엘프들을 위해 만들어 가져다주었어.”
“호오, 굉장하군.”
“나무 구경 그만 하고 빨리 우리 마을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재미있게 놀자구.”
엘레나가 데네브의 팔을 꼭 잡으며 말했다.
‘이거 왜 이러냐…….’
“고마워, 핫핫핫! 오늘은 배 터지게 먹어야지. 엘프들의 명물 음식이 있으려나?”
데네브는 속으로는 슬쩍 걱정이 되었지만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다.
“아, 저기 마을이 보인다.”
벌써 20분이 지났다.
“어디? 어디?”
데네브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둘러보았지만 마을 같은 건물은 없었다.
“거기 말고 저 위를 봐.”
“와아!”
거대한 나무들 위에 마을이 있었다. 그 나무들의 거대한 나뭇가지들 위에 판자를 깔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 더 대단한 것은 그 집들 중 일부는 암반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집들은 줄사다리나 나무로 만들어진 고풍스러운 아치 다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나무 위에 지어진 신전들 같았다. 이런 집들이 대충 세도 70가구 정도였다.
“어떻게 나무 위에 집을 지었다냐? 이거 완전히 공중 마을 아냐?”
“정령들의 도움이 컸지.”
“그럼 올라가 볼까?”
[엘프의 마을 ‘엘란’을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마을에서 물건을 50% 싸게 살 수 있습니다.]
한동안 마을에는 기쁨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돌아온 엘프들은 각자의 부모, 친구, 애인, 자식, 언니, 오빠, 동생들과 얼싸안으면서 돌아온 것에 대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거야 원……. 나만 좀 그러네.”
그들 사이에 섞여서 뭘 해야 될지 몰라 하던 데네브는 볼을 긁으며 그냥 서 있었다.
“데네브.”
“어? 엘레나네? 넌 부모님 안 만나?”
“우리 부모님은 안 계셔. 돌아가셨어.”
‘이런…….’
“미안.”
“우리 오빠가 찾아.”
“네 오빠가? 왜?”
“은인이잖아. 게다가 우리 마을 촌장이셔.”
“어디로 가야 되는데?”
“제일 높은 꼭대기에 있는 집이 우리 집이야.”
엘레나가 손가락으로 제일 높은 집을 가리켰다. 그 집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는지 순백색의 신전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 가 볼까?”
“사다리는 저쪽이야.”
“아니, 우리는 이렇게 갈 거야.”
덥썩!
“어?”
“제로 그래비티.”
엘레나의 손을 잡은 데네브는 땅을 박차고 엘레나네 집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야! 도로 안 내려가? 이건 무섭다구!”
“괜찮아, 괜찮아. 내가 손을 놓지 않는 한 네 몸도 무중력 상태라고.”
“그…… 그치만…….”
“나 참, 넌 저기서 살았을 거 아냐? 왜 그렇게 무서워해?”
“잉…… 속옷 보인다고!”
‘아…….’
순간 멍해지는 데네브였다. 다시 보니 엘레나는 남색의 원피스에 허리에는 가죽 벨트를 맨 옷차림이었다.
‘그…… 그렇구나!’
“괜찮아, 괜찮아. 아무도 못 봤어. 세상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끼며 데네브는 괜찮은 척을 했다.
“그럴 일이 있냐? 남들에게 속옷 자랑하는 게?”
“세상은 원래 낙관적으로 사는 거야.”
“야! 데네브!”
올라가는 내내 둘은 옥신각신했지만 무사히 올라왔다.
“어서 오게. 자네가 데네브인가?”
어떤 젊은 남자가 둘을 맞이했다.
“허걱!”
“왜 그래?”
데네브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기겁했다.
‘닮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렇다. 둘을 맞이한 남자는 머리가 길었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젊은 모습이랑 비슷했다.
“에? 데네브. 너 우리 오빠 이름을 어떻게 알았어?”
“엘프는 성이 없어서 디카프리오라는 성은 없지만 이름은 어떻게 아셨는지요?”
‘역시! 카오스 사 작자들의 짓이야! 할리우드 스타의 얼굴을 쓰다니!’
“그…… 그게 아는 사람이랑 얼굴이 비슷해서…….”
“호오, 신기하군요. 아무튼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죠. 엘레나, 홍차 좀 끓여 줘. 브랜디 넣고.”
“응.”
레오나르도는 데네브를 거실로 안내했다. 거실에는 나무로 된 커다란 상과 좌식 의자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커다란 활과 화살이 가득 찬 화살 통이 반짝반짝 윤을 내면서 그들을 맞이했다.
“헤에…… 밖과 다르게 아담하군요.”
“그런가요? 자, 앉으세요. 엘레나가 차를 가져올 겁니다.”
“이미 타 왔어. 브랜디 넣은 홍차.”
엘레나가 나무 쟁반과 투박한 나무 컵에 홍차를 담아 왔다. 엘레나는 둘에게 차를 나눠 주고는 레오나르도 옆에 앉았다.
“드시죠.”
“아, 예.”
후룩!
[브랜디 넣은 홍차를 마셨습니다. 모든 HP, MP가 20% 상승합니다. 피로가 풀립니다.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호오…….”
“어떻습니까?”
“참으로 좋은 차군요.”
데네브가 만족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하하하. 알아주시는군요. 우리 엘레나가 재배한 차랍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넘어갈까요?”
레오나르도는 다시 차를 마신 뒤, 엄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마을을 대표해서, 또 한 아이의 오빠로서 마을 여자들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뭐 당연한 일인데요.”
“오늘 저녁에 데네브 님을 위해서 마을에서 잔치를 할까 합니다. 데네브 님에게 보답해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거 기대되는데요? 핫핫핫!”
“호쾌하시군요. 그래, 제 동생하고 어디까지 가셨나요?”
“예?”
데네브는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둘이 사귀는 거 아닙니까?”
“푸웁!”
“오빠!”
순간 데네브는 레오나르도의 얼굴에 차를 뱉었고, 엘레나는 얼굴이 붉어진 채 소리쳤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엘레나를 키운 지 어언 245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엘레나의 눈빛만 보더라도 뭘 생각하는지 알 수가 있죠. 지금 엘레나는 데네브 님을 사랑…… 컥!”
퍼어억!
엘레나의 강력한 주먹이 레오나르도의 안면을 강타했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계속 그러면 나 오빠 때린다!”
퍽! 퍽! 퍼억! 퍽!
“아코, 아야! 으악! 제발…….”
“저기…… 이미 때리고 있으면서 때린다고 말하는 것은…….”
엘레나에게 구타당하는 레오나르도를 대변하는 데네브였다.
“시끄러!”
엘레나가 피 묻은 주먹을 들어 올렸다.
“넵!”
무력으로 여론을 제압하는 엘레나였다.

“자아, 여러분! 오늘 밤은 우리 엘프족을 도와주신 데네브 님을 위해 축배를 듭시다! 데네브 님을 위하여!”
“위하여!”
밤이 되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총총 떠 있고, 판타지 세계답게 노란색의 커다란 달과 분홍색, 초록색의 작은 달들이 떠 있었다.
잔치는 마을 밑의 공터에서 행해졌다. 마을 건물에서는 잔치를 할 만한 커다란 공간이 없는 데다가 큰 모닥불을 피울 수가 없어서였다. 마을 엘프들과 데네브는 모닥불을 중심으로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접시에 담아 식사를 시작했다.
“쯧쯧, 또 뭔 짓을 저질렀나 보군.”
“그러게. 또 엘레나에게 맞았나 봐.”
“저거 촌장 맞아? 동생한테 맞고 살게.”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눈만 내놓은 레오나르도의 모습 때문에 엘프들은 서로 수군거렸다.
“평소에도 이러고 삽니까?”
그 수군거림이 데네브에게도 잘 들렸기에, 커다란 햄 덩어리를 잘라서 먹다가 옆에 있는 레오나르도에게 물었다.
“예. 항상 이러고 삽니다.”
오히려 웃으며 대답하는 레오나르도였다.
‘항상? 뭐 이런 엘프가…….’
데네브는 다시 음식 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커다란 칠면조 다리를 통째로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퀘스트가 완료 안 됐네? 이상하다. 뭔가 더 있나?’
“자, 배부르게 드셨으니 이제 춤을 출까요?”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는 시점에서 레오나르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엘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모닥불을 중심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데네브는 춤추는 엘프들을 보았다. 그리고 데네브가 모닥불을 자세히 보니 수많은 불의 정령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나무를 태우지 않는 거 보니 역시 엘프인가?’
“휴우…….”
춤에 약한 데네브는 춤을 추자는 엘프 여자들을 거절한 후 접시에 음식을 담고 음료수가 들어 있는 나무병 2개를 들고는 잔치장을 빠져나갔다.
“그래비티 볼.”
중력을 가진 구에 올라앉은 데네브는 천천히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대한 나무의 정상에 오르자 사람이 누울 수 있을 정도의 큰 나뭇가지로 옮겨 걸터앉았다. 밤하늘의 별과 달들이 잘 보이는 자리였다.
“별이 참 아름답구나. 게임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야.”
퐁!
나무 병의 코르크 마개가 열렸다.
꿀꺽, 꿀꺽!
“크으! 이런……. 이거 술이네?”
음료수가 아니라 과일주였다.
두근두근.
‘딱 한 번인데 마셔 볼까? 안 돼! 난 미성년자라구. 미성년자는 술을 마시면 안 돼. 하지만 아무도 없는데……. 게다가 이건 게임이잖아. 그리고 나도 며칠 있으면 성인이고.’
갈등에 사로잡힌 데네브였다.
“그래! 결심했어. 그냥 한 번만 마셔야지.”
꿀꺽. 꿀꺽. 꿀꺽.
“하아, 맛있네? 도수도 낮은 거 같고.”
하지만 말과 다르게 데네브의 얼굴은 취기로 붉게 물들었다.
“밤하늘도 좋고, 술맛도 좋고, 신선이 따로 없구나…….”
“그렇게 좋아?”
“엥?”
엘레나였다. 그리스풍의 연두색 드레스를 입은 채 데네브가 있는 가지 위로 올라와 있었다.
“오! 엘레나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네가 올라가는 걸 봤지. 원래 여기는 내가 혼자만 있고 싶을 때 찾던 곳이거든.”
“에? 그랬어? 그런데 넌 여기 왜 왔어? 춤추지 않고? 애인 없냐?”
엘레나의 표정이 굳어졌다.
‘으힉! 괜히 말했나?’
“난 아직 애인 같은 거 없어.”
엘레나는 조용조용하지만 살기 어린 목소리로 글자 하나하나에다 힘을 주며 말했다.
“그래? 후후후, 그럼 아직 애인 없는 엘프를 위해 건배나 할까?”
퐁!
그리고 데네브는 두 병째 술을 따서 엘레나에게 줬다.
“미안, 이미 술을 많이 마셔서…….”
“음? 그래?”
꿀꺽, 꿀꺽.
휘이이이이잉.
바람이 불었다. 그렇게 시간이 꽤 오래 지나갔다.
“내일 떠날 거야?”
“응.”
“아쉬운데?”
엘레나가 고개를 숙였다.
“별이 아름답지?”
“어.”
“달들도 전부 만월이고…….”
“응.”
엘레나의 쓸데없는 질문에 데네브는 점점 의아해졌다.
‘엘레나가 왜 이러나? 왜 올라왔대? 뭔가 있나?’
“엘레나.”
“어? 왜?”
“용건을 말해. 뜸 들이지 말고.”
엘레나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어라?’
“나…….”
“응.”
“너 좋아해! 아니, 사랑해! 처음 만났을 때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