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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5장 이상하게 만난 남과 여(4)


“한아영 양!”
문이 닫히자마자 무거운 표정이었던 일당백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아리시아에게 달려가서 밧줄을 풀어 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레벨은 많이 올렸어?”
“응.”
“축하해!”
“이건, 뭐?”
아리시아가 일당백에게 풀려나자마자 데네브에게 친근하게 말하자, 용병단원과 일당백 전체가 굳었다.
“국내 최고의 아이돌 스타 한아영이 웬 남자와 친근하게 대화한다?”
“남자 친구?”
“혀…… 현아, 너…… 너…… 한아영이랑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용병단원들이 그 장면을 보고 수군거렸고, 특히 일당백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뭐, 넌 친구니까 이야기해 주지. 우리 서로 만나기로 했다.”
“에?”
데네브와 아리시아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월령이 다시 물었다.
“우리 서로 만나기로 했다고요. 물론 비밀로 해 주세요. 인연이 있으니 말하는 거예요.”
데네브가 다시 말했다.
“네에에에에에에……!”
역시 파장이 컸다.
데네브는 거의 달궈진 쇠공처럼 얼굴이 벌게진 일당백을 보았다 하지만, 이내 일당백의 얼굴은 정상적으로 돌아오더니 데네브가 눈 깜짝하는 사이에 잠깐 웃고는 이내 다시 무표정하게 돌아왔다.
“아니, 천하의 한아영 양이 자신을 납치해서 묶은 사람과 만나고 다닌다니……. 며칠 됐는데요?”
“이제 몇 시간 됐군요.”
“하아?”
“말도 안 돼! 인정할 수 없어.”
“모든 남자들의 우상인 한아영 양이 애인이 생기다니, 있을 수 없는 이야기야.”
“남자가 얼마나 잘났기에…….”
용병단 곳곳에서 불만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난 평생 남자도 만나지 말고 살라는 거예요?”
아리시아가 그들을 째려보면서 독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리고 내 남자 친구의 얼굴도 보세요!”
“어이, 잠깐…….”
데네브가 소리쳤지만 아리시아가 데네브의 후드를 벗겼다. 데네브의 잘생긴 얼굴이 나오자, 용병단에서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들은 일당백을 쳐다보았다.
“내가 잘생겼다고 말했잖아. 얘가 내 친구 현이라고, 김현.”
일당백이 그들의 물음에 답했다.
“연예인 지망생?”
“어머나! 정말 잘생겼다.”
“선남선녀가 따로 없군.”
“으윽! 인정하긴 싫지만 나보다 조금 더 잘생겼다.”
“뭐? 이 자식, 너 같은 거랑 쟤를 비교하다니, 죽어!”
“너 같은 애는 좀 맞아야 돼.”
퍼버벅! 우지끈! 푹! 팍!
다리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와아아아악! 잘못했어! 용서해 줘!”
“크헤헤헤헤, 닥쳐. 넌 용서가 안 돼.”
“맞아요, 프론티어 오빠. 오빠는 좀 맞아야 돼요.”
“아리엔느, 너마저도…….”
풀썩!
“어이, 이제 치료해 줘. 아직 죽지 않았지?”
“힐링.”
언제나 적응이 안 되는 일당백 용병단. 이들은 콩가루 집단 같지만 에르메키아 월드 최고의 용병단이었다.
“그나저나 이거 특종감이네…….”
“뭐가?”
데네브는 눈을 빛내면서 자신들을 쳐다보는 일당백을 경계하는 눈초리로 뒤로 약간 물러났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 그것도 있지.”
일당백이 천천히 데네브와 아리시아에게 다가갔다.
“한아영 양이 어떤 동갑의 남학생을 좋아하게 됐다. 그런데 그 사람이 게임상에서 자신을 납치한 사람이다. 그렇다는 것은 현이의 얼굴과 특유의 매너 있는 성격에 반했다는 것인데……. 참고로 나 사진 캡처를 20번 정도 했다.”
“이 자식, 친구를 죽일 생각이냐?”
“네가 죽어도 내 알 바가 아니야.”
“이런 이기주의……. 가만, 워…… 원하는 게 뭐냐?”
“역시 내 친구야.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주도권은 현동이에게 있다. 으윽! 이걸 어떻게 타개하지…….’
“그 철퇴, 나 줘.”
“뭐?”
“철퇴, 나 달라고. 그러면 우리들은 모르는 척해 주지.”
“그…… 그거면 돼?”
“어.”
“딴말하기 없기다?”
“알겠으니까, 어여 줘.”
데네브는 일당백에게 철퇴를 넘겼다.
철퇴를 감정한 일당백의 얼굴이 엄청나게 굳었다.
“대장, 왜 그래? 나도 줘 봐. 감정!”
“저도 줘 봐요. 감정!”
“이…… 이런 걸 만들어 낸 것이었냐?”
“예스.”
“어디서 영어질이야! 여기는 대한민국이라고! 한국어 써!”
“알겠어…….”
“엄청 가볍네. 어쩐지 이걸 아무렇지 않게 휘두른다 했어. 그보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기각.”
미리 말을 잘라 버리는 데네브였다.
“아니, 들어 보지도 않고…….”
“금속을 만들라고 하는 거 아니면, 니네 용병단으로 들어오라는 거겠지.”
“…….”
“맞았나 보군. 그런데 할 이야기가 뭐냐?”
“용병단이 안 된다면, 나중에 우리 길드로 들어오라고 하려고 했지.”
“역시 기각. 그런데 길드 패치가 됐어?”
“너 모르고 하는 소리야? 일주일 안에 길드 패치가 된다고 했잖아. 인터넷은 그것 때문에 좀 시끄럽던데. 하긴, 어제 그 소란 덕분에 넌 잘 모르겠군. 그런데…… 길드라도.”
“기각! 난 어디에 소속되는 걸 싫어한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그럼 부탁하는데…….”
“그건 들어주지. 다른 길드로 들어가지 않고, 나중에 돈 받고 너희 길드전에 참가해 주겠어.”
“정말?”
일당백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도로 굳어져 버렸다.
“너 관심법 쓰냐? 어떻게 내 말을 미리 알고 있지?”
“너와는 죽마고우잖아. 핫핫핫! 같이 알고 지낸 지 10년 다 돼 간다.”
“그, 그러냐?”
“어이, 대장.”
“왜?”
용병단 단원들이 뭔가 불만 있는 표정으로 일당백을 쳐다보았다.
“원래 작전은 데네브를 잘 구슬려서 방심하게 한 다음에 처치하는 것 아니었어?”
“작전은 변경되라고 있는 거야. 아무튼 결과가 좋으니까, 그런 거에 대해서 그만 따지도록.”
“알겠어.”
순순히 받아들이는 용병단원들이었다.
“그럼 우리는 간다. 나중에 퀘스트 끝나면 보자고.”
“그래, 잘 가라.”
용병단은 그렇게 떠나 버렸다.
“그럼 이제 우리는 뭐 하지?”
여태까지 가만히 있던 아리시아가 말했다.
“잠깐 기다려 봐. 내가 할 게 있어.”
데네브는 얼른 냄비가 있는 곳으로 가서 불을 켰다.
“뭐하는 건데?”
“너에게 선물을 주려고. 이 세상에 하나뿐인 걸로. 우리가 만난 기념 선물.”
순간 아리시아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나에게 선물을?’
“그런데 너 귀고리 하고 다니니?”
“어? 아, 하고 다녀.”
“그래? 잘됐군.”
냄비가 어느 정도 달궈지자 데네브는 어린애 주먹만 한 은 덩어리를 넣었다. 은 덩어리는 냄비에 들어가자마자 녹기 시작했다. 은이 다 녹자 가죽 가방에서 조약돌만 한 돌멩이를 꺼냈다. 돌멩이는 영롱한 무지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건?”
“단백석이라고 해. 세간에서는 오팔이라고도 하지. 보석점에서 산 거야.”
데네브는 망치를 꺼내 오팔을 콩만 한 크기로 부쉈다.
“그렇게 비싼 걸?”
“선물은 비싼 걸로 따지지 않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선물의 정성이 중요하지.”
‘아…….’
불의 열기로 땀을 흘리며 자신을 향해 생긋 웃는 데네브의 모습이 아영에게는 더없이 멋있어 보였다.
‘날 위해서?’
“헤에, 또 얼굴이 붉어졌네? 감동 먹었어? 조금 느끼하게 말한 건데.”
“아…… 아니……. 그런 건 아냐.”
“아냐? 실망인데?”
데네브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 아냐. 나 감동 먹었어!”
“그래?”
어린애처럼 다시 밝은 얼굴로 돌아온 데네브였다.
“그러면 감동 먹은 아영이를 위해서 열심히 만들어야겠네.”
“당연히 나를 위해 만들어야지.”
“예이, 그렇게 하죠. 핫핫핫!”
“호호호!”
데네브는 오팔 조각들을 은에다 넣었다. 그리고 책을 꺼내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 .”
주문을 외우자 냄비 안에서 무지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됐다. 이제 한 시간 동안 끓여야 하니까 그동안 좀 쉬어야지. 시원한 레몬 주스에 쿠키 어때?”
“좋지.”
시간이 지날 때까지 둘은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현이의 부모님은 어디 계셔? 지난번에 현이 집에 갔을 때 부모님이 안 보이셨는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리시아가 데네브의 부모님 이야기를 물었다. 웃던 데네브는 말없이 눈을 감고 조용히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아……. 미안.”
그 뜻을 이해한 아영은 데네브에게 사과했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니까.”
짤랑.
데네브는 조용히 레몬 주스를 마셨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시간이 다 됐군. 아영아, 잠시.”
데네브는 다시 일어나서 냄비로 다가갔다. 그리고 지팡이로 냄비 안을 휘저었다. 냄비를 휘젓는 그의 얼굴에서 물방울이 냄비 안으로 떨어졌다.
‘어쩌지? 아픈 곳을 건드려 버렸어. 아이, 참. 이제 막 관계가 좋아졌는데. 설마 현이가 슬퍼 보이는 이유가.’
그런 현이의 모습에 아영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깡! 깡! 깡! 깡!
틀에다 은과 오팔을 녹인 물을 부은 후 연신 작은 망치로 그것들을 다듬었다. 다 완성될 때까지 오직 침묵만이 감돌았다.
“자…….”
완성된 걸 보자기로 가린 데네브는 아리시아에게 건넸다.
“짜자잔!”
링 밑으로 물방울 모양의 금속구들이 달린 귀걸이였다.
“아…….”
아리시아가 귀걸이를 들어 올렸다. 은처럼 매끈한 은색이었지만, 빛을 받으면 오팔의 무지갯빛으로 반사되어 아주 아름다웠다.
차랑!
물방울 모양의 금속구들이 서로 부딪치며 청량한 소리를 냈다.
“어때? 근사하지? 마음에 들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너만의 귀걸이야.”
“감정!”
[사랑과 슬픔의 귀걸이 ―제작―
제작자 데네브가 사랑하는 아리시아를 위해 만든 귀걸이. 아리시아를 생각하는 아련한 사랑이 들어 있다. 하지만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눈물을 흘리고, 그 눈물이 깃들여져 슬픔까지 간직한 귀걸이다.
무게:5
내구력:20/20
특수 능력:아리시아를 제외한 다른 유저는 착용 불가.]
“현아…….”
“제목이 그렇게 나와서 미안해. 헤헷! 내가 딴생각을 해 버려서…….”
데네브의 심정은 착잡했다. 오랜만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는데, 이번에 또다시 슬픔이라는 게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너의…….”
“응?”
아리시아가 말했다.
“너의 눈동자가 슬퍼 보이는 이유를 이제 알겠어.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었구나.”
“…….”
“너의 이 마음 간직할게.”
차랑!
아리시아는 그 귀걸이를 귀에 걸었다. 귀걸이는 무지갯빛을 내며 청량한 소리를 냈다.
“어울려?”
“아주 잘 어울려.”
“나도 뭔가 주고 싶은데…….”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내 성의야.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지. 자, 받아.”
아리시아가 데네브의 손에 쥐어 준 것은 외눈 안경과 하모니카였다.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감정해 봐.”
“감정.”
[도수 없는 외눈 안경 ―노멀―
오로지 폼으로 착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수 없는 외눈 안경이다. 하지만 금으로 테와 줄을 만들었기에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