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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4장 GTV 앵커 한아영, 납치당하다(3)


데네브가 물을 뜨는 아리시아에게 달려가 물통을 뺏었다.
“왜 그러세요?”
“잘 들어요. 아무리 게임 속이라지만, 이 게임은 거의 완벽하게 현실성을 강조한 게임입니다. 게다가 이곳은 동굴입니다. 동굴에 있는 샘물 속에는 오랫동안 물과 같이 있어서 물속에 미세한 돌가루가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습니다. 또 알칼리 성분이 많아서 이 물을 그냥 마시면 담석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담석증에 걸리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수술이라는 개념이 있습니까? 성직자가 있다고 해도 아리시아 님을 살리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니 이 물은 씻을 때나 쓰시기 바랍니다.”
“아…….”
“저도 어차피 게임인데 하고 먹었다가 약간 고생했어요. 이놈의 게임은 현실에서도 잘 모르는 일을 다 적용시켜 놨더라고요. 물은 제가 나중에 마법으로 만들 테니 식탁에 앉아 주세요. 식사 준비가 다 되었으니까.”
아리시아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저기…….”
“네, 말씀하세요.”
“그런 건 어떻게 아셨나요?”
데네브는 당연하다는 듯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책 보면 다 알 수 있는 거죠.”
“…….”
“이 게임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체계에서 무식은 파멸이랍니다.”
“…….”
“왜 그러십니까?”
“그냥 좀…… 그래서요…….”
“식사하죠. 오늘의 메뉴는 스튜에 바게트 빵, 샐러드랍니다.”
데네브가 조금 느끼하게 말을 하고서는 아리시아를 식탁 앞에 앉혔다.
“우와, 맛있겠는데요?”
아리시아는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데네브도 수저를 들려는 순간이었다.
[일당백 님으로부터 귓속말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응하시겠습니까?]
‘현동이가?’
“네.”
“야, 이 개새끼야! 김현, 넌 죽었어!”
귓속말을 허락하자마자 현동이의 고함이 데네브의 귀에 메아리쳤다.



5장 이상하게 만난 남과 여(1)


“현동아, 왜 그래? 귀 아프다.”
“얌마,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서 물어? 국내 최고의 아이돌 스타 한아영을 납치하다니. 너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들, 아니 유저들을 적으로 둘 셈이냐?! 아니지, 나도 포함이야! 널 꼭 인민재판해서 즉결 처분을…….”
“내가 몬스터 상태이니 유저들은 다 적이자 다 나의 경험치들이잖아. 난 경험치를 올리기 위해서 사냥감을 몰이하는 것뿐이라고.”
“……아무튼 지금 한아영의 팬클럽 사이트는 난리가 났다고. 한아영을 구하겠답시고 팬들이 지금 에르메키아 월드에 가입하거나 레벨업을 하고 있어.”
“카오스 사가 나에게 감사를 해야겠군.”
“그게 아니잖아! 아무튼 너 한아영에게 무슨 짓하고 있어? 설마 진짜 아다만티움으로…….”
“같이 식사 중.”
“뭐?! 한아영이랑 1:1 식사?! 크윽! 이 자식, 부럽다. 아니지, 한아영은 내가 구한다. 당장 문 열어.”
“문밖에 있었냐?”
“그래! 사랑스런 한아영 양을 구하기 위해 내가 왔다!”
데네브는 머리가 아픈지 머리에 손을 댔다.
“그냥 내일 오후 7시에 와라. 내일 보자고.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우리처럼 공부 안 하는 학생들은 집에 있을 것 아냐. 그럼 이만.”
“야, 야! 잠깐…….”
[일당백 님과의 귓속말을 끝내셨습니다.]
“무슨 일이죠?”
아리시아가 물었다.
“친구 놈이 제가 아리시아 님을 납치했다고 방방 날뛰고 있습니다. 뭐, 신경 쓰지 마세요.”
문밖에서 캉캉거리는 금속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데네브와 아리시아는 신경 쓰지 않고 식사를 끝냈다.
“이번엔 뭘 만드시게요?”
“화살이요.”
“화살요?”
“네. 화살에다가 이것만 달아서 붙이면 돼요.”
데네브가 종이로 감싼 원통을 보여 주었다.
“도와드릴까요?”
“고맙습니다.”
아리시아와 데네브는 사이좋게 작업을 시작했다.
“그래 가지고 현동이가 ‘훗, 멍청한 자식. 나의 승리다’ 하고 갔다가 덩달아서 엉덩방아를 찧었죠. 그때 얼마나 웃겼는지…….”
“하하하. 참 재미있게 사셨네요.”
둘은 한 시간 동안 웃음꽃을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화살에 다는 건 뭐죠?”
아리시아는 화살에 붙이는 원통 밑을 가리키며 물었다. 자세히 보니 밑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1서클의 매직 미사일입니다.”
“에게, 겨우 매직 미사일요?”
“아직 실망하지 마시길. 자, 한번 보세요.”
데네브가 화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위로 높이 던졌다.
“가라, 매직 미사일!”
펑! 피이이이이잉. 팍!
원통 밑에서 불꽃이 나오더니 로켓처럼 불을 뿜으며 천장으로 치솟았다. 솟아오른 화살은 천장에 깊숙이 박혀 버렸다.
“신기전?”
“맞습니다. 조선 시대 우리나라 병기였던 신기전과 비슷한 무기죠. 연금술사의 제약은 1서클 이상의 마법은 한 가지 속성의 마법밖에 배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 저렇게 마법 도구를 만드는 것이지요. 1서클 매직 미사일의 마법진을 약간 개조하면, 저렇게 추진력을 제공하는 아주 좋은 로켓 엔진이 되지요.”
“괴…… 굉장해요!”
아무리 1서클의 마법진이라지만, 그것을 개조해서 만들려면 아주 복잡하고 정교한 작업이 필요했다. 그런데 아리시아 앞에 있는 남자는 그것에 성공했다. 아리시아는 데네브에게 동경의 눈빛을 보냈다.
“가만, 그럼 데네브 님은 어떤 속성의 마법을 배우시나요?”
“중(重)입니다.”
“중력이요? 아직 중 속성의 마법은 나오지 않았는데…… 중력 마법은 7서클이잖아요. 현재 마법사 랭킹 1위에 있는 유저가 이제 겨우 4서클 유저가 되었을 뿐이죠. 게다가 중 속성은 희귀한 마법이라 스킬 북도 거의 없다고 봐야 하는데…….”
“연금술사가 선택한 속성은 서클에 관계없이 배울 수가 있어요. 게다가 스승님이 중 속성의 마법 스킬 북을 전수해 주셨습니다. 2개로만 알려져 있던 중력 마법을 5개나 주셨죠. 그래서 전 에르메키아 월드에서 유일한 중력술사랍니다, 핫핫핫.”
“축하해요!”
아리시아는 나중에 인터뷰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고맙습니다.”
데네브가 고개를 숙여서 답했다.
“그럼 전 이만 가 볼게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내일도 저와 만날래요?”
“지금 데이트 신청? 헤에∼ 국내 최고의 아이돌 스타 한아영이 평범한 고등학생인 데네브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다니……. 어차피 로그인하셔도 이곳으로 접속됩니다. 몬스터에게 잡힌 상태이니까요. 아리시아 님은 인질이랍니다.”
“헤, 그럼 인질이 이렇게 자유롭게 다니는 것 봤어요?”
“그럼 온몸을 묶어서 기어 다니게 해 드릴까요? 아니지, 이왕이면 19금으로 바니걸, 메이드 옷을 입혀서 캡처를…….”
“그…… 그만 해요!”
아리시아는 데네브가 장난 섞인 농담인 걸 알지만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핫핫핫! 얼굴이 붉어지셨군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저도 이만 로그아웃하죠.”
“아, 예. 그럼 안녕히. 로그아웃.”
[5초 뒤 로그아웃을 합니다.?5.
4.
3.
2.
1.]
화악!
철컹, 치이이이.
아영은 캡슐에서 나왔다.
“아영 씨!”
“아영아.”
아영을 경호하는 경호원과 가영은 캡슐에서 나오는 아영을 부축해 주었다. 언제부터 모였는지 기자들이 사진기와 카메라로 아영을 찍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언니, 들어가요.”
“그래, 들어가서 이야기 좀 하자.”
기자들이 진부한 질문을 했지만, 아영은 말없이 웃어 보였다.
GTV 방송국의 사무실 하나에 경호원과 가영이 함께 들어갔다. 경호원은 아영과 2년을 함께해서 무척 친했다.
“아영 씨, 죄송합니다. 제가 맡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해서.”
“아영아, 나쁜 일 없었지?”
아영은 사무실 문을 잠그면서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굉장했어!”
“…….”
“…….”
가영과 경호원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왜 그래?”
“아영 씨, 아무리 게임상에서의 첫 경험이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래그래, 아영아.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했는데, 괜찮아? 아니, 아프지는 않았어?”
“아아아아악!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영은 얼굴이 빨개진 채 절규했다.
“아영 씨, 그놈에게 잡혀서 당하신 게 아니에요?”
“아니, 더 이상 말하지 마라. 아영이만 힘들어지니까. 지금 당장 카오스 사에 신고를 해서 법원에 고소 준비를…….”
“그게 아니라고!”
“그럼 뭔데요?”
“그럼 뭔데?”
경호원과 가영이 동시에 물었다.
“에휴…….”
아영은 그동안 데네브와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헤에, 데네브라는 분이 그렇게 멋있어요?”
“아영이를 뻑 가게 할 정도로 잘생겼단 말이지? 게다가 머리도 좋고 7서클 마법도 쓰고…….”
“응, 잠시 기다려 봐. 내가 캡처한 사진이 있어.”
게임 도중에 자신이 보는 것을 캡처할 수 있다. 캡처한 사진은 인터넷상의 에르메키아 월드 홈페이지에 자신의 아이디로 보내진다.
“오…….”
“어머!”
가영과 경호원은 데네브의 사진을 보더니 탄성을 자아냈다.
“연예인 지망생?”
“아영아, 이런 남자는 콱 잡아야 돼!”
“그치, 그치? 엄청 멋있잖아. 게다가 가정적이고 공부도 잘하고. 잡으면 나만 편해지는 것 아냐?”
“그나저나 아영이 네가 납치된 이후에 카오스 사에서 전화가 왔었어.”
“왜? 설마 데네브 님을 삭제한대?”
어느새 데네브 님이라고 부르는 아영이였다.
“그게 아니라, 이번 기회에 특별 이벤트를 하겠다나 봐. ‘극악무도한 마법사로부터 공주님을 구하는 용사’ 같은 이벤트를 한대. 아영이 너를 구하면 유니크 급의 아이템을 골라서 준다나? 현재 공식적으로 나온 아이템은 높아봐야 레어니까 아주 파격적인 선물이지.”
“그럼 유저들이 지겠네.”
“뭐?”
“데네브 님은 고대 급 아이템을 풀로 맞추어 입었어. 게다가 이상한 신무기까지 더하고 여러 가지 트랩도 추가하면…….”
“유저들은 그냥 녹아 버리겠군. 게다가 용사가 구해야 되는 공주님은 극악무도한 마법사를 사랑하니……. 데네브라는 사람, 카오스 사 사장 아들 아냐?”
“언니도 참. 그런 사람 아냐. 성격이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어.”
“뭔데?”
“뭔데요?”
“눈빛을 보면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잖아. 데네브 님의 눈동자를 보니까 슬퍼 보였어.”
“슬퍼 보였다고?”
“슬프다니요?”
“뭔가 울음을 참는 듯한 느낌이랄까? 뭔가 슬퍼 보였어. 겉으로는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는데.”
“뭔가 안 좋은 사정이 있나 보네요.”
“그러게.”
“한번 알아보고 싶은데.”
“이제 됐고 아버지, 어머니가 걱정하시니까 집에 들어가자.”
“알겠어. 그나저나 내일이 기대되네? 유저들과 데네브 님이 싸우는 모습이 눈앞에 선해.”
“한편으론 불쌍하지. 카오스 사와 우리 GTV 사의 상술에 놀아나는 것이니까. 이번에 싸우는 장면을 우리가 독점하거든.”
“아니, 괜찮을 걸. 데네브 님은 경험치들이 온다고 좋아하던데?”
“그, 그러냐? 전국의 유저들과 싸우는 것과 똑같은 것인데.”
“질 일 없을 거야.”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아영과 가영, 경호원은 밀담(?)을 들어 보려고 기를 쓰는 기자들을 무시하며 한마디의 인터뷰도 해 주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 차를 탔다.