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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6장 NPC 알비레오 왕자(2)


싸우다 말고 살아 있는 사람을 산 채로 먹기 시작한 오크들이었다. 먹히는 병사는 소름 끼치는 비명을 연신 질러 댔다.
“역한 놈들이군.”
“취익! 누구냐?”
“뒤, 뒤다! 취익!”
사람을 먹다 말고 다시 무기를 든 오크들이었다.
“닥쳐라, 더러운 생물! 리버스 그래비티.”
“취, 취익?”
“취이이이이익!”
“취이이.”
오크들이 하늘로 붕 떠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으으으윽!”
아직 살아 있었는지 잡아먹히던 병사가 신음 소리를 냈다.
“이런, 아직 살아 있군. 다행이다. 자, 이걸 마시도록. 포션이야.”
“으으, 꿀꺽! 꿀꺽!”
포션을 마신 그 병사의 신음 소리는 사라졌다.
“고, 고맙…….”
“그건 나중에 하고, 여기에서 기다리게.”
후드를 쓴 탓에 병사는 데네브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데네브는 망토를 펄럭이며 다시 몬스터들에게 달려갔다.
“투창!”
휘익! 휙!
어떤 기사의 명령에 병사들이 오우거에게 투창했지만 오우거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쿠워어어어!”
“흐헥!”
쿠웅!
오우거가 명령을 내리던 기사를 주먹으로 내리쳐 버렸다. 기사는 그대로 육편으로 변했다.
“그래비티 볼 10G.”
“쿠엑? 쿠우으으으으!”
오우거가 한참 동안 몸을 부여잡으며 바둥거리더니 결국에는 뒤틀려서 고깃덩어리로 변했다.
“어?”
“누구?”
“마법사이십니까?”
병사들이 마법을 날린 데네브를 그제서야 눈치 채고 물었다.
“그건 나중에 따지고 지금은 아무런 저항도 못하는 오크를 없애도록. 나머지 오우거들은 내가 없앨 테니.”
“아, 예. 예!”
“저자는 누군가?”
백마를 탄 자가 옆의 지휘관에게 물었다. 그는 시르벤 왕국의 왕자 알비레오 폰 시르벤이었다. 금발 머리에 초록색 눈동자는 전형적인 백인처럼 생겼다. 머리 위에는 ‘시르벤 왕국의 왕자 알비레오’라고 적혀 있었다.
“예, 왕자님. 소신은 잘 모르겠사옵니다. 다만 저 작은 굴에서 나왔다는 것밖에는…….”
“혹시 데네브라는 자가 아닐까?”
“예? 중력 마법을 쓰는 걸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사옵니다.”
“나중에 내 앞으로 데리고 오도록. 이거야 원, 수도와 가까워서 근위대와 근위기사를 물리고 왔거늘 오우거와 오크들에게 이렇게 밀리다니…….”
“쿠워어어어어!”
“시끄럽군. 몬스터 주제에.”
마지막 오우거를 없앤 뒤 데네브는 옷의 먼지를 털면서 중얼거렸다.
“저…….”
지휘관이었던 중년 기사가 데네브에게 다가왔다.
“본인은 로날드 폰 에리즈 남작이오. 실례지만 귀하의 성함을 알려 주시오.”
‘자기의 이름을 말했는데 내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무례한 거지?’
“데네브라고 합니다.”
중년 기사 로날드의 눈빛이 변했다. 먹이를 눈앞에 둔 늑대처럼.
“연금술사 데네브?”
“그런데요.”
“저희 왕자님께서 찾으십니다.”
“일없다고 하세요.”
“…….”
잠시 휘청거리는 로날드였다.
‘헤에, 재미있군. 사람 놀려 먹는 건.’
“난 여행을 떠날 겁니다. 가서 몬스터도 잡고 운 좋으면 수인족이나 엘프도 만나고, 던전도 탐험하고 싶다고요. 아직은 왕국 같은 데에 등용될 생각이 없습니다.”
“방금 ‘아직은’이라고 했나?”
백마를 탄 알비레오가 다가왔다.
“뉘신지?”
데네브가 본 알비레오의 모습은 전형적인 백인처럼 잘생긴 미남이었다. 하지만 인상이 빙수 위의 레몬 시럽 같았다.
‘아, 그런 건 없나? 맛있을 것 같은데.’
“이런 무엄한!”
스릉!
로날드가 큼직한 검을 뽑았다. 하지만 데네브가 더 빨랐다.
“해볼래요? 내가 여기에 힘을 더 주면 당신의 머리는 몸과 분리됩니다.”
데네브의 지팡이가 로날드의 갑주 사이에 들어가 그의 목을 살짝 벤 상태였다.
“으윽, 감히! 왕자님 앞이다! 지금이라도 그 창을 치우고 왕자님 앞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라! 그러면 없던 일로 하겠다!”
“이런. 로날드 님, 뭔가 착각을 하셨군요.”
“뭐?”
“전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랍니다. 시민권 자체가 없는 그냥 떠돌이죠. 그래서 아무리 시르벤 왕국의 왕자가 왔다고 하더라도 이 나라 국민이 아닌데 머리를 조아릴 필요가 없죠.”
“이…… 이!”
로날드가 분노에 찬 얼굴로 데네브를 노려보았다.
“로날드 님, 노려보면 어쩌실 건데요? 지금 자신의 상태 파악이나 하시죠.”
스윽!
“크윽!”
데네브의 지팡이가 더욱 로날드의 목을 파고들어 갔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경동맥이랍니다. 돼지처럼 도축되기 싫으면 그냥 조용히 하세요.”
“하하하! 참 재미있는 사람이군. 이제 그만 하게. 그 후드를 벗어 줄 수 없나? 일루전 마법인가? 어두워서 볼 수가 없군.”
“보셨다가 나중에 현상금 걸려는 거 아닌가요? 제가 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데네브가 로날드에게 지팡이를 치우면서 말했다.
뜨끔!
“어? 진짜요?”
얼굴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알비레오였다.
“흠, 머리가 좋구만. 본론으로 넘어가지. 방금 ‘아직은’이라고 하지 않았나?”
“전 당신의 이름을 물었습니다만?”
“저…… 저놈이!”
“그만! 됐어, 로날드. 내 이름은 알비레오, 알비레오 폰 시르벤 왕자다.”
“핫핫핫! 같은 별자리의 별들이군요. 이거 인연일지도.”
“하하하! 그럴지도……. 이제 내가 말해도 되겠지? 아까 ‘아직은’이라고 하지 않았나?”
데네브와 넉살 좋게 웃던 알비레오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바꾸었다.
“네, 그렇습니다. 전 여행을 떠나고 싶거든요. 왕국에 등용되면 하루 종일 궁궐 같은 데에서 말뚝 박힌 채 살아야 하는데, 전 그게 싫어요. 이제 막 1년 만에 동굴에서 나왔는데 또 한곳에 계속 있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언젠가 왕국을 위해 내 사람이 되어 줄 수 있겠는가?”
“조건이 있습니다만?”
“조건?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들어주겠네.”
“영주 아니면 비리 공직자를 잡는 감사원 원장이 되게 해 주세요.”
“영주 아니면 감사원장? 어째서 그런 데로? 그냥 궁정 마법사를 하지 않고?”
“공권력의 힘! 그걸로 다른 유저들에게 공권력의 무서움을 보여 주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PK당할 걱정은 없겠지요.”
“…….”
“어라? 왜 그러십니까?”
알비레오의 입장에서는 데네브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그래……. 내 자네만 온다면 그렇게 되게 힘을 써 보겠네.”
“감사합니다.”
알비레오가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알비레오 왕자와의 친밀도가 높아졌습니다.]
‘헤에, NPC 주제에 완전히 사람하고 똑같다니까. 진짜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그러면 나에게 그 증표를 보이게.”
‘증표라…….’
“음, 이것은 어떻습니까? 아공간 오픈!”
아공간 속에 손을 집어넣어서 ‘그것’을 찾아 꺼내 주었다.
“이…… 이것은?”
금관이었다. 모델은 신라의 금관. 데네브가 경주 김씨이다보니 한번 써 보고 싶어서 만든 금관이었다. 나무와 사슴 뿔을 나타내는 금장식에 나뭇잎을 나타내는 옥까지 현실의 것과 똑같게 재현한 것이다.
햇빛을 받은 금관은 번쩍였고, 옥과 금이 부딪치며 방울 같은 소리를 냈다.
짤랑! 짤랑!
“옥과 금으로 만든 것인데 멋있죠?”
“우와, 저것 좀 봐.”
“세상에……. 저분이 만든 거야?”
“멋있다! 데네브 님이 저런 걸 만드시다니.”
[명성을 얻으셨습니다.]
주위에 있던 병사들도 금관을 보며 감탄했다.
‘후 천 년 왕조의 찬란한 문화의 정점인데 지들이 안 놀라고 배겨?’
“대…… 대단하군……. 자, 이것을 받게.”
알비레오가 준 것은 패였다. 우리나라 마패같이 생겼다. 하지만 말 대신에 시르벤 왕국의 상징인 매가 새겨져 있었다.
“나중에 궁궐에 오면 이 패를 보여 주게. 그러면 들여보내 줄 것이야. 잘 가게. 나중에 꼭 오게나. 빨리 오면 더 좋고.”
“그러죠.”
데네브는 그대로 뒤돌아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 우리도 가 볼까?”
“왕자님! 저렇게 보내셔도…….”
“괜찮아. 언젠가 올 사람이다. 나는 믿는다. 우리 왕국이 다시 과거의 영광을 찾기 위해서는 저런 인재가 필요하다. 외람된 말이지만, 아바마마의 병은 이미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차기 왕은 나인데, 왕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재가 필요하다. 그런 인재를 얻는 데 시간 따윈 아깝지 않지. 가자! 수도로 돌아간다.”
왕자 일행은 데네브의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수도 시르벤 시티가 있는 곳으로.



7장 엘프를 구해 주고 퀘스트를 받다(1)


“그래, 그 사신이 동굴에서 나왔다고?”
“예. 그리고 동굴에 있던 모든 보물은 다 챙겨서 나왔습니다.”
지하의 어두운 밀실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나저나 조명이 왜 이렇게 어두워? 우리가 나쁜 놈도 아닌데……. 라이트!”
눈부신 마법의 빛이 밀실 안을 비추었다. 라이트를 쓴 사람은 건장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 푸른색의 갑옷을 입고 푸른 망토를 둘렀다. 얼굴은 투구를 쓰고 있어서 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은 검은색의 착 달라붙은 옷을 입고, 얼굴은 두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아, 눈부셔.”
어둠 속에 있다가 빛이 보여서 그런지 암살자 옷을 입은 유저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거, 그 검에 인첸트된 마법인가요?”
“당연하지. 안 그러면 전사가 마법을 쓸 수 있겠어?”
“그나저나 그 오리하르콘 철퇴는 뭐 할 때 쓰실 건가요? 겨우 일당백 길드 창고에서 훔친 건데.”
“당연히 우리 길드를 위해 써야지. 우리 드래곤 슬레이어 길드를 위해서 말이야. 여차하면 그 사신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좋겠지.”
드래곤 슬레이어 길드, 에르메키아 월드 길드 랭킹 1위로 길드원의 수가 10만이나 되는 거대 길드였다.
하나 그들의 목적은 길드 이름과 마찬가지로 드래곤을 잡아서 레어를 터는 것과 동시에 아이템을 얻는 것이었다. 말이 랭킹 1위이지 실제적인 힘은 낮은 길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드래곤 슬레이어 길드의 길드원 대부분은 다른 길드와 다르게 길드 마크를 머리 위에만 달았다. 또 봉급도 안 받으며 알아서 레벨 업을 하고 다녔다. 나중에 길드장이 어디에 드래곤의 레어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기다리면서 드래곤과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